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년과 해치상과 버나드 봇 카네기 재단 의장
- 소년과 해치상과 버나드 봇 카네기 재단 의장

‘소년에게 아버지는 자존심이다.’ 한 소년이 네덜란드 헤이그의 평화궁(Peace Palace) 입구 홀에 설치된 ‘웃는 해치상(像)’을 바라보고 있다. 이 소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2014년 12월19일, 세계 평화의 전당(殿堂)이라고 할 수 있는 헤이그의 평화궁에 상상 속의 동물로 선악을 구별할 수 있다는 옅은 미소를 띤 해치가 자리를 잡았다.

네덜란드의 궂은 겨울에 보기 드문 화창한 날, 범상치 않은 해치상이 네덜란드 헤이그 평화궁에 와서 자리를 잡기까지 험난한 고비들을 거쳐야 했다. 덩치로나 무게로나 그리고 품고 있는 뜻과 의미를 새겨본다면 오래 전에 이 자리에 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 해치상 설치 기념식이었다.

석상을 궁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 설치해야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만찮게 고된 작업이었다. 크레인을 사용할 수도 없는 장소이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작품의 제작자인 최진호 작가와 함께 온 한국의 설치 전문가와 네덜란드 현지의 전문가들이 함께 고민한 끝에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석상은 한국의 전통적 설치 기법인 삼발이를 이용한 이동 방식으로 이곳에 무사히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단지 작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이곳에 놓이기까지의 여정에도 조상의 지혜를 함께 품고 왔다는 점에서 의의가 더욱 크다.

평화궁은 세계 평화, 법과 정의, 사회 질서, 선과 악이라는 이름을 떠올려야 더욱 의미있는 곳이 된다. 그렇기에 한국 기증품인 해치는 이곳과 꼭 맞아 떨어지는 절묘한 선물이다. 해치가 어떤 동물인가. 사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사람이 싸우거나 정직하지 못함을 보면 이를 응징하는 신성한 동물로 전해 내려오는 동물이 아닌가.


1, 2. 평화궁 내부 사진들3. 평화궁 건립 100주년에 반기문 유엔 총장이 축사를 하고 있는 모습
1, 2. 평화궁 내부 사진들
3. 평화궁 건립 100주년에 반기문 유엔 총장이 축사를 하고 있는 모습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의 자선기금으로 지어져

평화궁은 1913년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의 자선기금으로 세워졌다. 카네기는 이민자 출신의 직공으로 시작해 철도 회사를 만들어 당대 최고의 갑부가 된, 마치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았다. 카네기의 삶이 악덕 자본가와 자선 사업가의 두 시선 중에서도 악명보다는 명성에 무게가 더한 까닭은 세계 여러 곳의 다양한 분야에 지속적이고 꾸준히 자선을 베풀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철강 회사를 J.P. 모건에 매각한 이후, 카네기는 여러 분야의 자선 사업을 관장할 기구를 조직했다. 1907년 평화궁 시공식에 참석한 그는 자신이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삶의 행복을 찾았다고 말했다.

평화궁에는 국제사법재판소(ICJ), 상설중재재판소(PCA), 법과 관련한 수많은 장서와 명저(名著)를 보유한 평화궁 도서관 그리고 헤이그 국제법 아카데미가 있다. 그래서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소중한 장소로 꼽힌다.

세계 평화의 상징적인 건물이 네덜란드 행정 수도인 헤이그에 자리 잡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17~18세기 해양 진출을 통해 네덜란드는 해양 강국이 됐고 국제법의 아버지라 불린 휴고 그로티우스라는 법률가의 등장으로 국제법에 관한 세계적 명망을 얻게 됐다. 세계 평화를 주제로 한 회의가 헤이그에서 열렸고 1911년 네덜란드의 법학자 토비아스 아서르는 제1차 헤이그평화회의에서 상설중재재판소 결성에 큰 공헌을 했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또 그는 현재의 평화궁 내에 있는 헤이그 국제법 아카데미 설립에도 큰 기여를 했다.

인적으로나 물적으로 자원이 풍부했던 강소국(强小國)인 네덜란드에 국제 평화를 위한 평화궁이 세워진 것은 국력으로나 외교력으로나 당연했다. 평화궁 내부에는 20세기 초 세계의 패권을 장악했던 나라들의 기증품들로 가득하다. 건물 2층에 일본방이라고 이름 붙은 곳은 일본, 중국, 터키, 태국 등에서 기증한 물품들로 장식돼 있다.

네덜란드의 외교부 장관을 역임하고 지금은 평화궁 카네기 재단의 의장을 맡고 있는 버나드 봇은 해치상이 평화궁에 놓이게 된 의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해치상이 이곳 평화궁에 놓이게 된 것은 해치가 지니고 있는 상징적인 뜻 이상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기증품은 한국이 국제 정의와 세계 평화를 적극 지지하며 헌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분단의 아픔을 가지고도 그간 한국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폭력이 아닌 평화로운 협상으로 문제 해결을 해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기증품에 담긴 뜻은 그동안 한국이 해왔던 평화로운 협상, 분쟁 해결을 위한 노력과 같이 국제사법재판소가 더욱 정의롭고 바르게 문제 해결을 할 각오를 하게 하는 선물입니다.”

그는 “그동안 평화궁에는 한국의 기증품이 한 점도 없었기에 기증품의 의의가 보다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모두의 눈에 잘 보일 수 있는 곳에 설치했다”며 “나쁜 재앙을 물리치고 선악을 명확히 구분한다는 해치가 가진 깊은 뜻이 평화궁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에게 깊은 영감을 주게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 평화궁에서 한국 기증품을 찾아 볼 수 없었던 빈자리에 대한 아쉬움이 한 번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봇 의장은 기증품이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해준 이병석 전(前) 국회 부의장에 대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이전까지 이곳을 찾았던 정·재계 인사들은 한국의 기증품이 없다는 것에 놀랐다. 2013년 당시 이병석 국회 부의장은 평화궁에 한국 예술품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평화궁 기증품에 대한 예산을 상정했고, 외교부의 기증품 공모전을 통해 최진호 작가의 <웃는 해치>가 선정돼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헤이그는 한국인들에게는 뼈아픈 곳이다. 1905년 11월18일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가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고종 황제는 1907년 이준 열사와 이상설, 이위종을 특사로 파견한다. 64일간의 기나 긴 여정 끝에 6월25일 헤이그에 도착한 이준 열사 일행은 6월15일부터 시작된 헤이그평화회의에 결국 참석하지 못했다. 통탄의 시간을 보내던 이준 열사가 순국한 7월, 평화궁을 짓기 위한 시공식이 있었다. 세계 평화를 위해 재산을 기부한 카네기와 네덜란드 여왕 등은 평화회의를 접고 시공식에 참석했다. 이후 평화궁은 네덜란드 사람들의 자랑거리이면서 이를 후세에 남긴 선조들은 네덜란드인들에게는 자존심이 됐다.

당시 이준 열사와 일행들이 묵었던 호텔은 그 때의 뼈아픈 기억과 역사를 담은 이준열사기념관으로 남아 네덜란드 헤이그의 한국 영지로 자리 잡고 있다. 한 세기가 지나고 한국은 그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국력과 외교력을 지니게 됐다. 그리고 110년 전 시공식 때 그 누구도 초대 받지 못했던 평화궁 입구 오른편에 한국 전설의 영험한 동물 해치가 자리를 잡았다.


- 네덜란드 평화궁의 해치상 설치 기념 촬영. 왼쪽부터 최종현 네덜란드 주재 한국대사, 조태열 외교부 차관,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 소장, 이병석 전 국회 부의장, 권오곤 국제유고전범재판소 재판관, 최진호 작가.
- 네덜란드 평화궁의 해치상 설치 기념 촬영. 왼쪽부터 최종현 네덜란드 주재 한국대사, 조태열 외교부 차관,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 소장, 이병석 전 국회 부의장, 권오곤 국제유고전범재판소 재판관, 최진호 작가.



110년 전 뼈아픈 기억 어루만지는 해치상

너비 1.3m, 높이 1.5m 크기인 해치상은 한국에서 채굴된 고흥석으로 제작됐다. 그리고 얼굴에는 여린 미소를 띠고 있다. 미소는 평화를 상징한다. 게다가 전통 민화에서 차용한 꽃, 새, 나비 등 평화의 상징물들이 새겨져 있어 평화를 위한 바람을 한층 더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힘없는 나라의 국민으로 세계 평화 회의에 참석하지도 못했던 슬픈 과거사를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이제는 국제 평화를 위한 재판소가 있는 평화궁의 입구에 사법 정의를 실현하자는 뜻을 지닌 우리 전설의 동물인 해치가 놓이게 됐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이준열사기념관의 송창주 관장의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 그 당시 이준 열사가 느껴야 했던 참담함과 수모의 고통이 어떠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시렸다.

송 관장은 이를 계기로 국제사법재판소에 한국인 재판관이 선출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밝혔다. 국제재판소에 몇 명의 재판관이 진출해 있는 지는 국력과 외교력을 평가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국제재판소의 한국인 재판관은 국제형사재판소의 송상현 소장, 국제유고전범재판소의 권오곤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의 정창호 재판관, 국제해양법재판소의 백진현 재판관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까지 헤이그 평화궁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 15명의 재판관 가운데 한국인 재판관은 없다. 재판관 선출은 국제법 분야에서의 위상은 물론 국가 전체의 품격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웃는 해치상의 기운으로 인해 곧 한국의 법조계에서 좋은 소식이 전해질 것이라는 기대는 지금까지 한국의 저력으로 봐서 희망적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개막식에 참석한 최진호 작가의 얼굴에는 종일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이렇게 뜻 깊은 날 제 작품이 이곳에 설치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최 작가의 오른편에 한 소년이 서 있었다. 그 소년은 작가의 아들이라고 했다. 행사가 끝나고 모든 사람이 행사장을 빠져나간 후 그 소년은 혼자 아버지의 작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헤이그에 이준 열사의 뼈아픈 역사를 새긴 지 한 세기가 지난 어느 날, 그 때의 역사적 장소에 한 소년이 서 있었다. 그 소년은 아버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 앞에서 한 동안 침묵하며 작품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며 생각했다. ‘이 소년에게 아버지는 자존심이다.’


해치

‘해태’라고도 부른다. 몸 전체는 비늘로 덮여 있다. 머리에는 뿔, 목에는 방울이 달려 있고, 겨드랑이에는 날개를 닮은 깃털이 있는 전설 속의 동물을 일컫는다. 중국 한나라 때 양부가 지은 <이물지(異物志)>에 따르면 ‘동북 지방의 땅에 사는 짐승’으로 사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사람이 싸우거나 사람의 정직하지 못함을 보면 이를 응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사납고 강한 맹수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친근하고 해학적 이미지의 동물로 전해지고 있다. 정직한 마음으로 올바른 정치를 하라는 의미에서 신라시대부터 관복에도 사용했으며, 조선시대에는 해치관으로 불리며 사헌부 관원이 머리에 쓰는 관과 대사헌의 흉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예부터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져 경희궁 숭정전과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연경당 등 궁궐 입구에 주로 세워졌다.

한편 서울시는 2008년 5월 해치를 서울의 상징 아이콘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이는 파리의 에펠탑, 뉴욕 자유의 여신상, 베를린의 곰, 싱가포르의 머라이언(사자상)처럼 서울하면 떠오르는 상징을 만들어 서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는 취지에서다.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에 해치상을 복원하는 것을 비롯해 서울 곳곳에 해치상을 설치하고 해치거리를 조성해 서울을 ‘해치의 도시’로 만들어 나간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장혜경 
웨이포인트-홀랜드
뉴스 미디어&저널리즘 대표
nara01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