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양계로는 최초로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이 세계은행 총재에 선임됐다. 김 신임 총재는 의학박사 출신으로 금융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총재 임명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세계은행의 차기 총재로 지명했다. 그가 지명된 배경과 그의 휴먼스토리를 살펴본다.

-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이 지난 4월16일(현지시간) 세계은행 총재에 선임됐다. 사진은 김 총장이 지난 3월1일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방한했을 때의 모습.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54)이 지난 4월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세계은행(World Bank) 임시이사회에서 로버트 졸릭 총재의 후임으로 선임됐다. 김 총장은 졸릭 총재의 뒤를 이어 오는 7월1일부터 5년간의 임기를 시작한다.

세계은행은 이날 열린 이사회에서 김 총장이 응고지 오콘조 이웨알라 나이지리아 재무장관과의 표대결 끝에 차기 총재로 선임됐다고 발표했다. 미국으로부터 후보로 지명받은 김 총장은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 개도국들이 이웨알라 장관을 적극 지지하면서 표대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은행은 구체적인 득표 결과를 밝히지 않았지만 25인으로 구성된 이사회 투표에서 김 총장은 18표를 얻었고, 이웨알라 장관은 7표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김 총장은 1968년 세계은행 역사상 처음으로 공개경쟁을 통해 총재에 올랐으며 첫 비(非)백인 총재라는 기록도 세우게 됐다.

비록 표대결을 하긴 했지만 김 총장의 차기 총재 선임은 이전부터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지난 3월23일 백악관 발표회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제는 개발전문가로 하여금 세계에서 가장 큰 개발기관인 세계은행을 이끌어야 할 때가 왔다”면서 김 총장을 지명했던 것. 오바마 대통령은 20년 이상을 개발도상국들을 위해 힘쓴 것을 높게 평가했다. 미국은 세계은행에서 15.85%의 투표권을 갖고 있으며 유일한 부결권을 가진 나라다. 즉, 미국이 세계은행 총재 임명에 절대적이다.

총재 선임은 확실시됐지만 전세계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김 총장 지명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세계은행 총재는 금융권에서 선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지금까지 동양인은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행을 깨며 김 총장을 지명함에 따라 전세계가 그를 주목하게 됐다. 사실 그는 동양인 최초로 아이비리그 대학인 다트머스대의 총장에 임명돼 이미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그렇다면 세계은행이 1944년 설립된 이래 미국 백인 외 다른 인종이 총재가 된 유례가 없었음에도 왜 오바마 대통령은 김 총장을 지명했을까. 인종 문제는 차치하고 세계은행은 일종의 금융기관이다. 그러나 김 총장의 배경을 볼 때 금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김 총장은 세계 저소득층을 위한 비영리기관인 PIH(Partners In Health)를 1987년 공동 설립했고,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보건기구(WHO) HIV/AIDS 부서를 이끌었다.

그는 PIH에서 많은 결핵 환자들을 돌보다 2003년부터 에이즈 환자에게도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에는 오직 30만명의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는 ‘3×5’로 명명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을 통해 2005년까지 300만명의 에이즈 환자를 치료하겠다고 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겼고, 사실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300만명의 환자까지는 못했어도 2005년에 100만명의 에이즈 환자가 치료를 받게 됐다. 그의 업적은 전세계 에이즈 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큰 시발점이 됐다.

그가 언론으로부터 본격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그 즈음이다. 그 해 <타임>지가 세상을 변화시킨 100인의 인물을 발표했는데, 여기에 김 총장이 뽑힌 것. <타임>지는 김 총장의 열정을 높게 평가했다.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 트레이시 키더(Tracy Kidder)는 그 무렵 그의 업적을 <Mountains Beyond Mountains>라는 책에 서술까지 할 정도였다. 이 책에는 그가 빈민가에서 전염병과 싸우며 많은 환자들을 돌본 일화들이 나온다.

특히 약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한 캠페인을 벌여 꼭 필요한 약들의 가격을 90%나 낮추기도 했다. 예컨대 김 총장은 결핵을 잡으려면 복제약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계자들은 사업타당성을 검토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난감해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설득해 결국 원래 약보다 90%나 싼 복제약을 들여와 문제를 해결했다.

<Mountains Beyond Mountains>, 이 책 제목은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다. 김 총장은 이렇듯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 많은 산을 넘었을 것이다. 이러한 열정이 오바마 대통령으로 하여금 그를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하는 데 큰 작용을 했다.

-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이 20년 이상 개발도상국을 위해 힘쓴 것을 높게 평가해 그를 세계은행 총재에 지명했다.



그는 지난 2009년 7월 17대 다트머스대 총장에 임명되기 이전에는 하버드대 교수였다. 1993년부터 2009년 다트머스대에서 총장직을 받을 때까지 그는 하버드대에서 강의를 했고 그의 마지막 직책은 하버드대 의대 국제보건·사회의학 과장이었다. 20년이 넘도록 개발도상국가의 빈곤층을 위해 수많은 연구를 하며 치료에 전념했다. 그의 신념은 국제보건을 효과적으로 실행해 사회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었다. 2007년 그는 GHD(Global Health Delivery Project)를 만들었다. 하버드 의대와 하버드 경영대가 공동으로 참여한 GHD는 교육과 연구를 통해 개발도상국의 경제·정치·문화 등의 현황을 이해하며 국제보건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하버드에서 그는 많은 기사와 저널을 쓰며 책 또한 출판했고, 국제 결핵위원회를 도우며 의장직을 맡았다. 그는 이렇게 한 걸음씩 그의 국제보건에 대한 꿈을 실천해 나가고 있었다.

2009년 하버드를 떠나 그는 아이비리그의 최초 동양인 총장이 됐다. 다트머스대 총장으로 임명되면서 그는 경험과 학식으로 많은 획기적인 프로그램들을 관리했다. 2010년 1월에 일어난 아이티 지진에서 다트머스대의 학생과 직원을 이끌고 그가 공동 설립했던 PIH와 함께 구호에 나섰다. 이로 인해 100만달러의 기부금과 많은 의료보급품을 받았고 많은 의사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이러한 그의 리더십은 다트머스대 보건학과에도 큰 도움이 돼 많은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국제 보건을 위한 그의 멈추지 않는 투쟁을 보며 정말 평생을 이 세상을 위해 헌신하려는 사람이라는 것을 미국인들은 느끼고 있다. 그의 이러한 행적을 볼 때 오바마 대통령이 김 총장을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한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다만 그가 동양인이고 의사였다는 배경이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간 것은 사실이다.

김 차기 총재는 서울에서 태어나 5살 때 미국 아이오와 주로 이민을 갔다. 그의 아버지는 아이오와 치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어머니는 유교를 공부하며 중국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 총재는 운동에도 뛰어나 고등학교에서 미식축구 쿼터백을 맡았고 학업도 게을리 하지 않아 수석졸업을 했다. 그는 처음 아이오와대에 입학했다가 아이비리그인 브라운대로 편입해 1982년 우등(magna cum laude)으로 졸업했다. 의학 박사학위는 하버드에서 1991년 받았고, 2년 뒤 같은 대학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 총재는 이렇듯 뚜렷한 목표와 꿈을 향해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을 그의 어린 시절부터 엿볼 수가 있다.

그의 부인 임윤숙씨는 소아과 의사로 보스턴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슬하에 두 명의 자녀가 있다.

세계경제가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미국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빈부격차는 갈수록 커져 가고 있다. 그러한 격차를 피부로 느끼며 빈곤층을 돌본 김 총재야말로 지금 이 세계가 겪고 있는 경제난에 꼭 필요한 인재로 보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경제학의 이론으로 또는 상업적인 판단으로 이 세상의 경제를 살릴 수만은 없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이 느꼈을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미국 달러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고 금융시장의 통화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지금, 앞으로 세계은행의 행보에 많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김 총재의 인류를 위하는 헌신적인 마음이 세계은행을 움직인다면, 미국은 거기서 조금씩 커져 가는 희망을 보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김 총재와 PIH를 공동 설립한 폴 파머 박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김 총재 지명소식을 듣고서 “김용은 세계은행 총재직을 맡을 탁월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또 “김용과 함께 하버드에서 교육을 받은 것은 행운이었으며 그가 보스턴의 문제가 많은 도심에서부터 일을 해 페루의 빈민촌까지, 아이티에서 또 르완다에서부터 시베리아의 교도소까지, 나는 김용의 30년 동안의 가난과 질병의 순환을 깨기 위한 헌신을 보았다”고 했다.

김 총재가 자주 인용하는 말로 1946년 당시 다트머스대 총장이 학생들에게 한 말이 있다. “The world’s troubles are your troubles…and there is nothing wrong with the world that better human beings cannot fix.”

이를 쉽게 표현하면, 세상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이고 우리가 못 고칠 것은 없다는 것이다. 세계화가 계속해서 돼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만큼 책임의식도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웃의 아픔을 나누며 서로 도울 때 세계은행이라는 기구 또한 그 힘을 발휘하지 않겠는가. 김 차기 총재는 바로 그러한 이유로 세계은행 총재직을 바라보지 않을까.

- 김용 세계은행 차기 총재는 소아과 의사인 임윤숙씨(왼쪽)와 사이에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 김용 세계은행 차기 총재는 소아과 의사인 임윤숙씨(왼쪽)와 사이에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