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이탄에서 바라보는 상하이 풍경은 압축성장을 해온 중국경제의 한 단면이다.
- 와이탄에서 바라보는 상하이 풍경은 압축성장을 해온 중국경제의 한 단면이다.

지난해 12월31일 밤 상하이(上海) 와이탄(外灘)에서 발생한 대형 압사 사고는 오늘의 상하이와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었다. 와이탄이란 상하이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관통해서 흐르는 황푸(黃浦)강 서쪽 강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1978년에 시작돼 37년간 지속되고 있는 중국의 빠른 경제 발전을 상징해온 쇼룸 푸둥(浦東)의 마천루 빌딩군을 가장 잘 구경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와이탄이다.

와이탄은 연말연시가 아니더라도 밤이면 “상하이는 잠들지 않는다”라고 웅변이라도 하듯 번쩍이는 푸둥 빌딩들의 화려한 불빛 쇼를 구경하러 모여든 내외국인들로 말 그대로 입추(立錐·송곳을 세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붐빈다. 사고가 난 천이(陳毅)광장은 와이탄의 중심부에 있는 광장이다. 천이(1901~72)는 중국공산당의 혁명 원로로, 1949년 중국공산당과 국민당 사이 최후의 전투였던 상하이전투를 지휘해서 승리로 이끈 인물이다. 초대 상하이 시장을 지냈던 천이의 동상은 바로 광장의 한 가운데에 서있다.


- 지난해 12월31일 밤 중국 상하이(上海) 와이탄(外灘) 일대에서 열린 신년행사를 구경하러 인파가 몰려든 모습. 사진: 조선일보 DB


중국 사회 불안의 시한폭탄 ‘농민공’

2014년 10월 현재 상하이의 인구는 2500만 안팎이라는 것이 상하이 시당국의 통계다. 이 가운데 상하이시에 주민등록이 돼있는 사람들이 1500만이고, 나머지 1000만 명은 유동인구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중국 각지의 농촌에서 상하이로 와서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이른바 ‘따궁(打工)’들이다. 14억 인구 가운데 3억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 따궁은 ‘런민공(人民工)’이라고도 부른다. 따궁, 런민공들은 현 중국사회가 안고 있는 최대 문제인 동시에 지난 30여년간 높아지기만 해온 중국의 마천루들을 지어올린 힘의 근원이기도 하다.

상하이시의 면적은 6340.5㎢로, 1000만의 인구가 면적 602.5㎢에 살고 있는 서울에 비하면 인구밀도에 아직 여유가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상하이시의 면적은 서울시의 10배가 넘는데, 인구는 2.5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하이시에서 지하철을 타고 와이탄으로 가기 위해 난징둥루(南京東路)역에 내릴 때마다 과거 1970년대 서울의 만원버스에서 느끼던 인구폭발의 위기를 실감하게 된다. 난징둥루역에서 내리려면 앞사람을 밀고 뚫고 해서 내릴 필요도 없이 슬쩍 내리는 흐름에 몸을 싣기만 하면 마치 지하철이 토해내는 흐름에 편승해서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난징둥루역에 내릴 수 있는 것은 운이 좋을 때이고, 밀려드는 인파 때문에 와이탄에 제일 가까운 난징둥루역은 수시로 멈추지 않고 통과해버려, 지하철 한 정거장을 다시 걸어와야 할 때가 많다. 상하이시 전체의 인구밀도는 서울보다 아직까지 낮지만, 와이탄에 가까운 난징둥루 부근 도심의 인구집중도는 아마도 서울 명동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홍콩과 상하이의 연말연시 불빛 장식은 세계 어느 도시보다도 화려하다. 평시에도 홍콩과 상하이의 밤은 빌딩들의 불빛 장식과 레이저 빔 연출로 많은 인파를 끌어 모으지만, 연말연시에 빅토리아 항구 부근과 와이탄 부근의 레스토랑에서 이른바 ‘니엔예판(年夜飯)’을 배불리 먹고, 황푸강변 서쪽 강안을 천천히 걸으며 빅토리아 섬의 북쪽 마천루와 푸둥의 동방명주(東方明珠) 불빛을 구경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국인들에게는 최고의 낙(樂)으로 자리 잡았다. 상하이 압사 사고가 일어난 2014년의 마지막 날 밤에도 중국인 최고의 낙을 즐기기 위해 모여든 인파가 천이 광장 부근의 계단을 오르내리다 사고가 빚어졌고, 사망 36명, 부상 49명의 희생자를 냈다.

연말연시에 상하이시에 머무르는 외국인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니엔예판의 가격이다. 호텔 레스토랑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상하이 시내 요리집들의 니엔예판 가격은 룸은 1인당 3000위안(약 55만원), 테이블은 1800위안(약 33만원)이 보통이다.

사고가 난 12월31일 밤 와이탄을 관할하는 황푸(黃浦)구의 구청 간부들은 와이탄 중심부의 일식당 쿵찬(空蟬)에서 송년회식을 했다고 상하이의 온오프라인 매체들이 보도했는데, 이 쿵찬의 니엔예판 가격은 1인에 1880위안에서 3880위안이었다는 것이다. 상하이 농민공들의 1~3개월 수입을 한 끼에 털어 넣어야 하는 가격이다. 심리적 박탈감으로 가슴이 가득 차 있는 상하이 시민들과 농민공들은 집 부근에서 한 끼에 10위안(약 1800원)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사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난징루를 걸어서 와이탄으로 밀려가 황푸강 건너 불빛을 구경하다가 압사사고 참사를 당한 것이다. 

사고가 난 이후 상하이 경찰 당국은 천이 광장 주변에 철제 난간을 만들어 천이 동상 주변을 우회해서 통행하도록 하는 이른바 ‘철마진(鐵馬陣)’을 쳤다. 상하이 보통사람들의 불만은 “왜 진작 철마진을 치지 않고, 사고가 난 뒤에 철마진을 쳤느냐”는 것이다. 오늘도 묵묵히 상하이의 고층빌딩을 짓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상하이 농민공들의 불만은 아마도 “상하이 시 간부와 당 간부들이야 사고가 나던 순간에 와이탄 거리에 있지 않고 대부분 호화판 레스토랑에서 우리의 두세 달 월급을 먹어치우고 있었을 텐데 뭘…”이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압사 사고의 피해자 대부분이 농민공들이었다는 소문 또한 농민공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14억 인구 가운데 3억을 차지하는 농민공의 존재는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이 해결해야 할 최대의 문제라는 사실이 와이탄 압사 사고에서도 또다시 증명됐다고 상하이 지식인들은 쑥덕공론을 하고 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이들 농민공의 문제를 도시로 주민등록을 옮기는 것을 허가해주어 정식 시민으로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지만, 그렇게 한다고 농민공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박승준 
푸단(復旦)대 국제문제연구원
한반도연구소 방문교수
前 조선일보 홍콩·베이징 특파원
sjpark774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