- 고급스런 인테리어와 친절한 손님접대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한식당 ‘향가’.
- 고급스런 인테리어와 친절한 손님접대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한식당 ‘향가’.

“식사 하셨습니까?”, “밥 한번 먹자!”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가장 친근하고 따뜻한 인사말이자 한국적인 정서가 함축된 표현이다. “밥 먹자”라는 말에는 걱정과 관심, 화해와 용서 그리고 반가움과 고마움의 정서가 녹아있어서 마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마술봉과도 같다. 이 마술봉이 한국을 넘어 세계인들에게 마술을 걸고 있다.

최근 ‘한국인의 밥상’ 즉 ‘밥’이 단조롭고 기름진 식생활에 식상한 서구인들에게 신비롭고 새로운 미각의 세계를 열어주고 있다.

음식은 단순히 영양을 채우거나 생존을 위한 수단을 넘어서는 사회적 역사적 그리고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 개인과 사회가 소비하는 음식을 보면 그 사회가 처한 자연환경, 슬픔과 기쁨 그리고 역경과 고난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따라서 다른 민족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한식소비가 증가한다는 것은 곧 우리의 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를 알고자 하는 한식열풍이 세계화와 한류의 순풍에 돛을 달고 한국에서는 가장 먼 이곳 중남미지역에까지 도달했다.

중남미 지역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융합된 지역이기 때문에 다양한 요리와 맛 그리고 식재료들이 존재한다. 또 그들의 음식에는 기쁨과 환희 그리고 슬픔과 절망이 녹아있다. 토착 원주민의 음식은 물론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의 맛과 전통, 관습이 오랜 기간 서로 섞이고 버티기를 반복하면서 독특한 맛과 그들만의 음식문화를 만들어 냈다. 유럽 이민자들로 형성된 남미지역에서는 동양의 맛과 재료들이 생소하다. 그러나 매운 맛을 즐기고 퓨전 요리가 많은 이 지역의 음식문화를 고려해 본다면 간장, 고추장, 된장 등의 한식재료들을 머지않아 이들의 식탁에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한식과 비슷한 중남미 지역 요리
현재 중남미 국가의 수도에서는 어느 곳을 가더라도 어렵지 않게 한국식당을 찾아볼 수 있다. 일부 한식당 앞에는 순서를 기다리며 길게 줄을 서있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아직까지 일본의 스시전문점이나 중국의 뷔페식당처럼 대중화되지는 않았지만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한식을 찾는 현지인들이 많아졌다. 중남미까지 한류열풍이 불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가 한식의 인기에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 가요와 드라마에 매료되면서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봤던 한국 음식을 맛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한식이 중남미지역 현지인들에게 어필하는 이유는 첫째 한식이 곡물, 야채류, 육류, 해산물, 어조류 등 폭넓은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다. 둘째, 달콤, 새콤, 매콤, 짭조름한 맛을 모두 낼 수 있는 다채로운 맛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현지인들에게 매혹적이다. 셋째 웰빙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기름지고 열량이 높은 육류와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에 지친 현지인들에게 다양한 야채와 발효음식으로 차려진 한식밥상은 새로운 미각의 세계로 비치고 있다.

중남미지역의 대중적인 요리들은 놀랍게도 우리가 먹는 음식과 상당히 유사하다. 특히 토착원주민의 비율이 높은 중미지역에는 콩, 옥수수, 감자 그리고 호박을 고기육수와 함께 끓여서 먹는 국물요리가 많다. 대표적인 요리로는 고기육수에 쌀과 야채 그리고 천엽과 같은 부속고기를 넣고 함께 끓여서 먹는 ‘로끄로’, 양고기 육수에 야채를 넣어 끓인 차이로, 닭육수에 매운 고추를 넣어 끓인 ‘사히따’ 등이 있다.

브라질 사람들은 돼지고기, 콩, 쌀 그리고 오렌지를 넣어서 만든 ‘페이호아다’라는 음식과 꼬치요리의 일종인 ‘로디시오스’를 즐겨 먹는다. 유럽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칠레에서는 육류 중심의 식단에 스페인식 유럽 볶음밥인 ‘빠에야’, 파스타, 피자 등의 음식이 대중적이다. 감자, 옥수수, 마늘, 고추, 닭, 소고기, 해산물, 쌀, 약초 등을 주된 식재료로 사용하며 잉카, 스페인, 아프리카, 중국, 일본 그리고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은 페루의 음식은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손꼽힌다.

이렇듯 중남미지역은 아주 오래 전부터 새로운 음식문화를 수용해 왔고, 자신들의 전통음식에 다른 지역의 식재료와 맛을 가미해 더욱 풍부하고 다채로운 맛을 발전시켜왔다. 따라서 현재 음식수용에 개방적인 중남미지역에 불기 시작한 한식열풍을 잘 이용한다면 한식 세계화를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칠레의 한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80%가 현지인일 정도로 한식에 대한 인기가 높다.(위 사진) 신비스러운 인테리어로 한국이라는 미지의 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에콰도르의 한식당 ‘아띠’.
- 칠레의 한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80%가 현지인일 정도로 한식에 대한 인기가 높다.(위 사진)
신비스러운 인테리어로 한국이라는 미지의 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에콰도르의 한식당 ‘아띠’.

한식사업, 교민의 블루오션으로 떠올라
남미의 대국인 브라질에는 중남미지역에서 가장 많은 한인들이 거주하는 만큼 100여개에 달하는 한식당이 있다. 현지인들의 한식에 대한 높아진 관심과 호감도에 호응하기 위해 한국문화원에서는 한식을 소개하는 한국음식 강습회와 K푸드(food) 페스티벌을 주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브라질 사람들에게 한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인터넷(banchan.com)을 통해 한식을 홍보하고 있다. 최근엔 한식에 대한 인기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브라질의 유력일간지에서 된장찌개와 잡채, 김치, 불고기, 삼계탕 등 한국의 대표적 음식에 관한 기본 정보를 사진과 함께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질 좋고 맛좋은 소고기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인지 아르헨티나는 음식에서 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래서인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서 다른 나라 식당과 음식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한식당의 경우는 한인을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에 시내에서 떨어져 있으며 현지인들에게는 폐쇄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색다른 한식밥상을 맛보고 만족한 아르헨티나인들 사이에서 한식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현지인들에게 개방하는 한식당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색다른 한식을 맛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르헨티나인들도 점차 한식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이제 맛을 보고 변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이 시점이 아르헨티나의 주류사회 속으로 한식이 진출할 수 있는 적절한 타이밍이기도 하다. 또 한국 교민 사회 내에서도 교민들이 주로 종사해 왔던 의류업에서 탈피해 업종다양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식사업은 아르헨티나의 새로운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인촌에서 한식당 ‘미담’을 운영하고 있는 손정환씨는 “식당을 오픈한 지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식당을 찾는 현지인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메인메뉴를 주문하면 함께 나오는 다양한 반찬에 열광하며 비빔밥과 불고기를 가장 선호하지만 김치찌개와 된장찌개에 도전하는 현지인들도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한식당 ‘향가’를 찾는 현지인들은 주인장 정안나씨의 친절하고 상냥한 서비스와 정성이 담긴 음식에 큰 감동을 받는다. 한식의 맛과 정성 그리고 주인장의 세심한 배려가 아르헨티나인들의 음식문화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태평양과 접해있는 칠레는 해산물을 즐겨먹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해물탕 그리고 해물볶음밥과 유사한 음식들이 대중적이다. 수도 산티아고에는 한인촌을 중심으로 많은 한식당이 있으며, 손님의 80% 이상이 현지인일 정도로 한식에 대한 인기가 높다. 맵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기 때문에 맛이 색다르고 풍성하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달거나 짜지 않고 야채를 많이 사용한다는 점에서 건강에 좋은 웰빙음식으로 칠레 언론에 종종 소개되기도 한다.

한식의 인기는 중미의 에콰도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중미지역에 불고 있는 한류열풍을 기회로 삼아 한국문화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를 한식의 현지화에 이용하고 있다. 중남미 지역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골칫거리는 치안문제와 반복되는 경제위기다. 따라서 한식당들은 입지선정에 있어서 비교적 안전하고 깨끗한 지역을 선택해 경기변동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중·상류층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현지인들은 한식이 건강식이라는 이유 외에도 한상가득 차려지는 다양한 반찬과 비우는 즉시 채워지는 친절한 서비스에 큰 감동을 받고 한식당의 단골이 된다.

한식당 ‘아띠’를 연 지 2년 됐다는 송태주씨는 고급스런 식당 인테리어를 통해 한국문화에 대한 이미지를 고급스럽게 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한식의 세계화에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되는 많은 반찬이 오히려 현지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소품들로 단장된 실내와 정갈한 반찬을 통해 한국인의 집밥을 맛볼 수 있는 아르헨티나의 한식당 ‘미담’.
-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소품들로 단장된 실내와 정갈한 반찬을 통해 한국인의 집밥을 맛볼 수 있는 아르헨티나의 한식당 ‘미담’. 

다양한 식재료, 건강식 이미지 강해
한식당은 한국 문화의 신비로움과 유구한 역사 그리고 고급스러움을 전달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수단이다. 현지인들에게 외식, 특히 이국 식당에서의 식사는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으려는 것만은 아니다. 음식은 문화 엿보기의 첫 번째 관문과도 같다. 가보지 못한 낯선 나라와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한 끼 식사는 단순히 먹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아직까지 중남미인들에게 미지의 세계로 인식되고 있는 한국 문화를 우호적이고 친근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음식 외에도 고급스러운 도자기 식기, 차, 전통술, 전통적이며 세련된 공간, 음악 등을 통해서 일식 그리고 중식과 차별되는 한식만의 고유한 이미지를 확립해야 한다.

스시중심의 일식은 고급음식이라는 이미지는 있지만 생선회를 주재료로 하기 때문에 음식 수용자들이 제한적이다. 그리고 중식은 기름지다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건강과 다이어트에 관심이 높은 현대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이에 반해 한식은 다채로운 맛, 육류, 야채, 해산물을 고루 어우르는 다양한 식재료로 세계의 음식문화권에 고루 어필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건강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대중적이며 동시에 고급음식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할 수도 있다. 현재 중남미지역에 부는 예사롭지 않은 한식의 인기는 한국문화의 세계화와 더불어 경제적 효과까지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 손혜현 한국외국어대 중남미연구소 초빙연구원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냈다. 중앙대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이화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 재직 중이던 한국외국어대 중남미연구소 연구교수직을 그만두고 아르헨티나 유학길에 올라 현재 아르헨티나 토르꾸아토 디 텔라 대학 정치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한국외국어대 중남미연구소 초빙연구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