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권력’ 등에 업고



중국 재계·금융계 ‘쥐락펴락’




-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 대사관 외교 전문에서‘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대기업 이사회 같은 조직’으로 표현된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당 정치국 상무위원들) 모습. 앞줄 왼쪽부터 리창춘(상무위원), 원자바오(총리), 후진타오(국가주석), 우방궈(전인대 상무위원장), 자칭린(정협 주석). 뒷줄 왼쪽부터 허궈창(중앙기율검사위 서기), 시진핑(국가 부주석), 리커창(부총리), 저우융캉(당 정법위 서기).

# 중국 베이징시 한복판에 있는 골든 트레저(Golden Treasure·중국명 珍寶金) 빌딩. 1층 로비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뉴 호라이즌 캐피탈(New Horizon Capital)’이란 회사 명칭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12층에 있는 한 사무실 앞에 한자로 ‘신톈위(新天域)자본공사’라는 자그마한 간판이 걸려 있을 뿐이다. 일반인들의 사적인 자금을 모아 자본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이른바 사모펀드 회사인 이곳은 6년 전인 2005년에 설립된 햇병아리급 회사이다. 그러나 업계의 영향력은 막강해 도이치은행, JP모간, UBS, 싱가포르의 국부펀드인 테마섹 같은 글로벌 투자금융회사(IB)들의 안정적인 투자를 이끌어내며 2010년 한해에만 수십억달러의 펀드 자금을 모았다.

이 회사가 이처럼 잘 나가는 비결은 특별한 데 있지 않다. 바로 ‘뉴 호라이즌 캐피탈’은 중국 공산당 권력서열 3위인 원자바오 총리의 외동 아들인 윈스턴 원(중국명 원윈쑹·溫雲松) 사장이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은 원윈쑹은 미국 골드만삭스와 중국 최대 컴퓨터 업체인 레노버의 모회사인 롄샹 계열 사모펀드인 호니 캐피탈과 공동 투자해 회사를 세웠다. 2007년에 5억달러의 자금을 모았고 작년 초에는 일본 소프트뱅크와 싱가포르 테마섹 등을 통해 7억달러의 자금을 모았다.

앞서 원윈쑹은 중국 대형 은행과 증권사를 고객으로 한 통신장비 회사를 창업해 매각했으며, 중국 최대 민영 조선회사인 장쑤룽성에 골드만삭스와 함께 투자하는 등 기업공개(IPO)를 앞둔 기업들에도 투자했다.

 

# 중국 국영증권사인 중신증권 산하의 중신산업투자기금(中信産業基金) 관리유한 공사도 비슷하다. 지난해 2월 90억위안(약 1조6000억원) 규모의 사모펀드를 결성해 중국내 최대 규모의 사모펀드 기록을 세운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정치국 위원 겸 선전부장(장관)인 류윈산의 아들인 류러페이 회장이다.

중국 국영회사로 최대 생명보험회사인 중국인수(人壽)의 최고투자담당임원(CIO)을 지낸 금융전문가 출신의 류러페이는 중신산업투자기금을 2008년 말에 세웠다. 그는 중국 인터넷 포털 시나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중신산업투자기금을 미국의 KKR 같은 세계 정상급 사모펀드로 키우겠다”며 “90억위안의 사모펀드는 성장기와 성숙단계에 있는 기업에 집중 투자해 수익률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러페이 회장은 인프라펀드, 부동산펀드, 헤지펀드 등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 (컬러)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아들 후하이펑(胡海峰). 퉁팡그룹웨이스공사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아버지의 후광을 이용, 중국 공항의 보안검색 스캐너 공급 계약을 따내는등 각종 이권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 (흑백)중국 사모펀드시장 ‘태자당 3인방’(왼쪽부터 원윈쑹, 류러페이, 리천푸).
- (컬러)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아들 후하이펑(胡海峰). 퉁팡그룹웨이스공사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아버지의 후광을 이용, 중국 공항의 보안검색 스캐너 공급 계약을 따내는등 각종 이권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 (흑백)중국 사모펀드시장 ‘태자당 3인방’(왼쪽부터 원윈쑹, 류러페이, 리천푸).

이런 사례는 중국 대륙에서 황금알을 낳는 ‘알짜’ 자본 시장을 ‘태자당(太子黨·princeling)’이 거의 장악하고 있다는 유력한 증거들이다. 태자당은 중국 공산혁명 원로들의 자제나 친인척을 일컫는 용어인데, 지금은 중국 고위층의 자제들이란 뜻으로 폭넓게 쓰이고 있다.

태자당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이는 주룽지 전 총리의 아들인 레빈 주(중국명 주윈라이·朱雲來·54) 중국국제금융공사(CICC) 총재와 상하이 알리안스투자(SAI)를 경영하고 있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장남인 장멘헝(江綿恒·59)이다. 특히 CICC는 1995년 중국건설은행과 모건스탠리가 합작해 세운 회사로 2009년 중국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34.4%의 비중을 차지한 잘 나가는 투자은행이다.

1998년부터 CICC의 경영에 참여해온 레빈 주는 이후 CICC의 전권을 행사하며 중국 기업들의 해외 주식 발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실력자이다. 레빈 주는 미국의 경제전문지인 ‘포춘(Fortune)’이 선정한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최고 재벌 25인 가운데 15번째 인물로 꼽혔을 정도로 중국 국제금융계에서 영향력이 막강하다.

그의 연간 수입은 2006년 1000만달러(약 112억원)에서 2007년에는 1700만달러로 급증했다. 모건스탠리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기 전인 2007년 말 당시, CICC의 지분을 처분하려하자 레빈 주는 이전에 전체 주식의 20% 상당에 대해 유령주(影子股票·실제 발행하지 않고 서류로만 약속한 의결권 없는 주식)를 발행해 이를 사실상 무산시키는 ‘재주’를 발휘했다. 주룽지 전 총리의 딸이자, 레빈 주의 동생인 주옌라이는 중국은행(BOC) 홍콩발전기획부 사장으로 근무하다가 지난해 5월말 총재 보좌역으로 승진했다.

장멘헝은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의 드렉셀대학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기술 전문가로 중국과학원 부원장을 거쳐 현재 상하이에서 SAI라는 투자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는 중국에 진출한 외국인들에게 합작 파트너 1호로 한동안 지목되어온 ‘실력자’이다.

현역 최고위층 자제로는 금융계에서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사위인 윌슨 펑(중국 명 펑사오둥·憑紹東)이 돋보인다. 우방궈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국회의장 격으로 중국 권력서열 2위의 고위 인사다. 메릴린치 차이나의 대표이사를 지낸 윌슨 펑은 2006년 당시 세계 최대의 기업공개(IPO)였던 중국 공상은행(ICBC)의 홍콩증시 상장 주간사 역을 메릴린치 차이나가 떠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8년 메릴린치에서 사임한 윌슨 펑은 현재 대형 신재생 에너지 관련 핵에너지 회사와 합작한 투자전문 금융기업 중광핵(中廣核) 산업투자기금의 회장을 맡고 있다. 이 기금은 중국 국무원이 승인한 국가 산업투자기금의 하나로 사모형식으로 투자금을 모았는데, 작년 10월까지 금액만 100억위안(약 1조6000억원)에 이르고 있다. 중국 솽웨이투자공사(中國雙維投資公司) 중국은행, 국가개발은행, 중국 건설은행투자공사 등이 주 투자자들로 알려지고 있다.

이외에도 리루이환 전 정협 주석의 아들인 조지 리는 글로벌 금융기관에서 근무하다 독립해 지금은 사모펀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둘째 아들인 제프리 리도 사모펀드를 만들기 위해 최근 다국적 제약회사의 중국 총재직을 던졌다. 중국 공산당의 선전·언론·이데올로기·민족문제·통일전선을 총괄하는 정치국 상무위원(권력서열 5위)인 리창춘의 딸인 리퉁은 중국은행(BOC) 홍콩지점에서 사모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국무원 현직 부총리인 쩡페이옌의 아들인 제프리 쩡(중국명 쩡즈제·曾之傑)은 베이징의 카이신(改信) 창업투자관리공사의 회장 겸 CEO와 중국 특수 물류주식회사 사장직을 겸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리펑 전 총리의 자제들이 중국의 전력 관련 기업들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그의 장남인 리샤오펑은 화넝국제그룹(華能國際集團)의 회장 겸 국영 중국전력공사 부사장이다. 딸인 리샤오린은 중국전력 국제유한공사의 집행이사와 사장을 겸하고 있다.

리창춘 상무위원의 아들인 리후이디(41)도 지난해 봄 비리 혐의로 면직된 중국 최대 통신업체인 차이나모바일의 부총재로 전격 승진했다. 미국 유학 후 홍콩 이공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리후이디는 중국 레노버모바일의 부총재를 거쳐 2008년 7월부터는 차이나모바일의 총재보로 재직하고 있다.

후진타오 현 국가주석의 장남인 후하이펑도 2009년 말 칭화대학 부비서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정보기술(IT)기업인 퉁팡그룹웨이스공사(同方集團威視公司)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아버지의 후광을 이용해 중국 공항들의 보안검색 스캐너 공급 계약을 따내는 등 각종 이권을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에서 ‘태자당’의 득세는 국영기업이 주도하는 중국적 특색의 자본주의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중국 시장을 공략해 차이나 비즈니스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벽(壁)’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