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도원 조이너스 회장은 1990년대 한국을 주름잡던 유명 디자이너였다. 그랬던 그가 대상을 바꿨다. 바로 부동산 개발이다. 예전에는 최고의 옷을 디자인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면 이제는 베트남 하롱베이 관문인 번돈에 국제공항과 최고급 리조트를 짓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디자이너의 꿈을 완전히 접은 건 아니다. 번돈 개발사업이 마무리 되면 그는 세계가 주목하는 최고의 의류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다시 펜을 들 생각이다. 하노이 현지에서 사업 추진에 여념이 없는 한 회장을 만나 개발사업의 청사진을 살펴봤다.

한도원 회장이 인터뷰를 위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한데 묶은 말총머리 스타일이 왠지 범상치 않은 느낌이다.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예술가 기질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이어졌다. 

한도원 조이너스 회장은 1990년대 한국 패션 업계를 주름잡던 명(名)디자이너 출신이다. 본명보다는 ‘돌리안 한’(Dolien Han)으로 더 알려졌던 한 회장은 앙드레김, 하용수, 김창숙 등 당대 내로라하는 패션 디자이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톱스타, 톱모델 중 그가 대표로 있었던 돌리안한부티크의 옷을 입어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명성이 대단했다.

한 회장의 예술가적 기질은 타고 났다. ‘빨간마후라’ 등 20여 편의 영화 시나리오와 소설 <현해탄은 알고 있다>, 드라마 ‘남과 북’ 등을 집필한 극작가 한운사 선생(1923~2009)이 그의 부친이다. 형은 유명 건축가인 한만원 HNS건축사사무소 대표며, 막내동생은 국내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한상원 호원대 교수다.

1980년대 한국을 주름잡던 유명 디자이너 출신
이탈리아에서 무대 미술을 공부하던 한 회장이 패션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면서부터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세계 최고의 패션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그의 꿈은 1980년대 초반 유럽의 모 유명 패션브랜드에 입사하면서 실현됐다. 

패션 본고장에서 갈고 닦은 실력은 한국에서 빛을 발했다. 초반부터 순조로웠다. 귀국 직후인 지난 1988년 기자들이 뽑은 10대 패션 디자이너에 선정됐으니 말이다. 당시 톱탤런트인 원미경이 출연하는 드라마마다 돌리안한부티크의 의상을 고집했다는 것은 연예계의 유명한 일화다.

“30대 초반 돈과 명예를 손에 쥐니 사람이 어땠겠습니까.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죠. 어느새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꿈도 가물가물해지더라고요. 당시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전이었거든요. 그래서 숍(부티크숍)을 운영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는데도, 다시 꿈을 찾기로 마음먹고 과감하게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가족들은 미국으로 보내고 저 혼자 이탈리아로 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겁니다.”

베트남과의 인연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됐다. 1980년대 프랑스 유학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베트남친구들의 주선으로 지난 2005년 처음 베트남 땅을 밟게 된 한 회장은 ‘베트남의 하와이’로 불리는 푸(Phu Quoc)에 4000㏊(1210만평) 규모 리조트를 짓는 사업에 참여했다. 부동산 디벨로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300만평을 개발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어요. 그러던 중 한국 공무원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은퇴한 한국 공무원에게 공급할 실버주택을 알아봐 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제가 소유하고 있던 푸과 중부지방 모처 땅, 그리고 북부 하롱베이까지 살펴봤죠. 그 때 바로 지금 우리 리조트가 들어설 번돈 땅을 찾은 겁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난관에 부딪쳤다. 하노이에서 번돈까지 차로 오는 데만 3~4시간 걸린다는 것이 발목을 잡았다. 왕복 2차선 도로인데다,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 도로인 탓에 출퇴근 시간에 심각한 차량 정체가 빚어지는 것이 다반사인 탓이다. 교통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외부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하는 것이 불가능해보였다. 결국 한 회장은 승부수를 던졌다. 베트남 정부에 베트남 최대 관광지인 하롱베이 인근에 국제공항을 지어 관광 인프라를 단번에 끌어올려주겠다고 제안했던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 조이너스는 하롱베이 인근에 호텔, 콘도미니엄, 골프장 등이 들어선 종합휴양 단지 개발을 진행 중이다. 사진은 조이너스의 번돈 리조트, 골프장 조감도.
- 조이너스는 하롱베이 인근에 호텔, 콘도미니엄, 골프장 등이 들어선 종합휴양 단지 개발을 진행 중이다. 사진은 조이너스의 번돈 리조트, 골프장 조감도.

베트남 정부 번돈지역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
베트남 정부는 현재 번돈 지역 개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하롱베이에서 차로 30여분 걸리는 번돈은 베트남 북부 관문이 되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베트남 정부가 지역개발을 위한 외자 유치를 위해 번돈 일대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현재 하이퐁(海防) 공항을 하롱베이와 연계시키자는 의견도 있는데 하이퐁은 베트남 북부 산업도시로, 큰 항만을 끼고 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산업단지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마 국제공항으로 바뀐다고 해도 물류(Cargo)용도로만 쓰일 가능성이 높죠. 반면 번돈은 시간적으로나 지리적으로 하롱베이와 가장 접근성이 좋습니다. 타당성 조사 결과 그렇게 나왔어요. 35년간 운영하고 난 뒤 베트남 정부에게 돌려줄 생각인데, 제 생각으로는 18년 정도면 투자수익금을 모두 회수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 회장은 지난해 하롱베이를 찾은 외국 관광객 수가 750만명에 달하는 것을 근거로 제시하며 “투자 수익금 환수에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번돈 지역 일대를 경제특구로 지정한 베트남 정부는 이와는 별도로 내국인 출입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복합 리조트 건설을 추진할 계획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복합 리조트는  2015년까지 번돈 경제특구 내 1800∼2000㏊(1㏊는 3025평) 규모의 부지에 조성된다. 이 프로젝트는 합작 또는 투자자의 100% 지분으로 시행된다. 베트남 정부는 경제특구가 속해 있는 꽝닌성이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고소득 중국 요우커(遊客·관광객)를 불러들이는 데 베트남 내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다. 현재 미국 샌즈사(社)가 40억달러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미국 MGM, 말레이시아 겐팅 등 유명 복합리조트 운영사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고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한 회장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대상만 ‘패션’에서 ‘부동산’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가 10년 가까이 베트남에 최고급 리조트를 짓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세계적인 제품을 만들겠다는 평생의 꿈이 있기 때문이다. 조이너스가 시행하는 번돈 복합리조트 부지에는 5~6성급 호텔 2동(棟), 콘도미니엄 470동, 27홀 규모의 골프장 등이 들어설 계획이다.

패션을 향한 그의 열정은 여전하다. 부동산 개발에 온힘을 쏟고 있지만 틈틈이 시간을 내 패션쇼 등을 개최하는 등 여전히 디자이너로서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한 회장은 “리조트 개발이 완료되고 공항 운영 사업이 정상궤도에 올라서면 본업인 패션 디자인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초창기 베트남 사회에서 이름을 높인 것도 독특한 감각으로 연출한 패션쇼가 큰 도움이 됐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좋아졌지만, 불과 7~8년 전만 해도 하노이 시내 가로등 사정이 좋지 않아 도시가 전체적으로 깜깜했습니다. 오토바이 교통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했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형광·야광 옷이었어요. ‘밤에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나 보행자들이 야광 옷을 입고 걸어 다니면 사고도 줄일 수 있어 괜찮겠다’ 싶었죠. 그걸로 패션쇼까지 했는데 굉장히 화제가 됐습니다. 외국 패션 디자이너가 자국 서민의 안전을 위해 저런 것까지 생각한다고 하면서 크게 감동 받은 눈치였죠.”

베트남 기후에 맞는 원단으로 옷을 만든 것도 큰 주목을 받았다. 한국 생산기술연구원에서 개발한 기능성 의류 원단은 열을 차단해 체감온도를 외부 온도보다 섭씨 1도 가량 낮도록 고안됐다. 액체가 원단에 닿으면 자연 분해되도록 설계해 땀을 많이 흘려도 금세 옷이 마르도록 제작한 것이 특징이다. 옥수수에서 원료를 추출해 인체에 미치는 영향도 적다.

하노이와 호찌민 등 두 곳에서 색다르게 패션쇼를 꾸민 것도 현지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막내 동생인 기타리스트 한상원 호원대 교수와 한상원밴드를 초청해 공연을 열었는가하면,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 비보이 대회에서 우승한 우리나라 비보이 팀 리버크루를  초청해 베트남 비보이 팀과 댄스 배틀을 벌인 것도 큰 화제가 됐다. 현재 한 회장은 베트남 현지에서 비에너스(Vienus)라는 의류브랜드도 갖고 있다. 비에너스는 ‘베트남에서 반드시 필요하고 유용한 스타일’(Vietnam Necessary and Useful Style)이라는 뜻이다. 

- 한도원 회장은 번돈국제공항, 리조트 개발사업이 정상궤도에 오르면 다시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걸을 생각이다.
- 한도원 회장은 번돈국제공항, 리조트 개발사업이 정상궤도에 오르면 다시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걸을 생각이다.

“세계가 놀라는 최고급 리조트 짓겠다”
“현재 470여 채에 달하는 콘도미니엄 중 일부는 한국 은퇴 공무원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놓고 공무원연금관리공단과 협의 중에 있습니다. 아마 퇴직 공무원들에게 이보다 은퇴 휴양지로 좋은 데가 없을 거예요. 무엇보다 해안선을 따라 27홀의 골프코스가 들어선 것이 아주 맘에 들 겁니다. 꽝닌성에서 골프장 사업 인허가를 받은 곳은 우리 리조트가 유일하기 때문에 아마 다 지어지면 지역 내 명물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