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바 제품을 진열해 놓은 도쿄의 한 전자 상점 앞을 행인이 지나쳐 가고 있다.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도시바는 PC와 디스플레이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실시한 바 있다.
- 도시바 제품을 진열해 놓은 도쿄의 한 전자 상점 앞을 행인이 지나쳐 가고 있다.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도시바는 PC와 디스플레이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실시한 바 있다.
산요·NEC·도시바 영업이익률 1%대에 불과

현대는 바야흐로 정보화시대다. 우리생활 곳곳은 이미 IT(정보기술) 산업과 깊숙이 관여되어 있으며, 무차별적인 정보의 만연으로 과거와는 매우 다른 비즈니스와 개인 사생활 문화가 형성되었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도 매우 많지만, 이러한 변화에 따른 폐해 또한 만만치 않다. 사람들은 정보의 양과 시시각각 출시되고 있는 각종 IT 제품들에 압도되어 정보의 질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 및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력을 상실해 가고 있으며, 이는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점을 양산하게 되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한 인터넷 중독은 사람들을 의존적으로 만들었으며 넘치는 개인 정보로 인해 올해 초 큰 이슈가 됐던 금융사들의 정보유출 사건은 경제적인 피해로 직접 연결되기도 했다. 일본 내에서는 IT 산업이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일본 IT 산업이 걸어온 근 20여년간의 부진의 행보와 구조적인 사회·경제적 문제점은 무엇인지 들여다보자.

일본의 IT 산업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모두 표면적으로 상당한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물론 ‘잃어버린 10년’ 혹은 그 이상이라고 회자되는 일본 경제 전반의 부진이 큰 원인이겠지만, 기술집약 산업의 선두 주자였던 일본이 첨단 기술의 최전방 지역인 IT 산업에서 쇠락하고 있는 것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일 수 있다.

먼저 통계로써 일본 IT 산업을 살펴보자. 일본 전체 경제규모는 생산 기준으로 1990년 전 세계의 14.3%를 차지하였다. 이 숫자는 일본 경제의 버블이 터진 후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2008년에는 8.9%로 급감하였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더욱 실감나는 수치를 전달해 준다. 2000년 일본의 1인당 GDP는 세계 3위였으나, 2008년 세계 23위로 추락하고 만다. 이러한 수치는 일본 전체 경제의 후퇴를 보여준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은 이렇듯 일본 경제에 가공할 영향을 미쳤으며, 중국의 비상과 함께 아시아 경제 헤게모니 구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 근래 일본 IT 업계를 이끄는 시스코(Cisco)사는 유저인터페이스(User Interface) 최적화를 중심으로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9일 조선비즈와 서울산업진흥원 공동 주최로 열린 ‘2014 만물인터넷 포럼’에서 아논 메닐 시스코 사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 근래 일본 IT 업계를 이끄는 시스코(Cisco)사는 유저인터페이스(User Interface) 최적화를 중심으로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9일 조선비즈와 서울산업진흥원 공동 주최로 열린 ‘2014 만물인터넷 포럼’에서 아논 메닐 시스코 사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일본 6대 전자 회사의 이익률 합쳐도 삼성전자보다 적어
IT 하드웨어 산업의 통계는 어떠할까. 현재 삼성전자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D램의 경우 일본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1987년 기준 76%였다. 이는 2004년 불과 3%의 초라한 점유율로 추락했으며, 액정 크리스털 디스플레이의 경우 1995년 100%의 점유율을 자랑했지만, 2005년 5%로 수직 하강하게 된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경우 2003년 100%에서 2007년 20%로 불과 4년만에 시장 장악력을 잃게 된다. 좀더 흥미로운 통계는 2005년 일본의 전자 부품회사들이 애플사의 아이팟을 70%가량 생산했으나, 2010년에는 애플사의 아이팟 생산량의 20%만 생산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IT 산업은 심각한 부진에 직면해 있다.

점유율 등으로 알아볼 수 있는 산업의 외형적 문제점 이외에 기업들의 내실은 어떤 상황일까. 최근 일본의 대표 IT 기업들인 산요(Sanyo), NEC, 도시바(Toshiba)는 영업이익률이 1%대에 불과하고, NTT 데이터 등의 기업들은 8%가량의 영업이익률을 기록 중이다. 잘 알려진 기업인 휴렛 팩커드(Hewlett Packard) 역시 8%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36%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의 이익률은 일본의 6대 전자 회사의 이익을 합친 것을 초과하는 수준이다.

과연 무엇이 이러한 일본 IT 산업의 급격한 쇠락을 주도했을까.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일본의 전반적 경제 쇠약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진단할 수 있다. 경제의 약화는 직접적으로 산업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이는 IT와 같은 기술 집약적인 산업일수록 그 강도가 세게 나타났다.

경기 침체에 당면한 일본 정부는 급격한 예산 절감을 시도하였으며, 단기성과가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IT 산업의 R&D(연구·개발) 지원은 절감 대상의 우선 순위였다. IT 산업은 기존의 산업들과 다른 비즈니스 사이클을 가지고 있어서, 장기적 R&D 투자가 직접적인 경쟁력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일본 정부의 IT 지원 축소는 치명적인 자충수가 되고 만다. 이뿐 아니다. ‘잃어버린 10년’부터 근래의 아베노믹스까지 고질적인 엔고는 일본 상품들의 수출 경쟁력을 저하시켰으며, 이러한 요소들이 악순환을 거듭하며 일본 IT 업계의 몰락을 주도했다.

정부지원의 축소와 엔저는 일본 IT 산업을 후퇴시킨 거시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이러한 거시적 요인만이 일본 IT 산업에 충격을 준 것은 아니다. 일본 IT 기업들의 내재적인 문제점으로 인해 이러한 거시적 요소들이 증폭되어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을 준 것이었다. 일본 기업들의 내재적인 구조적 문제점을 짚어보자.

현대의 정보기술은 혁명이라고 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혁명의 중심에는 IT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이 있는데, 이러한 경쟁으로 인해서 단순히 한 가지 요소의 변화가 아닌 동시다발적 분야별 혁신, 즉 클러스터 혁신(cluster development)이 산업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를테면 한 회사 즉, IBM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컴퓨팅을 모두 지배하던 논리는 사라지게 된 것이다. 반대로 마이크로 소프트와 인텔 등의 회사들이 주도한 사용자 중심(User Driven Innovation) 기술 혁신으로 소프트웨어 및 운용체제 산업으로 헤게모니가 옮겨지며, IT 산업은 더 이상 기업원천기술과 공급망 관리(SCM·Supply Chain Management)로서 시장을 지배하는 산업이 아니게 되었다.

따라서 기존 강자인 IBM과 AT&T 등은 시장 지배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Dell 과 HP 등 이러한 변화를 경쟁사보다 먼저 받아들이고, 유통 구조 혁신 및 IT의 소모품화를 현실화시킨 기업들이 살아남는 시장이 되었다.

일본의 전통 IT 기업들은 단순히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과거에 일본 기업들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요소에 더욱 더 집중을 하고 지속적으로 트렌드에 뒤처지며 새로운 IT 강자들에게 패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과거 일본이 자랑하던 상대 우위의 경쟁력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계열사 간의 일사불란한 공급망 체계와, 정밀한 부품 및 서비스의 지원으로 일원화된 견고한 생산 시스템이었다. 이는 위에서 설명한 IBM과 AT&T가 지향하던 비즈니스 모델이었으며, 그들이 몰락한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현재 업계를 이끄는 시스코(Cisco)사와 인텔(Intel)사는 유저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 최적화를 중심으로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럼 다른 각도로 일본의 IT 업계를 살펴보도록 하자. IT 하드웨어 산업 못지않게, 어쩌면 더욱 심각할 정도로 세계적인 트렌드에 뒤져 있는 부분이 바로 IT 서비스 산업이다. 단적인 예로 IT 서비스 산업의 강자인 미국은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관련 특허가 거의 하루 단위로 쏟아져 나오며 특허개발을 위한 투자를 공격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특허관리에 큰 공백을 보이고 있으며, 그 절대치로써도 미국에 크게 뒤지고 있다.

이는 일본이 전통적으로 내수시장에 집중하는 경향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기업 애플과 한국의 삼성 간 특허전쟁 및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치열한 분쟁을 보면 이미 IT에서 국가는 의미를 잃었으며, 모든 기업이 열린 공간에서 무한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소 폐쇄적이며 기업의 안정적인 노동력, 국책은행 등에서의 지원을 주요 경쟁력으로 삼았던 일본의 IT 업계는 이러한 새로운 경쟁 국면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지며 선두 기업들의 경쟁에조차 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 이상훈 대표는…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 학사·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시애틀 소재 헤지펀드인 블랙크래인캐피털의 파트너 및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언스트앤영(Ernst & Young)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했으며, 6조원 가량을 운용하는 하이자산운용에서 해외펀드와 재간접 헤지펀드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