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 논란이 됐던 상속세(Estate Tax) 영구 폐지 법안이 미 상원에서 지난 6월8일 부결됐다. 하지만 상속세 폐지에 대한 찬반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은 현재 200만달러 이상의 유산에 대해 46%의 세율을 매기고 있다. 부과 대상자는 전체 납세자의 2%만 해당된다. 폐지 반대론자들은 재정 적자 악화와 빈부 격차의 고착화, 불로소득으로 인한 불평등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폐지 찬성론자들은 부당한 이중과세와 경제 활성화 논리로 맞서고 있다.

미국은 상속세 납부 대상자가 조지 부시 행정부의 2001년 감세 계획에 따라 점진적으로 줄어들다가 2010년엔 완전 폐지된다. 그러나 감세 계획이 2011년 중에 만료되기 때문에 상속세율은 다시 올라가 2011년부터는 100만달러 이상 상속에 대해서 최고 55%의 세율이 적용될 예정이다. 즉, 2010년 한 해만 상속세가 완전히 폐지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미 상원은 이 같은 모순을 없애기 위해 지난 6월8일 상속세 폐지 법안을 상정했으나, 57대41로 부결됐다. 미 상원은 재정 적자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대안 없이 징세를 포기하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미 상원은 당초 이 법안을 작년 9월에 표결 처리할 계획이었으나,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관련 법안에 밀려 처리 일정이 지연됐다. 미 하원은 작년 4월 상속세 영구 폐지 법안을 찬성 272표, 반대 162표로 가결한 바 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부잣집 자녀들은 부모가 2010년에 죽기를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가 2010년에 사망하면 상속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부시 대통령의 감세안을 ‘부모를 달리는 기차에서 떨어뜨리는 법안’이라며 “국가가 불효자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어쨌든 미 의회가 조만간 세법을 정비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혼란이 야기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워싱턴 전문가들은 “상속세 폐지 법안이 이번엔 부결됐으나 조만간 다시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빌 프리스트 상원 원내총무(공화당)는 “납세자들이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경제 활동을 왜곡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프리스트 원내 총무의 진짜 속셈은 상속세 폐지를 통한 보수층 결집이다. 상속세 폐지를 떠들어야 ‘손님’이 꼬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화당은 상속세 폐지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계속 상정할 것이라고 워싱턴 정가는 전망하고 있다.

미국은 1916년 상속세를 입법했다. 당시 록펠러, 스탠다드오일, 카네기 등 재벌들의 상속을 제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다. 공화당이었던 테디 루즈벨트 대통령은 “능력 없는 2세들이 기업을 이어받는 것보다 전문경영인이 기업을 경영하는 게 사회를 위해 좋다”면서 “상속세가 없으면 자칫 영원한 귀족 계급을 양산할 수 있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앤드류 카네기도 “각 세대는 똑같은 기회 아래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면서 상속세 도입을 찬성했다.

미 국세청(IRS)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0년 미국에서 사망한 사람은 모두 240만 명이었다. 이중 2.2%에 달하는 5만2000명만 상속세를 납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상속세 징수액은 244억달러였고, 징수액의 54%를 500만달러 이상의 자산가들이 납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속세를 입법한지 90년이 지난 오늘날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우선 공화당이 상속세 폐지에 앞장서고 있다. 이중과세라는 것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감세 정책의 일환으로 상속세 폐지를 추진 중이다. 상속세가 투자나 경영 확대 의욕을 꺾기 때문에 상속세를 폐지하면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상속세를 폐지하면 역대 최저 수준인 저축률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부시 행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상속 재산을 세금으로 납부할 바에야 죽기 전에 다 써버리자는 부자들의 심리를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또 가업 상속자들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가업의 일부를 처분해야 하는 부당한 경우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주장에 수백만 자영업자들이 동조하고 있다.

상속세 폐지 찬성론자들은 또 상속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세수의 1.5%에 불과하기 때문에 상속세 폐지가 재정 적자의 큰 요인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의외인 것은 미국 국민의 50% 이상이 상속세 폐지에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국민들은 “소득세를 이미 냈는데 죽는다고 또 세금을 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죽음의 세금(Death Tax)’으로 호칭할 경우 상속세 폐지 지지율은 더욱 더 올라간다.

현재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 중 스웨덴, 이탈리아, 호주, 캐나다가 상속세를 폐지했다. 상속세가 빈부 격차를 해소하지 못했고, 경제 왜곡 현상을 빚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상속세 폐지는 아직 시기상조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막대한 재정 적자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상속세마저 폐지하면 세수에 차질이 빚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 의회는 상속세를 폐지할 경우 2012년부터 2021년까지 7000억달러 이상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폐지 반대론자들은 또 “폐지할 경우 혜택은 극소수에게만 돌아가는 반면 치러야 할 비용은 너무 많다”며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해리 리드 민주당 의원은 “의료보험 개혁이나 휘발유 가격 안정 등 상속세 폐지보다 더 중요한 아젠다가 쌓여 있는데도 공화당이 상속세 폐지를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위 10%가 미국 전체 자산의 70%를 소유하고 있다”면서 “상속세 폐지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리드 의원은 또 “상속세 때문에 가업을 팔아야 한다는 주장도 과장됐다”고 밝혔다. 이는 미 국세청(IRS) 조사 결과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난 2000년 상속세를 납부한 자영업자는 485명에 불과했다.

조지프 슬렘로드 미시건대 교수도 “상속세를 폐지하면 일자리가 창출되고 저축률이 올라간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재계가 대체적으로 상속세 폐지에 찬성하지만 세계 1·2위 갑부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나 워렌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일한 만큼 벌어서 써야 하는데 상속세를 폐지할 경우 불로소득 계층이 늘어나 사회적으로 좋을 게 없다는 주장이다.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빌 게이츠 1세(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부친)는 “미 국민들은 언젠가 자신이 부자가 되면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상속세 폐지에 찬성하고 있다”며 개탄했다.

상원에서 상속세 폐지가 부결되자 일부 보수 단체들은 상속세 폐지에 미온적인 공화당 의원들을 집중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존 맥케인 상원의원과 존 보이보노비치 의원이 타깃이다

하지만 공화당이 반대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상속세 폐지를 강행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다양한 절충안이 나오고 있다. 세율을 낮추고 공제혜택을 영구적으로 상향 조정하자는 것이다. 즉, 현행 50%에 가까운 세율을 30% 이하로 낮추고, 부과 대상도 200만달러 이상에서 3000만달러 이상으로 올리는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되고 있다. 존 킬 공화당 상원의원(애리조나)은 “상속 재산이 3000만달러 이하일 경우 15%, 그 이상일 경우 30%의 세율을 부과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