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날씨는 가장 중요한 화제 거리 가운데 하나다. 특히 가을과 겨울은 비가 많고 해가 짧아 일조량이 무척 적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에게 봄은 더없이 기다려지는 계절이다. 겨울의 끝자락이면 기다림에 더더욱 애가 탄다. 그렇게 기다리던 봄이 왔고 손꼽아 기다리던 특별한 곳을 찾게 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았다. 5년째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이곳을 방문했다. 개장을 알리는 기자간담회를 통해서였다. 봄을 느낄 수 있는 갖가지 색깔의 꽃을 보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매년 색다른 테마와 이야기로 변화를 거듭하는 정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커다란 재미다. 지난해 마침내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곳을 다녀갔다고 한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어디에 눈을 두어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봄정원이라는 이곳은 바로 네덜란드의 쾨컨호프(Keukenhof)다.

반 고흐 자화상으로 꽃밭 만들어
정원으로 가는 길녘은 온통 꽃밭인데 꽃머리가 나오기 전 잎들로 파릇하다. 가장 먼저 머리를 내미는 튤립인 쇼위너는 새색시 볼연지 색깔을 하고 수줍게 피어있다. 정원에 들어서는 입구에 자리한 드라이오르헐(Draaiorgel·음을 각기 다르게 표현하는 방식의 오르겐)의 주인인 얀스는 올해도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드라이오르헐은 이탈리아인에 의해 만들어져 파리에서 첫선을 보였다. 하지만 네덜란드인인 레온 봐르니스가 암스테르담에 제작장을 만들어 다량 생산하면서 전 세계로 드라이오르헐을 수출했다. 이후 드라이오르헐은 네덜란드의 발명품으로 유명해졌다. 쾨컨호프에 있는 드라이오르헐의 주인인 얀스는 할아버지 때부터 대를 이어온 가업이라고 한다. 쾨컨호프가 문을 연 지 올해로 66년째, 얀스의 가족은 이 세월을 함께 해온 것이다.

지난해 동계올림픽 주역이었던 스피드스케이트의 쌍둥이 뮬더 형제가 메달을 들고 찾았던 정원 뒤뜰 광장에는 반 고흐 작품의 모티브가 됐던 의자와 소품 그리고 그림이 전시돼 있었다. 왕가의 이름을 딴 전시장 한쪽은 반 고흐의 자화상(自畵像)이 가득했다. 반 고흐를 떠올리게 만드는 여러 가지 소품들은 쾨컨호프를 찾는 사람들에게 반 고흐를 기억할 수 있도록 자리하고 있었다.

올해의 쾨컨호프 테마는 바로 반 고흐(Van Gogh)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한국의 유행가 가사에도 등장하는 화가 반 고흐가 네덜란드 사람이라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의 브라반트 지방에서 태어난 반 고흐는 아버지의 삶을 따라 목사가 되기 위한 수련을 했지만 실패하고 서른이 다 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년, 그림을 배우기 위한 그의 열정, 새로운 세기를 살아내기 위한 뜨거운 몸부림은 반 고흐가 붓을 잡는 순간부터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그가 쓴 일기와 동생 테오에게 전한 편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네덜란드에는 반 고흐의 이름을 가진 박물관과 그의 작품을 소장한 크뢰러 뮐러 박물관, 그가 거쳐 살았던 브라반트 지방의 동네마다 많은 삶의 흔적을 기리는 장소가 마련돼 있다. 반 고흐가 그림을 그렸던 그 자리는 세계 곳곳에서 그를 그리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관광지가 됐고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은 반 고흐를 네덜란드 대표 화가로 기억한다.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난 지 125년, 이곳 정원에서는 수천 개의 튤립으로 그 의 자화상 꽃밭을 만들었다. 지난해 문을 닫은 후, 반 고흐 자화상의 밑그림을 그리고 그 곳에 수 천개의 구근(球根)을 심어 올해 꽃밭 가득 튤립으로 반 고흐가 피어나게 준비한 것이다. 반 고흐가 작품마다 쏟아 부었던 열정을 관람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원을 꾸미는 예술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반 고흐 꽃밭은 5월에 절정을 이룬다.

“반 고흐가 ‘튤립 꽃밭’이라는 이름의 그림을 그릴 당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정원에 자신의 얼굴이 수천 개의 튤립으로 아로새겨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의 삶에 조금 위안이 됐을까?”라는 동료 기자가 던지는 말에 돈 맥클린(Don McLean)이 불렀던 노래 빈센트(Vincent)의 가사가 떠올랐다. 더불어 추모(追慕)의 뜻이 다시 마음에 새겨졌다. 올해 개장식은 다른 해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이 아름다운 정원에서 125년 전 세상을 떠난 반 고흐의 따뜻하고 평온한 영혼을 만나는 기분이 들었던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다.

1. 1883년 4월에 그려진 반 고흐의 초기 작품. 화가로 활동을 준비하는 시기에 그렸다. 2, 3. 2015년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찍은 반 고흐 관련 사진들.
1. 1883년 4월에 그려진 반 고흐의 초기 작품. 화가로 활동을 준비하는 시기에 그렸다.
2, 3. 2015년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찍은 반 고흐 관련 사진들.

화훼 생산과 수출의 전초기지로 성장
네덜란드 남홀란드(zuid holland)지방은 꽃 재배지로 유명하다. 특히 쾨컨호프가 있는 리세(Lisse)지역의 봄은 짙은 원색의 꽃천지로, 보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장관을 만들어낸다. 쾨컨호프 정원을 장식한 꽃들은 튤립, 수선화, 히아신스, 백합 등의 구근류로 700만개에 달한다. 개장하지 않는 기간 동안 관리해 꽃이 개화하기 시작하는 3월 중순부터 만개하는 5월 중순까지 8주 동안 정원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공개한다.

실속 없는 일은 결코 하지 않기로 유명한 네덜란드 사람들이 32ha나 되는 방대한 곳을 1년 동안 딱 두 달간 관람객들을 위해 이토록 아름답게 가꾸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가 있을까? 쾨컨호프 정원은 네덜란드 화훼 산업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곳이다. 판매할 구근들을 이곳에 전시하고 전 세계 바이어가 찾아와서 이곳을 보고 구근을 고르는 전시장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로 구근을 수출하고 있는 100개의 생산업체들이 쾨컨호프을 운영하는 주체인 이유다. 매년 새로운 테마가 정해지면 정원 디자이너의 디자인에 따라 생산업체가 구근을 직접 심고 관리한다. 더불어 30여 명의 정원 관리자들은 관람객이 오는 8주 동안 정원의 상태를 점검하고 공개하는 기간 동안 잘 관리한다고 한다. 

사실 서유럽에 가장 먼저 튤립이 전해진 곳은 16세기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이었다. 하지만 튤립이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꽃으로 세계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49년 리세 지역에 만들어진 쾨컨호프 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처음에는 리세 시장에 의해 화훼 생산과 수출의 근거지 마련을 위한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이후 생산자 조합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세계 화훼수출 1위국가로 자리매김하는 데 전초기지가 된 셈이다.

세계에 많은 꽃 축제가 있고 정원이 공개되지만 쾨컨호프에서 볼 수 있는 형형색색의 색깔과 외형을 갖춘 튤립들을 다 볼 수 있는 곳은 없다. 해마다 새롭게 탄생하고 있는 개량 튤립 역시 이곳에서 제일 처음 만날 수 있다. 특히 자연에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색깔인 검정색 튤립까지 이곳에 오면 볼 수 있다.

15세기 쾨컨호프는 사냥터 지역의 한 부분이었다. 이곳에 살던 백작의 주방에 야채를 제공하기 위해 허브를 길렀던 뜰이었다. 주방(Keuken)과 뜰(hof)이라는 의미의 쾨컨호프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백작이 죽고 부유한 상인이 이곳을 사서 지금의 쾨컨호프 성(城)을 짓고 살았고 19세기에 주인이 바뀌면서 새롭게 조경과 주변 건물 공사를 했다고 한다. 그 후 1949년 구근 생산 수출자의 협동조합과 시가 협력해 네덜란드 화훼산업의 근거지로 삼기 위한 대대적인 정원 조성 사업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꾸준히 전 세계인들에게 네덜란드에서 생산되고 수출되는 수천 종의 구근들이 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정원으로 유지 관리되고 있는 것이다.

1. 쾨컨호프의 개장을 알리는 기자간담회. / 2. 반 고흐 꽃밭
1. 쾨컨호프의 개장을 알리는 기자간담회. / 2. 반 고흐 꽃밭

매년 새로운 주제로 이색적인 아름다움 만들어
튤립을 이용한 디자인 상품들은 쾨컨호프의 또 하나의 테마가 됐다. 세계 속에서 네덜란드가 점점 입지를 강하게 다지고 있는 산업의 한 분야가 디자인 분야인데, 튤립을 주제로 한 디자인들이 옷으로, 조명으로, 건축물로 네덜란드 디자이너들에 의해 거듭나고 있다. 이제 쾨컨호프는 구근을 생산 수출하는 근거지를 넘어 디자인 수출을 위한 전략지로도 활용되는 모양새다.

그리고 올해 쾨컨호프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잘 알려진 화가 반 고흐를 정원에 초대했다. 반 고흐의 작품이 있는 반 고흐 박물관과 크뢰러 뮐러 박물관에는 쾨컨호프 정원의 튤립 구근들이 봄 내내 관광객을 맞고 있다. 이로써 예술가와도 손을 잡은 쾨컨호프가 내년에는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게 될 것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튤립은 터키 꽃이고, 델프트 블루는 중국의 도자기 기술이며 심지어 국가(國歌)도 프랑스의 군가에서 유래됐다. 네덜란드 왕가도 독일의 한 주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결국 네덜란드에서 가장 전통적이고 자랑스러운 것은 이 모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네덜란드 사람들이다.’ 터키 저널리스트인 닐균 옐리는 네덜란드에 이주해 살면서 쓴 수필집에 이렇게 쓰고 있다. 

네덜란드 하면 튤립을 떠올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쾨컨호프는 꼭 한번은 다녀가야 할 곳이 아닐까. 수백만 개의 구근을 테마별 디자인을 통해 8개월 동안 심고 관리한다. 그리고 꽃이 피기 시작하는 3월부터 꽃이 지는 5월까지 봄꽃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며 손님을 맞이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봄 정원이라 일컬어진다.

해마다 쾨컨호프를 찾지만 늘 새롭게 감탄하는 이유는 꽃을 통해 새로운 봄을 네덜란드와 연결하고 독특한 테마를 만들어 더 이색적이고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더불어 어느 한 곳 사람의 손이 거치지 않은 곳이 없는 이곳에서 어쩌면 신에게 선물 받지 못했다면 스스로 만들어서라도 살아야했던 네덜란드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