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충칭시 보시라이 당 서기가 지난 3월 13일 베이징에서 열린 전인대 회의 도중 회의장 천장을 쳐다보고 있다.
- 중국 충칭시 보시라이 당 서기가 지난 3월 13일 베이징에서 열린 전인대 회의 도중 회의장 천장을 쳐다보고 있다.

중국 사회의 내부는 지금 지속적인 개혁을 주장하는 흐름과, 개혁에 반대하는 흐름이 빚어내는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몸살이 본격적인 질병의 전주곡이 될지, 본격적인 질병으로 발전하기 전에 잡힐지는 알 수 없지만, 몸살이 예사로운 몸살은 아닌 것으로 감지된다.

지난 2월6일 인구 3000만이 넘는 중국 최대의 특별시 충칭시의 부시장이 돌연 쓰촨성의 성도(省都) 청두시 주재 미 영사관에 망명을 요청하기 위해 진입했다. 왕리쥔이라는 이름의 이 부시장은 중국 경찰 차량 70여대가 미 영사관을 봉쇄하자 영사관 밖으로 나와 베이징으로 압송됐다. 3월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원자바오 총리는 정부공작보고를 하면서 ‘개혁’이라는 단어를 70여차례나 언급해 주목을 받았다. 3월15일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 나온 원자바오는 “개혁에 나서지 않으면 또다시 문화대혁명을 겪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왕리쥔 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자 “충칭시 간부들 모두가 반성해야 할 것이며 사건은 철저히 조사하고 있으니 인민들이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다음날 충칭시 당위원회 서기 보시라이는 충칭시 관련 직위에서 해임됐다.

중국 사회와 권력구조 내부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 2월23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는 ‘심화개혁 인식론 ①’이라는 시리즈 논평의 첫 번째 글이 실렸다. 제목은 ‘필요한 것은 불평도 위기도 아니다(寧要微詞 不要危機)’였다.

“1978년 이후 지금에 이르러 중국의 개혁은 마치 배가 강의 중류에 이르러 떠가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강폭은 넓어졌고, 파도는 더욱 거칠어져 배를 뒤흔들고 있다. … 개혁에는 위험이 뒤따르지만 개혁을 하지 않으면 당이 위험해질 것이다. … 민의에 귀를 기울이고, 소문을 따라다니지 말라. … ”

인민일보가 근래 들어 가장 의미심장한 내용의 논평을 싣기 사흘 전인 2월20일 관영 신화통신은 ‘덩샤오핑 남방담화 발표 20주년을 기념하는 글’을 타전했다.

“20년 전의 봄날, 복잡한 국내외 형세 아래에서 세기의 위인 덩샤오핑은 35일간의 남국 여행을 통해 화하(華夏·중국의 별칭) 대지에 무한한 생기와 활력을 가져다 준 봄바람을 불게 했다. … 1992년 1월18일에서 2월21일까지 덩샤오핑이 탄 열차는 우창에서 선전으로, 주하이에서 상하이로 달렸다. 당시 88세의 고령이던 덩샤오핑은 현지를 돌아보던 중 이렇게 말했다. ‘사회주의도 시장경제를 할 수 있다.’ …”

인민일보와 신화통신의 의미심장한 논평은 20년 전인 1992년 덩샤오핑이 중국 남부의 경제특구 도시들을 돌면서 “무엇을 망설이느냐, 기회를 잡았을 때 발전해나가자”고 촉구한, 이른바 ‘남순강화(南巡講話)’를 계기로 게재한 것이었다.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의 시대는 1978년 12월부터 시작됐지만, 개혁이 10여년 진행되는 동안 중국 사회 내부에서는 당시 중국공산당 최고의 경제전문가 천윈을 비롯한 보수파들이 “지나치게 빠른 경제성장은 사회주의의 기본을 위태롭게 만든다”면서 개혁과 경제발전의 템포를 늦출 것을 요구하는 흐름이 생겨 개혁이 위기를 맞고 있었다. 당시 88세의 덩샤오핑은 이미 상하이시 당서기 출신의 장쩌민에게 당 총서기 자리를 넘겨주고 은퇴한 입장이었지만, 천윈을 비롯한 보수파들의 견제에 장쩌민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중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흔들릴 위기에 처하자, 노구를 이끌고 경제발전의 수혜지역이던 중국 남부의 경제특구 도시들을 돌면서 빠른 경제발전을 지속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베이징의 보수파들을 압도한 것이 바로 남순강화라는 사건이었다.

- 중국 광둥성 선전시 시민들이 덩샤오핑과 선전의 전경이 그려진 간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간판 왼쪽 위에는 ‘당의 기본 노선을 유지하며 100년 동안 흔들리지 말자’고 적혀 있다.
- 중국 광둥성 선전시 시민들이 덩샤오핑과 선전의 전경이 그려진 간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간판 왼쪽 위에는 ‘당의 기본 노선을 유지하며 100년 동안 흔들리지 말자’고 적혀 있다.

반 개혁 흐름 겨냥해 공격 화살 날려

인민일보와 신화통신의 논평은 중국 정치와 사회의 내부에서 1992년의 남순강화 당시와 비슷한 분위기가 이미 형성되었음을 알게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혁에는 위험이 뒤따르지만 개혁을 하지 않으면 당이 위험해진다”고 주장하는 인민일보의 논평이나, “덩샤오핑은 ‘발전이 당연한 도리’라고 말했지만 지금은 ‘지속적인 발전이 당연한 도리’라고 말해야 한다”는 신화통신의 논평은 모두 지속적인 개혁을 지지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현 중국 사회 내부에서 형성되고 있는 반(反) 개혁의 흐름을 겨냥해 공격의 화살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 중국 사회 내부에서 누가 지속적인 개혁을 주장하고 있고, 누가 개혁에 반대하는 흐름을 형성하고 있을까. 도대체 충칭시 당서기에서 해임된 보시라이는 어느 편에 서 있다가 목이 잘린 것일까.

이와 관련, 보시라이가 지난 3월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충칭시 인민대표들과 함께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후진타오 당 총서기와 원자바오 총리 체제 아래에서의 마지막 전국인민대표대회가 개막한 인민대회당에 보시라이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나타나 “사회주의의 최대의 우월성은 공동부유를 창출하는 것”이라는 평소의 주장을 설명했다.

“만약 소수인들만 부유해지는 자본주의로 굴러 떨어진다면 우리는 실패하는 것입니다. 빈부격차를 축소하고, 공동부유를 실현하는 것이 충칭시 정부의 시정 강령의 중요한 기둥이고 기본 목표입니다. 마르크스는 공동부유를 생산하는 것이 새로운 사회의 목표라고 말했으며, 엥겔스도 사회주의 공평분배에 대해 말하면서 어떤 실현방식을 채택하든 공동부유라는 흐름에서 멀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오 주석은 건국 초기에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목적은 모두에게 할 일이 있고, 먹을 것이 있으며, 모두가 공동부유해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덩샤오핑 동지도 전국 인민들이 공동으로 부유해져야지, 빈부 양극으로 분화해가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 최대의 우월성은 공동부유에 있으며,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의 본질이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날 저녁 개혁개방의 발원지인 광둥성 인민대표들과 함께 내외신 기자회견에 나선 왕양 광둥성 당서기는 “급히 공을 다투기 위해 단기적인 이익을 구하는 데 몰두한다면, 경제발전 방식의 전환을 하기에 쉽지 않은 병목현상들과 만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경제발전의 단기 효과에 집착하지 말고 지속가능한 성장과 종합국력의 상승이라는 목표에 따라 발전을 지속해나가자”고도 했다. 왕양은 성장의 지속을 강조하는 광둥모델의 지지자로서 정치 개혁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중국의 개혁은 기득권자들의 반대에 가로막혀 있다”는 말도 했다.

보시라이와 왕양은 중국 사회 내부가 오는 가을의 권력구조 교체를 앞두고 ‘충칭 모델’과 ‘광둥 모델’, 다시 말해 경제발전의 속도를 다소 떨어뜨리고 질적인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과, 지속적이고 빠른 경제발전을 주장하는 흐름 사이의 갈등, 마오쩌둥 시대의 평등사회적 요소를 도입하자는 ‘좌적(左的)’인 주장과 덩샤오핑의 개혁이론에 보다 충실하자는 ‘우적(右的)’인 주장 사이의 갈등을 대변한 셈이었다. 또한 분배를 중시하는 ‘공부론(共富論)’과 성장을 중시하는 ‘선부론(先富論)’ 사이의 갈등이기도 하다.

보시라이 사건은 오는 가을 중국공산당이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에서 시진핑-리커창 체제로의 교체를 앞두고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보시라이의 비극은, 그가 그의 아버지 보이보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가장 절친한 친구 겸 지지자였음에도 덩샤오핑 이론의 핵심을 부정하는 충칭 모델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문제는 보시라이의 개인적 정치 운명이 아니라 중국 사회 전체가 개혁과 반개혁으로 나뉘어 몸살을 앓는다면, 세계 2위의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 경제는 앞으로 또 어떤 몸살을 앓게 될 것인지 주목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 전인대 회의에서 반갑게 악수를 하고 있는 원자바오 총리(오른쪽)와 후진타오 주석
- 전인대 회의에서 반갑게 악수를 하고 있는 원자바오 총리(오른쪽)와 후진타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