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하순 일주일 동안 러시아의 한 대형전시장은 백만장자들의 세상이 됐다. 지난 9월24일부터 28일까지 러시아 수도 외곽순환도로(므카드) 주변의 ‘크로쿠스엑스포’ 전시장. 백만장자를 위한 전시회(Millionaire Fair)가 열렸다. 이번 전시회는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열린 백만장자를 위한 전시회이다. 모스크바 백만장자 전시회 소식은 세계 톱뉴스로 실릴 정도였다. 그만큼 모스크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대 사건이었다.

 전시회 마지막 날 백만장자 전시회장을 찾았다. 당일 러시아 백만장자들의 발걸음은 줄곧 전시장으로 이어졌다. 전시장 주변도로는 백만장자들과 호기심 가득한 시민들이 몰려들며 상당한 교통체증을 보였다. 전시장 앞 주차장에는 벤츠와 아우디 등 최신형 외제차량이 한데 몰려들어 순식간에 자동차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기자는 행사장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취재협조를 부탁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전시장 입장료로 1000루블(3만6000원)을 내야 했다. 두 개의 대형 전시공간으로 나눠진 행사장은 대부분 고가의 명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장에서는 연신 상상을 초월하는 장면이 벌어졌다. 얼음판이 아닌 천연대리석에서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미인들의 아이스쇼에서부터 250만달러짜리 자가용헬기까지 등장하는 등 완전 요지경 속이었다.

 200여개의 참가업체들은 고급스러우면서도 사치스런 무대를 만들어 백만장자들을 맞았다. 벤츠, 벤틀리, 마이바흐와 미군 군용차량 험멜 등 최고급 차량들과 롤렉스시계 등 고급 장신구, 투르크메니스탄산 경주용 흑마(黑馬) 등이 방문객들을 유혹했다. 투르크메니스탄 흑마는 매 시간마다 일정 간격으로 마부의 손에 이끌려 전시장을 돌며 자태를 뽐냈다. 바로 옆에 전시된 노란 미군 군용차량 험멜과 어울려 아주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푸틴 대통령이 생일날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으로부터 선물 받은 것과 동종인 흑마는 마리당 100만달러 넘게 호가했다. 23캐럿 다이아몬드가 박힌 몽블랑만년필은 120만달러, 1926년산 마칼란위스키는 5만달러에 팔렸다. 다이아몬드 만년필은 전시회 동안 가장 많이 팔린 품목으로 전시회 베스트셀러가 됐다.

 전시장에는 커피와 시가부터 세계 곳곳의 고급 다차(별장)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전시품을 전시해 백만장자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일상생활의 시작부터 하루를 즐기며 마감하는 순간까지 백만장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고급사치품들이 총망라돼 있었다. 벤츠사는 S-500을 부스 중앙에 전시하고 각종 차량들을 전시했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타고 다닌다는 마이바흐도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러시아제 헬기 전시장은 조명과 안개를 이용한 쇼룸을 마련, 관객들을 유혹했다. 미하일(가명)과 안나 부부는 현장에서 헬기 판매사와 헬기 구입계약서를 작성했다. 기자는 그들에게 헬기를 구입하는 목적과 헬기를 조종할 줄 아는지를 물어보았다. 판매사 측은 나중에 물어보라며 기자를 만류했다.

헬기 전시장 맞은편에는 모피 전시장이 있다. 모피 가격은 가장 싼 것이 2만5000달러이고, 기본이 4만달러였다. 모피를 입어 보고 있는 명품족의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업소 측은 제지하기도 했다. 모피사 직원 세르게이씨는 ”여우모피는 털이 부드러워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고 했다. 그는 “집주소와 연락처만 남기면 배달해 드린다”고 했다. 하루 동안 무려 20개의 모피를 팔았다고 한다. 전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백만장자들은 대부분 계약을 통해 물건을 전달받는 식이다.

 전시장의 히트상품은 단연 부동산이다. 전시장에 들른 상당수의 갑부들이 세계 각지의 빌라나 섬을 사들였다. 러시아 백만장자들은 아름다운 휴양지 사진과 동영상만 보고 현지 부동산 매입을 하는 통 큰 부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한 방문객은 1000만달러짜리 섬을 통째로 매입하는 씀씀이를 과시했다. 모스크바와 모스크바 근교 엘리트(최고급) 부동산들을 소개하는 에이전시 ‘우사디바’측은 예상보다 많은 부동산계약을 체결, 내내 싱글벙글했다. 우사디바 대표는 “부스를 찾은 백만장자들의 50%가 마음에 드는 상품을 하나씩 골라 구매신청을 하고 떠났는데, 특히 가격이 비싸면 비쌀수록 인기가 높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지어놓은 집에 대한 선호도가 강했다”고 말했다.

 요가용품, 자꾸지(맛사지욕조)가 달린 대형욕조, 시가, 골프세트, 양주, 대리석 장식품과 나무로 만든 조각품, 타이가 지방산 목재를 이용한 천연목 별장, 태양열샤워장, 헬스기구, 은행의 비밀계좌까지 백만장자들이 혹할 수 있는 상품이란 상품은 모두 부자들의 사냥감이었다.

 전시회 개최 측은 개막식에 맞춰 러시아 연예인과 스포츠스타 등 백만장자들이 상당수 다녀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유명 영화감독 마하일코프, 디자이너 유다시킨, 유명가수 알수, 명품족의 대명사인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의 딸 크셰니야 소브차크 등 나열한 인사들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이다. 행사 하루 만에 최고급 호화자동차 ‘벤틀리’는 석 대가 팔렸다고 자랑했다. 벤틀리는 전시가 22만2000유로였다.

 전시 마지막 날이라 전시회에 출품한 여러 회사들이 마련한 각종 칵테일파티도 많았다. 칵테일과 에스프레소커피를 마시며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 백만장자 전시장의 고객들은 대부분 한결같이 깨끗한 피부에다 명품으로 치장한 여유 있는 여자들이었다. 백만장자 전시회 마지막 날 저녁, 폐회식에는 뮤지컬 <캣츠>가 중앙무대에서 펼쳐졌다.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뮤지컬공연 단체가 직접 출현했다. 전시회는 단순한 전시가 아닌 백만장자들의 구미에 맞춘 하나의 이벤트 장이었다.

 주최측 홍보실 직원인 제냐는 “모스크바에서 처음 열린 백만장자 전시회는 3년 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시작했으며, 내년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에는 10억달러 이상 부자들이  27명으로,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한다고 했다. 현재 러시아에는 약 8만명 정도의 백만장자와 약 40명의 억만장자가 있으며, 이들을 상대로 한 전문 비즈니스 기업들도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1억4300만명의 인구를 둔 러시아는 오일달러 유입으로 부자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상위 10%의 중산층과 15%에 이르는 하위 빈곤층이 극명한 빈부격차 속에 살아가고 있다. 크로쿠스엑스포 전시장에서 일주일 동안 열린 부자들의 천국은 성황리에 끝이 났다.

정병선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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