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추장과 쌈장을 이용한 소스를 만들고 있는 상훈 드장브르 셰프. 2. 메인 요리가 놓여 있는 주방의 최종 작업 모습. 3. 2013년 여름에 개발한 요리. 한국의 김치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1. 고추장과 쌈장을 이용한 소스를 만들고 있는 상훈 드장브르 셰프.
2. 메인 요리가 놓여 있는 주방의 최종 작업 모습.
3. 2013년 여름에 개발한 요리. 한국의 김치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최근 벨기에를 다녀왔다. 유럽의회가 있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은 어느덧 유럽 정치의 중심이 됐고 전 세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즐비한 맛의 도시로 성장했다. 인구 1000만 명의 작은 나라인 벨기에는 이웃인 네덜란드의 영향과 프랑스의 영향을 골고루 받아 독특한 벨기에 문화를 만들어 냈다. 벨기에는 초콜릿으로 유명한 나라답게 북유럽 국가와는 다른 감미로운 향의 낭만이 느껴진다.

벨기에는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모두 사용하고 있지만 주로 북쪽 지방에서는 네덜란드어를, 남쪽 지방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다. 두 개 언어가 공용어인 것이다. 지역 특성도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지방은 다소 절제된 아름다움이 엿보이고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곳은 화려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벨기에 남부도시 프랑스어권의 나무르로 ‘맛 기행’을 떠난 것은 생일선물로 받은 한 요리수업 이용권에서 비롯됐다. 수업을 함께 들은 한 친구로부터 ‘레르 뒤 탕(L’Air du Temps)’이라는 레스토랑 이야기를 들었다. “나무르에 세계 최고 권위의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두 개를 받은 레스토랑이 있는데요. 식자재인 채소를 직접 길러 요리하는 것으로 유명해요. 남편과 함께 다녀왔는데 너무 행복했어요.” 특히 대표 요리사가 한국에서 입양된 사람이라는 게 흥미를 유발했다. 바로 상훈 드장브르(Sang-Hoon Degeimbre) 셰프다.

1. 사람 인(人) 혹은 상훈의 시옷을 의미하는 A(붉은 글씨)로 적힌 레르 뒤 탕(L’Air du Temps) 간판. 2. 정원에서 야채를 직접 따는 요리사. 3. 레르 뒤 탕 외관 4. 상훈 드장브르 셰프와 스태프들이 요리를 마무리하고 있다.
1. 사람 인(人) 혹은 상훈의 시옷을 의미하는 A(붉은 글씨)로 적힌 레르 뒤 탕(L’Air du Temps) 간판.
2. 정원에서 야채를 직접 따는 요리사.
3. 레르 뒤 탕 외관
4. 상훈 드장브르 셰프와 스태프들이 요리를 마무리하고 있다.

자연의 맛 느끼다
우선 상훈 드장브르 셰프가 누구인지 알아봤다. 그는 한국의 여러 매체에 소개된 스타 셰프였고 왜 벨기에로 입양됐는지 알 수 있었다. 현재 상훈 셰프는 한국의 식재료인 ‘장(醬)’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장을 이용해 색다른 맛을 내는 요리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레르 뒤 탕으로 떠났다. 나무르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때문에 화려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나무르의 중심가를 벗어나 10여분을 차로 이동하면 하얀색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레르 뒤 탕이다. <미슐랭 가이드>가 호평한 자연의 맛은 어떤 맛일까.

붉은색 문을 열고 들어선 레스토랑은 점심시간이 막 끝날 무렵이었다. 독특한 것은 학구열로 가득 찬 식당 분위기였다. 상훈 셰프의 요리수업이 끝났고 한 직원이 유리로 벽을 만들어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방으로 안내했다. 레르 뒤 탕에서 사용하는 채소를 재배하는 밭이 보였다. 2~3헥타르(약 6050~9075평)는 족히 돼 보였다. 채소를 따는 요리사도 눈에 띄었다.

레르 뒤 탕은 총 4개의 방, 17개 테이블(50석) 규모로, 인테리어는 다소 단순했다. 소란스럽지 않은 분위기에서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부(副)셰프인 올리버가 설명했다. 이어 올리버는 “상훈 셰프는 머릿속에 맛과 냄새를 기억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새로운 음식과 재료를 대할 때 상훈 셰프의 진지함을 칭찬했다. “뭔가를 배울 때 그는 진공청소기 같아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더 신기한 건 요리로 다시 나올 땐 완전히 상훈의 것으로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놀라울 때가 많아요.” 3년 전부터 레르 뒤 탕에서 일하기 시작한 올리버 부셰프는 지금은 상훈 셰프의 요리 홍보까지 맡고 있다.

올리버 부셰프는 상훈 셰프가 조용한 성격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를 채근하지 않고 일을 시작하기 전 미리 준비하고 상의하는 일을 게을리 하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 셰프들이 주방에서 바쁘고 시끌벅적하게 일하는데 그런 모습은 레르 뒤 탕에서 찾아 볼 수 없어요. 직접 보면 알겠지만 주방이 이토록 조용한 식당을 찾기는 무척 힘듭니다.”

- 직접 재배한 채소와 해산물, 생선, 육류 등이 가미돼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상훈 드장브르 쉐프의 요리.
- 직접 재배한 채소와 해산물, 생선, 육류 등이 가미돼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상훈 드장브르 쉐프의 요리.

한국의 ‘장(醬)’ 이용, 새로운 음식 도전
그동안의 레르 뒤 탕과 상훈 셰프의 이야기도 들었다. 17년 넘은 단골손님부터 <미슐랭 가이드> 별 주는 사람들이 레스토랑을 찾았을 당시의 에피소드, 맛집을 찾아 온 수많은 사람들까지 다양했다. 올리버 부셰프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안 상훈 셰프가 들어왔다. 영락없는 한국인의 모습이었으나 그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벨기에인이다.

저녁 요리를 만들기 전까지 그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사실 인터뷰는 상대방의 마음을 열지 못하면 좀처럼 깊은 대화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상훈 셰프와의 대화는 아주 쉽게 풀렸다. 비슷한 연배에 같은 뿌리(한국), 게다가 비슷한 지역에 살고 있어서일까. 상훈 셰프가 한국을 이야기할 때마다 코끝이 찡하고 마음이 아렸다.

레르 뒤 탕을 찾아 상훈 셰프를 만나고자 했던 목적은 그의 요리를 직접 맛보고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입양아로서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더 컸다. 그러나 그의 요리를 맛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솔직히 상훈 셰프의 요리 하나하나를 맛보면서 목적을 잊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게다.

식사를 하면서 레르 뒤 탕을 소개한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자연을 맛보는 거야. 신선하고 다양한 채소와 허브 그리고 꽃잎이 어우러진 자연을… 입 속에서 이게 바로 자연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니까.” 상훈 셰프의 요리는 하나씩 나왔고 음식과 딱 맞아떨어지는 와인이 추천됐다. 황홀한 시간이 끝나갈 즈음 창밖에 빗방울이 요란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요리가 만들어질 때의 시간은 밤 10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7시에 저녁을 시작했으니 약 3시간 동안 식사를 한 것이다. 다른 테이블의 식사 시간도 비슷했다.

식사를 마친 후 상훈 셰프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Cooking is a part of us.(요리는 우리의 한 부분이다)”라는 문구와 함께 ‘상훈’이라고 적어줬다. 사람들은 상훈 셰프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 멀리서 레르 뒤 탕을 찾는다. 그들은 계절마다 달라지는 식단에 감탄하고 자연의 맛을 느끼게 해준 레르 뒤 탕의 셰프들에게 감사하며 돌아간다. 만약 <이코노미조선> 독자가 벨기에로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면, 레르 뒤 탕에 들러 상훈 셰프의 요리 어딘가 숨어 있는 한국의 맛을 느껴보길 권한다.

 

[Mini  interview ● 상훈 드장브르 레르 뒤 탕 셰프]

“기술과 재료, 감성이 뛰어난 요리 만든다”

- 레스토랑은 언제 시작했나요? 또한 레르 뒤 탕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요?
“첫 레스토랑을 연 것은 18년 전입니다. 지금 여기로 옮긴 것은 2년 전 일이고요. 여기 레르 뒤 탕의 가장 큰 특징은 멋지고 아름다운 농원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재료를 주는 곳이죠. 제 요리에 영감을 주고 요리를 채워주는 귀중한 곳입니다. 더 큰 가능성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느껴지면 바로 실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미슐랭 가이드> 별 두 개를 얻은 레스토랑입니다. 특별히 드장브르만의 스타일이 있나요?
“드장브르의 스타일이라고 하면 기본은 제가 만든 요리겠지요. 요리는 자기가 가진 뿌리에서 나옵니다. 좋은 기술, 좋은 재료 그리고 자기가 가진 감성이 요리를 탄생시키는 것이죠.”

- 한국과 다시 인연을 맺게 된 특별한 배경이 있나요?
“전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섯살에 벨기에로 입양됐고 유럽 교육을 받으면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었었죠. 하지만 근본은 거부할 수 없더군요. 6년 전부터 모국인 한국을 배우게 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한국을 거부했고 생각하기도 싫었습니다. 저를 버렸거든요.”

- 그런데 왜 한국을 다시 찾게 됐나요?
“6년 전  한국 정부가 요리 관련 행사에 저를 초대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한국 음식을 맛봤습니다. 한국 음식이 저와 모국을 이어준 것이죠. 한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느껴지는 공기도 너무 친근했습니다. 전 후각이 민감한 와인 소믈리에입니다. 모든 냄새를 기억해요. 한국의 공기를 맡는 순간 ‘이곳이 바로 나의 모국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되면서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네 차례 한국을 방문했는데, 많은 한국인을 만났습니다. 보쌈·육회·잡채 등 다양한 한국 음식도 맛봤습니다. 그 결과 한국의 식재료를 요리에 적용,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렇게 한국의 ‘장(醬)’에 빠져든 거군요?  
“그렇습니다. 장은 제게 한국의 맛을 알게 해줬습니다. 최근 발효음식인 장을 사용하는 음식 개발에 집중하고 있어요. 5년 전 알게 된 한국 장 개발 회사를 통해 간장·고추장·된장 등 다양한 장을 맛봤고 가능성을 알게 됐습니다. 제 요리 세계에서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음식 재료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고 상훈 드장브르 스타일을 만들 수 있게 해줬지요.”

- 함께 일하는 스태프와는 어떤 관계인가요? 
“처음 이곳을 오픈할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지금은 각 스태프가 스스로의 강점을 개발하기를 바라고 그들 스스로의 개별적인 느낌의 요리를 만들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열린 생각으로 자신만의 요리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알려주려고 노력합니다.”

- 셰프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셰프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각을 열어두고 많은 것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항상 내가 왜 여기 있는지를 묻고 답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야 하고 오감(五感)을 열고 정보를 받아들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 셰프가 아니라면 어떤 일을 했을 것 같나요?
“셰프가 아니었다면 창의적인 일을 했을 겁니다. 감성으로 만든 창작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걸 좋아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