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 프로그램을
도입한 기업 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대번에 알 수 있는
회사들이 즐비하다.
AT&T를 비롯해 시스코
시스템스(Cisco Systems),
일렉트로닉아츠(Electronic
Arts), 월마트, 메트라이프
(MetLife) 등이 대표적이다.

경기가 오랫동안 어려운 국면을 이어가면 기업 내부에서 불필요한 업무나 장애요인 등을 제거하기 위한 방안들이 활발히 논의되기 마련이다. 그 결과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갖가지 묘안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중에는 한갓 푸념으로 묻힌 채 버려지는 아이디어도 있다.

최근 미국에는 당면한 문제를 경영자나 전문 컨설턴트의 판단이 아니라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해결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집단지성’을 활용한 혁신을 도모하는 것이다. 기업들의 이런 트렌드를 활용한 비즈니스도 생겨났다. 집단지성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피트니보우스는 우편과 관련된 기기를 제조하는 기업이다. 직원이 1만 명이 넘는 대기업으로 우편물의 무게를 재는 저울과 우편물 분류 장비 등이 주력 제품이다. 이 회사는 최근 사내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고객 서비스를 크게 향상시켜 주목받고 있다.

AT&T·월마트도 ‘집단지성이 답’

혁신과제는 고객이 여러 담당자를 거치지 않고 한 번에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회사는 이 문제의 해결책을 간부들이 아닌 현장 직원들에게 던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양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우수한 방안이 많았다. 무엇보다 매우 ‘현장적인’ 답들이었다. 현장의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현장 직원들이 그야말로 현실적인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에 대해 피트니보우스의 머레이 마틴 CEO는 “회사 간부들이 아닌 현장에 혁신과제를 주자 혁신적이며 고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해결책들이 나왔다”고 만족해했다.

최근 미국에는 피트니보우스처럼 현장에 바로 과제를 던지고 이에 대한 답을 찾는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기업체 외부 컨설팅 전문 회사가 아닌 내부에서 효과적인 해답을 찾자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이런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기업은 더욱 증가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집단지성 프로그램을 도입한 기업 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대번에 알 수 있는 내로라하는 회사들이 즐비하다. AT&T를 비롯해 시스코 시스템스(Cisco Systems), 일렉트로닉아츠(Electronic Arts), 월마트, 메트라이프(MetLife) 등이 대표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집단지성을 활용한 경영이 과거에 비해 매우 체계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디어 박스 혹은 제안함 등으로 불리던 의견수렴용 상자를 이용하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영국에 본사를 둔 이매지내틱이 개발한 ‘아이디어 센트럴’이라는 프로그램도 그 중 하나다.

지난 2008년에 ‘아이디어 센트럴’프로그램을 도입한 피트니보우스는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모두 42개의 문제점을 사내에 던져 무려 3000개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회사는 이 가운데 무려 700개를 상품화하거나 다른 기기의 개발에 적용하는 등 그야말로 혁신을 이룰 수 있었다.

컴퓨터 게임업체인 일렉트로닉아츠는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크라우드캐스트(Crowdcast)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사용, 전체 사원들을 상대로 어떤 게임 프로그램이 가장 시장성이 좋겠는가를 물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회사의 연구진들이 예측한 것보다도 직원들의 예상이 훨씬 더 정확하게 들어맞은 것이다.

집단지성 투자 연간 15~30% 증액

AT&T의 경우도 집단지성 경영의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이 회사는 스피지트(Spigit)가 개발한 ‘이노베이션 파이프라인(Innovation Pipeline)’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4만여 직원을 상대로 혁신 아이디어를 구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어떤 상품이 성공할 것인가를 질문한 뒤 그 결과를 토대로 회사의 투자 방향을 결정할 정도로 이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프로그램과 직원들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지난 8월 열린 전 직원 세미나에서 AT&T의 혁신 리더인 패트릭 애셔가 “우리 회사는 연구실을 벗어나 현장에서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방안을 구하면서 사내 민주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자화자찬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 집단지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연간 수백만달러를 투자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게 회사 측의 판단이다.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도입, 운영하기 위해 기업들이 투자하는 비용은 상당하다. 지난해에만 약 2억5000만달러가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적잖은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직원들의 집단지성을 활용하면 투자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데다 직원들에게 ‘회사가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 조직 충성도가 향상되는 효과가 있다는 인식이 번지고 있어 기업들의 집단지성 투자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혁신 컨설팅 전문기업인 이매지내틱의 우리스 솔리스 부사장은 “집단지성 프로그램을 도입해 운영하려는 기업체의 수가 늘어나면서 시장은 매년 15%에서 30%씩 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집단지성을 활용하기 위해 큰돈을 들여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물론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이 도입되기 이전에도 기업이 사내의 직원들을 상대로 의견을 묻거나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직원들이 의견을 제시하는 데 소극적인 경우도 있었고 이런 노력을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귀찮아서 외면하는 중간관리자도 적잖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참여율이 떨어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최근 도입되는 프로그램은 집단지성 활용에 대한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한다. 먼저 이 프로그램은 컴퓨터를 이용한 의견 전달 및 취합, 통계, 수치계산 등 집단지성 형성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이행하기 때문에 편리하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참여율이다. 소극적인 직원들의 참여를 늘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이 성의를 가지고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은 이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다. 

AT&T의 경우 직원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500달러의 포상금을 지급하는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회사가 던진 과제에 대해 어떤 의견이 더 많을지를 두고 내기를 걸게 해 직원들의 관심을 부추기기도 한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참여율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혁신의견 조사에서 지난해 7월에는 고작 4082명이 참여하는 데 그친 반면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몇 개월 후인 지난 10월에는 무려 1만7862명이 참여했다.

“작은 아이디어가 모여 큰 변화 만든다”

참여 직원이 증가하는 것은 단순히 의견의 수가 느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참여율이 높을수록 제안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관심이 높아진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회사 경영에 큰 도움이 된다. 직원들을 상대로 얻어진 정확하고 현실감각이 높은 의견을 수렴해 회사의 방향을 잡아갈 경우 장기적으로 적잖은 성과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집단지성을 연구한 책인 <인장력(The Power of Pull)>의 공동저자인 존 헤이글은 “아주 작은 결과라 할지라도 긴 세월 동안 축적되면 장기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헤이글은 “한 분야의 작은 문제해결은 그 주변의 동료들을 움직이게 하고 나아가 다른 회사의 비슷한 분야 직원들까지도 그 영향을 받게 된다”며 “이런 과정이 오랫동안 거듭되면 영향 범위가 넓어져 결국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매우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확장된 집단지성의 힘은 실제로 증명되고 있다. 피트니보우스는 해외 소프트웨어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직원들에게 물었다. 이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서는 물론 여러 부서의 의견 교류가 장려됐다. 이를 통해 보다 진화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결과 피트니보우스는 38만달러 상당의 계약을 성사시키는 성과를 냈다. 이 회사는 집단지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아무리 작은 아이디어라도 제안할 수 있도록 직원들을 독려하고 세심하게 모은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목표치를 더 높을 것을 조용히 주문한다. 그 결과는 회사의 성장이다.

최철호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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