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5월6일 오전 8시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시. 꾸물꾸물한 봄날 이 곳에서는 세계 초일류 기업인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의 주주총회가 열렸다. 초현대식 다목적 시설인 퀘스트센터는 새벽부터 전국에서 몰려든 2만4000명의 주주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해마다 벌어지는 풍경이란다. 오마하의 호텔은 완전히 동났고, 시내 식당들은 소액주주들로 초만원이었다. 시내에는 택시가 없을 정도다. 모두들 빌 게이츠에 이어 세계 2위의 부호인 ‘마이다스의 손’ 워런 버핏(75)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을 보기 위해서다.

버핏 회장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으려면, 새벽 7시 이전에는 퀘스트센터에 입장해야 한다. 체육관 내 15개의 마이크 앞에 마련된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다. 제프 베이츠 펀드매니저는 “마이크 한 개당 보통 4명 정도가 질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8시10분쯤 입구에 마련된 마이크에 갔을 때는 명단이 이미 꽉 찬 상태였다.

68개 기업을 보유한 버크셔 해서웨이의 시장가치는 1900억달러. 무려 447억달러의 현금을 보유한 초우량 기업이다. 덕분에 주식 1주당 9만달러(9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초고가 황금주식인 셈이다. 1968년 1월 그에게 1만달러(한화 약 1000만원)를 투자한 사람은 지금 4000만달러(한화 약 400억원)의 부자다. 1968년 1월 말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는 20달러50센트였다.

방송기자 출신인 캐런 케일리쉬(60)씨는 “그의 한마디에 따라 주식시장이 출렁였다”면서 “돈에 관한 한 버핏은 하느님 다음으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워런 버핏 회장은 이날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주총에 줄곧 앉아 있었다. 짙은 감색 상의에 회색 양복바지 차림인 그는 거의 헤진 신발을 신었다. 420억달러를 가진 부호치고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1시간짜리 영화 상영 후 단상에 오른 그는 60여 명의 주주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일일이 응답했다. 버핏 회장은 고령임에도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살아있는 경제교육이었다. 주총은 시종일관 축제분위기로 진행됐고, 사외이사인 빌 게이츠도 온종일 자리를 지켰다.

버핏 회장과 찰스 멍거(82) 부회장은 단상에 앉아 마치 코미디언처럼 주주들에게 위트와 재치 있는 답변을 던지며 응답, 주주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버핏 회장은 회사 홍보영화에서 멍거 부회장이 젊고 예쁜 여자들로부터 인기가 높은 이유에 대해 “젊은 여자들이 늙고 돈 많은 남자 둘 가운데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을 선택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해 주주들을 웃겼다. 나이가 많을수록 일찍 죽을 확률이 높아 유산을 빨리 상속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주 질의에 일일이 답변해

버핏 회장은 점심시간 45분을 제외하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세계 유가는”, “환율은”, “미국의 사회보장 보험은 어떻게 되는 건지”, “지금 다시 시작한다면 어떻게 돈을 벌 건지” 등 정치·경제·철학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그때마다 버핏 회장은 주주들에게 의미 있는 답변들을 내놓았다. 그는 때론 미 정부를 비난하기도 했고, 달러화와 미국의 금리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기도 했다.

“평가할 수 없는 기업엔 투자하지 말라”, “미국 정부가 세제 개혁을 하는 바람에 내가 내는 세율이 우리 회사 비서가 내는 것보다 낮아졌다”, “투기보다는 투자를 하라”, “훌륭한 교훈엔 시효가 없다”, “시장은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 등등.

그는 6시간여 동안 연신 코카콜라와 아이스크림, 초콜릿 등을 먹었다. 모두 자회사나 버크셔 해서웨이가 투자한 기업 제품들이다. 그는 질문에 답변하면서도 자회사 제품에 대해 광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예컨대 코카콜라 한잔을 마시며, “시원하다”거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밖에 나가면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있으니 먹어보라”고 권유했다.

이날 주총장 옆에 마련된 전시장에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소유한 68개 기업들이 자사 제품을 전시해놓고 있었다.

한 질문자가 IT 산업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버핏 회장은 “컴맹이라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투자 안 한다”고 짤막하게 답변했다. 모르면 투자하지 말라는 것이다. 반대로 투자하려면 투자 대상을 철저히 분석한 뒤 투자하라는 얘기다.

버핏 회장은 “5월5일 이스라엘의 IMC의 주식 80%를 40억달러에 인수했다”면서 “IMC의 자회사인 한국의 대구테크도 함께 인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구테크는 지난 99년 IMC가 대한중석의 초경구 사업부를 인수한 뒤, 대구테크로 이름을 바꾸고 3억달러를 투자한 회사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절삭 공구 등을 생산한다. 대구테크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인수한 첫 한국 기업인 셈이다.

버핏 회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인수 협상을 벌였다”면서 “IMC는 대구테크 등을 포함, 훌륭한 경영을 하고 있는 회사”라고 밝혔다. 이날 상영된 IMC 동영상에서 대구테크는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날 주총에 참석한 2만4000여 명은 대구테크의 한국인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2~3분간 동영상으로 관람했다.

버핏 회장은 이날 한국에 대한 투자 가능성을 두 번 더 언급했다. 한국 중소기업을 인수해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으며, 중국에 대해서는 버크셔가 투자하고 있는 페트로차이나에 대해서만 한 번 말했을 뿐이다.

버핏 회장은 사후 모든 재산을 버핏재단에 기증,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오마하에 있는 그의 집은 100만달러도 안 되는 일반 주택이다. 최근엔 20년 동안 사용한 지갑을 경매를 통해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절약이 몸에 밴 자린고비 부호라는 게 오마하 시민들의 평가다. 오마하 시민들은 그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오마하의 모든 사회 공익사업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이다. 또 버핏 덕분에 오마하는 미국에서 8번째로 많은 억만장자를 보유하고 있는 도시가 됐다. 한 사람의 천재가 도시 전체를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

워런 버핏은 누구인가

버핏 회장의 개인 자산은 420억달러다. 500억달러의 재산을 가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에 이어 세계 2위다. 찰스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의 자산까지 합치면 이날 주총에는 1000억달러(100조원)의 사나이들이 모였다.

버핏 회장은 부친이 하원의원을 지낼 때 워싱턴 근교에서 자랐다. 이 때 그는 신문 배달을 해서 모은 용돈으로 중고 핀볼 게임기 7대를 구입, 이발소마다 설치했다. 그는 당시 주 50달러씩 벌어들였다. 이 돈으로 1934연식 롤스로이스를 구입해 35달러에 빌려주는 사업을 벌였다. 사춘기 때부터 이미 사업가적인 기질을 발휘한 것이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때 6000달러를 호주머니에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잠시 월가에서 근무한 뒤, 고향인 오마하로 돌아와 펀드를 차렸다. 주변 친지들로부터 10만달러를 빌려, 주식 등에 투자했다. 이후 13년간 매년 30%의 수익률을 올렸다. 이 돈으로 1962년 섬유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를 매입해 오늘날 보험사, 재보험사, 아이스크림 업체, 초콜릿 업체 등 68개를 소유한 자산 가치 1900억달러의 재벌 그룹으로 변신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