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비수기에 물량 확보해서

   

성수기에 저가로 판매해 ‘대성공’

- 중국 베이징 시내 마뎬차오 부근에 있는 전자제품 양판점.
- 중국 베이징 시내 마뎬차오 부근에 있는 전자제품 양판점.

지난 8월25일 저녁 중국 장쑤성 난징시 중심부의 쑤닝전기 본사 앞 남경중산릉 광장. 올해로 12회를 맞은 ‘쑤닝의 여름(蘇寧之夏)’이란 대형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쑤닝의 여름’은 중국 최대 민영 유통 기업인 쑤닝전기가 한 해 에어컨 판매 성수기를 마감한 다음 임직원들의 단합과 노고를 격려하는 자리다.



이날 행사에는 본사 임직원 6000여명과 전국 300여개 도시에 진출한 1200여 점포 대표자들과 협력회사 관계자 등이 참가했다. 인터넷과 유튜브 등으로 실시간 중계된 이 행사는 3만여명의 쑤닝 임직원들이 동시 시청했다고 중국 언론들은 전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꿈을 펼쳐라’라는 올해 주제에 맞춰 7000여명의 참가자들이 형형색색의 풍선 7000개를 본사 상공 위로 날리는 순간이었다.



장진둥 회장은 “중국 내 쑤닝전기 매장 수를 현재 1500개에서 2020년에는 3400개로 늘리고 지난해 총 755억 위안(약 12조8000억원)이던 매출액도 2020년에 6800억 위안(약 114조원)으로 키우겠다”며 ‘새로운 10년, 새로운 역정’ 청사진을 선포했다.



1987년 당시 스물다섯 살이던 장진둥 회장이 형 장궤이핑과 함께 10만 위안(약 1800만원)의 자금을 갖고 난징시 번화가에 에어컨 대리점을 차린 후 3년 후인 1990년 쑤닝자오가전유한회사로 시작한 쑤닝전기는 요즘 중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민영 기업이다.



단적으로 2009년 6월 쑤닝전기는 일본의 소매 가전판매회사인 라옥스(Laox) 지분 27%를 사들여 최대 주주가 됐다. 이 인수합병은 중국 기업이 일본 상장기업을 인수한 첫 사례로,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산업의 혈맥’으로 불리는 유통시장까지 접수했다는 점에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쑤닝전기는 경영권 분쟁 등으로 불협화음을 빚은 궈메이전기를 제치고 중국 가전 양판점 업계 1위 자리에 올랐다. 종업원 수만 17만명이며, 2008년 각각 498억 위안과 21억 위안이던 쑤닝전기의 총매출액과 순이익은 지난해 755억 위안과 40억 위안으로 52%, 90%씩 늘었다.



쑤닝전기는 중국의 가전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거인 같은 존재로 중국 내수 시장에 진출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삼성전자, LG전자, GE, 파나소닉 같은 글로벌 기업들에게 상품 판매와 관련해 사활적 열쇠를 쥐고 있는 기업이다. ‘쑤닝 모델’로 불리는 쑤닝전기의 유통 전략은 중국 가전 유통의 교과서로 꼽힌다.

- 2004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가전제품 전시회에 출품된 중국산 냉장고.
- 2004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가전제품 전시회에 출품된 중국산 냉장고.

‘유통업 우위 판짜기’ 전략

쑤닝전기는 설립 초기 ‘춘란 에어컨 난징 전매점’이라는 간판을 달고 춘란 에어컨 한 품목만을 취급했다. 춘란 에어컨은 장쑤성 타이저우에 위치한 국유기업으로 1990년대 에어컨 시장 점유율 1위(30%)를 유지했었다. 장진둥은 사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박리다매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 초기에는 학교, 기업 등 기관을 대상으로 에어컨 단체 판매에 주력했다. 그는 사업 범위를 넓혀 수입 에어컨도 취급했다.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에어컨은 당시 중국에서 사치품으로 규정돼 에어컨 구매자들은 별도의 설치비를 내야 했다. 높은 전압이 필요해 전용선을 사용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전기세를 추가 부담하기도 했다.



이런 특수성으로 인해 에어컨의 주요 판매 경로는 일부 국유기업이 독점했고, 여름 성수기에는 대형 국유 유통상이 아니면 물량을 받을 수 없었다. 비수기인 겨울철에는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직원에게 장기 휴가를 주는 기업들도 제법 많았다. 쑤닝전기는 이런 계절적 특수성과 시장 상황을 꿰뚫고 새 수익모델을 성공적으로 마련했다. 즉, 제조회사와 계약을 맺어 비수기인 겨울철에 생산되는 물량을 저가로 확보한 것이다. 장진둥으로서는 수요 예측이 잘못돼 과다한 물량을 구매할 경우 자금난에 봉착할 수 있고 1년 후 여름 날씨를 예측해야 하는 위험 부담이 있어 큰 모험이었다.



다행히 1992년부터 시작된 ‘입도선매’ 방식은 매년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후 다른 유통업체들도 이를 모방했다. 이를 통해 쑤닝전기는 제조 회사에 대해 가격 주도권은 물론 물량 확보를 통한 시장 주도권까지 거머쥘 수 있게 됐다. 대표적으로 쑤닝전기는 1990년대 내내 생산자와 판매자가 만나 구매 조건을 결정하는 일종의 오픈 마켓인 띵훠훼이(訂貨會)에서 다른 국유 및 민영 유통 경쟁사들보다 좋은 조건으로 대규모 계약을 맺었다.



쑤닝전기는 공격적인 광고 마케팅도 구사했다. 당시에는 도시민이 가전제품을 살 때에는 소속 국유기업에서 구매권을 받아서 살 만큼 계획경제 잔재가 남아 있어 가전유통 기업은 굳이 광고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차별화된 마케팅 기법이었다. 쑤닝전기는 1993년 1월 ‘시원한 여름을 보내려면 쑤닝에서 에어컨 구매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50만 위안의 광고비를 쏟아 부었다. 이 마케팅은 즉각 효과를 발휘해 그해 1~4월 에어컨 판매액이 9000만 위안을 기록하며 선구매량을 초과달성했다.



이때부터 전국 에어컨 및 가전 메이커들은 쑤닝전기를 주목하게 됐고 쑤닝전기 매장에 줄지어 납품하려고 했다. 쑤닝전기는 여기에다 박리다매 전략을 적용해 구입 단가 및 소비자 가격 하락과 상품 판매 증진이라는 선순환 효과를 증폭시켰다.



중국 소비시장의 특징 중 하나는 시장 단절이다. 지역 내 기업 제품 판매가 세수와 취업에 직결되고, 지역 내 유통기업이 해당 지방정부의 통제 아래 있어 원천적으로 타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진입이 힘든 것이다. 특히 거의 모든 성급 지방정부가 가전 판매사와 유통사를 소유한 1990년대에 쑤닝전기가 전국적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쑤닝전기는 제조사와의 협력, 규모의 경제 모색, 고객 서비스 극대화라는 세 가지 경로로 돌파했다.

- 쑤닝전기 장진둥 회장.
- 쑤닝전기 장진둥 회장.

전국적인 판매망 구축…고객 만족 제일주의 실현

제조사와의 협력은 신뢰 구축으로 물꼬를 텄다. 쑤닝전기가 얼마를 버는지를 제조사에 정직하게 공개했으며 이를 확인한 제조회사는 더 좋은 가격조건으로 제품을 공급하게 됐다. 또 다른 지역 에어컨 제조회사인 산양, 화링, 커롱, 메이디 등으로 구매선을 넓혀 규모의 경제도 달성했다. 그 결과 소비자는 쑤닝전기 한 매장에서 전국 모든 브랜드의 에어컨을 비교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에어컨 설치 후 작동을 확인한 고객이 확인서를 제출하면, 제조회사가 쑤닝전기에 설치비를 후 지급하는 방식으로 고객 서비스도 강화했다. 고객은 추가 설치비 부담이 없고, 제조회사는 설치비 결제를 에어컨 판매 시까지 유보할 수 있어 고객과 제조회사 모두 ‘윈-윈’ 할 수 있었다.



고객 만족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 쑤닝전기는 중국 전역에 30개의 고급 기술 서비스센터를 포함해 1800개의 AS네트워크를 두고 있다. 여기에 종사하는 AS전담 기술자만 500명의 고급 엔지니어를 포함해 1만5000명에 달한다.



2007년에는 난징시에 1000명의 직원이 전국 각지의 불만 및 문의 상담 전화를 24시간 접수 처리하는 중국 최대 전화 콜(call)센터를 준공했으며 1000건의 통화를 동시 접수하는 핫라인 전화도 전국 공통으로 통일해 운용 중이다.



현재 쑤닝전기는 WMS TMS 같은 첨단 IT시스템을 이용해 반경 80~300km 이내 거리 지역까지 하루 17만개 이상의 품목을 하루 24시간 내에 즉각 당일 배송할 수 있는 공급망을 갖춰놓고 있다. 이를 위해 상하이 톈진 선양 청두 허페이 쉬저우 우시 등에 현대화된 첨단 물류기지를 추가 건설하거나 전면 개보수해 전국에 60개의 대형 물류센터를 2015년까지 짓는다는 계획이다. 



1996년 쑤닝전기는 경영 위기를 맞았다. 가장 신뢰했던 파트너인 춘란 에어컨이 10억 위안을 투자해 직영점 3000개를 개설하기로 결정한 탓이다. 쑤닝전기는 이후 여러 가전 메이커들을 대상으로 소량 구매하는 방식으로 생존 전략을 바꾸었다. 또 제조회사에 직접 지분을 투자해 전략적 동맹관계를 구축하는 한편, 에어컨 전문 매장 대신 모든 백색 가전을 취급하는 종합가전양판점으로 거듭났다. 1999년 12월 난징에 종합가전양판점 1호를 연 쑤닝전기는 이듬해 제2의 창업 선포식을 갖고 체인점 확대에 박차를 가했다.

- 2002년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국제가전제품전시회.
- 2002년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국제가전제품전시회.

‘중국의 월마트’ 글로벌 종합가전양판점으로

2001년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은 쑤닝에게 또 다른 위협이었다. 중국 유통업은 정해진 일정표에 따라 대외 개방이 예정됐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 장 회장은 쑤닝전기점그룹의 증시 상장 작업에 착수, 몸집 불리기와 투명하고 강한 기업 만들기에 나섰다.



가전 제조업체들의 일부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장진둥은 2004년 7월 양판점 기업으로는 처음 쑤닝전기를 선전 증권거래소에 상장시켰다. 최초 발행 주식은 2500만 주에 총 공모액은 3억9600만 위안에 그쳤으나 증자를 통해 현재 총 주식 수는 7억2000만 주로 늘었다.



쑤닝전기의 경쟁력은 ‘3C+’ 형태로 매장을 만들고 시장 환경과 수요에 능동적이고 기민하게 대응한다는 점이다. 쑤닝은 2003년 3월 난징에 연 3C 매장 1호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조명기구, 욕실설비, 헬스용품 판매까지 범위를 넓힌 3C+ 매장을 오픈하고 있다.



특히 쑤닝전기는 모든 매장을 플래그십 점포, 일반 이웃 점포, 전문 매장, 부티크 매장 등 4가지 형태로 나눠 해당 지역 사정과 점주 및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 고려해 최적의 판매 효과를 낼 수 있는 매장을 짓고 있다.



2001년 40일이던 쑤닝전기의 매장 설립 ‘주기’는 2002년에 20일, 다음 해는 일주일, 2004년에는 5일까지 단축됐다. 2005년에는 주요 도시에 하루 만에 22개의 매장을 동시에 열어 경쟁사인 궈메이전기의 하루 11개 매장 개설 기록을 갈아치웠다. 쑤닝은 이를 바탕으로 브랜드, 가격, 서비스 등 3개 방면에서 최적의 서비스 제공을 시도하고 있다. 고객들에게 금융회사들과 공동으로 연합카드제, 회원전용 구역 판매, VIP 쇼핑, 방문 판매, 품질보증 기간 연장, 가전제품 전문 컨설팅과 더불어 국내외 전자 메이커들에 대한 공급가격 인하 압력을 가하고 있다. 대학교수, 마케팅 전문가, 사회단체 등과 수시로 포럼과 세미나 등을 열어 최신 업계동향을 흡수하고 있다.



쑤닝전기의 당면 목표는 월마트 같은 글로벌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이런 구상 아래 쑤닝은 국가와 근로자, 협력업체에 모두 도움이 되고 공생할 수 있는 기업이 된다는 취지 아래 사회공헌(CSR)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대표적으로 2002년 4월 쑤닝전기는 난징에서 ‘4050’ 재취업 인력시장을 열어 1000여명의 고령 실업자를 채용했다. 2002년부터는 ‘1200’ 프로젝트를 실시해 전국 대학을 돌며 매년 1200명의 졸업생을 뽑고 있다. 지금까지 이를 통한 채용인원만 1만명이 넘는다. 2006년부터는 모든 임직원들이 매년 하루치 월급을 모두 자선사업에 기증하는 ‘1+1 햇빛’ 프로젝트를 시작, 전국 점포에 500개의 자원봉사대를 조직해 연간 12만명이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