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4%. 아사히맥주(이하 아사히)의 2009년 연간퇴직률이다. 연간 100명 중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이 1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 해만 그럴까 싶지만 2005~2009년 내내 1% 이하다. 그렇다면 왜 1%도 그만두지 않을까. “성실하고 열정적인 사람이 집단력을 발휘하고 신뢰관계와 일체감이 두텁기 때문”이란 게 회사의 공식답변이다. 그럴싸한데 정말인가 싶다. 그래서 다른 사실자료를 찾았다. 2008년 아사히는 ‘일할 맛 나는 회사’ 전국 5위에 올랐다(GPTW재팬 조사결과). 이는 사원의 직접평가를 분석한 결과로 비교적 신뢰도가 높다.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게 자랑스럽다”는 직원도 많다.  

“아사히에서 일하는 게 자랑스럽다”

아사히의 성공신화부터 살펴보자. 아사히는 맥주 맛 좋기로 유명한 일본에서도 최고 명성을 자랑하는 메이커다. 1990년대 이후 2강2중의 플레이어 중 아사히와 기린이 각각 40%대에 육박하는 점유율로 시장을 리드한다. 삿포로와 산토리가 각각 10%를 넘기며 3~4위를 기록 중이다. 전체 판세는 기린의 장기집권을 아사히가 위협하며 1위 쟁탈전을 벌이는 형태다. 그러나 최근 주도권은 아사히가 쥔 분위기다. 2010년 현재 시장점유율은 아사히(37.5%)가 1위다. 그 뒤를 기린(36.7%), 산토리(12.9%), 삿포로(12.0%)가 잇는다. 아사히의 1위 탈환은 2년 만의 성과로 제3의 맥주 등 젊은 층 입맛에 맞춘 신상품 기여도가 특히 컸다.

종업원은 모두 3719명이다(연결 1만7316명). 맥주메이커답게 남성(3177명)이 주류지만 여성(542명)도 적잖은 규모다. 2009년 이직률은 0.84%지만 그룹전체로는 0.64%까지 떨어진다. 해고자는 제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길도 열어뒀다. 사무부문을 중심으로 유기계약사원(준사원·임시사원)에서 정규직으로 신분전환이 가능한 등용시험을 실시한다. 급여수준은 평균을 웃돈다. 2009년 임직원 평균연봉은 881만3974엔에 달한다. 기업연금은 확정급여(DB)가 100%에 달하며 확정갹출(DC)은 85%의 종업원이 참가한다.

아사히맥주(朝日酒)의 공식설립은 1949년이지만 실제 역사는 이보다 길다. 1889년 아사히맥주의 전신인 오사카맥주(大阪酒)가 설립됐기 때문이다. ‘아사히맥주’가 발매된 건 1892년의 일이다. 1893년 시카고세계박람회에서 아사히맥주는 최우등을 수상했다. 1990년엔 일본 최초로 병맥주를 시판한 데 이어 1957년엔 캔 맥주를 역시 최초로 내놨다. 1987년엔 자사 최고의 히트상품인 ‘슈퍼드라이’를 발매하는 등 일본 맥주역사를 주도해 왔다.

아사히의 1위 기반은 뭐니뭐니 해도 역시 ‘슈퍼드라이’의 공이 크다. 1980년대 중반 위기 직전의 아사히를 구해 낸 주역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일본 맥주 역사를 ‘슈퍼드라이’ 출시 전후로 나눌 만큼 존재감이 현격해서다. 그게 1987년의 일이다. ‘슈퍼드라이’ 출시 이후 업계판도가 변했고 제품 다양성이 시도됐으며 ‘맥주=국민 술’ 인식이 정착됐기 때문이다. 물론 출시 이전 아사히는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 신세였다. 전쟁 직후 30%를 웃돌며 1위를 달렸지만 1980년 중반 점유율 9%대까지 추락하며 몰락일로를 달려서다. 한때 부도위기까지 직면했다. 세간에선 아사히(朝日)를 뜨는 해가 아닌 지는 해의 ‘유우히(夕日)’맥주로 조롱하기도 했다. 

그랬던 아사히가 1986년 외부에서 구원투수를 영입한 뒤 180도 달라졌다. 맥주업계 문외한이었던 은행원 출신의 히구치 히로타로(口廣太郞) 사장이 주인공이다. 그는 바닥까지 추락한 아사히의 성장발판을 임직원 의식전환에서 찾아냈다. 임직원만 움직이면 위기극복도 순식간에 가능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그의 의식개혁 작업은 주효했다. 취임 이후 패배의식 대신 도전정신을 심는 데 노력했다. 처음엔 반발도 심했다. “전례가 없으니 안 한다”거나 “노력했는데도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는 투의 자조감과 패배감이 지배적이었다. 사장이 먼저 나섰다. 경쟁업체 CEO를 직접 찾아가 아사히 문제점을 청해 들었다. 이때 충고는 지금껏 회사의 4대 지침으로 준수된다. △고품질 원재료 △경쟁업체 흉내 금지 △건강지향 △재고맥주 전량 회수 등이다. 이후 회사는 12억 엔의 거금을 들여 오래된 맥주를 전량 회수했다. CEO의 결단은 임직원 자부심으로 연결됐고 이는 곧 부활발판으로 작용했다.

결정적 부활에너지는 ‘슈퍼드라이’의 성공적 발매였다. 당시 지배적이던 업계관행에서 벗어나 단순한 용기변화 대신 맛 자체를 업그레이드시키는 카드를 선택한 결과다. 소비자 10명 중 9명이 지적한 맛에 대한 불만을 새로운 제품개발에 적용시켰기 때문이다. 그도 그런 것이 아사히의 맥주는 고객이 원하는 맛이 아니었다. 맥주 맛을 구분 못 할 줄 알았는데 일본고객은 누구보다 정확히 기린과 아사히 맛을 구별해 냈고 결과적으로 기린을 선택한 것이다. 결국 미묘한 맛 차이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5000명 이상의 소비자에게 원하는 맛을 물었다. 혁신제품은 원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었다. 아사히는 슈퍼드라이 개발까지 엄청난 굴곡·장벽에 봉착했다. 결론은 맛 논쟁으로 이어졌다. 지향점은 ‘가볍고 잘 넘어가는’ 드라이맥주였다. 와인처럼 드라이하면서 청주처럼 쌉쌀한, 그리고 풍부·넉넉하면서(コク) 산뜻·정갈한(キレ) 맛을 내기란 전례 없는 도전이었다. 하지만 CEO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도전정신은 결국 꿈의 맛을 개발해 냈다. 결과는 대히트였다. 1987년에만 5296만 박스를 팔아 최고 판매기록을 세웠으며 여세를 몰아 1989년엔 1억 박스를 넘겼다.    

- (왼쪽)일본 도쿄의 명물 아사히맥주 본사 비어홀. (오른쪽)공장 견학시설.
- (왼쪽)일본 도쿄의 명물 아사히맥주 본사 비어홀. (오른쪽)공장 견학시설.

히구치 사장 슈퍼드라이로 승부수 ‘대박’

히구치의 인간경영 지혜는 ‘직원중시’에서 출발한다. 모든 게 사람에서 비롯된다는 믿음이 붕괴 직전의 아사히를 되살려 낸 원동력이었다. 그는 직원을 믿었고 불안감을 달램으로써 부활전략의 첫 기치를 들어올렸다. 먼저 임직원에게 희망을 줬다. 1980년대 초반 경영난으로 500명이 해고된 일도 있었기에 종업원 불안감은 극에 달했었다. 때문에 취임 직후 “절대로 감원은 없으며 보너스도 가능한 한 지불할 것”을 약속했고, 이후 안정발판 위에서의 실력발휘를 위해 “꿈을 가질 것”을 권유했다.

히구치의 경영원점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감사가 교만을 없애고 일을 분명하게 해주며 상대방 기대에 부응하고자 없던 힘까지 발휘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정직한 마음은 히구치의 경영원점을 완성하는 키워드다. 이는 부친이 이불가게를 할 때 어깨 너머로 배운 판매정신의 정점이었다. 이불이야말로 속을 알 수 없기에 정직하게 팔지 않으면 곤란해질 수밖에 없어서다. 이런 부친에게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게 장사의 기본원칙임을 배웠다. 그가 광고보단 내용을 중시하는 일관된 영업방침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회사부활의 일등공신인 ‘슈퍼드라이’출시 때도 화려한 TV-CM보다 하나하나 설명할 수 있는 신문광고라는 정공법을 택했다. 그는 “어떤 정밀한 경영이론도 그 논리는 매우 단순하다”며 “감사하고 정직하며 사람을 믿는 마음이야말로 최고의 경영무기”라고 단정한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히구치의 경영철학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전승된다. 본인 역시 적극적인 가르침에 열심이다. 그의 저서 <인재론>은 출간 직후 일본 재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98년엔 불황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의 부활전략을 책임지는 ‘경제전략회의’ 의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탄탄한 복리후생 직원들 사기충천

직원행복의 근원은 역시 탄탄한 복리후생이다. 확실히 아사히맥주엔 사원이 자유롭게 물건을 선택하는 사택제도를 비롯해 다양한 복리후생제도를 구비했다. 특히 여행·교육 등 복리후생 메뉴를 자유롭게 고르는 ‘카페테리아 플랜(선택형 복리후생제도)’의 부여금액은 연 12만 포인트(1포인트=1엔)에 달해 타사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메뉴종류는 모두 38가지다. 라이프플랜 지원, 개호, 재산형성, 주택, 건강, 자녀교육, 자기투자, 유사대비 등 각양각색이다. 임직원은 부여받은 포인트를 사용해 본인이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아사히의 복리후생은 종류가 많다. 최근 중시되는 출산·육아·개호와 관련한 제도도 7가지나 있다. 산전·산후휴가를 비롯해 육아·개호휴가 등을 세분화해 이용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유급휴가를 비롯해 소득보전 차원의 수당지급을 하는 경우가 적잖다. 2009년 현재 유급휴가 취득률은 77.9%에 달한다. 2007년부터는 유연근무제도를 도입했다. 본인희망에 따라 자율적인 근무시간을 정해 일하는 시스템이다. 이때 반드시 근무해야 하는 코어타임도 유연성을 이유로 없앴다. 2009년엔 재택근무를 시험적으로 도입했다. 장기수입지원제도란 것도 있다. 질병·사고로 장기간 취업위기가 발생했을 경우 수입을 확충해 주기 위해 2005년 도입한 제도다. 단체장기장해소득보상보험에 가입함으로써 재원을 확보했다. 보험에 의해 최장 60세까지 수입 일부를 보상받을 수 있다. 한편 근로안전을 위한 이중삼중의 보호막도 갖췄다. 안전위생위원회를 각 사업장에 노사참여로 설치해 안전·위생을 저해하는 작업공간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확인·개선한다. 덕분에 근로현장의 재해비율은 극히 낮다. 2006년 0.1%대였던 게 2009년엔 제로로까지 떨어졌다.

일할 맛은 복리후생만으로 보장되진 않는다. 복리후생의 가치를 한층 키우는 쾌적한 근무환경과 만족스런 임금제도 등이 빠져선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OB인 정년근로자의 활용도 직원행복을 키우는 장치 중 하나다. 회사는 2007년부터 입사 2~3년차 및 중도입사자를 대상으로 커리어면접을 실시 중이다. 담당자는 인사부와 그룹기업 사장을 경험한 2명의 정년 OB다. 2명은 전국공장·지점을 순회하며 해당상사에게 육성방침·과제를 들은 후 개별면접을 실시한다. 직장에선 못 하는 얘기부터 OB본인의 실패담과 극복과정 등 많은 상담이 오간다.

- 1986년 히구치 사장 취임 이후 아사히는 놀라운 성장을 기록했다. 현재 히구치 사장은 아사히맥주 그룹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희망 부서 배치 ‘다이렉트 어필’ 적극 도입

이쯤에서 회사와 직원관계를 규정한 명문방침을 보자. 그룹인사 기본방침으로 모두 4가지다. △도전·혁신사원에 대해 성장과 능력발휘 기회제공 △능력의 충분발휘·발군성과에 대한 충분보상 △사원성장 추진과 그룹 전체의 경쟁력 향상 △고용확보에의 노력 등이다. 직원만족과 연결되는 주요항목은 역시 안정적인 고용확보다. 해고에 의한 인원삭감이 없다는 데 그치지 않고 사원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메시지가 회사방침에 명문화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기본방침을 실천하는 키워드로 신(新), 성(成), 기(氣), 결속(結束)의 4개 글자를 제시했다. 이는 처우제도에도 관통된다. 비관리직 급여는 능력급의 일부지만 능력평가는 철저히 신, 성, 기, 결속의 4대 내용을 반영한다. 즉 능력내용을 4대 항목범주에 넣은 행동 프로세스에 가중치를 둔다. 때문에 업적평가로 급여가 내려가거나 격차 발생도 크지 않다. 평가제가 미래육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연공서열적 임금제도도 아니다. 부장이라도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면 과장직으로 강등되고 급여도 내려가는 구조다. 이 결과 우수한 젊은 인재를 등용하는 게 가능해졌다.

또 성과·업적만으로 승격시키는 것에도 보호망을 마련했다. 발탁인사의 부작용 방지 차원이다. 주요 포스트에 등용할 땐 소속부문의 정보와 노조 등 모든 정보를 모아 신중하게 검토한다. 특히 부서에 연상직원이 있을 때 이를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판단을 중시한다. 연상직원을 긍정적 차원에서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을 때만 등용한다는 얘기다. 업적의 수행능력만으로 직위는 상승할지 몰라도 연령·경험이라는 절대가치를 무시해선 안 된다고 봐서다. 때문에 연상부하를 정중하게 대접하며 동기부여를 향상시키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경우에 한해 승진이 결정된다. ‘다이렉트 어필’이란 것도 있는데 이는 종업원 희망·의욕을 최대한 존중해 본인이 배속되고 싶은 부서에 대해 직접 어필하는 제도다. 2009년의 경우 신청자의 22%가 희망부서에 배치됐다. 

상당수 일본 회사는 버블붕괴 이후 종신고용·연공서열과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두터운 복리후생을 조금씩 포기했다. 위기탈피를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아사히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원칙은 지켰다. 제도는 조금씩 바꿔도 인재중시의 기본철학은 끝까지 고수했다. 어쩌면 더 중시했다고 보는 게 옳다. 애사정신의 발휘로 위기탈피는 물론 1위 메이커로 등극한 아사히의 경영철학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신뢰를 품은 일할 맛 나는 근로환경 제공이야말로 어떤 경영이론보다 중요할 수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