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재봉틀’ 하면 ‘부라더’였다. 그만큼 ‘재봉틀(미싱)=부라더’는 공고했다. 주부들에겐 인기품목 중 하나였다. 주부를 공략한 회사답게 부라더공업의 ‘가족주의’는 명성이 자자하다. 투명한 커뮤니케이션과 강력한 노사 신뢰는 직원 만족의 주춧돌로 작용했다. 회사는 ‘100년 장수기업’이다. 재봉틀 국산화란 사업모델이 성장발판이 됐다. 지금은 세계적인 정보통신기기메이커로 변신에 성공했다. 팩스·프린터 등 전자제품으로 시대변화에 부합하며 세를 키우고 있다.

100년 장수기업 비결은 ‘가족주의’

    

직원이 사장 별명 부르며 소통 활성화

부라더공업의 전신은 1908년 야스이 카네키치(安井兼吉)가 설립한 야스이(安井)미싱상회다. 이를 1925년 6남4녀 중 장남인 야스이 마사요시(安井正義)가 계승하면서 간판을 ‘야스이(安井)미싱형제상회’로 변경했다. 당시 재봉틀 국내시장은 95%가 미국산이었고 나머지는 독일제였다. 일본제는 없었다. 회사는 수입품을 수출품으로 변신시킬 것이란 목표로 재봉틀 국산화에 사활을 걸었다. 1928년 부라더 상표가 최초로 찍힌 제품 출시에 성공했다. 이때 중간공정에 필요한 공작기계마저 만들어냈다. 1934년 ‘일본미싱제조㈜’로 재차 사명을 바꿨다. 1947년에는 해외수출이 실현됐다. 전쟁 이후 국제경쟁력을 획득한 대표주자로 성장하면서 회사는 일본경제의 상징으로 부각됐다.

현재 회사는 글로벌기업 반열에 올랐다. 나라 밖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훨씬 많다. 시장별 매출구성(2010년)을 보면 미국(28.8%)과 유럽(27.3%) 등 선진국이 압도적이다. 일본(23.4%)과 아시아지역(20.5%)이 뒤를 잇는다. 80% 가까운 매출(연결)이 해외에서 발생한다. 매출구성은 프린터·전자문구(P&S) 등이 절대다수(67.7%)다. 그중에서는 프린터복합기와 라벨라이터 등 프린팅사업이 핵심이다. 공업용 재봉틀·공작기계(M&S)와 네트워크 콘텐츠(N&C)가 각각 13.2%, 10.5%의 비중을 차지한다. 금융위기 때 주춤했지만 매출액(2010년)은 5000억 엔대 재탈환에 성공했다. 다음 목표는 매출액 1조엔에 영업이익 1000억 엔 달성이다.

우선전략은 글로벌화다. 이미 회사의 세계진출은 충분히 ‘글로벌적’이다. 40개 이상 국가·지역거점으로 글로벌 사업전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새로운 글로벌화를 외친다. 남과 구별되는 고차원적인 해외진출을 염두에 둬서다. 즉 기술력의 제반원천인 개발파트조차 글로벌화가 목표다. 일본인 엔지니어가 개발·설계한 걸 해외에 내다파는 게 아니라 해외거점의 외국인 기술자가 이를 대체하도록 했다. 기술유출 등을 이유로 대부분은 꺼리는 전략이다. 그래서 회사는 소프트웨어 개발거점을 중국에 설립했다. 생산거점은 일본인 임직원의 주도권을 현지인에게 차근차근 넘겨 자율적인 로컬경영을 완성할 계획이다. 일본거점은 철저히 혁신제품·기술개발에 역점을 둔다는 청사진이다. 글로벌화의 역할분담이다. 

- 부라더공업의 최신 재봉틀(왼쪽)과 부라더공업이 판매중인 팩스, 프린터 복합기
- 부라더공업의 최신 재봉틀(왼쪽)과 부라더공업이 판매중인 팩스, 프린터 복합기

40개국 진출 ‘글로컬’경영 완성

회사의 기업문화는 입소문이 자자하다. 근로자가 회사·경영자를 신뢰하고 일에 자부심을 가지며 함께 일하는 동료와 연대감을 가진 대표적인 일본회사로 선정된 이유다(2010년 제4회 ‘일할 맛 나는 회사’ 베스트 25로 선정). 선배가 후배에게 추천하는 회사평가에서는 톱 20에 포함된다(2011년 신입사원 채용특집·라쿠텐). 이는 성장성과 정보공개·사원이미지 등을 기초로 한 평가로 2만4000개 일본기업이 후보에 올랐고 이 중 상위 0.08%에 속했다. 비슷한 업무환경을 지닌 제조메이커 중 4위다. <닛케이비즈니스>는 부라더공업을 “집단이 팀으로 진화해 성공DNA를 체득했다”며 흔들리는 기업이 본받아야 할 모범사례로 선정했다.

회사의 기업문화는 가족주의로 요약된다. 임직원 모두가 가족구성원처럼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며 결과를 공유한다. 가족주의 정착주역은 2007년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고이케 토시카즈(小池利和) 사장이다. 위로부터의 의식발현과 실천이 부라더공업의 가족주의를 한층 견고한 기업문화로 안착시켰다. 그의 취임 이후 회사와 사원의 쌍방향적인 정보교환·소통은 부쩍 잦아졌다. 경영진이 투명한 공개정보와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을 대단히 중시한다는 게 알려진 이후다. CEO의 경우 최소 주 2회는 사내통신망으로 메시지를 띄운다. 메시지는 공사(公私) 구분이 없다. 가급적 모든 정보를 최대한 담아내려 한다. 소소한 사적 관심사의 발신이 무거워지기 십상인 회사공기를 바꾸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임직원의 반응은 뜨겁다. CEO의 발신메시지는 90% 이상이 읽어볼 정도로 평판이 좋다. 적잖은 임직원이 사석에서 사장을 애칭(테리, 미국근무 때의 별명)으로 불러줄 정도다. 메시지가 좀 늦을라치면 “언제 읽어볼 수 있냐”고 물어오는 이도 수두룩하다.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작된 신뢰구축과 가족주의적인 자부심은 제도로 완성됐다. ‘팀 부라더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임직원의 자부심과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환경설정이 목표다. 이는 일할 맛 나는 현장으로 평가받는 데 일등공신이 된 제도다. 말만 번드르르한 제도설립보다 공감대가 형성된 실질적인 인재육성·활성화를 위한 조치다. 다른 부서와의 교류강화와 직장견학을 수시로 개최하는 등 세부전략이 추진된다. 주체는 자율을 전제로 한 개별임직원이다. 프로젝트 추진멤버는 300명대로 매월 월례회를 개최한다. 활동멤버는 2000명을 웃돈다. 1년에 2회 실시하는 종업원 의식조사 결과를 분석해 새로운 추진전략 등을 강구한다. 가급적 젊은 사원의 적극 참가를 독려해 최근 일본의 사회 이슈로 떠오른 직장부적응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가족주의 뿌리 … 사장·직원 소통 강화

‘팀 부라더 프로젝트’의 출발은 임직원과의 대화였다. 직장을 활기차게 만들어보자는 식의 게릴라식 대화 시도였다. 당연히 반응은 “활기찬 게 뭔데?”, “그런 것은 위에서나 하는 것”이란 투의 부정문이 압도적이었다. 다만 반복 앞에 장사는 없듯 대화는 점차 늘어났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를 압축해냈다. 근로의욕에 관한 마인드와 경영지식을 둘러싼 과제가 그렇다.

문제인식은 곧 코칭연수와 경영교육활동(외부위탁)으로 연결됐다. 문제는 또 발생했다. 연수만으로 활기찬 조직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또 참가 여부에 따른 근로현장의 뚜렷한 온도차가 걸림돌이었다. 인재활성화위원회의 필요성이다. 위원회가 깨달은 것은 ‘활기찬 직장조성’의 공유감이 실제행동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결과 CEO 스스로 그 벽을 깨는 공사장 인부가 되기로 작정했다.

사장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과제는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였다. “일할 맛이란 게 남에게 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란 발신을 반복했다. 앞서 설명한 메시지 발신수단이 큰 몫을 했다. 시간이 걸렸지만 열기는 뜨거웠다. 좀체 움직이지 않던 근로자가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관심을 이끌고자 종업원 의식조사 등의 이슈테마도 개발했다.

커뮤니케이션이 뚫리자 사원만족도는 0.49포인트(1~5포인트) 올랐다. 회사방침에 반대하던 여론은 눈에 보이는 개선 수치 앞에서 태도를 바꿨다. ‘팀 부라더 프로젝트’는 전사적으로 확대됐다. CEO는 “ES(직원만족) 없이 CS(고객만족) 없다”며 스케일을 키워나갔다. 신뢰는 이때 강화됐다. 반대파와 무관심파가 없지 않았지만 프로젝트 참가자가 대거 늘면서 자연스레 설득과 이해가 확산됐다. 공식적이지 않은 회식과 볼링대회, 생일파티 등이 늘어났고 회사에는 자연스레 일을 넘어선 유대관계가 생겨났다.

회사는 이런 분위기를 ‘애트 홈(At Home·집처럼 편안한 분위기)’으로 규정했다. 가족구성원처럼 서로 챙기며 응원하는 문화는 회사의 자랑거리로 정착됐다. 비밀정보가 없고 늘 공유되다 보니 위기대처 능력은 탁월한 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특단의 대책 같은 건 없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우선순위를 명확히 설득·규정해 진행했다. 위기임에도 불구, 일상적인 업무의 반복이었다. 충격여파는 최소한에 그칠 수 있었다. 위기가 있었던 2008년 매출은 전년 대비 15% 줄어드는 데서 묶을 수 있었다. 회사와 임직원의 소통은 해외파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현재 모두 2만명 가까운 외국인근로자가 근무 중이다. 사장은 연간 10회 이상 이들을 찾는다. 현지 직원과의 살아 있는 직접대화는 필수다. 사내통신망의 메시지도 8개 언어로 번역된다. 가끔 봐도 진정성이 통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젊은 사원의 만족도가 높다. 철저히 현장중심의 권한배분이 이뤄지는 가운데 젊은 사원에게도 충분한 재량권을 부여한다. 이는 일찍부터 가꿔진 사풍이다. 발고 활기찬 근로현장에 이끌려 입사했다는 근로자가 많다. 회사는 이런 도전정신을 높게 사 대접해준다. 고이케 사장만 해도 입사 3년차에 미국 파견을 지원했는데 ‘덜컥’ 선발돼 이후 23년을 ‘쭉’ 근무했다. “영어도 안 되는 신출내기에게 많은 권한을 이양해줘 큰 자극을 받았다”는 게 그의 회고다. 때문에 회사는 청년사원을 각별하게 배려한다. 반면 실패는 허용된다. “사장역할은 임직원이 도전하도록 고취하는 대신 그들의 실패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직원과의 대화 모습. 고이케 토시카즈 사장(오른쪽)
- 직원과의 대화 모습. 고이케 토시카즈 사장(오른쪽)

사내통신망, 8개 언어로 서비스 지원

가족주의를 위한 회사정책은 다양하다. 먼저 고용·처우에 관한 기본방침이다. 회사는 개개인의 인격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신의·존경으로 행동한다는 걸 공개·천명했다. 때문에 채용·평가·승진 등에 차별은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민족, 국적, 종교, 사상, 성별, 학력, 연령, 장애유무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의 차별철폐다. 이를 토대로 의욕과 능력, 성과를 공평·공정하게 평가해 처우에 반영한다. 일반근로자의 경우 목표관리제를 적용해 납득할 수 있는 평가과정과 결과를 공개한다. 여성근로자의 채용확보 및 등용촉진은 가시적인 성과가 도출 중이다. 일부 계열사는 여성 관리직 비중이 50%를 웃돈다. ‘잡 코치’를 신설해 장애근로자가 원활하게 일할 수 있도록 조언·지도하는 전문가도 배치했다. 고령근로자의 계속고용은 2006년 만들어진 ‘SS(신 시니어스태프)’ 제도를 기반으로 한다. 베테랑답게 그들의 조정능력과 후배육성·지도능력을 귀중한 전력으로 활용한다. 능력과 의욕을 갖춘 희망자의 경우 전원 재고용이 이뤄지며 2009년 현재 정년 초과된 300명의 고령근로자가 활약 중이다.

다양한 근로형태의 제공은 의욕과 자부심을 강화하는 기초무대다. 회사는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선택적인 근로가 가능한 제도를 마련·제공한다. 회사 상황에 본인 시간을 맞추는 게 아니라 본인 생활을 위해 근로 방법을 고르는 형태다. 일과 가정의 양립조화가 대표적인데 이를 위해 육아·간병지원이 가능한 제도형태를 확충한다. 육아·간병휴가제와 단시간 근로제 등이 그렇다. 육아를 위한 단시간 근무를 초등자녀 3학년까지 연장했고 가족간병을 위한 휴직은 통산 3년까지 늘렸다. 유급휴가 취득률을 높이고자 리프레시(Refresh) 휴가도 신설했다.

워킹맘의 자율적인 정보교류와 활동지원을 위해서도 발벗고 나선다. ‘부라더 마더(Brother Mothers)’가 그 예다. 워킹맘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그룹 내부에 포진한 다양한 동료들과 정보·과제를 공유함으로써 일과 육아·가정의 균형을 원활히 양립시키기 위한 기반형성에 도움이 되고자 출범했다. WLB를 촉진하는 데 필요한 방안·힌트를 모아 새로운 제도제안으로 연결시켜 보다 일하기 쉬운 사풍을 만들기 위한 조치다. 여기에는 정보·체험담 등의 커뮤니케이션을 맡은 블로그와 매월 개최하는 런치타임 사내교류(자녀동반)를 통한 계몽활동 등이 있다. 덕분에 육아휴가 취득자는 매년 증가추세이며 2007~2009년 육아휴가 취득자의 복귀율은 100%를 기록했다. 이젠 일하는 아빠(Working Father)에게까지 지원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