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가장 낙후한 주인 비하르(Bihar)의 경제 발전 모델이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인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벤치마킹 대상으로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비하르 주 총리인 니티시 쿠마르(59, Nitish Kumar)다. 쿠마르 주 총리가 이끄는 자나타 달당(JD-U)과 바라티야 자나타당(BJP)의 연합은 지난 2010년 11월 말 실시된 비하르 지방선거에서 압승했다. 주 의회의석 243석 가운데 206석을 석권했다. 강력한 경쟁상대였던 야당(RJD)은 22석에 그쳐 제1야당 지위 확보 최소의석(25석)도 얻지 못할 만큼 참패했다. 이 선거는 청렴이냐 부패 회귀냐, 경제발전이냐 저성장이냐, 사회적 약자 지위 향상이냐 카스트정치 등 과거로의 회귀냐를 두고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결국 청렴과 경제발전의 상징으로 통하는 쿠마르 후보가 압승을 거둠으로써 향후 인도의 다른 낙후한 주에도 큰 희망을 주고 있다. 특히 포스코가 대규모 투자를 계획 중인 오리사 등 최근 인도 경제성장에서 뒤처진 주에도 비하르식의 개발과 발전을 찬성하는 여론이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비하르는 인도 동북부에 자리한, 인도에서 가장 가난하고 개발이 지체돼온 주다. 이 비하르 주는 얼마 전만 해도 ‘랄루의 땅’이라고도 불렸다. 랄루란 인도 하위 카스트 지도자로 명성이 높은 랄루 프라사드 야다브(Lalu Prasad Yadav)를 지칭한다. 야다브 카스트는 인도 4개 카스트 가운데 하나인 수드라를 지칭하는 인도 정부의 공식 용어다. 수드라는 농민·노예 등 최하층 카스트로, 야다브 카스트는 전통적으로 암소를 키우는 일을 해왔다. 비하르는 경제가 낙후한 것 못지않게 카스트의 분열이 심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랄루는 이 카스트 분열을 이용해 연방 하원의원에 5번이나 당선되고, 15년간이나 주 총리를 역임한 인물이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비하르는 빈곤과 부패, 범죄, 종교 및 계급 간 갈등으로 악명이 높았다. 도로는 유실되고 많은 학교 건물이 붕괴됐다. 보건소는 장비, 약품, 인력 부족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경찰과 공무원의 비호를 받는 범죄집단과 납치세력이 기승을 부렸고, 무슬림과 힌두교도 간 갈등이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또 상·하위 카스트 간 반목에 따른 살해와 약탈도 난무했다.

랄루 그 자신 역시 비료 보조금 비리사건 등 범죄에 연루돼 투옥되기도 했다. 감옥에 가 있을 때는 그의 아내를 지명해 주 총리를 시키기도 했다. 이러니 비하르가 ‘랄루의 땅’으로 불렸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비하르 지역 터줏대감인 랄루에 대항해 지난 2005년 ‘개혁주의자’ 니티시 쿠마르 후보가 도전장을 냈다. 쿠마르 역시 쿠르미라는 수드라에 속하는 하층 출신이었다. 그러나 쿠마르는 정치 철학과 비전, 사회적 약자 보호, 청렴도 등에서 랄루와 아주 달랐다. 쿠마르의 부친은 영국 식민지 통치 시절 독립투사였고, 쿠마르 자신은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청렴한 정치인이었다.

지난 2005년 비하르 지방선거에서 쿠마르는 예상을 뒤엎고 큰 승리를 일구었다. 쿠마르의 당(JDU)은 88석을 얻어 54석에 그친 랄루의 당(RJD)을 패퇴시켰다. 장장 15년이라는 랄루의 악명 높은 장기집권을 끝장낸 것이다.





총체적 혁신으로 비하르 재건



선거 승리 이후 쿠마르 주 총리는 대대적인 비하르 재건에 착수했다. 시민을 불안에 떨게 했던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가 하면 인프라 건설을 대폭 확충해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교육 강화와 함께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했다. 이른바 ‘시민과 함께하는 정책(Your government at your doorstep.)’이었다. 구체적으로 첫째,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았던 전례를 일소했다. 신속재판(패스트 트랙) 법정을 만들어 범죄인을 신속히 처벌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정치인을 포함한 5만4000여 명의 범죄혐의자가 체포돼 실형 선고를 받았다. ‘무법자들의 천하 비하르’라는 오명을 벗긴 것이다. 그 결과 당연히 치안이 확보됐다.

둘째, 낙후한 인프라 개선에 매진했다. 쿠마르 정부는 인프라 개선에 2008년 한 해 동안 250억루피(약 625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재정을 투입했다. 이는 전임 주 총리인 랄루가 한 해 평균 투입한 26억루피에 비해 약 10배나 더 많은 액수다. 그 결과 쿠마르 주 총리 5년 재임 기간 동안 건설된 도로는 비하르 주 전체 도로의 4분의 1이나 됐다. 또 쿠마르 정부는 5년 임기 동안 자그마치 2100여 개의 다리를 건설했다. 이에 따라 비하르 주 내에서 60㎞ 거리를 주행하는 데 과거 6시간이 걸리던 것을 2시간 내로 단축시키는 인프라 혁명을 이룩했다. 

셋째, 쿠마르 정부는 실업자 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섰다. 주 정부의 실업타파 정책의 결과 지난해에만 420만 명이 새 일자리를 갖게 되었다.

넷째, 쿠마르 정부는 부패 척결과 인프라 개선, 일자리 창출 정책 등으로 높은 경제성장을 시현했다. 룰라 재임 시 연평균 3.5% 성장에 불과했던 비하르 주 경제는 쿠마르 총리가 취임하면서 11.35%로 기적 같은 빠른 성장률을 달성했다. 인도 연평균 성장률(8%)보다 훨씬 더 높은 성장률이다.

다섯째, 장래 발전은 교육에 달려있다고 보고, 교육에 각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교사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식, 약 10만 명의 신규 교사를 임명했다. 또 돈이 없어 공부하지 못하는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책과 학생복, 의약품 등을 제공해 공부에 매진할 수 있도록 했다.

여섯째, 여성우대 정책을 적극 실시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비하르 주 여성의 지위도 매우 열악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쿠마르 정부는 지역의회의 50%를 여성의원으로 할당했다. 또 거리가 멀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여학생들에게 자전거와 점심을 무료로 제공했다. 심지어 학교 시험성적이 좋은 여학생들에게는 현금을 지급해 여학생들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했다.

일곱째, 쿠마르 정부는 비하르 주의 빈곤타파를 위해 마하라슈트라 등 여타 주 사례를 집중 연구해 해결책을 강구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유 생산업자 지원사업이다. 이들 우유 생산업자들은 전임 총리인 랄루와 같은 카스트다. 이들은 그를 적극 지지했지만, 랄루 정부 하에서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들은 중간 판매상에게 빚도 많이 졌다. 쿠마르 정부는 이들 우유 생산업자에게 각각 7만5000루피(1600달러)의 대출을 해주어 이 대출금으로 빚을 갚고, 재정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런 정책들을 통해 많은 저소득층은 안정적으로 자립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여덟째, 카스트 정치로부터의 탈바꿈을 시도했다. 랄루 총리는 자신의 정치기반인 하층 카스트 위주의 정책을 폈다. 이에 많은 상층 카스트들이 이반해 상∙하층 카스트 간 갈등이 심각했다. 후임 쿠마르 정부는 하층 카스트는 물론 소외된 상층 카스트들도 포용했다. 계급이나 계층과 관계없이 부패척결, 경제발전, 치안, 고용창출, 복지향상 등 국민적 관심사에만 주력했다.    

이런 대대적인 개혁정책의 결과는 이번 지역선거에서 지역민들의 폭발적인 지지로 나타났다. 계층과 계급,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쿠마르 연합정부에 찬성표를 던졌다.

특히 비하르 주의 많은 여성들이 대거 이번 지방선거 투표에 참여해 쿠마르 총리를 지지했다. 이번 지방선거의 여성투표율은 55%로 이전 선거에 비해 10%나 높아졌다. 남성 투표율은 50.1%로 여성투표율에 못 미쳤다. 그만큼 쿠마르 정부하에서 혜택을 받았거나 깨우친 여성들이 개혁후보 쿠마르를 적극 지지한 것이다.

2010년 비하르 지방선거는 근래 인도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반대파가 궤멸된 쿠마르의 대승리였다. 쿠마르는 현재 인도 내 28명의 주 총리 가운데 최고의 주 총리로 평가받는다. 이에 따라 그는 유력한 차기 연방 총리 후보인 라훌 간디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정적으로 급격히 부상했다.

쿠마르의 개혁, 경제발전 모델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과거 카스트정치와 저발전, 범죄 등 온통 부정적 모습이었던 비하르가 전 방위적 발전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면서 “비하르는 리더십의 변화가 어떤 발전을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라고 극찬했다.

오화석 인도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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