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건륭제도 반한 맛과 향



“진실로 좋은 술이라” 품제 내려



- 양허쩐 지역 특유의 점토를 이용해 만든 양하대곡주 발효 구덩이.

<일러두기>

* 현대 중국의 인명 및 지명, 중국의 고유명사는 중국어 발음대로 표기했다.

 단,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고유명사는 한자 독음대로 표기하였다.

 <예> 毛澤洞 마오쩌둥 西安 시안 / 長江 장강 杏花村 행화촌

* 술 이름의 경우에도 중국어 발음대로 표기해야 하나 우리에게 익숙한 술에 한해서만 그렇게 했다.

 여타의 술은 발음이 어렵거나 의미 전달이 잘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한자 독음으로 표기했다.

 <예> 茅台酒 마오타이주 五粮液 우량예 / 黃鶴樓酒 황학루주 劍南春 검남춘

* 신 중국 수립(1949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의 인명 및 지명은 한자 독음대로 표기했다.

 <예> 李白 이백 杜甫 두보 南京 남경

- 양하남색경전.

 ‘양하남색경전(洋河藍色經典: 양허난쓰징띠옌)’이란 묘한 이름을 가진 중국 배갈이 있다. 상하이나 쑤저우(蘇州) 지역에서는 물론 특히 난징(南京)에서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어김없이 나타나는 술이 바로 파란 병의 이 배갈이다. 우리나라의 술꾼인 경우, 처음 이 술을 대하면 술 이름에 기이함을 갖고 술병을 보고 마음이 동하며 술맛을 보고 반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경전’이라고 해서 대장경이나 논어, 주역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우리 식으로 번역하자면 이는 ‘클래식(classic)’쯤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곽을 따고 술병을 꺼낼라치면 왜 남색(藍色)이란 말을 썼는지 까닭을 알 수 있다. 술병 자체가 짙은 푸른빛이며 모양새는 외면의 굴곡이 없는 코카콜라 병을 떠올리게 한다. 코카콜라 병 자체가 그런 의도로 디자인된 것처럼 이 양하 술은 아예 푸른 색 드레스를 걸친 여인의 부드러운 뒷 자태를 광고에 써먹으면서 술병과 여체를 직접적으로 연관 짓는다.

술의 빛깔은 투명하며 깨끗하다. 여느 배갈이 그렇듯이 처음 코끝에 느껴지는 향은 강렬하지만 이내 순한 느낌으로 바뀐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 또한 처음에는 진하고 예리하지만 곧 감치는 단맛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술을 넘긴 뒤 입안에 남는 여운의 맛은 상쾌하며 감치는 향이 오래 남는다. 이로써 농향형(濃香型) 대곡주(大曲酒)가 가져야 하는 색(色), 향(香), 선(鮮), 농(濃), 순(醇) 다섯 가지의 격을 모두 갖추는 것이다.

대곡주는 보리, 밀, 완두 등을 원료로 한 누룩에 미생물을 자연 배양시켜 당화발효제로 쓴다. 자연 발효와 장기 저장으로 인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지만 그만큼 술맛은 좋아진다. 우리나라에서는 누룩을 ‘(국)’자로 표기하지만 현대 중국에서는 ‘曲(곡)’자를 쓴다. 그러니까 ‘양하대곡주’란 사용 누룩에 따른 이 지역 술의 통칭이며 ‘양하남색경전’은 개별 술의 브랜드다.

이방인들이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양하(洋河)’란 글자가 있다고 해서 다 같은 회사의 술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중국 명주로 손꼽히는 양하대곡주의 산지인 장쑤성 양허쩐에는 수십 개의 술 회사들이 있으며 이들 대부분이 ‘洋河0000’ 식의 상표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현지에서도 자주 손님 접대용 또는 선물용으로 쓰고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양하귀빈(洋河貴賓)’ 같은 술이 그 대표인데 이도 꽤 좋은 술이지만 양하남색경전을 만드는 회사와는 전혀 별개 회사의 제품이다. 이에서 보듯이 아직 중국에는 우리네가 생각하는 바와 같은 엄격한 상표권 개념이 없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하대곡주(洋河大曲酒)는 고유명사이면서도 고유명사가 아닌 셈이다. 술을 빚는 방법에 따른 보통명사라고 함이 적당하다. 그러니까 양하 지역에서 대곡(밀 누룩)으로 빚은 술은 모두 양하대곡주이며 상표에서도 한두 글자만 다르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다.

2004년 9월, 난징의 부자묘(夫子廟) 근처의 한 식당에서 나는 처음 이 술을 맞이했다. 나보다 먼저 난징에 와서 한국어 선생을 하고 있던 내 제자가 저녁을 대접한다고 초대한 자리였다.

공자 사당 근처서 처음 만난 양하 술

우리 대학과 결연한 이곳 대학에 한국유학과가 생겨 130여 명의 학생이 입학한 터였기에 첫 해 한 해만이라도 전임교수가 와서 한국어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고 해서 나는 짐 보따리를 싸서 중국으로 건너갔다. 현지에서 1년간 한국어를 배운 뒤 한국의 우리 대학에 와서 3년 동안 전공을 배운다는 1+3제도 유학사업의 성패는 사실 한국어 교육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9월초 개학과 함께 곧장 수업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실정은 그게 아니었다. 신입생들은 9월 한 달 내내 구보, 행진 등 집체훈련만 받을 뿐 교실에 들어가는 일이 없었다. 따라서 나는 외국인교수 기숙사에서 빈둥거릴 뿐 할 일이 없었다. 중국말이라곤 고작 ‘니하오’, ‘셰셰’ 정도밖에 할 줄 모르니 혼자 시내를 쏘다니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넋 놓고 앉아 있기만 하면 몸만 버리겠다는 생각에 아침에는 운동장을 뛰었고 주말이면 쯔진산(紫金山) 등산을 했다.

내가 가쁜 숨을 쉬며 운동장을 뛰고 있는 때면 머잖아 내 교실에서 “저는 사과를 좋아합니다”, “이것은 얼마입니까?”를 배워야 할 중국 아이들은 운동장 한 쪽의 국기 게양대에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국가가 울려 퍼지고 국기에 대한 맹세 같은 것이 끝난 뒤에도 그들은 30~40분 동안 꿈쩍도 않았다. 국기가 올라갈 때만 나는 잠깐 멈춰 서서 예를 표했을 뿐 이내 뛰고 또 뛰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들을 보고 있었고 그들도 나를 보고 있었다. 한국을 가르치겠다고 온 나, 한국을 배우겠다고 온 그들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난징의 한 캠퍼스에서 뜀박질과 부동자세의 대결 양상을 통해 이루어졌다.(어느새 이들은 한국에서의 3년 과정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갔으며 이후 내 술 취재 여행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돼주었다)

대학 다닐 때 나한테서 한 학기 동안 한문을 수강한 제자는 중국어에 능통했지만 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교수님, 술은 어떤 걸로 할까요?” 녀석이 날 쳐다보는데 딱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오타이, 우량예 같은 배갈은 알고 있었지만 얻어먹는 처지에 그런 비싼 술은 시킬 수 없었다. 메뉴판을 보며 적당한 가격의 술을 찾았고 그 뒤 종업원을 불러 설명을 듣곤 했는데 그때 딱 걸린 것이 양하남색경전이었다.

예쁜 술병에 감탄했으며 혀끝에 달라붙는 술맛에 반했다. 좋은 배갈은 금세 취했다가도 언제 마셨냐 싶게 가뿐히 깨는 법, 이 술도 어김이 없었다. 장강(長江)의 물고기를 비롯한 좋은 안주로 술 한 병을 비우고 나와 이제는 관광객들의 놀이터로 변한 공자님 사당 앞 선창에서 진회하(秦淮河)의 놀잇배들을 보며 녹차를 마시는 때에는 벌써 취기는 없고 술 향기만 입가에 남아 있었다.



- 양허쩐 시내 도로를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술 마을 양허쩐으로 가는 길

난징에서 양허쩐(洋河鎭)으로 가는 길은 멀다. 직접 가는 차편이 없기 때문에 먼저 고속도로를 달려 수치엔(宿遷)으로 가야 한다. 도로는 잘 정비돼 있지만 버스가 낡은 편이라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 게다가 고속도로에서도 예사로 사람을 태우고 내리는지라 세 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던 수치엔을 네 시간 넘게 걸려 당도했다. 도로 옆으로는 미루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데 이들 나무는 사방의 푸른 보리밭들까지 에워싸면서 끝없는 들판을 덮고 있었다. 나무숲 사이로는 겹겹이 물길이 이어지고 물길 너머로 남루한 농가들이 엎드려 있다. 수치엔에서 양허쩐까지는 택시로 30여분 거리.

양하진(양허쩐)은 동한(東漢, 서기 25~220년)시대부터 군사상 거점으로 매우 중요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역대의 군사 전략가들이 말한 황회지간(黃淮之間: 황하와 회하의 사이)의 군사 요처 백양관(白洋關)이 바로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양하진은 고황하(古黃河: 황하의 지류)와 회하(淮河: 하남 동백산에서 발원하여 홍택호를 거쳐 양자강에 합류하는 전장 1000km의 강)의 중간에 있으며 남북 대운하(항주와 북경을 잇는 고대 운하)와도 매우 가깝다. 수륙교통이 크게 발달한 곳이기에 상업적 번영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으며, 당대(唐代)에 이미 양조장이 생겼다.

명대(明代)에는 아홉 성(省)의 대상인들이 출자를 해서 이곳에 상인회관을 건립하기도 했다. 상거래와 술장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전성기 양하진에는 전문 양조장만도 15곳이 있었다고 한다. 각지에서 술 빚는 전문가들이 이곳에 몰려들었으며 이로써 좋은 술이 빚어지고 술의 아름다움을 서로 비교하게 되었다.

백양하 아래 봄물이 푸른데 (白洋河下春水碧)

백양하는 술 사러 온 이들로 북적이네. (白洋河中多沽客)

봄바람 불어 버들가지 새로 푸른데 (春風二月柳條新)

집 그리운 나그네는 천 리를 떨어져 있구나. (却念行人千里隔)

이 시는 명대 시인 추집(鄒緝)의 ‘백양하를 노래하며(白洋河)’의 한 부분이다. 추집은 강서(江西) 길수현(吉水縣) 사람인데 생몰연대는 확실치 않다. 명 3대 황제 성조(成祖) 때 벼슬을 했으며 성조가 남경에서 북경으로 수도를 옮기려고 할 때 이를 극력 반대한 인물로 유명하다. 아직은 남경이 나라의 수도이던 때, 그가 양하진을 다녀갔음은 시로써 추측할 수 있다. 간소한 시구에서도 당시 양하진의 주업이 얼마나 번성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3년 만에 다시 한국인을 태워본다는 택시기사는 갑자기 큰길을 버리고 차 한 대 겨우 달릴 수 있는 시멘트 포장의 농로로 접어든다. 아연 미루나무들이 터널을 이루는 끝없는 길이다. 석양 무렵. 세상 끝으로 가는 길 같은 이 길 너머에 연기를 피워 올리는 꿈같은 술 공장이 있을 듯싶다.

청대 초, 백(白)씨 성을 가진 산서성 상인 하나가 이곳에 왔다. 그는 이곳의 샘물이 달고 순하며 부근의 수수가 실한 것을 보곤 술을 빚기에 좋은 땅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제 고장의 전문가를 불러 양조장을 차렸다. 술을 만들고 보니 과연 그 향과 맛이 빼어났다. 어느새 나는 그 백씨의 양조장을 찾아가는 상념에 젖어 있었지만 사실 택시기사는 큰길의 통행료를 아끼려고 그 길을 우회하고 있었다.



- 술의 도시 양허쩐 주위의 농촌마을 풍경.

푸른 깃발과 술 향기 가득한 술 마을 

제위(帝位) 중 다섯 번이나 남순(南巡)을 했던 청(淸)의 강희 황제는 두 차례 양하에서 행차를 멈추고 ‘술맛을 보았으며(知味)’ 천하의 좋은 술은 다 마셔본 건륭 황제는 천조하(遷河)의 행궁에서 이 술을 마셔보곤 친히 붓을 들어 ‘양하대곡주, 맛과 향이 진하니 진실로 좋은 술이라(洋河大曲酒 味香醇 眞佳酒也)’라는 찬사를 적었다. 봉건사회에 있어서 제왕의 품제(品題)를 얻었으니 양하대곡주는 즉시로 백배의 몸값을 올릴 수밖에.

양하대곡주는 정선된 최고급의 수수를 원료로 한다. 여기다 보리와 밀, 그리고 완두를 재료로 해서 높은 온도에서 누룩을 만들어 당화발효제로 쓴다. 양하진의 이름 높은 미인천(美人泉)에서 길어 올린 맑고 깨끗한 샘물을 사용하는데 이 물은 지극히 청결하며 순수한 단맛을 지니고 있다. 또 이 지역의 토질은 살빛 같은 홍색을 띠는 점토인데 이를 발효 구덩이를 만드는 데 이용하면 술을 걸러 증류를 하는 과정에 향기와 단맛을 돌출시켜 술의 독특한 맛과 향을 만드는 데 이바지한다.

술 향기에 이끌려 말에서 내리고 (聞香下馬)

술 맛을 보고자 수레를 세운다네. (知味停車) 

술 향기 하늘에 솟구치니 (酒味沖天)

나는 새도 그 향을 맡고 바람이 된다네. (飛鳥聞香化風)

술지게미 강에 흘러드니 (糟粕入水)

노닐던 물고기 그 맛을 얻어 용이 된다네. (遊魚得味成龍)

제 고장 술을 이렇게 자랑했듯이 양하진은 거대한 술 도시다. 남색경전을 알리는 푸른 깃발과 함께 술 냄새가 온 거리를 덮고 있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공장을 연상케 하는 술 공장은 경비도 삼엄하다. 비서실과 홍보실에서 나온 두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 이곳 저곳을 둘러보는 사이 내 몸도 금방 배갈 냄새에 젖어버린다.

양하대곡주는 1979년 제3회 전국주류평가회에서 금장(金章)을 받으면서 ‘중국 명주’가 되었으며 이후 제4회, 제5회 대회에서도 연속 금장을 받았다. 참고로, 양하남색경전에도 세 종류가 있는데 최고가인 ‘몽지남(夢之藍, 중국 시중가 600위안 정도)’을 비롯하여 ‘천지남(天之藍, 270위안 정도)’, ‘해지남(海之藍, 170위안 정도)’이 그것이다. 남색경전을 마실 때는 재미 삼아서라도 지금 내가 마시는 이 푸른 술병의 술이 꿈의 것인지 아니면 하늘, 바다의 것인지 살펴볼 일이다.

최학 소설가·우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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