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국토면적이 한반도의 0.0003배(697㎢)에 불과하지만,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5만 달러를 훌쩍 넘는다. 사회 시스템마저 투명하다보니,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미국, 유럽 기업들이 속속 거점을 싱가포르로 옮기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신용등급도 캐나다, 독일, 스웨덴, 핀란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안정적이다. 이런 이유로 해마다 싱가포르를 찾는 외국인 수가 꾸준하게 늘고 있다. 아시아 자유무역과 금융 허브로 발돋움하면서 싱가포르의 성장세는 눈부시다. 그러나 정작 최근 몇 년 사이 싱가포르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것은 관광산업이다. 웬만한 민간기업 이상의 효율성을 얻고자 노력하는 싱가포르 정부는 관광산업을 중요한 국가산업으로 키우고 있다. 지난 수년간 마리나베이 주변과 센토사 섬 일대를 대대적으로 개발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복합리조트 ‘리조트월드센토사’ 내 지하에 위치한 카지노.
- 복합리조트 ‘리조트월드센토사’ 내 지하에 위치한 카지노.

싱가포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멀라이언(Merlion)상 뒤로 펼쳐진 화려한 금융가(街) 풍경이다. ‘아시아판 월가(街)’로 불리는 싱가포르 금융가는 머리는 사자, 몸은 물고기 모양의 멀라이언상(像)과 함께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마리나베이가 대대적으로 정비되면서 랜드마크가 바뀌었다. 24시간 물을 내뿜는 멀라이언상 맞은편에 들어선 마리나베이샌즈(Marina Bay Sands)는 이제 싱가포르를 나타내는 상징물이 됐다.

지금은 싱가포르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지만, 마리나베이샌즈는 최종 완공까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2009년 상반기 개장을 목표로 했던 마리나베이샌즈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비 상승으로 당초 계획보다 늦춰진 2010년 4월에야 문을 열었다. 그러나 완공 후 마리나베이샌즈는 싱가포르를 찾는 관광객들이라면 한번씩은 꼭 가보는 필수코스로 자리잡았다. 연평균 방문객 수만 600만명에 달한다.

마리나베이샌즈는 복합리조트(Integrated Resort) 형식을 띠고 있다. MICE(Meeting·Incentives·Conferencing·Exhibitions) 산업의 핵심인 복합리조트는 호텔·쇼핑몰·컨벤션·전시시설·공연장·카지노·테마파크 등을 한데 모아 관광, 레저, 엔터테인먼트 등의 목적으로 활용하는 복합시설이다.

싱가포르 정부 주도로 개발된 마리나베이샌즈는 복합리조트 성공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다. 전체 92만9000㎡(28만1023평)에 조성된 마리나베이샌즈는 호텔 타워 3개동(棟)과 카지노, 쇼핑몰, 컨벤션센터, 박물관, 극장, 명품매장 및 나이트클럽 등 9개 시설로 구성돼 있다.

마리나베이샌즈, 싱가포르 명물로 자리 잡아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마리나베이샌즈는 카지노와 비카지노 부문으로 사업을 구분해야 한다. 3개의 호텔동(棟) 꼭대기가 하나로 연결된 최상부에 들어선 야외수영장 ‘스카이파크’는 싱가포르의 최고 명소가 됐다. 55층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건너편 금융가 스카이라인은 싱가포르 여행이 주는 묘미(妙味)다. 이런 이유로 마리나베이샌즈는 연중 투숙객들과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어떤 날에는 오히려 투숙객보다 리조트 곳곳을 둘러보려는 관광객 수가 더 많다.

하지만 정작 마리나베이샌즈가 수입을 올리는 분야는 카지노다. 지하에 마련된 카지노는 마리나베이샌즈를 개발한 샌즈그룹의 핵심 사업이다. 마리나베이샌즈의 지난 2014년 매출은 39억7970만 달러로, 전년 대비 0.7% 성장했다. 이 중 카지노 부문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전체 매출의 78.6%(31억3150만달러)에 해당한다. 전년(31억4470만달러)보다 0.4% 감소했지만, 여전히 샌즈그룹 수입의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순수익만 놓고 보면 사실상 카지노에서 벌어들인 것이 대부분이다.

카지노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비카지노에 쏟아 붓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비카지노 부문에서 발생하는 미미한 매출에 대해 정작 개발사인 샌즈그룹은 그다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미 카지노에서 막대한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어서다. 오히려 비카지노 시설에 관광객들이 몰리는 것은 카지노 잠재수요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요소라고 본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마리나베이샌즈의 총 건설비용은 토지비를 포함해 55억 달러였다. 지난 2012년 영업이익(EBITA)이 14억원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투자금 전액을 회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5년 정도면 충분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당초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개발사인 샌즈그룹은 마리나베이샌즈에서 발생한 이익금을 인근 마카오나 스페인에 투자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싱가포르 내 또 다른 복합리조트인 리조트월드센토사(Resort World Sentosa)도 막대한 부를 챙기는 것은 마찬가지다. 센토사 섬은 싱가포르 남쪽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사실상 불모지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난 2007년 4월 대대적인 개발에 들어간 후, 센토사 섬은 싱가포르 관광업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싱가포르 시내에서 센토사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싱가포르 돈으로 1달러를 내야 한다. 일종의 입장료다. 센토사섬 호텔·리조트 투숙객은 항상 입장료가 면제되고 일반인은 평일에는 예외 없이 돈을 내야 입장이 가능하다. 명승지도 아닌 단순한 관광·위락 시설에 들어가는 데 돈을 내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 정부가 센토사섬 입장료를 받는 이유는 이곳이 민간 주도의 복합리조트로 개발돼서다.

1. 마리나베이샌즈는 우리나라 카지노 개발 정책의 벤치마킹 모델이다. 2. 센토사 섬에 위치한 유니버셜스튜디오. 3.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안에 들어선 인공폭포.
1. 마리나베이샌즈는 우리나라 카지노 개발 정책의 벤치마킹 모델이다.
2. 센토사 섬에 위치한 유니버셜스튜디오.
3.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안에 들어선 인공폭포.

가족형 ‘리조트월드센토사’도 카지노사업 대박
현재 센토사 섬을 운영하는 회사는 말레이시아기업인 겐팅그룹이다. 제주도 신화역사공원에 대규모 위락·편의시설을 짓는 겐팅그룹은 말레이시아 최대 부동산 개발사로 알려져 있다. 섬 일부를 매립해 개발한 센토사 섬은 싱가포르 시내와 모노레일, 도로, 리프트 등으로 연결돼 있다.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위락단지지만, 이곳 역시 큰 틀에서 보면 복합리조트다. 마리나베이샌즈가 ‘비즈니스형’ 복합리조트라면 리조트월드센토사는 ‘가족형’에 가깝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들어선 유니버셜스튜디오도 이곳에 있다. 

이밖에도 센토사 섬에는 6개 호텔, 극장, 컨벤션센터, 해양박물관, 워터파크 등 7개 시설이 들어서 있다. 지난 2010년 1월 문을 연 리조트월드센토사는 2012년 잠깐 매출 감소를 기록했을 뿐, 개장 이후 꾸준한 매출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전체 매출액은 35억3910만 달러로, 전년 대비 5.3% 가량 늘어났다.

리조트월드센토사 역시 마리나베이샌즈와 마찬가지로 카지노 부문의 매출이 절대적이다. 지난해 전체 매출에서 카지노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85.8%인 30억3640만 달러로, 전년보다는 약 6.6% 성장했다. 리조트월드센토사 역시 카지노 부문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돈을 비카지노 부문에 쏟아 붓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싱가포르 정부가 카지노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아니었다. 1965년 독립선언 이후 싱가포르는 자국 내 카지노 설립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중요한 국가시책으로 삼아왔다. 1985년 싱가포르에 경제위기가 찾아왔을 때 정부 일각에서 마카오형 카지노산업 육성을 대안으로 제시했을 때도 ‘카지노 불가(不可) 원칙’은 확고했다.

2004년 싱가포르 무역산업성이 카지노가 포함된 복합리조트 건설을 추진하자 시민단체와 무슬림, 기독교 등 종교단체, 심지어 집권 여당인 인민행동당(PAP) 일부 의원들도 반대의사를 표현할 정도로 반발은 컸다. 그러나 리센룽(李顯龍) 총리는 2005년 5월 국회 대(對)국민 연설을 통해 싱가포르 관광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복합리조트 건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재차 밝히는 등  대국민 설득 작업에 돌입했다.

당시 싱가포르 정부는 단기간 내 관련 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내국인까지 허용하는 수준의 카지노를 지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내무부 산하에 ‘카지노규제청’을 설립했다. 현재 카지노규제법에 근거해 설립된 카지노규제청은 카지노 사업자에 대한 평판과 사업구조는 물론 계좌까지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카지노가 사기, 돈세탁 등의 범죄에 악용될 만한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싱가포르 정부는 카지노 관심사업자에게 콘셉트요구사항(Request For Concept)과 사업제안요청서(Request For Proposal)를 요청했다. 현재 운영 중인 마리나베이샌즈가 ‘비즈니스형’, 리조트월드센토사가 ‘가족형’으로 개발 콘셉트가 명확하게 나눠진 것도 사업 운영자인 샌즈그룹과 겐팅그룹이 싱가포르 정부의 콘셉트요구사항을 받아들인 결과다. 또 사업제안 초기부터 입찰가는 물론, 건축설계 계획, 관광객 유치방안, 카지노로 인한 사회적 폐해 대응책을 마련토록 사업제안요청서를 의무화시킨 것은 결과적으로는 싱가포르 내 복합리조트가 안착하게 된 비결로 꼽힌다.

또, 마구잡이식으로 허가를 내주지 않고 수요를 봐가며 사업권을 내준 것이 관련 산업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당초 싱가포르 복합리조트 개발 사업에는 MGM 미라지, 하라스엔터테인먼트 등 세계적인 카지노 운영사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사업제안요청서와 콘셉트요구사항 등 제출 서류를 면밀하게 검토한 끝에 2009년 1월 샌즈그룹과 겐팅그룹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서원석 경희대 교수는 “싱가포르 정부는 2009년부터 10년까지 3개 이상 카지노 사업자를 선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나 현재까지도 겐팅과 샌즈 외 추가로 카지노 사업자를 선정하지는 않고 있다”면서 “무분별한 사업권 남발에 따른 폐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사전에 비카지노 부문 투자 철저히 검증
싱가포르 정부의 이러한 전략은 카지노산업이 관광산업과 접목되면서 상당한 시너지를 낳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고위공직자 부정부패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면서 마카오 카지노들의 매출이 급감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싱가포르 카지노가 안정적인 매출성장세를 기록하는 것은 최초 단계부터 사업 인·허가권을 무분별하게 내주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LIG투자증권 보고서(외국인 전용 카지노)에 따르면, 춘절(春節·설 명절) 효과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 마카오 카지노 매출액은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50~55% 가량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별 감소폭으로는 사상 최대치다.

여기에 싱가포르 복합리조트 성공 사례를 보며 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카지노를 기반으로 한 비슷한 형태의 위락단지 조성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자칫 공급과잉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현재 마카오 정부는 코타이 지역에 대형 복합리조트를 짓고 있으며 일본도 카지노를 합법화시키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밖에 대만, 러시아, 필리핀 등도 경쟁적으로 카지노 기반형 복합리조트 개발에 나서고 있어 공급과잉이 우려되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가 기존 2곳의 복합리조트 이외에 추가로 2곳의 복합리조트를 허가키로 한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국내 카지노 주 고객층이 중국인인 것과 접근성 등을 이유로 인천공항이 위치한 영종도 인근에 카지노 관련 시설이 대거 몰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올 초 이충기 경희대 교수 등 12명의 관광학 관련 교수들은 ‘복합리조트 수요예측’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인천 영종도 내 복합리조트가 현재로선 2곳이 적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일각에서는 카지노산업에 대한 기대감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싱가포르 GDP(국내총생산)는 복합리조트 두 곳이 문을 연 2010년에만 전년 대비 15.6% 포인트가 상승했을 뿐, 이듬해인 2011년부터 꾸준히 하락세를 기록해 현재는 오픈 전 수준과 비슷한 수준이다. 되레 내국인 출입을 허용한 탓에 여가·문화 부문의 민간소비가 늘어나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