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우물물로 빚어내는 ‘술 중의 모란’

<일러두기>

❶ 현대 중국의 인명 및 지명, 중국의 고유명사는 중국어 발음대로 표기했다. 단,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고유명사는 한자 독음대로 표기하였다.

 <예> 毛澤洞 마오쩌둥 西安 시안 / 長江 장강 杏花村 행화촌

❷ 술 이름의 경우에도 중국어 발음대로 표기해야 하나 우리에게 익숙한 술에 한해서만 그렇게 했다. 여타의 술은 발음이 어렵거나 의미 전달이 잘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한자 독음으로 표기했다. <예> 茅台酒 마오타이주 五粮液 우량예 / 黃鶴樓酒 황학루주 劍南春 검남춘

❸ 신 중국 수립(1949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의 인명 및 지명은 한자 독음대로 표기했다. <예> 李白 이백 杜甫 두보 南京 남경

1. 고정공주 제조사의 송나라 때 지하우물 2. 1800년의 역사를 가진 고정공주의 옛우물 3. 고정공주의 발효지
1. 고정공주 제조사의 송나라 때 지하우물
2. 1800년의 역사를 가진 고정공주의 옛우물
3. 고정공주의 발효지

고정공주(古井貢酒)는 중국 안후이성(安徽省) 유일의 국가 명주이다. 안후이성은 창장(長江, 양쯔강)을 남북으로 껴안고 있는 중국 내륙 지역으로 최북단은 황허(黃河)의 아래쪽까지 파고든다. 술 회사가 있는 보저우시(州市)가 바로 이곳 최북단에 위치한다.



여담이지만, 나는 오랫동안 이 도시명의 ‘박()’자를 ‘호(毫)’자로 착각하여 ‘호주’라고 읽었다. 그런데 몇몇 중국 학생들이 내가 찾아가고자 하는 이 도시를 자꾸 ‘보저우’라고 발음하는 것이 이상했다. ‘호’자라면 ‘후’라든가 ‘하오’쯤으로 발음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여겼던 것. 그리고 뒤늦게 획 하나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혼자 뒷머리를 긁었다.



보저우는 그 옛날 삼국의 한 축을 담당했던 조조(曹操)가 태어난 곳이다. 또한 같은 시대에 의술로 이름 높았던 화타(華)의 고향답게 이곳은 약재(藥材)의 고장으로도 소문이 나 있다. 서기 2000년 성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3개 현(縣) 580만명의 인구를 품은 도시는 평균 해발 20~40미터밖에 되지 않는 넓은 평야지대에 위치해 있다. 도심에도 수로들이 뻗어 있으며 연안에는 갈대들이 무성히 자라 있다.



술 회사가 있는 꾸징진(古井鎭)은 보저우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30여 분을 더 가야 한다. 공장으로 가는 둑길에도 거대한 미루나무들이 빽빽하게 도열해 있다. 시원하게 뻗은 포장도로 양편에는 ‘고정공주’의 푸른 깃발들이 휘날린다. 마을에 들어서면 곧바로 술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는 것도 여느 명주의 고향과 다르지 않다. 길거리는 방금 떠나온 보저우에 비해 훨씬 깔끔하며 특히 술 회사 주변은 화단으로 잘 치장돼 있다.     



외부 인사에게 고정공주를 소개하는 박물관 건물은 본사와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다. 박물관 내부는 한창 수리 공사 중. 선전부의 젊은 여직원은 미리 기별도 않고 찾아온 이국의 손님을 반기면서 먼저 박물관 한 쪽의 지하 통로로 안내한다. 머리를 조심하며 100여 미터의 통로를 지나면 아연 넓은 데가 나타나는데 그곳에 직경 1미터 정도의 입을 가진 옛 우물이 있고 그 옆으로 비석들이 서 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송정(宋井, 송나라 때의 우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송정에는 그 옛날 황제의 말 마고자가 숨겨져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우물 입구는 붉은 맷돌을 덮어 사람들이 열지 못하게 하였다던가. 1992년 10월, 술 회사의 인부들이 체육관을 짓기 위해 땅을 파 들어가다가 지하 6미터 깊이에서 한 우물을 발견했는데 과연 입구는 붉은 석판으로 덮여 있었다. 전문가의 감정 결과 이것이 바로 전설의 송정이었는데 지금부터 약 900~1000년 전의 것이었다.

- (왼쪽)고정공주의 증류작업, (오른쪽)고정공주
- (왼쪽)고정공주의 증류작업, (오른쪽)고정공주

술 회사 구내에 위나라 때 우물도 보존

그렇지만 ‘천년고정(千年古井)’이라고 술 회사가 자랑하는 우물은 이것만이 아니다. 1800년의 역사를 가진다는 또 다른 우물은 위정(魏井, 위나라 때의 우물)이며 이는 길 건너 본사 경내에 있다. 우물 위에는 고정정(古井亭)이라는 팔각 정자가 서 있고 그곳에는 우물을 찬미하는 글을 적은 현판들이 잔뜩 걸려 있다. 정자를 내려온 나 또한 몸을 기울여 우물 안을 들여다보며 가늠키 힘든 세월의 길이에 놀라움을 가진다. 그러나 눈앞의 물빛은 그렇게 맑아 보이지 않는다.



1400여 년 전의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중국은 남과 북 두 개의 왕조로 분열됐는데 이 무렵 박현(縣)은 군사상의 요지였다. 기록에 따르면, 남조(南朝)의 양무제(梁武帝) 소연중(蕭衍中)은 대통(大通) 4년(532) 군사를 이끌고 밀물처럼 초성(城, 박현)을 공격했다. 이때 북위(北魏)의 수비대장 독고(獨孤) 장군이 이를 막다가 힘에 부치자 격분하여 죽었다. 죽기 전 장군은 울분을 삭히며 금동으로 된 긴 창을 이 우물 속에 던져 넣었다. 훗날 어떤 이가 전쟁터 근처에서 독고 장군의 묘를 수습했으며 아울러 묘 부근에서 스무 개의 우물들을 발굴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들 우물 대부분이 매몰됐지만 네 개는 그대로 남았다. 대체로 박현 일대의 토질은 소금기를 품고 있어서 물맛 또한 거칠고 쓴 편이었다. 그러나 그 네 우물 중 하나만은 수질이 달고 좋아서 마시기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좋은 술을 빚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그것이 바로 독고 장군이 창을 던진 우물이었다. 



천년도 훨씬 넘는 세월을 이어오면서 이곳 사람들이 이 물로 술을 빚었기 때문에 술 이름을 고정주라고 하게 되었다. 뒷날 이곳 박현의 지명은 함양(咸陽)으로, 또 함양집(咸陽集)으로 바뀌는 때가 있었는데 그 사이 ‘함(咸)’자가 ‘감(減)’자로 와전되어 감점집(減店集)이 되었으며 이 감점집에서 생산된 술을 감주(減酒)라고 하였다.



민간에 전해지는 아름다운 말 중에 ‘호근 감주로 좋은 손님을 대접한다(胡芹減酒宴佳賓)’는 말이 있다. ‘호근’은 호양성(胡襄城, 감점 서북쪽 약 35km)에서 생산되는 미나리를 말한다. 이 미나리는 줄기가 길고 굵으며 잡티가 없기로 유명하다. 좋은 안주와 아름다운 술은 귀한 손님을 청한 자리에 꼭 필요한 바, 이 말은 곧 감점집에서 만든 술이 좋은 술로 벌써 소문나 있었음을 뜻한다. 감주가 곧 고정주다.

- 보저우역 앞의 조조상(왼쪽). 보저우의 옛 거리.
- 보저우역 앞의 조조상(왼쪽). 보저우의 옛 거리.

중국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천년고정’

이곳의 옛 우물물은 맑고 차며 달고 감치는 맛이 있다. 이 물로 술을 빚으면 색, 향, 맛을 다 갖춘 술이 된다. 과학적 측정에 의하면 우물물은 모래와 진흙층에서 솟아난다. PH(물의 산성도를 가늠하는 측도. 순수한 물은 7이다)는 7.7이며 경도(硬度: 물속에 칼슘염과 마그네슘염이 함유돼 있는 정도)가 12.16이다. 총 알칼리도는 15.14이며 염소는 58이다. 게다가 이 물은 스트론튬, 요오드, 브롬, 규소, 칼슘 등 미량의 원소를 함유하고 있다. 따라서 나트륨형의 우수한 광천수로 평가된다. 오랜 기간 수많은 가뭄을 만났지만 이 우물은 한 번도 마른 적이 없다고 전한다. 천년고정은 현재 국가문화재로 지정돼 있으며 중국 관광청에 의해 ‘AAAA급(최상급)’의 관광지구로 선정되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기술서로서 6세기 전반 북위(北魏)의 북양태수(北陽太守)였던 가사협(賈思)이 저술한 <제민요술(齊民要術)>의 기술에 따르면 동한(東漢) 건안(建安) 연간(196년)에 조조는 자기 고향 박주에서 만든 구온춘주(九春酒)란 술을 헌제(獻帝) 유협(劉協)에게 바쳤다. 아울러 그는 이 술을 만드는 방법도 아뢰었다. ‘구온주법을 올립니다(上九酒法奏)’라는 글에서 그가 말하길 “신의 고향은 남양곽지(南陽郭芝. 현재의 박주)입니다. 거기에 구온춘주란 술이 있는데 만들 때 누룩 20근을 흐르는 물 5섬에 씁니다. 섣달 2일에 누룩을 담그고 정월에 해동합니다. 좋은 쌀을 쓰며 누룩 찌꺼기를 잘 걸러냅니다. 3일에 한 번씩 술밥을 넣으며 아홉 번이 되면 그칩니다. 신이 이 방법으로 술을 빚어보니 정말 좋았습니다. 그것은 아주 맑으며 술의 지게미 또한 먹을 만합니다. 만약 이 방법으로도 술맛이 없으면 열 번까지 늘이면 됩니다. 이 술은 달고 마시기 쉬우며 술병(病)이 나질 않습니다. 삼가 올립니다.”



이후 이 술은 역대 황실의 공품(貢品)이 되었으며 특히 명청(明淸) 양대에 걸쳐 더욱 빈번히 진상되었다. 고정주란 이름에 ‘공(貢)’자가 보태진 연유도 여기에 있다. 술 회사는 1959년부터 오늘과 같은 고정공주란 술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위의 고사를 들어 어떤 이들은 당시 조조가 좋은 술로 임금을 홀렸다고 주장하지만 고정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그때 이미 조조는 천자의 권세를 이용해서 제후를 다스리는 지위에 있었으니 달리 군왕을 유혹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고향 술에 대한 애정만 깊었을 뿐이란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아무튼 구온춘주가 고정공주의 근원이라는 회사 사람들의 말에도 제 고장 출신의 역사 인물이며 술에 대해 가지는 자랑과 긍지를 엿볼 수 있다.



구온주법은 당시 박현의 양조 기술을 총합한 것이었다. 흔히 고정공주는 맑기가 수정 같으며 순정한 향기는 난초향과 흡사하다는 찬사를 받는다. ‘술 중의 모란(酒中牡丹)’이라는 칭송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이 술은 농향형(濃香型) 배갈에 속하지만 풍격(風格)은 별나다. 술맛이 순하고 따뜻하며 향이 짙기 때문이다. 입안에 감치는 맛이 유연히 길며 마신 뒤에 남는 여향(餘香)은 시간이 지나도 쉬 가시질 않는다. 이 고장 사람들이 즐겨 읊는 다음의 시구도 이러한 제 고장 술에 대한 자랑에서 나온 것임은 물론이다. 

한 집이 술을 마시니 열 집이 같이 취하고(一家飮酒十家醉)

열 집이 술독을 여니 향기가 백 리에 퍼진다. (十家開壇百里香)
 

고정공주의 독특한 풍미는 당연히 천년 고정수와 연관돼 있지만 옥국화심곡(玉菊花心曲)이라고 부르는 누룩과도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고정공주의 양조 기술은 전형적인 혼증속사법(混蒸續渣法)에 속한다. 이는 전통의 ‘노오증(老五甑)’ 조작법에 기초하는데 이들 기술은 현대의 양조기술법의 기초가 된다. 혼증속사법은 술밑을 술 원료와 혼합한 뒤 이를 큰 시루에 찌면서 동시에 술을 받아내는 방법을 말한다. 이후 시루 안에 남은 지게미는 꺼내 식힌 뒤 누룩을 섞어 다시 땅광에 넣어 발효시킨다. 이렇게 한 차례 발효를 끝낸 원료들은 다른 구덩이로 옮겨 다음의 발효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해서 독특한 진술(죽처럼 된 형태)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진술을 만들어 술을 받아내는 것이 혼증속사법이다. 과정이 복잡하지만 노오증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큰 시루 다섯 개를 이용하여 원료와 원료, 술밑과 원료의 배합을 적절히 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 고정공주
- 고정공주

‘혼증속사법’이라는 양조기술로 생산

노련한 기술자들은 증류과정에서 나온 술을 첫술(酒頭), 몸술(酒身), 끝술(酒尾)로 구분하여 질과 양을 따진 뒤 큰 독에 담아 저장한다. 숙성 과정이 끝나면 최후로 배합 작업과 화학검사를 거쳐 상품으로 출하한다.



속설에는 오래 묵은 발효 구덩이()에서 좋은 술이 나온다는 말이 있지만 고정공주의 원료들은 대부분 현대에 만든 인공 구덩이에서 발효과정을 거친다. 1964년 고정공주의 연구진이 과학적인 인공 구덩이 개발 연구를 완성하여 종전의 신화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이면서 고정공주는 농향형 대곡주의 생산방법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고정공주는 회북평원(淮北平原)에서 생산되는 우수한 수수를 정선하여 원료로 쓴다. 그리고 밀과 보리, 완두로 누룩을 만든다. 전통의 방법과 현대의 과학적 기술을 교합시켜 술을 빚어내는 까닭에 술을 감별하는 전문가들도 “고정공주의 색과 향, 맛은 모두 최상급에 속한다”고 말한다.



90년대 초부터 불기 시작한 농향형 배갈의 바람 탓도 있지만 고정공주는 근래 10여 년 사이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조직과 기술의 혁신, 공격적인 마케팅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브랜드의 선명화가 가장 큰 성공요인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이 회사가 사용하는 브랜드의 계열은 크게 세 가지다. ‘고정(古井)’ ‘고정공(古井貢)’ ‘고정공주(古井貢酒)’가 그것인데 저가(低價) 제품에서부터 고가 제품까지 상표를 계열별로 구분한 것이다. 이는 소비자들에게 가장 구체적이고 선명한 인상을 주는 브랜드 라인으로 평가 받는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보아 2008년에도 회사의 주요 경영지표는 2007년에 비해 대폭 확장되었으며 실현 수입 또한 22억9622만 위안으로 전년 대비 12.98% 증가하였다.



오늘날 고정 그룹은 술만 생산하는 기업이 아니다. 전체 직원 7500여 명을 거느리면서 관광, 금융, 부동산 방면에도 크게 영역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고정공주는 그동안 다섯 차례 열린 전국주류평가회에서 네 번이나 금장을 받아 ‘중국 명주’의 전당에 들었다.







* 최학 소설가 · 우송대 교수는...

필자 최학 교수는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고, 1979년 한국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역사소설 <서북풍>이 당선되면서 큰 주목을 받은 중견 소설가다. 대표작으로 <서북풍>, <미륵을 기다리며>, <화담명월> 등이 있으며, <배갈을 알아야 중국이 보인다>, <니하오 난징> 등 중국 관련 저서도 있다. 현재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로 많은 중국인 학생들을 가르치며 한·중 양국간 교류에 일조하고 있다. 네이버에 ‘배갈, 白酒의 향과 맛을 찾아 (
http://blog.naver.com/jegang5)’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배갈 대중화 작업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