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미국을 필두로 중남미에도 셰일가스 붐이 일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州) 웹 카운티에서 기술자들이 셰일가스를 채취하기 위한 시추 작업을 하고 있다.
- 최근 미국을 필두로 중남미에도 셰일가스 붐이 일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州) 웹 카운티에서 기술자들이 셰일가스를 채취하기 위한 시추 작업을 하고 있다.

세계 에너지의 지정학적 측면에서 그동안 라틴아메리카는 세계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결코 자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동안 이 지역의 에너지시장 정책이 미국시장 공급에 주력해 왔기 때문이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풍부한 탄화수소와 재생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탄화수소에너지의 경우에는 전 세계 20%의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 다음으로 많은 양이다. 특히 베네수엘라는 오리노코벨트의 초중질유 개발로 역내 가장 많은 매장량(전 세계 원유 매장량의 18% 보유)을 보유한 국가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2680억 배럴보다 많은 298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  

또 브라질은 2006년 동남부해역에서 대규모 암염하층(pre-salt) 신규 유전 발견으로 베네수엘라에 이어 역내 두 번째 산유국이 됐다(전 세계 원유 매장량의 0.9%). 생산량은 하루 평균 215만 배럴로, 멕시코, 베네수엘라에 이어 3위이며 세계 13위 규모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5년까지 브라질의 원유생산량이 하루 평균 380만 배럴로 확대돼 이라크와 함께 글로벌 원유 생산량 순증분의 80%를 차지하고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러시아, 이라크, 캐나다에 이어 세계 6위의 산유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밖에도 멕시코(0.7%), 에콰도르(0.4%), 아르헨티나(0.2%), 페루(0.1%), 콜롬비아(0.1%) 그리고 트리니다드토바고(0.1%)도 원유생산 국가다.

그러나 중남미 전체 천연가스 매장량은 전 세계 매장량의 4%에 불과할 정도로 비중이 작은 편이다. 최근 미국을 필두로 ‘제2의 골드러시’로 불리는 셰일가스 붐이 일어나면서 한때 황금을 찾아서 라틴아메리카로 밀려들었듯이, 최근에는 셰일가스 산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각국의 기업들이 라틴아메리카로 몰려들고 있다.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비전통 가스전의 발견과 개발로 인해서 라틴아메리카가 세계에너지의 지정학적 헤게모니 구도를 바꾸고 세계 에너지 산업의 지도를 새롭게 그리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비전통 에너지원은 경제적 그리고 기술적 한계로 인해서 대량생산이 어려웠다. 그러나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셰일가스 생산에 수압파쇄기술이 도입되면서 상업화 가능성이 증가한 결과, 셰일가스는 인류의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상업화 가능성 늘어나면서 셰일가스에 주목
그렇다면 왜 전 세계는 셰일가스에 열광하는 것일까. 첫째, 막대한 매장량 때문이다. 미국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셰일가스 매장량은 전 세계에 약 207조㎥에 달한다. 전 세계가 향후 60년간 사용 가능한 양이다. 두 번째는 광범위한 지역에 고르게 분포돼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천연가스는 러시아를 비롯한 소수의 국가에 집중적으로 매장돼 있지만, 셰일가스는 북미, 아시아, 유럽, 라틴아메리카, 호주 등 세계 도처에 고르게 분포돼 있기 때문에 에너지의 안정적인 확보차원에서 유리하다. 세 번째는 대체에너지에 대한 높은 요구 때문이다. 현재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는 일본 원전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에 대한 높은 불신과 신재생에너지 발전의 정체 그리고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해서 원유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원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천연가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 중심에 셰일가스가 있다. 네 번째는 저탄소 사회로 가기 위한 환경 친화적 에너지원에 대한 높은 수요다. 셰일가스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질오염, 수자원고갈, 가스방출로 인한 대기오염 그리고 지진 우려 등으로 셰일가스의 환경오염문제를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하지만 셰일가스가 실제로 환경오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 중이다. 전통적인 에너지원과 비교해 환경오염이 적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저탄소사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의 과도기적 에너지라는 평가다. 

셰일가스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미국과 중국이다. 특히 미국은 원유가격이 폭등했던 2000년 본격적으로 셰일가스 개발에 뛰어들었다. 덕분에 2009년부터는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천연가스 생산국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쭉 유지해 왔던 세계 최대 원유수입국의 자리를 중국에게 내주었다. 미국은 2022년부터는 천연가스 순수출국으로 전환될 전망이다.

- 중국 정유업체 시노펙의 한 직원이 중국 남서부 충칭(重慶)에 있는 작업장에서 셰일가스를 뽑아내고 있다.
- 중국 정유업체 시노펙의 한 직원이 중국 남서부 충칭(重慶)에 있는 작업장에서 셰일가스를 뽑아내고 있다.

셰일가스로 인해 세계 에너지 지형 변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세계 곳곳에서의 주요 분쟁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에너지 확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특히 세계 패권을 다투고 있는 강대국들은 에너지 자원을 통제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쏟아 붓고 있다. 에너지 안보를 국가의 우선정책으로 내세운 미국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중동국가들과의 전쟁을 불사했다. 중국은 에너지 안보를 위해 아프리카와 중동·중앙아시아·미얀마 등에서 막대한 자금과 외교력을 쏟아 부으며 필사적인 자원외교를 펼쳐왔다.

미국을 필두로 한 셰일가스의 생산 확대가 가져온 국제정치경제의 가장 큰 변화는 러시아와 주요 산유국들이 그동안 누려왔던 무소불위(無所不爲) 권력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너지정보국에 따르면, 셰일가스의 부상은 유가에도 영향을 미쳐, 셰일가스 생산이 지속적으로 성장한다고 가정할 때 2035년 유가는 20~40% 정도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 공급량의 확대로 가스와 원유가격이 하락함으로써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와 중동 산유국들의 지정학적 파워가 급격하게 약화됐다.

특히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은 EU(유럽연합)의 경우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을 목적으로 구축됐던 가스파이프라인은 국가간 심각한 의존관계와 내정간섭의 문제를 야기해 왔다. 이들 국가는 정치, 안보 또는 전략적 사안의 상당 부분에서 러시아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지배력에 휘둘렸던 유럽국가들은 수입 대체국이 다변화됨에 따라 러시아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을 줄이면서 정세를 변화시키고 있다.

셰일가스의 엄청난 잠재력에서 비롯된 에너지 지정학의 지형변화는 세계패권 다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적인 에너지 패권국인 러시아, 새로운 에너지 패권국으로 부상한 미국, 그리고 세계 최대 셰일가스 매장량을 보유한 잠재적 패권국 중국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셰일가스는 LNG 가격의 약 3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다. 이르면 2017년부터 미국산 셰일가스가 해외로 수출될 것으로 예상되기에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 많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은 높은 기술력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셰일가스 생산량을 증가시키고 있다. 미국의 부상에 위기감을 느낀 러시아는 아시아를 잇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해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미국의 에너지 자립에 긴장한 중국은 셰일가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동북아 지역은 전 세계 에너지 생산국가들에게 있어서 가장 매력적인 시장이 되고 있다. 세계 에너지 시장은 공급자가 다변화되면서 유럽이나 아시아의 기존 에너지 수요자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EIA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셰일가스의 약 30%가 라틴아메리카에 매장돼 있다. 아르헨티나의 셰일가스 기술적 가채매장량은 약 23조㎥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다. 멕시코는 약 15조㎥로 세계 6위, 브라질은 약 7조㎥로 세계 10위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도 베네수엘라 약 4조㎥, 파라과이 약 2조㎥, 콜롬비아 약 1조5000억㎥, 칠레 약 1조3000억㎥의 셰일 가스가 매장돼 있다.

셰일가스 개발 본격화하는 라틴아메리카
특히 아르헨티나는 2011년 네우껜 주(州)의 바까 무에르따(Vaca Muerta) 지대에서 1억5000만 배럴에 해당하는 방대한 셰일유전이 발견돼 가스전 탐사와 개발에 대한 전 세계 에너지 기업들의 관심과 구애를 한 몸에 받는 귀한 몸이 됐다. EIA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0~40년 전 세계 연간 GDP 성장률 3.6%를 가정할 때, 세계에너지 수요는 약 56%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아르헨티나는 남미국가들 중 셰일가스 개발에서 가장 앞서 있다. 경제악화로 외화반출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지면서 자원개발 사업이 쇠퇴했고 국내생산 감소에 따라 수입량이 증가하면서 에너지부문 적자가 급증했다. 이에 아르헨티나 정부는 개발업자에게 현실성 있는 가격보장과 조건부 외화반출을 허용함으로써 에너지자원 개발을 확대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국영석유회사 YPF는 셰일가스 개발에 적극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셰브런을 비롯한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이 이미 세계 제2의 셰일가스 매장지인 바까 무에르따 개발에 정부와 협약을 체결했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풍부한 수자원과 수송 인프라 그리고 미국 셰일암반과 비슷한 지질구조로 인해서 수압파쇄법을 적용한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경제성이 높아 매력적인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브라질 역시 에너지 공급원을 다양화하기 위한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오랜 가뭄, 이로 인한 수력발전을 통한 전력공급 차질 그리고 생물다양성 파괴를 이유로 하는 수력발전용 댐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환경단체의 반대, 지방 공동체(원주민 공동체) 환경권 침해 등으로 인해서다. 브라질의 국가에너지전략은 천연가스생산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나 생산 계획에 대해서 강조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국가적 에너지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수력발전을 대체할 수 있는 천연가스에 개발과 투자가 점차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브라질 국립석유청이 처음으로 비전통가스 개발투자 입찰을 실시했다. 또 수압파쇄법을 통한 가스시출을 위한 관련법규를 제정하는 등 셰일가스 개발을 국가의 에너지 안정화 정책의 중점부분으로 인식하고 있다.

멕시코는 미국과 파이프라인이 연결돼 있어 미국발 셰일가스 붐에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다. 국내 천연가스 소비량이 급증해 미국으로부터 파이프라인으로 받는 가스양으로는 부족해 국내생산량 증가를 에너지정책의 핵심 사안으로 두고 있다. 그러나 셰일가스의 탐사와 개발을 국영석유회사 PEMEX가 독점하고 있고 전통적 에너지원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전통에너지원 개발에 있어서는 남미 주요 3개국 중에서 가장 저조한 편이다.

셰일가스의 부상으로 에너지 공급자가 다변화됨으로써 앞으로 에너지 시장의 지렛대는 공급자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에너지지정학에서 소외됐던 라틴아메리카는 새로운 공급자로서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을 높일 수 있게 됐다. 미국이 점차 원유수입을 줄이고 자체 가스생산량을 늘림에 따라 주요 공급국가였던 중동은 에너지수요가 높은 유럽과 동북아시아로 새로운 판로를 모색하고 있다. 러시아 역시도 에너지공급의 다변화로 EU국가들이 새로운 공급처를 모색하자, 동북아시아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에너지 찰떡궁합 라틴아메리카와 동북아시아
이러한 에너지의 지정·지경학적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에너지 공급자들의 주요 시장으로 부상한 동북아시아와 국제 에너지 시장의 새로운 공급자로 주목받는 라틴아메리카는 상호보완적 발전이 가능한 찰떡궁합이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불안정한 정치경제, 관료적 비즈니스 환경, 까다롭고 복잡한 법률조항 그리고 정부의 개입과 규제로 제한된 투자환경으로 우리 기업들에게는 매력적인 투자처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세계 제2위 천연가스 수입국인 한국으로서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비전통에너지의 보고인 라틴아메리카와의 협력을 고려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 손혜현 한국외국어대 중남미연구소 초빙연구원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냈다. 중앙대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이화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 재직 중이던 한국외국어대 중남미연구소 연구교수직을 그만두고 아르헨티나 유학길에 올라 현재 아르헨티나 토르꾸아토 디 텔라 대학 정치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한국외국어대 중남미연구소 초빙연구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