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생산비용 증가·달러 약세 속

  

정부 각종 세제 혜택에 GM 등 ‘U턴’



- 훌라후프를 생산하는 왬오는 최근 중국과 멕시코에 있던 생산라인 절반을 미국내로 이전시켰다.
- 훌라후프를 생산하는 왬오는 최근 중국과 멕시코에 있던 생산라인 절반을 미국내로 이전시켰다.

지금 40~50대 중에는 어린 시절 보던 TV프로그램 가운데 훈훈한 인간미를 보여주면서 어려운 여건에서도 인간의 본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용기를 준 미국 드라마 <월튼내 사람들>이란 시리즈물을 기억할 것이다.



이 드라마는 버지니아 주의 한 시골 농장 제재소 주인인 존 월튼의 대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경제 대공황기의 어려운 미국 내 삶을 조명해 인기를 끌었다.



물론 이 시리즈물은 얼 햄너라는 프로듀서가 <스펜서 마운틴>이라는 소설을 근거로 제작한 것이지만 1972년부터 1981년까지 이어진 이 드라마에는 잡화상으로 출발해 거부가 된 월마트의 창업주인 샘 월튼이라는 전형적인 미국식 입지전적인 인물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월마트가 미국인들에게 크게 주목을 받아 인기를 얻는 원동력이 바로 이 드라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15개 국가에 8500여개의 매장을 거느린 월마트는 경기 침체 속에서도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다. 판매고는 2580억 달러에 달한다.



월마트의 성공은 구입단가를 낮추고 원가를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구매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시장에서 물품을 확보, 공급함으로써 어느 매장보다 싼 가격으로 소비자를 흡입하는 선순환 모델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대부분 제품은 중국으로부터 수입된다.



‘가장 싼 가격, 매일, 모든 품목에서’(Low prices, Everyday, On everything)가 월마트의 슬로건이다. 경쟁업체로 타겟과 K마트 등이 있지만 싼 가격은 물론 매출이나 이익, 규모 면에서 월마트를 따라가지 못한다.

중국산 일색이던 월마트 미국산 제품 급증

그러나 미국 내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싼 가격으로 환영받는 월마트는 미국 소비자들의 비난의 대상이기도 하다. 바로 “싼 가격의 중국산 저품질 집합소”라는 비난이다. 실제로 월마트의 취급품목 가운데 80~90%는 중국제품이었고, 가격이 싼 반면에 품질이 엉망이어서 한번 구입한 품목은 오래가지 못하고 곧바로 쓰레기가 되는 것이 보통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같은 월마트 상품의 저품질은 경쟁업체인 타겟이나 K마트 등이 중국보다는 그래도 품질이 낫다는 말레이시아나 필리핀, 대만 상품을 취급함으로써 버틸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기도 했다.



월마트의 성공비결이 된 저가정책의 배경은 바로 싼 가격의 수입품을 확보해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월마트의 품목 확보지가 점차 미국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 월마트에서 취급하는 품목들 가운데 중국산 등 싼 노동력을 근거로 한 지역에서 제조된 제품보다는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 제품이 더 많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월마트의 CEO 마이크 듀크 자신도 최근 전국 점포망 회합의 자리에서 이 같은 사실에 놀랐다는 말을 할 정도로 소문 없이 월마트의 제품들이 서서히 미국산으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월마트의 상품이 점차 미국산으로 바뀐 것은 월마트 자체적인 전략은 아니다. 창업주 샘 월튼이 이미 50년 전에 ‘미국산 제품 구매운동’으로 월마트를 일으켜 세웠던 것처럼 이번에도 다시 ‘바이 아메리카’ 운동을 벌이면서 전략을 바꾼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최근 들어 미국 내 제조업체들 가운데는 그저 싼값의 노동력을 근거로 이익만을 추구해 중국에서 생산해오던 방식을 지양, 미국 내에서 자체적으로 제조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월마트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54%가 바로 식료품과 일반 생활용품이라는 점도 미국산 제품이 증가한 요인이기도 하다. 농산물이나 수건, 비누 등의 경우 대부분은 미국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른 상품들도 외국산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컨설팅 업체들은 새로 제조공장을 설립하려는 업체들에게 중국이나 제3국에 공장을 신설하는 대신 미국 내에 설립하라고 조언한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은 최근 고객사들에게 제조공장 소재지로 중국보다는 미국을 적극 권하고 있다. 물론 중국이 아직은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이 미국의 10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에 원가절감 면에서는 매력적인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이들 컨설팅 업체들이 중국 대신에 최근 미국을 다시 권하는 이유가 ‘미국산 구매’를 적극 권장하기 위한 애국심에서만 발로한 것은 아니다. 중국 내에서 일고 있는 노조 설립 움직임과 노동권에 대한 일반인들의 개념이 서서히 고개를 들면서 조만간 낮은 임금이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제조장소가 될 것이라는 철저한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다.

- 중국산 일색이던 월마트에 미국산 제품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위). 해외에서 미국내로 생산라인을 이전한 캐터필러의 불도저.
- 중국산 일색이던 월마트에 미국산 제품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위). 해외에서 미국내로 생산라인을 이전한 캐터필러의 불도저.

제조업체들 본토로 속속 공장 옮겨

BCG는 “아마도 2015년쯤이면 미국 내 소비자들을 위한 제조업 공장 소재지로 중국이나 미국이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다소 빠른 전망을 내놓는다. 이 같은 근거는 중국내 임금이 매년 17% 정도씩 오르고 있다는 전제에서다. 거기에 위안화 대비 달러화의 절상 속도까지 가미한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생산비용 절감 차원에서 신흥국들을 제조기지 거점으로 삼아왔던 미국 제조업체들이 미국 본토로 속속 돌아오고 있다.



중장비 제조업체인 캐터필러는 굴삭기의 생산라인을 이미 텍사스 주로 이전해 왔으며, 조립식 가구를 제조하는 소더의 경우에도 미국 내 다양한 지역으로 이전해 왔다. 금전등록기의 대명사인 NCR 역시 생산라인을 중국에서 이미 조지아 주로 이전했다. 원반접시와 훌라후프를 제조하는 장난감 회사인 왬오는 중국과 멕시코에 있던 생산라인의 절반을 미국 내로 이전시켰다. 이 때문에 BCG는 “미국에서 제조업의 르네상스가 시작됐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미국 제조업체들이 U-턴하는 이유는 중국 등 신흥국가는 인건비가 급등해 투자매력이 떨어진 반면, 최근 달러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것이 수출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 정부가 공장 설립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감세혜택 등 유인책을 제시하고 있는 점도 미국 기업들의 ‘U-턴’ 요인이 되고 있다.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중국산은 불량품”이라는 이미지도 한몫을 했다. 소비자들이 중국산 제품을 저질상품으로 취급해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어려운 미국 경제를 살리자는 ‘미국 제품 구매운동’이라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인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게리 피사노 교수는 “공장을 오래도록 유지하려는 업체들로서는 조만간 중국 내 임금이 미국 수준으로 올라서고, 각종 복지수준 역시 커질 것 등을 염두에 둘 때 생산라인을 미국에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GM이 최근 20억 달러의 자본을 투입, 미국 내에 17개의 공장을 설립할 것이라고 발표한 것은 이 같은 움직임의 대표적인 것이기도 하다.



게리 피사노 교수는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이머징 국가에 공장을 설립하려는 기존의 전략을 유지하는 것은 수요가 증가하면서 더 저렴한 노동비용으로 제품을 제조해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 판매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완제품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0일가량. 이런 점에서 미국 제조업체들은 점차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는 제품을 유지하면서 살아남기는 어려운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