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분야와 부문 그리고 계층을 불문하고 알파걸(Alpha girl)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알파걸은 하버드대 심리학과 댄 킨들런 교수가 처음으로 사용한 개념이다. 적극적이고(Active), 리더십(Leadership)이 있고 끈기와 인내심(Patience)이 강하며 일에 대한 열정(Heart)과 야망(Ambitious)을 가진, 공부와 운동 리더십에서 남학생을 능가하는 엘리트 소녀집단을 가리킨다. 알파걸의 대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여학생들의 높은 학업성취도를 통해서도 쉽게 입증된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사회적 조건에서 10~20대의 알파걸이 모두 알파우먼으로 성장할 수 있느냐 여부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성 평등보고서 2014’에 따르면, 한국의 성 평등 순위는 조사대상국 142개국 중에서 117위로 최하위권을 차지했다. 이러한 결과는 여성대통령이 등장하고 하위급 공무원의 여성비율이 증가하고 교육에서의 양성평등이 이뤄지고 있는 것과 비교해 아직도 정치참여와 노동시장부문에서 여전히 한국여성들이 취약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네 명의 여성이 동시에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1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2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 3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4 라우라 친칠라 코스타리카 대통령)
-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네 명의 여성이 동시에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1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2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 3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4 라우라 친칠라 코스타리카 대통령)

성 평등 모범지역으로 부상한 라틴아메리카
최근 10년간 전 세계 여성들의 성평등 지수는 정치와 노동시장 참여 비율이 높아지면서 향상됐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정치참여율이 26% 그리고 장관비율이 50% 증가한 반면 한국에서의 국회의원 여성비율은 10% 초반 대에서 답보 상태다. 당선자 대부분이 비례대표임을 감안해볼 때 한국에서 여성의 정치참여율은 증가하긴 했지만, 여성의 질적 세력화에 영향을 미칠 수준은 되지 못한다.

성 평등과 성 격차 지수에서 서유럽지역을 제외한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지역이 바로 라틴아메리카 지역이다. 가톨릭의 영향을 크게 받은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이고 여성의 성역할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성 격차지수에 있어서 니카라과가 세계 6위를 차지했고, 아르헨티나는 34위에서 31위로, 페루가 80위에서 45위로, 칠레가 25계단을 뛰어올라 66위로 상승했다. 비록 브라질이 9계단이 하락해 71위 그리고 멕시코가 80위를 기록했지만, 한국보다는 높은 수치다.

최근 10년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네 명의 여성이 동시에 정부 최고위직인 대통령직을 수행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역사적인 시기를 맞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Cristina Ferna´ndez),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eff), 코스타리카의 라우라 친칠라 그리고 칠레의 미첼 바첼레트(Michelle Bachelet)는 전통적으로 남성우월주의 문화가 강하게 뿌리 내린  라틴아메리카에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서 높은 지지율로 정권획득에 성공했다. 이들 여성 대통령은 모두 재선에 성공했다. 또 라틴아메리카지역 여성들의 의회에서의 정치참여율은 30%에 육박한다. 이는 선진국의 24.5% 그리고 세계평균 22%와 비교해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가 라틴아메리카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단순히 증가하는 여성정치인의 숫자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여성정치인들이 행사하는 정치적 리더십과 그 리더십이 갖는 정통성에 있다.

최근 40년간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는 10명의 여성들이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최초의 여성대통령은 아르헨티나의 이사벨 페론이다. 1974년 부통령이었던 이사벨 페론은 남편인 후안 페론이 지병으로 사망하자, 공석이 된 대통령직을 헌법에 따라 승계해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집권 2년 후인 1976년 군부쿠데타에 의해서 전복됐다.

40년간 10명의 여성이 대통령직 수행
이어 볼리비아에서는 1979년 볼리비아혁명 당시 하원의장이었던 리디아 게일레르(1979~80)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지명됐다. 볼리비아 역사에서는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 기록된다. 이후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대사로 임명됐고 2011년 사망했다.

1990년 아이티에서는 에르타 파스칼 트로이로트가 군부에 의해서 임시 대통령으로 지명돼 약 1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이후 장 클로드 두발리에가 합법적으로 정권을 획득함으로써 권력을 내줬다.

1990년 소모사 독재정권을 붕괴시키고 니카라과 혁명정부를 세운 산디니스타당(黨)을 누르고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대통령으로 당선된 비올레타 차모로는 라틴아메리카 역사상 첫번째 선출직 여성대통령으로 기록된다. 차모로는 소모사 군사독재정권에 의해서 살해된 야당 정치인 페드로 호아킨 차모로의 부인으로, 남편의 정치적 인지도와 인기가 대통령 당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차모로의 당선은 니카라과에서 실시된 첫번째 국민직선제를 통한 대통령이라는 측면에서 니카라과 역사상 큰 의미를 갖는다.

가이아나에서는 1997년 체디 하간 대통령이 사망하자, 그의 부인인 하넷 로셈버그 하간이 대통령으로 선출돼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같은 해 에콰도르에서는 로살리아 아르테가가 임시 대통령으로 지명됐으나,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파비안 알라르콘이 아르테가의 국정운영 자격부족을 이유로 군부와 합심해 3일 만에 대통령직에서 축출했다.

파나마운하의 소유권이 미국으로부터 파나마로 이전된 역사적 시점이었던 1999년 파마나에서는 미레야 엘리사 모스코소가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2006년 칠레 대선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함으로써 칠레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 기록된 미첼 바첼레트의 당선은 칠레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바첼렛의 아버지 알베르토 바첼레트는 1973년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정부를 수립했던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킨 피노체트 독재정부 하에서 심한 고문을 받고 숨졌다. 군부독재의 실질적인 피해자인 바첼레트의 당선은 분열된 사회의 화해와 용서를 의미했다. 임기 동안 바첼레트는 국민들로부터 강한 신뢰와 존경을 받았으며, 임기 말기까지도 84%라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퇴임 이후에는 유엔여성기구(UN Women)를 창설하고 초대 총재를 역임하면서 양성평등과 여성의 권한강화를 위한 토대구축에 집중했다. 2014년에 재선 도전에 성공함으로써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에 이어 라틴아메리카의 두 번째 재선 여성대통령이 됐다. 2014년의 칠레선거는 바첼레트와 에벨린 마테이가 결전투표에서 최종적으로 경합함으로써 칠레 역사는 물론 라틴아메리카 역사에서 처음으로 여성후보자들 간의 대통령선거 경합으로 기록됐다.

아르헨티나는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비교적 일찍 그리고 활발하게 여성들의 정치참여가 이뤄진 국가다. 대통령인 남편 후안 페론보다도 국민들로부터 더 많은 인기를 누렸던 에바 페론과 세계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 기록되는 이사벨 페론이 있었다. 이들 모두 남편인 후안 도밍고 페론의 후광과 그늘에 가려 전통적인 성 역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통해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고 논란이 되는 정치적 쟁점들을 통해 오히려 정치기반을 확대하고 지지세력을 공고화시키는 기회로 활용했다. 2011년 대선에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54.11%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아르헨티나 최초의 여성선출직 대통령이라는 기록과 재선 여성대통령이라는 기록을 함께 얻었다.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는 1964년부터 1985년까지 브라질을 지배했던 독재정권에 강력하게 저항했던 민주화 운동투사였다. 1970년에는 게릴라운동에 참여했다가 검거돼 3년간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룰라정부 때 에너지부 장관과 정무장관으로 임명됐고, 룰라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부상하면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룰라 대통령의 높은 인기와 지원에 힘입어 2010년 브라질 역사상 최초 선출직 여성대통령으로 당선됐고 2014년에는 연임에 성공했다.

2010년 코스타리카에서도 중도성향의 라우라 친칠라가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함으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대통령이 탄생했다. 정치명문가 출신으로 미국에서 유학한 친칠라는 오스카르 아리아스 정부의 부통령을 역임했으며, 훗날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있어서 아리아스의 정치적 지원과 후광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비록 여성대통령을 배출하지는 못했으나, 콜롬비아의 경우 2014년 대선에 입후보한 후보자의 경우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았다. 페루에서는 일본계 게이코 후지모리가 우말라와 간발의 차이로 낙선했으며, 2016년 선거에서 재도전이 예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대통령부인인 나디네 에레디아의 경우 남편인 오얀타 우말라 대통령보다 더 높은 인기를 누리면서 차기 대선후보자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배우자를 포함한 직계가족의 입후보 자격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원칙상으로 대선출마가 불가능하다. 온두라스에서는 마누엘 셀라야 전(前) 대통령의 부인 시오마라 카스트로가 최근 치러진 2013년 선거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라틴아메리카 정계가 ‘여인천하(女人天下)’라고 불릴 만큼 이 지역 여성의 정치세력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할당제를 지적하고 있다. 현재 여성의 정치대표성이 높은 상위 30%의 국가들 중에서 80% 이상이 할당제를 시행하고 있다. 여성할당제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의사결정과정 참여와 접근을 방해해왔던 정치, 경제, 사회적 진입장벽을 폐지하고 정치·경제·교육·고용 등 사회의 각 부문에서 채용이나 승진시 일정한 비율을 여성에게 할당해 보이지 않는 장벽을 없애기 위한 차별철폐 조치(Affirmative action)의 일환이다. 1995년 베이징 국제연합 여성회의(UN Women’s Conference)에서 권고안이 채택되면서 현재 30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20~40%의 여성후보자 할당을 국가법으로 규정하는 할당제법을 그리고 50개국 이상의 국가에서는 할당제를 정당법으로 규정하여 자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2012년 7월 에바 페론(지폐 속 초상화)의 사망 6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100페소 지폐의 모형을 공개하고 있다.
-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2012년 7월 에바 페론(지폐 속 초상화)의 사망 6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100페소 지폐의 모형을 공개하고 있다.

할당제 통해 단기간 여성의 정치대표성 확대
라틴아메리카지역에서는 1991년 아르헨티나를 시작으로 현재 13개국(아르헨티나, 브라질, 볼리비아, 코스타리카, 에콰도르, 기아나, 온두라스, 파나마, 파라과이, 페루, 멕시코, 도미니카공화국, 우루과이)에서 여성할당제법을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1997년 지역 평균 11%에 불과했던 여성의 의회대표성은 2014년 24.5%로 증가했다. 할당제법은 최단기간에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확대를 꾀하는 국가들에게 정치적 묘약이 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지역 국가들 중 의회에서의 여성대표성이 가장 높은 지역은 쿠바(43.2%), 니카라과(40%), 코스타리카(38.6%) 그리고 아르헨티나 (38.5%)이며, 여성대표성이 낮은 지역은 브라질(8.6%), 파라과이(12.5%), 콜롬비아(12.7%), 그리고 칠레(14.2%) 등이다. 특히 할당제법이 아직까지 시행되지 않고 있는 칠레에서는 저조한 여성의 정치대표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안으로 할당제법이 촉구되고 있다.

여성의 정치대표성 증가는 정부내각 구성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뤘다. 중남미지역 15개 국가의 지난 마지막 3번의 대통령 임기 동안 장관급 여성의 비율은 12.5~27%로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여성장관은 주로 사회관련 부처에 분포돼 있었으며, 정치와 경제 관련 부처에는 비율이 낮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에서 여성이 국방부 장관직을 역임함으로써 과거 사회영역에만 머물러 있었던 여성장관직이 점차 영역을 다변화·확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남미지역 선출직과 임명직에서의 여성의 대표성 증가는 여성의 지위와 권리향상을 위한 법률제정과 효율적인 전략 마련을 위해 폭넓은 정치적 연합을 형성하고 조직적인 운동을 해 온 여성들의 끈질긴 노력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할당제법을 통한 위로부터의 변화는 성 격차를 해소하고 성 평등을 이루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의 수단일 뿐이지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그보다는 서유럽 국가들이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통해서 양성평등의 문화를 만들어 냈듯이 사회적 인식과 구조적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라틴아메리카 여성대통령들이 보여주고 있는 강력한 리더십과 권력의 정통성 확립은 사회에서 성차별적인 구조를 철폐하고 양성평등의 인식을 전환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아르헨티나, 브라질 그리고 칠레 등 ABC 삼국의 대통령들은 모두 국민들로부터 국정운영능력을 인정받고 재신임에 성공한 여성 대통령들이다. ABC 삼국의 여성대통령들 모두 라틴아메리카의 전통적인 인물중심의 후견정치를 통한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하고 있으나, 국민들은 이들 대통령을 여성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국가의 운명을 이끌고 갈 준비된 정치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 손혜현 한국외국어대 중남미연구소 초빙연구원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냈다. 중앙대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이화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 재직 중이던 한국외국어대 중남미연구소 연구교수직을 그만두고 아르헨티나 유학길에 올라 현재 아르헨티나 토르꾸아토 디 텔라 대학 정치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한국외국어대 중남미연구소 초빙연구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