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A BIRD VIEW 

   


“길이 어디 있느냐고 묻지를 마라”…

   

 유행가 서유기 가사 인용하며 

   

 미국은 ‘지는 해’ 간접 묘사
  

- 미국을 방문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이 지난 2월 14일 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통령(오른쪽)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왼쪽)이 마련한 환영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미국을 방문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이 지난 2월 14일 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통령(오른쪽)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왼쪽)이 마련한 환영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이 지난 2월17일까지 5일간 이어진 미국 방문 기간 중 남긴 말 가운데 가장 함축적인 말은 “길이 어디 있느냐고 묻지 마라, 길은 바로 너의 발 아래 있다(敢問路在何方 路在脚下)”는 말이었을 것이다. 시진핑은 2월14일(현지시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이 준비한 오찬에 참석해 앞으로 올해 말부터 펼쳐질 자신의 시대에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어떤 모양일 것인가를 설명하면서 그런 말을 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발전도상국이고, 미국은 세계 최대의 선진국입니다. 앞으로 미국과 중국이 새로운 협력 동반자 관계를 건설하는 것은 중요하면서도 심원(深遠)한 의의가 있는 창조적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 작업에는 참고할 선례도 없고, 거울로 삼을 경험도 없습니다. 두 나라에게는 덩샤오핑이 한 말 ‘돌다리도 두드리면서 건너라’는 말과 클린턴 국무장관이 한 말 ‘산이 가로막으면 길을 뚫고, 물이 가로막으면 다리를 놓으라’는 말이 있을 뿐입니다. 중국의 유행가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길이 어디 있느냐고 묻지 마라, 길은 바로 너의 발 아래 있다….’”

시진핑이 인용한 유행가 가사는 장다웨이란 가수가 부른 ‘서유기’라는 노래의 일부였다. “너는 짐을 지고, 나는 말을 타고/ 지는 해에 인사하고, 황혼을 환영하며/ 길 위에서 자고 다시 떠나네/ 우리는 다시 떠나네/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차례로 바뀌고/ 또 다시 바뀌고, 세월은 흘러가네/ 길이 어디 있느냐고 묻지를 마라/ 길은 바로 너의 발 아래에 있으니까….”

 시진핑이 오찬 연설은 하는 연단 바로 옆에 서있던 클린턴 장관이나 바이든 부통령이 그 노래의 가사를 알고 있었더라면 가슴이 섬뜩했을 것이다.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는, 넉넉한 풍채의 시진핑이 “길이 어디 있느냐고 묻지를 마라, 길은 바로 너의 발 아래 있으니까”라고 한 노래의 가사는 ‘시간이란 흐르는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계절은 바뀌는 것이며, 그런 것처럼 중국과 미국의 위상도 변하는 것이며, 서로의 위상이 변하더라도 길은 걸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특히 지는 해와 황혼이 다가오는 광경, 다시 말해 미국이 지는 해가 될 수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클린턴과 바이든은 좀더 다른 표정을 지어야 했을 것이다.

시진핑은 오는 10월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전당대회)에서 현 후진타오 총서기의 후임자로 당원이 8000만명이 넘는 세계 최대 정당의 당권을 장악하게 된다. 다시 내년 3월 열릴 예정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는 역시 후진타오의 후임 국가주석에 오르게 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중국공산당과 국무원의 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도 후진타오로부터 물려받아 명실공히 당정군(黨政軍)을 모두 장악하는 새로운 지도자가 돼 앞으로 5~10년간 중국을 이끌어나가게 될 것이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미국 선진국이지만 황혼 올 수 있어”

‘길이 어디 있느냐고 묻지 마라, 길은 바로 너의 발 아래 있으니까’라고 한 그의 연설은 그의 위상에 걸맞은 의미심장한 내용이라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현재도 중국은 발전도상국가임에  틀림없고,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선진국이지만 두 나라 관계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앞으로 미국이 걸어가는 길 앞에는 황혼이 올 수 있으며, 그러다보면 계절도 바뀌리라는 것을 시진핑은 ‘서유기’라는 노래에 비유해 암시한 것이다.

시진핑이 자신의 시대에 전개될 중국과 미국의 위상 변화를 암시한 “길이 어디 있느냐고 묻지를 마라”고 한 말 앞에 인용한 덩샤오핑의 말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말은 덩샤오핑이 1980년대 초에 빠른 경제 발전을 목표로 한 개혁개방을 시작하면서 당과 정부의 지도자들에게 당부한 말로, 정확히는 “강바닥의 돌을 만져봐 가면서 강을 건넌다(摸着石頭過河)”는 말이었다.

우리는 물살 빠른 강을 맨발로 건너면서 이끼 낀 돌이 미끄러워 손이나 발로 돌을 만져가면서 건너본 경험을 갖고 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한 마오쩌둥이 이끈 중국이 1970년까지 택한 국가전략은 ‘초영간미(超英美: 빠른 시간 내에 영국을 넘어서고 미국을 따라잡는다)’라는 것이었다. 마오는 1949년부터 1950년대 말까지 소련의 도움으로 비교적 성공적으로 추진된 중공업 건설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1960년대 초부터는 이른바 강철 생산량도 단기간에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을 추격하는 수준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 ‘대약진(大躍進) 운동’이라는 무리수를 두었고, 강철 생산을 위한 제강 공장을 건설하는 대신 마을마다 전통적인 용광로를 건설하는 군중주의를 채택해 중국경제를 나락에 빠뜨렸다.

그 대약진 운동의 무리수를 둔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다시 ‘문화대혁명’이라는 정치투쟁을 벌이다가 1976년 9월 자연적 수명이 다해 중국의 지휘권을 놓음으로써 중국은 덩샤오핑의 시대를 맞게 됐다.

덩샤오핑이 한 말 “강바닥의 돌을 만져가면서 강을 건너라”는 말은 마오쩌둥이 둔 무리한 속도의 경제발전이 전국을 재앙으로 몰아넣는 것을 보고 경험한 중국지도자들에게는 귀가 번쩍 뜨이는 경구(警句)가 됐고, 지난 30여년간의 개혁개방 정책의 결과 빠른 경제발전이라는 소득을 거두면서도 중국지도자들의 마음 속에는 “이끼 낀 강바닥의 돌을 만져가면서 강을 건너라”는 덩샤오핑의 목소리가 가슴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중국은 지난 34년간의 그런 조심스러운 자세를 벗어던지고 미국에 대해 “길이 어디 있느냐고 묻지를 마라, 길은 바로 너의 발 아래에 있으니까”라고 말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장관의 “산이 가로막으면 길을 뚫고, 강이 가로막으면 다리를 놓으라”는 말은 2008년 말 시작된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처지를 잘 표현한 말이다. 2009년 중국을 처음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은 중국 지도자들에게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안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이 미국과 함께 동주공제(同舟共濟), 즉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자는 제의를 했다. 이에 대해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총리 등 중국 지도자들은 ‘휴수공진(携手共進)’, 다시 말해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자고 호응했었다.

올해 말이면 중국의 지휘권을 쥐게 될 시진핑이 말한 “길이 어디 있느냐고 묻지 마라, 길은 너의 발 아래 있다”는 구절은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또 다른 새로운 스테이지(Stage)로 바뀔 것으로 본다는 시진핑의 견해를 담고 있다. 시진핑의 그런 희망이 현재도 3대 1 정도인 미국과 중국의 GDP 규모를 제대로 반영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라고 할 수 있다. 지난 34년간 빠른 속도로 달려온 중국 경제 내부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앞으로 시진핑의 호기가 얼마나 현실과 부합할지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이 지난 2월15일 아이오아주 농촌 마을인 머스카틴을 방문,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 부주석은 허베이성 정당현 서기 시절인 1985년 이후 27년 만에 이 마을을 다시 찾았다. 당시 시 부주석은 2박3일 동안 이곳에 머물며 다양한 농업기술을 배웠다.
-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이 지난 2월15일 아이오아주 농촌 마을인 머스카틴을 방문,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 부주석은 허베이성 정당현 서기 시절인 1985년 이후 27년 만에 이 마을을 다시 찾았다. 당시 시 부주석은 2박3일 동안 이곳에 머물며 다양한 농업기술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