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이랜드 매장 및 사옥.
- 중국 이랜드 매장 및 사옥.

중국 상하이시 민항구에는 인텔, 마이크로소프트(MS), 코카콜라를 포함한 93개 글로벌 기업의 중국 본부가 자리 잡고 있다. 이들 가운데 한국의 이랜드(중국명 衣戀)는 지난해 법인세 납부 실적 기준으로 2위에 올랐다. 코카콜라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0억 위안(약 1700억원)의 세금을 낸 것이다.



1994년 중국에 진출해 지난해 1조2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한 중국 이랜드는 2000년 이후 최근 10년간 연평균 63%의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영업이익률도 굴지의 글로벌 패션 기업 수준이다. 김만수 중국 이랜드 상업개발본부장은 “올해 초 상하이시 정부가 이랜드에 1억 위안(약 170억원)의 세금을 환급해줬다”며 “최근 3만㎡에 이르는 상하이시 핵심 상권 부지를 중국 정부로부터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싼값에 제공받았다”고 말했다.



기독교 기업으로서 임직원들이 술·담배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술 접대 등을 일절 하지 않는 독특한 기업문화로 유명한 이랜드가 어떻게 음주와 시(關係·사적인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중국에서 성공하고 있을까?



무엇보다 회사 성장을 위해 중국을 핵심 시장으로 파악하고 장기적으로 일관된 노력을 쏟고 있다는 점이다. 이랜드는 1990년대 중반부터 과장 대리 승진 대상자부터 승진 교육프로그램의 하나로 중국의 핵심 도시들을 방문해 중국을 체험하고 시장조사를 하도록 하고 있다. 모든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중국 연수 역시 일주일 동안 중국 현지에서 현장교육을 하도록 해 신입사원 때부터 모든 직원들이 중국에 대한 관심과 비전을 갖고 중국 시장 진출을 준비토록 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철저한 현지 조사와 완벽한 중국어 구사력 배양, 중국인과 동화 노력에 집중했다.  

(왼쪽)중국 이랜드 매장 및 사옥. 3. 나환자를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국 이랜드 직원들. (오른쪽)최종양 중국 이랜드 대표
(왼쪽)중국 이랜드 매장 및 사옥. 3. 나환자를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국 이랜드 직원들.
(오른쪽)최종양 중국 이랜드 대표

완벽한 현지화 노력·마케팅 일관되게 추진

“중국 사업에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일념 아래 이랜드 중국법인 대표를 맡은 2001년 1월 6일부터 6개월 동안 중국 전역 191개 도시를 전(鎭·한국의 읍에 해당) 단위 시골까지 샅샅이 뒤졌어요.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오직 시장조사와 지역별로 현지인들의 의복 패턴 등을 조사했습니다. 일반 기차나 버스를 타고 여인숙에서 자면서 지방 깊숙한 뒷골목까지 시장 특성과 공략 방안을 면밀하게 추적했어요. 깨알 같은 글씨로 쓴 취재수첩만 10권인데, 이게 중국 공략에 ‘보물’ 노릇을 했어요”(최종양 중국 이랜드 대표)



최 대표는 “보통 5~30여 시간 동안 밤낮을 달리는 기차 안에서 입에도 안 맞는 중국 음식과 씨름하면서 사업장을 돌아다녀 팀원들 대부분이 일주일 만에 체중이 5㎏ 넘게 빠졌었다”고 말했다. 



중국 근무에 앞서 중국 사업 담당자로 선정된 직원들은 무조건 100권의 중국 관련 서적을 읽어야 한다. 초창기 중국 진출 직원들은 현지인들과 똑같이 먹고 자고 생활했다. 최근까지 중국 이랜드 직원들은 주재 연한을 두지 않았고 자녀들을 외국인학교가 아닌 중국인들이 다니는 인민학교에 보내도록 했다. “중국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임하라”는 의미에서였다고 한다. 250여명의 중국 주재원들은 지금도 업무 후 수준별 중국어 공부를 하며, 한국인과 중국인이 함께 참석하는 매일 아침 책임자 회의는 100% 중국어로 진행한다. 이랜드 관계자는 “이랜드의 중국 주재원의 최소 기본 자격은 인사 고과 평점에서 A를 받아야 한다”며 “주재원으로 내정되더라도 6개월 내 중국어 자격시험에서 어느 정도 급수를 따야만 최종 발령이 난다”고 말했다.



물론 이랜드의 중국 사업도 아찔했던 순간이 있었다. 가두 점포로 성공을 거둔 국내 경험에 사로잡혀 이를 중국 시장에 접목하려다가 1994년부터 2000년까지 7년 연속 적자를 내 누적 적자액만 400억원에 달했다. 더욱이 1997년 말 외환위기와 2003년 SARS(중증급성호흡기 증후군) 위기가 터졌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이랜드는 오히려 중국 투자와 진출을 더 강화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외환위기와 SARS사태 때 대다수 한국 기업들이 문 닫고 철수하거나 가족들을 한국으로 보냈지만 이럴 때마다 본사에서 엄선한 정예 우수사원들로 드림(Dream)팀을 중국에 보내 중국 사업에 힘을 싣고 현지공략을 강화했습니다.”(최종양 대표)



한국에서 공수 받은 마스크를 매장 방문 고객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중국 공무원들에게는 사스 퇴치에 효과 있다고 알려진 김치와 비타민제를 제공해 한국인 특유의 끈끈한 정을 심는 등 중국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기업임을 실증해 보였다. 사회봉사활동도 진정성과 지속성으로 차별화했다. 올해로 11년째 계속하고 있는 ‘나병(한센병) 병원 자원봉사’가 대표적이다. 2000년 상하이 일대 나병 병원을 찾아가 방과 화장실 등을 직접 청소하고 매월 생일잔치를 열며 문화행사도 벌이고 있다. 나병 병원 봉사활동은 신입직원들은 물론 직급에 상관없이 임원들도 모두 참여한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2회씩 헌혈을 하고 2002년부터는 장애인 의족 사업을, 2005년부터는 백혈병 치료비 지원 사업을 각각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1000여명의 중국인들이 의족을 지급 받아 새 삶을 살고 있고, 120명이 백혈병 치료비를 지원 받았다. 또 기업이익의 10% 사회환원 경영철학에 따라 소수민족 지역 두 곳에 학교를 세워 무상 기증했다.



중화자선총회에 65억원을 지원해 올해부터 5년 동안 5000명의 빈곤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3년 장학금을 지급하는 ‘양광(陽光) 계획’도 시작했다. 올해의 경우 장시, 산시, 구이저우성과 베이징, 상하이 등에 거주하는 중3 졸업생 가운데 가난하지만 성적이 우수한 학생 1500명을 뽑았다. 이들 장학생들에게는 이랜드 직원과의 일대일 멘토링, 필독서 읽기, 학교방문 캠프 같은 실질적인 혜택이 주어진다. 



최종양 대표는 “중국 이랜드의 모든 사회봉사활동은 현금·물품 지원을 넘어 모든 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수년 이상 꾸준히 진행하는 게 특징”이라며 “헌혈의 경우 한국 직원들의 솔선수범 참여에 감동한 중국 직원들이 이제는 헌혈 때가 되면 자발적으로 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릴 만큼 그들의 태도와 마음까지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이랜드 매장이 들어서는 백화점을 상대로 한 접대도 마찬가지였다. 술 접대 같은 유흥 대신 백화점 책임자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사업발전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을 답답할 만큼 계속 고집했다. 또 정부 관계기관 인사에게는 초청강의를 자주 맡겼다. 한번 만난 정부 관계자들에겐 친필로 편지를 써 친밀감을 표시했다. 매출 발생 과정을 투명하게 외부에 알렸고 이에 걸맞은 세금을 꼬박꼬박 냈다. 이는 지역사회에 대해 진심이 담긴 다양한 후원활동과 증폭 효과를 내면서 ‘중국 이랜드=정직하고 믿을 수 있는 양심적인 기업’이라는 평판이 굳어졌다.  



2008년 상하이시 민항구 세무당국으로부터 중국이랜드가 ‘A급 기업’ 인증을 받은 것은 자연스런 결과물인 셈이다. 중국 이랜드가 낸 세금납부 실적이 워낙 월등하게 많다보니 상하이시 정부는 최근 중국 이랜드에 6만6000㎡의 부지 제공을 약속하며 다른 곳으로 공장 이전을 만류하기까지 했다.

- 최종양 중국 이랜드 대표(오른쪽)가 자선기금을 전달하고 있다.
- 최종양 중국 이랜드 대표(오른쪽)가 자선기금을 전달하고 있다.

고급화 전략으로 공략 · 품질 관리 ‘철저하게’

중국 이랜드는 올 6월 말 현재 4400개 매장에서 ‘티니위니’ ‘스코필드’ ‘프리치’ ‘헌트’ ‘플로리’ 등 모두 23개의 브랜드 상품을 팔고 있다. 대부분 백화점 명품 코너에 전시돼 있는데 모두 고가품이다. 중국 이랜드가 올해 초 상하이에 1호 매장을 연 이탈리아 브랜드 ‘벨페’는 최고급 여성 스포츠 콘셉트 브랜드로 한 벌당 100만원을 호가한다.   



올 하반기부터는 130년 역사를 지닌 스코틀랜드 캐시미어 브랜드인 ‘피터 스콧(Peter Scott)’과 이탈리아 정통 구두 브랜드인 ‘라리오(Lario)’를 각각 내놓는다. 스포츠 브랜드인 뉴발란스의 중국 총판권을 확보해 현재 중국에서 영업 중인 79개 매장을 올 연말까지 200개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중저가 패션으로 입지를 다진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명품급의 고가품으로 승부를 걸고 있는 것이다.



그 비밀 병기는 중국 본사가 운영하는 ‘패션 연구소’이다. 이 연구소는 매주 상하이 시내 번화가에서 현지인 800~1000명의 사진을 찍는다. 이들의 옷차림을 분석해 ‘현지 트렌드 리포트’를 작성하고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국 본사 디자인팀은 중국용 의류를 따로 디자인한다. 컴퓨터로 디자인 샘플을 보내면 중국 영업·판매·기획 조직이 현지에서 인기를 끌 만한 디자인을 골라내는 식이다. 디자인도 철저히 현지화했다. 티니위니 중국 매장에는 가슴 한복판에 곰 모양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옷이 유난히 많다. 로고가 왼쪽 가슴에 작게 들어가는 한국 제품과는 딴판이다. 김만수 경영기획본부장은 “브랜드 과시욕이 강한 중국인의 성향을 감안한 디자인이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은 30%도 채 안 된다”고 했다.



올 1월 중국 이랜드는 한 벌당 3580위안(약 61만원)짜리 여성용 스코필드 겨울코트 1770여 벌(시가 총 10억7000만원어치)을 절단 처분했다. 두 제품 모두 소비자 항의를 받은 적 조차 없었지만 작년 12월 매장을 돌아보던 최종양 대표가 직접 흠을 찾아낸 것이다. 최 대표는 “한국 돈으로 20만원쯤 하는 제품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60만원에 팔리는 고급상품으로는 볼 수 없는 품질”이라며 눈물을 머금고 상품을 전량 폐기했다.



이는 갈수록 고급화하는 중국 의류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지금보다 품질을 더 높여야 하며 이를 위해 긴장의 고삐를 더 조이자는 반성의 표시다.  



중국 이랜드는 2015년에는 매출 6조원을 달성하고 매장 수를 1만2000개로 늘려 중국에서 가장 많은 브랜드와 직영 매장을 보유한 최대 패션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1994년부터 2010년까지 현지화를 통해 내실을 다지고 사업기반을 구축하는 1기였다면, 올해부터는 본격 성장 페달을 밟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 이랜드 측은 중국에도 도움되는 인재와 자금 등의 ‘윈·윈(win-win) 성장’을 가속화한다는 전략이다. 중국 전역에 고용하고 있는 2만5000여명의 현지인 가운데, 2004년부터 우수 관리직 사원 20여명을 매년 선발해 서울로 불러 6개월 동안 어학연수와 한국 본사 근무를 시킨다. 이들 중 우수인력을 다시 뽑아 1년짜리 EMBA프로그램 교육을 부여해 고급 인재를 키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중국 이랜드의 12개 지사 중 6개의 지사를 중국인이 책임지고 있다. 최종양 대표는 “중국 이랜드의 임금수준은 글로벌 100대 기업 가운데 상위 25% 수준이며, 연말에는 최고 500% 이상 성과급을 나눠주며 한국 직원과 똑같은 안식년 제도와 대학까지 학비지원 같은 복지를 제공한다”며 “정직한 납세와 고용의 증대, 순이익의 10% 사회 환원이란 중국 사업 3대 경영원칙을 통해 이랜드와 중국·중국인이 다 함께 잘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중국 상하이 강후이 플라자 티니위니 매장(왼쪽)과 왕푸징 EnC 패션쇼.
- 중국 상하이 강후이 플라자 티니위니 매장(왼쪽)과 왕푸징 EnC 패션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