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대형마트에 진열된 오리온 제품. 오리온 초코파이(아래)
- 중국의 대형마트에 진열된 오리온 제품. 오리온 초코파이(아래)

중국에서 하오리여우(好麗友·좋은 친구)로 불리는 오리온은 중국 시장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한국 기업이다. 1997년 2100만위안이던 오리온의 중국 매출은 지난해 41억위안(약 7400억원)으로 200배 가까이 성장했다. 오리온은 파이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껌(2위)과 스낵·비스킷(5위) 부문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중국을 생산 기지로 삼아 수출하는 일부 기업과 달리 오리온은 지난해 중국에서 만든 제품을 전량 중국에서 팔았다. 4600명의 임직원 가운데 99%는 현지 중국인이며 한국에서 파견나온 주재원은 37명뿐이다.

세계 제과시장에서 중국은 가장 살벌한 전쟁터다. 중국 토종 기업들은 가격이 오리온의 절반에 불과한 ‘짝퉁 제품’을 내놓으며 치고 올라오고, 리글리·크래프트·펩시코 같은 글로벌 식품 기업들은 자금력과 인지도를 무기로 중국 소비자를 유혹한다. 아래 위로 차여서 호두까기 신세가 되기 십상인 구조다. 이런 전쟁터에서 지난 한해 동안 오리온이 중국에서 판매한 초코파이는 약 6억개, 스낵은 약 7억 봉지였다. 매일 평균 각각 164만개와 191만개씩 팔리는 엄청난 양이다.

오리온은 원래 파란색인 초코파이 상자를 중국인이 좋아하는 붉은색으로 바꾸었고, 포장지에는 정(情)이란 글자 대신 중국 특성에 맞춰 인(仁)이라는 한자로 바꿔 표기하고 있다. 덕분에 지름 7㎝, 두께 2.3㎝, 무게 35g의 작은 거인인 초코파이는 중국을 호령한다. 오리온의 진짜 성공 요인은 무엇인가?

- 오리온 중국 법인 상하이 공장
- 오리온 중국 법인 상하이 공장

선택과 집중, 강점으로 승부한다

오리온의 중국 진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은 화교 3세인 담철곤 회장이다. 그는 국내 오너 경영인 중 가장 먼저 중국 시장을 주목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한·중수교 이전이던 1991년 사전답사 차 중국을 첫 방문했고, 92년 8월 한·중수교가 이뤄지자마자 한국 기업 중 가장 먼저 베이징에 사무소를 냈다. 중요한 것은 사무소 개설 후 바로 중국 사업에 뛰어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담 회장은 “늦게 시작해도 좋으니 중국을 제대로 이해한 후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97년 베이징 공장에서 첫 생산을 할 때까지 1인 대표체제로 면밀한 시장 조사 및 개척 작업과 시뮬레이션을 계속했다. 또 본사와 연계해 초코파이를 수출하는 한편 공장 생산에 필요한 현지 원부재료 확보와 영업 대리점 발굴에도 힘썼다.

자체 매출이 전무한 상황에서 4년 넘게 뚝심있게 준비한 것은 담 회장의 중국 시장에 대한 강한 믿음과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중국 시장은 반드시 된다. 초코파이는 분명 중국 시장을 휩쓸 것이다”며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97년 초코파이를 생산하고 현지 판매를 시작한 후 담 회장이 가장 먼저 내린 지시는 ‘무조건 현금거래’였다. 중국에서 외상거래를 했다가는 자칫 부실채권에 몰려 본업인 영업을 제대로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중국 도매상들은 생면부지의 브랜드인 ‘하오리여우’를 팔아달라는 영업사원들이 그것도 현금결제를 고집하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중국 오리온 관계자는 “사업 초기 매출을 올리기 위해 외상거래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숱한 날들을 고민했지만 늦게 가더라도 정상적으로 가겠다며 현금거래를 고수했다”며 “현재 초코파이는 중국에서 술, 담배 외에 무조건 현금으로 거래하는 유일한 제품이 됐다”고 말했다.

생산 및 판매에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적용했다. 담 회장은 “시간이 지나면 중국 시장에 세계 최고 제품들이 다 들어온다. 우리가 잘하는 것(초코파이)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했다. 실제 오리온은 1997년부터 3년 동안 초코파이만 만들어 팔았고, 시장도 베이징 등 대도시로 한정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오리온 중국 법인은 목표 매출액의 50~80%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성장이 저조한 데는 외상을 주지 않고 현금거래만 고집한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담 회장은 “브랜드 구축에는 시간이 걸린다. 성급해 하지 마라”며 매출목표 달성에 실패한 중국 법인을 격려했다. 오리온은 이와 함께 “오리온, 좋은 친구, 내 마음을 아는 친구” 같은 CM송을 방송에 내보내며 브랜드 알리기에 집중했다.

독특한 마케팅 전략도 시도했다. 97년 당시 중국인의 1인당 소득은 300달러 남짓해 먹을 만한 과자는커녕 ‘파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당연히 초코파이 판매 자체가 쉽지 않았다. 오리온은 그래서 베이징의 심장인 천안문 광장에 커다란 매대를 만들어놓고 ‘대규모 시식 이벤트’를 열었다. 중국 오리온 직원들은 이벤트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초코파이 포장지 수백, 수천개를 시식이벤트 자리 근처에 깔아 놓았다. “도대체 뭐길래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먹어봤나?” 하면서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또 행사가 끝난 후에도 시식회장 근처의 쓰레기통을 모두 숨겨 시식회에서 먹은 초코파이 포장지를 행인들로 하여금 보도록 해 초코파이의 이미지를 재각인시켰다. 이때 초코파이 맛을 본 중국인들이 이후 초코파이 고객이 됐고 초코파이는 엄청난 유명세를 탔다. 초코파이는 이런 ‘쓰레기(trash) 마케팅’으로 중국에 ‘파이’ 시장을 만들었다.

이와 함께 감자를 좋아하는 중국인의 입맛에 맞춰 고래밥은 감자가루로 반죽했고, 오감자와 예감은 스테이크맛, 구운오리&치즈, 토마토맛 등 한국에는 없는 시즈닝을 입혔다. 중국에서만 판매하는 판다 모양의 카스텔라 파이(슝마오파이파이)도 있다. ‘고래밥’ ‘오감자’ ‘예감’ 등 제품 이름도 중국인들에게 익숙하게 하기 위해 각각 ‘하오뚜어위’ ‘야투떠우’ ‘슈우유엔’ 등 중국어로 바꿨다. 또 2002년부터 중국 오리온에 본사 지원을 전면 중단하고 독립채산제를 실시한 것도 성공 요인이 됐다. 백운하 오리온 상무는 “당시 중국법인에 ‘중국에서 벌어서 중국에서 먹고 살아라’며 독자경영을 주문하자 중국 오리온 직원들이 놀라운 헝그리정신을 발휘해 무서운 성공신화를 일궈냈다”고 말했다. 2002년부터 중국 오리온은 매년 50%가 넘는 급성장을 했다. 또 본사와 중국 법인 간에 순환근무제가 사라져 오리온 중국법인 내 한국인 직원들은 대부분 10~15년 이상 중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위기는 정면돌파, 생산판매는 스텝 바이 스텝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2002년 푸마(福馬), 다리(達利) 같은 중국 업체들이 초코파이, 카스타드 같은 제품을 오리온의 3분의 1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고 광고전까지 벌였다. 다리는 매월 광고비로 2000만위안을 써가며 유명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한 TV광고를 시작했다. 군소업체까지 따지면 100여개 회사가 이른바 짝퉁 제품을 쏟아냈다. 중국 업체들이 오리온보다 4~5배나 많이 판다는 긴급 보고가 올라왔다.

강기명 마케팅 총감은 “당시 20명이 회의실에 앉아서 중국 제품 수십개를 먹었봤다. 영업 쪽에서 ‘우리도 저가 제품군을 개발하고, 영업을 공격적으로 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완전히 밀릴 수 있다’고 아우성을 쳤다”고 말했다. 저가 브랜드를 파는 회사를 분사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논란은 6개월간 계속됐다.

이에 강 총감은 “짝퉁 제품에 대해 하나하나 정공법으로 대응했다”며 “해당회사에 내용증명을 보내 시정하도록 요구했고,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회신이 없으면 소송을 통해 시정해 나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리온은 중국 업체들과 전면전은 하지 않았다. 이유는 2가지였다. 우선 같은 파이시장이지만 제품을 사는 소비자가 달랐다. 오리온 제품을 먹는 소비자에게 파이가 간식이라면 중국 업체의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는 주식으로 택하고 있었다. 다른 이유는 중국 업체들의 박리다매 전략은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식품 안전에 대한 인식·기준이 높아지면서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오리온이 중국 시장에서 성공한 데는 전략적 접근도 주효했다. 오리온은 한국 시장에서 수십종의 제품을 팔지만 중국 시장에서는 매년 하나 남짓 신제품을 내왔다. 2001년 껌, 2004년 초코송이, 2005년 고래밥을 생산하는 식이었다. 그마저도 장사가 되는 대도시 상점부터 천천히 확산시켰다. 오리온이 중국의 모든 성(省)에 제품을 공급한 것은 2010년이다. 최근 소형 가게와 재래시장 판매 비율을 2015년까지 40%까지 확대하기로 했는데, 이 결정 역시 베이징 일대 소형 매장에서 2년간 실험을 해보고 내린 것이다.

중국 오리온 관계자는 “매출 증가 압박 때문에 당장 제품 가짓수를 늘리고 마케팅 전략을 수시로 바꾼다면 처음 몇 달, 몇 년은 매출을 많이 늘릴 수 있지만 그러다보면 섬세한 관리가 안 돼 품질 관리, 브랜드 관리, 유통망 관리 같은 큰 기둥이 무너진다”며 “우리는 늦더라도 정도(正道)의 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40명 가까운 중국 내 연구 인력의 90%를 신제품이 아닌 기존 제품을 유지·관리하는 데 투입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스낵이나 파이의 경우 음식처럼 재료에 따라 미세하게 맛이 바뀌기 때문에 상시 관리가 필요하다. 변하는 중국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 제품 맛을 ‘미세조정’하기도 한다. 강한 브랜드를 앞세워 꾸준히 공략하는 ‘수도거성(水到渠成·물이 흐르는 곳에 도랑이 생긴다는 뜻)’식 단계적(step by step) 접근이다.

오리온은 또 토종과 글로벌 기업 틈바구니를 뚫고 틈새시장을 집중 겨냥했다. 파이, 비스킷, 스낵 구분이 명확한 중국 제과시장에서 영역을 넘나드는 제품으로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은’ 중국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초코파이는 파이와 초콜릿, 비스킷의 조합이고 고래밥과 오감자 등은 비스킷과 스낵의 중간형 과자인 것이다. 중국 오리온은 2014년부터 심양에도 공장을 세워 중국 동북지역 공략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 오리온 중국 법인 상하이 공장 생산 라인
- 오리온 중국 법인 상하이 공장 생산 라인

 

  Mini Interview   강기명  오리온 중국법인(오리온식품유한회사) 마케팅 총감

“판매루트 다양화 … 중국 종합제과 회사로 성장하겠다”

- 중국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였고, 어떻게 이겨냈나?

“1995년 중국 남부지역에 판매된 초코파이가 더운 날씨로 녹아버렸을 때였다. 방부제가 없어도 문제 없던 초코파이가 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변질된 것이다. 판매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상황에서 닥친 최대 위기였다. 고심 끝에 이미 판매된 초코파이를 모두 매장에서 수거해 같은해 9월 10만개의 초코파이를 모두 소각했다. 금전적인 피해는 문제가 아니었다. 소비자와 도매상들에 대한 신뢰라는 엄청난 무형자산이 더 소중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포장지의 내열성을 강화하는 등 품질을 더 보강했고 중국에서 성공하는 힘을 얻었다.”



- 유통망 관리와 소매, 도매상들과의 협조는?

“대리점을 통한 간접판매 형식을 취한다. 대리점은 주로 배송과 수금의 역할을 수행한다. 매장 재고관리, 진열 등은 영업인력을 투입해 직접 관리한다. 현재 일부 대형할인매장과는 직거래도 한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현금 비즈니스다.”



- 중국 내에서 어떤 사회공헌활동(CSR)을 하고 있는가?

“현지 소비자들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해 교육, 빈곤퇴치, 재해지원, 자연 및 생태보호 등 다양한 CSR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례로 전국 초등학교에 ‘공자’ 도서를 기증하거나, 대지진 피해주민 구호를 위해 제품 및 성금을 기탁한 바 있다. 최근에는 인기제품인 ‘판다파이’ 판매금액의 일부를 희귀동물 판다의 보호기금으로 조성하기도 했다.”



- 그동안 중국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진출 기업에 조언한다면?

“먼저 회사에 로열티가 있는 중국 전문가를 찾아내고 육성해야 한다. 그리고 회사의 가장 자신있는 제품(브랜드)을 갖고 들어가야 성공할 수 있다. 적절한 시장을 선정해 그곳에서 제품이 성공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 성공 케이스를 만들어낸 후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해야 한다.”



- 중국 시장의 특징을 압축한다면?

“중국은 하나의 시장이 아니다. 대단히 넓은 대륙 국가이면서 긴 역사를 가지고 있어 다양한 민족과 소비계층이 공존한다. 식품의 경우에도 음식에 대한 기호, 성향 등이 지역별로 다른 것이 중국이다.”



- 향후 오리온 중국 법인의 계획은?

“파워브랜드 강화와 판매루트 다양화를 통해 중국에서 경쟁력 있는 종합 제과회사로 성장할 것이다. 2015년 아시아 넘버 원이라는 본사의 비전 달성을 위해 중국 법인이 큰 역할을 해야 한다. 오리온만의 방법을 끊임없이 찾는 ‘온리 오리온(Only Orion)’의 체질화를 통해 중국에서 계속 성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