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한미의 성공요인은 우수한 영업사원 확보에 있다.



중국 베이징 외곽의 주저우퉁(九州通) 그룹 베이징 법인 창고. 베이징 일대의 병원과 약국에 약을 공급하는 중국 최대의 약품 도매상 창고다. 대형 할인점처럼 바닥부터 천장까지 각종 약으로 가득 찬 매장에는 약국 주인들이 박스를 들고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바로 약 쇼핑을 하는 것이다. 이들의 박스 속에 빠지지 않는 품목은 노란색 상자에 ‘마미아이(味愛)’라고 적힌 약품이다. 한미약품의 중국 현지법인인 ‘베이징한미’가 내놓고 있는 어린이 유산균 정장제이다. 지난해에만 3억위안(약 540억원)어치가 팔려 중국 내 어린이 유산균 정장제 시장의 절대 강자(强者)이다.

‘마미아이’의 선전에 힘입어 베이징한미는 본격적으로 공장을 가동한 2002년부터 연평균 20%대의 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당기순이익률도 10%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1996년 3월 설립된 베이징한미는 한국의 한미약품이 74%, 북경자중약업이 26%의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02년 6월에는 현지 생산기지를, 2008년 8월에는 독자적인 연구센터를 출범시키며 연구·개발(R&D)에서부터 생산, 영업 등 전 분야를 두루 수행할 수 있는 독자적인 제약회사로 발돋움했다.

중국 전역에서 활동하는 영업사원 901명과 R&D 인력 110명 등 총 1385명이 근무하는 베이징한미는 지난해 5억7741만위안(약  1053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2007년 매출액(2억6781만위안)의 매출액과 비교하면 4년 만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며, 중국 진출 후 처음 5억위안 매출의 벽을 돌파한 셈이다<뒷 페이지 그래픽 참조>. 판매하는 품목도 어린이용 정장제를 시작으로 호흡기, 소화기, 항생제 등 분야로 영역을 늘려 현재 20개 제품에 달한다. 이런 급성장으로 말미암아 베이징한미는 국내 제약업계 사상 가장 성공한 해외진출 사례로 손꼽힌다.

베이징한미 전경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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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황제’ 겨냥한 어린이 정장제 빅히트

베이징한미에도 시련의 기간은 있었다. 2001년 초만 해도 이 회사는 적자 상태였다. 약은 잘 팔리는데 수금이 안 되는 중국의 후진적 관행이란 장애물에 직면한 것이다. 당시 부실매출채권 비율이 무려 50%를 넘었을 정도였다.

당시 한미약품 본사는 우회 방법이 아닌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영업통 대신 재무통을 실무 책임자로 보내고 중국식 관행과 ‘관시(關係)’ 대신 철저하게 글로벌 스탠더드 룰과 선진국 관행을 고수했다. 단적으로 베이징한미는 부실채권을 낸 현지 영업사원들에게 부실이 발생한 이유를 물은 다음 전부 기록으로 남겼다. 1개월 뒤 똑같은 질문을 하자 금액과 이유가 서로 맞지 않는 영업사원들이 나왔다. 같은 과정을 일곱 차례 반복하고 회사는 부정을 저지른 영업사원들을 고발하고 일부는 구속시켰다.

돈을 주지 않는 중국 도소매업체를 상대로는 100여건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엄정한 법적 절차가 진행되자, 빼돌린 돈을 되돌려주겠다는 영업사원과 거래 업체가 줄을 이었다. 1년 이상 걸린 소송 끝에 영업사원의 절반이 물갈이됐고, 물린 돈의 40%를 회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채용시 신원 보증 요구, 매출 즉시 세금 계산서 발부, 영업사원의 수금 금지 같은 예방책도 도입했다. 1년 만에 부실채권 비율이 1% 밑으로 급감하고 연간 10억원 이상의 흑자가 발생했다. 혹독한 개혁을 겪은 현지 직원들도 이제 어떠한 변화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단련이 됐다. 베이징한미는 중국 비즈니스에서 당연시되던 ‘관시’ 관행과 과감하게 결별함으로써 새로운 성공 모델을 열 수 있었던 것이다.

베이징한미의 성공은 한미약품의 장기적인 중국 진출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1992년 한·중 수교 5년 전부터 직접 중국을 왕래하며 단계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그 결과 양국간 국교 수립 직후 1992년 국내 업계 최초로 제품허가(항생제 ‘세포탁심’)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이런 방식의 접근은 중국이 잠재력이 큰 거대시장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대규모 시설 투자를 먼저 집행했던 국내 기업들의 중국 진출 관행과는 대조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한미약품은 중국 수출을 통해 성장기반을 먼저 확보한 다음 이를 기반으로 현지 공장을 설립하는 방식의 장기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아이들은 ‘소황제(小皇帝)’로 불릴 정도로 귀하게 키우고 있었지만, 정작 아프면 어른 약을 잘라 먹이는 상황이었지요. 임 회장이 중국 시장 공략 첫 제품으로 마미아이를 선택한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베이징한미는 이 점에 착안, 고가의 어린이용 제품 수요가 향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중국 7개 병원에서의 임상시험을 거쳐 1994년 10월 마미아이를 현지 등록했다. 또 임상을 담당한 소아과 권위자들을 초청해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주요 대도시를 순회하며 발매 직후부터 2년 동안 소아과 의사만 3만여 명이 참가한 150여회의 세미나를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소아과 의사용 의학 포털 사이트도 개설했다. 그 결과 베이징한미는 중국 내 소아과에서는 1위 제약사로 대접받고 있으며, “베이징한미의 마미아이를 모르는 엄마가 없을 정도”로 이 제품은 중국 내 대표적인 어린이용 유산균정장제로 자리 잡게 됐다.

베이징한미는 지금도 이런 어린이 의약품 개발과 소아과 집중 투자 등 특화 전략을 통해 중국 100여개 아동전문병원에서 처방 1위 제약회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미아이(정장제, 약 500억원)와 이탄징(기침·가래 시장, 약 300억원) 등 2종류의 의약품은 중국내 ‘넘버 1 브랜드’ 위상을 굳혔다.

 

‘모바일 오피스’ 활용해 전국적 영업망 구축

그럼 베이징한미의 가장 큰 성공 무기는 무엇일까? 정답은 의외로 전체의 70%를 약사·의사로 구성해 놓고 중국 전역에 탄탄하게 확보한 우수 영업사원들과 영업망이다. 중국은 남북이 5400㎞이고 동서가 5500㎞나 되는 광활한 지역인데, 어떻게 이 넓은 지역에서 영업사원들이 경쟁력 무기가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현장을 뛰고 있는 영업사원을 본사에서 정기적으로 대면하면서 관리하거나 세세한 실적을 챙기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베이징한미 고위 관계자는 “각지의 영업사원을 한데 모았더니 사계절 복장이 다 있어 영토가 넓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베이징한미는 한미약품 서울 본사에서 이미 성공을 거둔 PDA 시스템을 활용한 ‘모바일 오피스’(mobile office·움직이는 사무실)를 도입했다. 영업사원이 휴대전화로 매출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보고하면, 베이징 한미의 사무실에서는 10초 간격으로 중국 전역의 매출 상황이 경신된다. 모니터에서 지역을 클릭하면 개별 영업사원의 이름과 사진, 매출현황이 다 나온다. 지역 사무실 하나 없지만 IT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고객 밀착형 영업패턴을 구축하고 현지화를 이뤄냈다. 모든 영업사원의 활동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것. 임해룡 베이징한미 총경리는 “중국의 200만명 의사 중 우리 약을 처방하는 의사를 7만명 확보했다”며 “다른 중국 진출 기업과 달리 공장보다 먼저 영업망을 구축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베이징한미는 이와 함께 병원과 약국 중심의 직접 영업채널을 구축하는 등 영업력 차별화를 시도하는 한편, 영업사원의 능력 향상을 위해 한국과 마찬가지로 매월 2박 3일씩 영업사원 대상 집체 교육을 실시하는 등 연간 250시간 이상을 온·오프라인 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5년 전부터는 다른 제약사와 달리 중소 도시와 중소형 병원 영업망 구축에 집중 투자를 했다. 한미약품은 국내에서 다른 제약사가 눈여겨보지 않던 중소병원 영업에 집중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이를 중국에도 적용해 재미를 본 것이다. 베이징한미 관계자는 “중국의 빠른 경제발전 속도를 보고 틈새시장을 미리 개척한 것”이라며 “당시 회계법인 등에서는 무모한 투자라고 했지만 지금 그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영업망에 먼저 투자해 성공을 거두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2009년부터 영국계 다국적 제약사인 GSK의 항생제 ‘오구멘틴’을 위탁 판매한 것이다. 베이징한미의 오구멘틴 매출은 2009년 100만위안에서 지난해 2000만위안으로 3년 만에 20배나 성장했다. 임 총경리는 “GSK는 소아용 신약과 순환기 약품의 공동마케팅도 제안했다”며 “머크·애보트 등 다른 다국적 제약사와도 공동 마케팅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한미는 이런 영업력이 국내 제약회사의 중국 진출 교두보로 활용돼 글로벌 의약품 시장에서의 기업간 윈·윈(win·win)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베이징한미는 중국 내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함으로써 외형 성장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CSR) 수행에도 앞장서고 있다. 전 임직원이 연 1회 사랑의 헌혈활동 참여를 하고 있으며 고아원 및 지체장애자 조산아(早産兒) 어린이날 무료진료파출소 및 소방서 상비약 등 지원 활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현재 베이징 한미는 중국내 6000여 제약사 가운데 100위권에 올라 있다. 그러나 2020년에는 중국 내 20위권 제약사로 도약하는 게 목표다. 이때쯤이면 베이징한미의 매출액이 본사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임성기 회장이 매월 베이징한미를 찾고 있으며, 임 회장의 장남인 임종윤 사장이 베이징한미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게 그 증거다. 공장도 지금보다 2배나 큰 규모로 증설할 계획이다.

특히 한미약품 본사와 공동 연구·개발하는 신약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회사측은 밝혔다. 베이징한미의 연구시설 규모는 한미약품의 동탄연구소보다 면적이 더 크다. 한국에는 없는 영장류 실험시설까지 있을 정도다. 임해룡 총경리는 “한국과 중국에서 같은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데이터를 공유하고 있다”며 “각자의 장점을 살려 연구개발 속도가 훨씬 높아졌다”고 말했다.

베이징한미약품연구소에 입사하면 한미약품 기흥연구소에서 3~6개월간 집중 교육을 받기 때문에 공동 연구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중국에 대규모 연구시설을 두는 것은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중국 내 약품 허가 기간을 줄이는 장점도 있다. 임 총경리는 “중국 연구원들의 60%가 베이징대, 칭화대 등 명문대 출신”이라며 “중국에선 연구원이 평균 3년 지나면 이직을 한다는데 연구소 설립한 지 3년이 넘었지만 아직 이직한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한미 관계자는 “중국은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시행되고 양약시장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는 등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종합병원급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성인용의약품 중심으로 제품구성을 확대함으로써 2020년에는 중국내 20위권에 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