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적인 주류인 사케는 어느 시점부터 내수부문의 판매와 소비 모두 하향 곡선을 그리게 되었다. 일본의 차(다도) 문화가 효과적으로 서양의 대표적 음료인 커피의 상륙을 막은 것에 비하면, 사케는 선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젊은이들은 전반적으로 주류 소비를 줄여가고 있고 이 시장마저 맥주와 와인 등 서양주류들이 잠식해 가고 있다.

이는 최근 한국의 막걸리 붐과는 대조적인 것으로서, 통계적 수치를 통해 그 정도를 실감할 수 있다. 1975년 사케의 소비는 최대 167만 킬로리터였으며, 2010년에는 58만 킬로리터로 급격히 감소했고, 같은 기간 사케 양조장의 수 또한 3000여개에서 1500여개로 줄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사케 산업을 활성화시키려는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의 노력도 대단하다. 심지어 일본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첫 건배를 지역 전통주로 한다’는 생소한 조례를 경쟁적으로 제정하고 있다.

- 왼쪽은 아사히 슈죠의 대표적 사케 브랜드 ‘닷사이’
- 왼쪽은 아사히 슈죠의 대표적 사케 브랜드 ‘닷사이’

사케 산업 불황 속에서 승승장구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교토, 사가, 가고시마, 마야자키 등 13개 시에서는 이미 지역 특산주를 건배주로 쓰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그렇다면 일본의 사케 산업은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급격히 시장이 축소되고 있고, 어떤 전략으로 현재의 불황을 헤쳐 나가려 할까. 또한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주 막걸리 산업은 사케의 흥망성쇠를 통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야마구치현의 사케 양조사인 아사히 슈죠(朝日酒造)는 전반적인 사케 산업의 불황 속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9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이 회사는 두바이와 프랑스를 포함한 18개국으로 수출하고 있으며, 수출량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정도다. 이 회사의 주력상품은 닷사이라는 상표의 쥰마이 다이긴죠주로서 50% 이상의 쌀 도정을 통해 주조하게 된다. 쌀 도정률이 높을수록 더 깊고 깨끗한 맛을 내는 것이 쥰마이 다이긴죠주의 특징이다. 1984년 현재 사장인 사쿠라이 히로시가 아사히 슈죠를 가업으로 물려받았을 당시 회사의 매출은 9700만엔이었으며, 연간 사케 생산량은 126킬로리터였다. 2010년은 매출 13억엔과 생산량 776킬로리터였으며 2013년에는 39억엔 매출과 2052킬로리터를 생산했다. 숫자만으로는 보면 이 회사는 완벽한 환골탈태를 한 것으로 보이며, 쇠퇴하고 있는 사케 산업을 감안하자면 경쟁회사들과 분명히 다른 상대적 경쟁력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다르게 한 것은 무엇일까?

아사히 슈죠는 다른 양조업체들이 국내 경쟁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 해외진출을 지향했다. 현재도 회사의 최대 목표는 해외시장 개척이다. 또한 단순히 기존의 사케 애주가들을 목표로 하지 않고, 사케를 한 번도 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사케가 다가갈 수 있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지향했다.

아사히 슈죠의 최초 해외진출은 2002년 대만 판매로부터 시작되었다. 아시아 국가라는 근접성이 있으며 대만인들이 사케에 대한 생소함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최초 진출지로 선정했던 것.

- 2012년 2월 서울 성북동 일본대사관저에서 열린 ‘사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각자 사케를 한 병씩 들고 있다.
- 2012년 2월 서울 성북동 일본대사관저에서 열린 ‘사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각자 사케를 한 병씩 들고 있다.

미국 내 일본요리 인기와 맞물려 글로벌화 성공
대만에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둔 후에 이듬해인 2003년에는 미국 진출을 시작했다. 미국 진출은 시대를 제대로 읽었던 아주 적절한 전략이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던 미국 내 일본 요리의 인기는 2000년대에 정점을 찍었다. 고급 일식당부터 저렴한 스시바까지 미국의 대도시들은 일식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고,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일식과 잘 어울리는 사케의 판매를 부추겼다. 이렇듯 미국과 전 세계적인 일식 열풍을 등에 업고 사케 마케팅을 펼쳤던 아사히 슈죠는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근시안적인 관점보다 세계적인 트렌드를 관찰하고 이를 마케팅에 접목시켜 성공으로 이끈 아사히 슈죠의 전략은 충분히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해외 진출의 마지막 관문으로서 아사히 슈죠는 프랑스 공략을 시도하게 된다. 프랑스 시장은 절대적 매출 수치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시장으로서 다소 대중적이고 새로운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미국 시장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의 시장이다. 요식업과 와인 등의 식음료 산업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있는 프랑스인들에게 또한 음식과 음료가 생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프랑스인들의 삶 속에 생소한 동양의 주류인 사케를 판매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로 보인다. 올해 상반기에 아사히 슈죠의 첫 번째 판매점 및 바(bar)가 파리에서 개점한다. 이 특정 지점의 성공여부를 자세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세계적인 트렌드와 기회를 모색했던 아사히 슈죠의 또 다른 성공요인은 내수 시장에서 마케팅 트렌드를 읽는 데 성공한 것이다. 1990년대에 야마구치현산(産) 사케는 일본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히로시마현 서쪽지역의 양조업체들이 좋은 사케를 생산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으며 대규모의 양조장은 이 지역에 밀집해 있었다. 야마구치현에 있는 양조장은 상대적으로 소규모였고 양질의 사케보다는 지역주에 가까운 경제성 없는 상품이었다. 하지만 아사히 슈죠는 일본 전체의 경제 트렌드와 소비자들의 소비패턴 변화를 정확히 짚었으며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해 내수시장을 서서히 잠식해 나갔다.

- 소규모 전통 주점인 이자카야가 일본 내에서 인기를 끌면서 이를 기회로 생각한 아사히 슈죠는 도쿄의 이자카야들에 대해 직접 발로 뛰는 공격적인 판매를 시작했다.
- 소규모 전통 주점인 이자카야가 일본 내에서 인기를 끌면서 이를 기회로 생각한 아사히 슈죠는 도쿄의 이자카야들에 대해 직접 발로 뛰는 공격적인 판매를 시작했다.

소규모 전통주점 이자카야 공략
아사히 슈죠가 포착했던 일본 경제 사회적인 변화는 바로 잃어버린 20년을 시작했던 일본 거품 경제의 몰락이었다. 1990년까지의 초호황은 소비자들이 고급 주점과 클럽 등에서 주류를 소비하는 성향을 유지하게 하였지만 90년대 중반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며 이러한 주점 및 클럽 등은 서서히 도시들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따라서 소규모의 전통 주점인 이자카야류가 일본 내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아사히 슈죠는 이를 기회로 생각하고 도쿄의 이자카야들에 대해 직접 발로 뛰는 공격적인 판매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야마구치현 사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고 일본 대도시들에서 점차적으로 아사히 슈죠의 사케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아사히 슈죠는 현대인들의 주류에 대한 인식 변화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 고민으로 인해 상당량의 중요한 정보를 축적하게 되었다. 아사히 슈죠는 이러한 정보들의 의미를 신속히 파악하고 결단력 있는 전사적인 의사결정을 내렸다. 한 예로서 사쿠라이 아사히 슈죠 사장은 일본인들이 더 이상 다량의 술을 마시는 데 음주의 목적을 두고 있지 않음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고, 주류의 향과 맛에서 음주의 즐거움을 추구함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사쿠라이 사장이 사케(쥰마이 다이긴죠)를 주조할 때는 높은 도정률(도정률이 높을수록 사케의 향과 맛이 부드러워짐)을 강조하고 있다.

초기에는 이러한 근본적 생산의 변화에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았다. 높은 도정률을 위해서는 더 많은 손이 가고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이러한 불만도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사쿠라이 사장의 통찰력으로 아사히 슈죠의 공정은 양질의 고 도정 사케를 주조하도록 최적화되었고 이러한 생산 공정은 신세대들의 입맛과 사케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시장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주 막걸리 시장을 살펴보자. 막걸리는 한국인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술이며 농본 사회였던 과거 한반도의 농민들의 정신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한국의 대표 주류다. 비록 소비와 해외 진출 기준으로는 소주가 한국의 대표 술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쌀을 이용한 곡주로서 낮은 도수의 술이라는 것이 일본의 사케와 많은 부분 비슷하다.

또한 꾸준히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던 소주와는 다르게 막걸리는 그 인지도와 인기의 부침이 매우 심했다. 과거에는 일용직 노동자들과 농민들이 육체노동의 피로를 달래는 술이라는 인식이 만연했던 것이 2000년 이후 젊은층을 중심으로 새로운 막걸리 열풍이 불면서, 사람들에게 막걸리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대형 양조업체들은 해외 진출을 꾀했고 이러한 노력이 이웃나라 일본에서 막걸리 열풍을 몰고 올 정도로 순간적인 폭발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막걸리라는 브랜드를 세계화시키는 것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국내 막걸리 브랜드들의 해외 진출 사례와 일본의 아사히 슈죠의 해외 진출 전략을 비교해 보면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사히 슈죠의 경우 해외 진출 전략을 세울 때 세계적으로 변화하는 트렌드를 기반으로 빠른 의사결정을 내렸다. 미국과 서방 국가들에서 일본음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일식과 어울리는 일본 사케를 공격적으로 판매했다. 해외 진출 자체가 리스크일 수도 있는 소규모 기업들이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첫째로, 트렌드의 변화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고 둘째로, 믿음에 기반해서 빠르게 움직이는 신속한 의사결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 막걸리의 해외 진출은 사케의 해외 진출과 좀 다른 면이 있다. 트렌드를 읽거나 해외 소비자들의 니즈와 무관하게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팩트를 기반으로 해외 진출을 도모했다. 물론 전사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우리와 식생활이 비슷한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와인과 사케 등의 주류와 대비해서 경쟁을 하기엔 역부족이었고 준비도 미비했던 것을 인정해야 한다. 막걸리 제조사 차원에서 세계적 트렌드를 짚어가는 끊임없는 고민과 과감하고 도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이상훈  블랙크래인캐피털 한국사무소 대표
이상훈 대표는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 학사·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시애틀 소재 헤지펀드인 블랙크래인캐피털의 파트너 및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언스트앤영(Ernst & Young)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했으며, 6조원 가량을 운용하는 하이자산운용에서 해외펀드와 재간접 헤지펀드 관련 업무를 담당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