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이탈리아’ 신발, ‘메이드 인 프랑스’ 의류 등 소비재 산업에서 고급품 이미지가 강하던 유럽 국가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값싼 중국산 제품들로 인해 그 아성이 무너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이들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중국과의 무역 분쟁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패션 강국으로 통하던 이탈리아가 중국의 약진으로 가장 크게 산업 기반이 흔들리면서 총체적인 경쟁력 약화 현상을 보인다. 이 때문에 성장이 지지 부진한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의 환자’ 그룹에 이탈리아도 가세했다.

프랑스 수출보험공사(Coface)가 올해 펴낸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국가 신용등급은 전년의 A2등급에서 2006년에 A3등급으로 한 단계 낮춰졌다.

 프랑스 수출보험공사는 나라별 정치 상황, 결제 방식 및 미결제 지수, 자산 현황, 산업 개황, 부도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매년 신용등급을 매긴다. 이 평가에서 총 11개 국가가 2005년 비해 2006년 신용등급 평가에 변화가 있었다. 그 중 9개국은 신용등급이 회복된 나라였고 신용등급이 깎인 나라는 이탈리아와 필리핀뿐이었다.

 이탈리아의 국가 신용등급이 이처럼 하락한 것은 전체적인 국가 경쟁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R&D(연구개발) 투자가 미흡해 미래 성장 산업을 육성하지 못한 데다, 그동안 이탈리아가 강세를 보이던 패션·신발 산업 등에서도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뒤지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 구두는 최상의 품질로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보이던 신발 산업의 경우, 위축세가 두드러진다.

 2003년에 7283개이던 이탈리아 제화업체 수는 2004년에 7084개로 줄었다. 제화업체에 종사하는 사람들 숫자도 같은 기간 10만 3275명에서 10만 934명으로 2.27% 감소했다. 생산량도 7.36%가 줄었다. 

 이탈리아는 전체 구두 생산의 80%를 수출하는데 2004년에는 그동안 수출 시장 1위와 4위를 차지한 독일과 영국으로의 수출이 각각 9.9%, 14.6% 감소했다. 아시아 수출도 10%가 줄어들었다. 전체 수출량이 6.14% 감소하고 수출 금액도 1.96% 줄었다.

 반면 수입량은 3억켤레로, 2003년보다 두 자릿수(15.76%)로 늘었다. 대부분이 아시아 지역에서 수입된 물량으로 중국산 신발이 27%, 말레이시아가 24.3%, 인도네시아는 20% 증가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제화업계에서는 유럽 신발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반덤핑 관세가 신속히 매겨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또 EU 밖에서 생산된 물건에는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확산되고 있다. 아시아에서 생산된 제품과 이탈리아에서 생산된 제품을 소비자들이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유럽의 신발 산업이 중국 및 동남아 제품의 수입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에 따르면 중국의 연간 신발 생산량은 70억켤레나 된다. 반면 EU 전체의 생산량은 7억 9000만켤레에 불과하다. EU 전체 신발 생산량 중 나라별 점유율은 이탈리아 38%, 스페인 22%, 포르투갈 12%이다.

 EU가 아시아에 세계 신발 시장을 내줄 수밖에 없는 원인은 무엇보다 인건비 격차에 있다. 아시아 신발 산업 근로자의 임금이 EU 국가의 100분의 1에 불과해 유럽 제화업체 종사자들이 도저히 가격 경쟁력을 맞출 수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

 그 바람에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패션·신발 수출국들과 중국의 무역 분쟁도 끊이질 않고 있다. 



 무역 분쟁으로 비화될 듯

 지난해 EU는 섬유로 인해 중국과 무역 분쟁을 겪었다. 올해는 신발로 중국과 또다시 불편한 무역 분쟁을 겪을 것이 예상된다.

 EU집행위원회는 유럽 신발산업협회의 제소로 지난 2004년 4월부터 2005년 3월까지 중국 및 베트남산 신발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반덤핑 판정요인을 확보하고 4월부터 잠정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하지만 EU가 수입가의 20% 가량에 달하는 반덤핑 관세를 매겨 신발값을 올리더라도 밀려들어오는 중국산 제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현재 중국이나 베트남 신발의 평균 수입가격은 8.5유로로, 이 수입가에 20% 가량의 관세를 부과해봤자 수입가격이 1.7유로 올라가는데 불과하다.

 지난 1년간 EU에 수입된 중국산 구두는 9500만켤레에 달한다. 전년 동기에 비해 320% 늘어났다. 베트남에서는 1억 2000만켤레 수입됐다. 720%나 급증했다. 중국이나 베트남산 신발이 유럽 전체 신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가 채 안되지만, 빠른 속도로 저가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실제 2005년 1~4월에 EU 국가의 중국산 신발 수입을 보면 샌들과 가죽 단화가 1256% 증가했고 합성 및 플라스틱 소재 신발은 635%, 천 슬리퍼는 216% 증가했다.

 패션산업의 선진국으로 자존심이 대단한 프랑스도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산 의류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중저가 의류 시장은 중국산 의류들로 인해 시장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EU는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산 의류를 막기 위해 지난해 쿼터제를 부활했다. 그럼에도 불구, 중국산이 북아프리카 국가산 제품을 제치고 프랑스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프랑스 관세청에 따르면, 2005년 1월부터 7월까지 프랑스의 총 의류 수입은 금액 면에서 전년 동기 대비 2%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산 의류의 수입은 60%나 증가했다. 다른 국가들의 시장 점유율이 줄어들고 중국이 프랑스 의류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중저가 의류 시장에 중국산 의류가 급증하면서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 의류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섬유류의 경우, 프랑스 시장에 가장 많은 물량을 수출해온 이탈리아(금액 기준 7% 감소), 8위와 11위 공급국인 포르투갈(9% 감소)과 모로코(11% 감소) 등이 가장 크게 타격을 입었다.  다만 5위와 6위 공급국인 터키와 인도는 각각 5%, 15%의 증가를 보였다.

 이 때문에 프랑스 의류업계에서도 값싼 아시아 의류들과 경쟁하고, 모조품과도 싸워야 하는 치열한 무역 전쟁에서 프랑스 패션업체들을 돕기 위해 ‘메이드 인 프랑스(made in France)’라는 공동 브랜드를 개발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프랑스 의류산업협회(Ufih)가 산업부, 공정거래위원회, 관세청 등과 실현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클로드 테타르 의류산업협회 회장이 주도한 이 계획이 실현되면 프랑스는 의류에 ‘프랑스 모드’라는 공동 브랜드를 부착할 수 있게 된다.

 이와는 별개로 파리 의상조합 측에서는 프랑스 의류를 다른 나라 제품과 구별할 수 있는 원산지 표시 부착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프랑스 고급 패션의류의 경우, 디자인은 물론 국내 제조 비율이 높은 편이다.

 EU에서 의류는 원산지 표시가 의무화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프랑스 법에 따르면, 제품이 프랑스에서 생산되지 않았다면 프랑스 국기나 지도, 기념물 등 혼란을 줄 수 있는 마크를 부착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근본적으로 엄청난 임금 격차 때문에 가격 경쟁으로는 승부할 수가 없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패션 제품들의 경우, ‘메이드 인 프랑스’나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통해 중국산 저가 제품의 강풍에 맞서려는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으로 중국의 강풍을 얼마나 막아낼 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