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 아지면 높아질수록 하늘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평평한 지면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127회 아쿠타가와상(芥川賞) 수상작가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의 소설   <랜드마크>의 한 대목을 연상하면서, 땅에서 멀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고야(名古屋) 역 주변의 건축현장을 찾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이 화두가 된 상황에서 일본의 안전관리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곳에는 JR 게이트 타워와 일본 최대의 개발회사인 미쓰비시 지쇼(地所)가 초고층 오피스 빌딩을 짓고 있다. 일본 역시 동일본 대지진 이후 대오각성(大悟覺醒), 안전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안전관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 건설 현장의 크레인은 현장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 건설 현장의 크레인은 현장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안전장구 착용은 기본이자 필수적 요소
건축 현장은 거대했다. 인프라 설비가 거의 끝난 일본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커다란 기중기들이 하늘에서 곡예를 하고 있었고, 현장 내부에서 밖으로 새어나오는 굉음(轟音)들이 도시의 지축을 흔들고 있었다.

사진 촬영도 쉽지 않았다. 필자가 불청객(?)이기도 했으나, 현장에 들어가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안전 요원들은 철저하게 안전 장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흐트러짐이 없는 안전 복장의 표본이었던 것이다.

“안전 복장과 장구는 기본이자 필수입니다. 회사의 지침이자 원칙이기도 하지만, 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차량 유도 담당 안전요원 야마다 가즈히코(山田一彦·40)씨의 말이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현장을 드나드는 차량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차량의 안전과 바퀴의 청결 상태 등을 꼼꼼하게 체크했다. 덤프트럭 등 공사차량이 운행 중 자재를 떨어뜨리거나 바퀴에 흙이 묻은 채 도로를 주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필자가 말을 거는 것도 그에게는 근무태만이었다. 인부들도 안전 장구를 철저히 갖추고 작업을 하고 있었고, 안전요원들은 곳곳의 위험 요소들을 엄격하게 점검하고 있었다. 펜스 밖에도 안전관리에 소홀함이 없었다. 현장 펜스 옆 도로에는 아예 자동차를 주차할 엄두도 못 낸다. ‘안전패트롤’이라는 띠를 두른 요원이 도로를 뒤지고 다녀서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도 안전요원의 지시에 순응했고, 지정된 통로만 이용하고 있었다. 시민들도 건설 현장의 안전 수칙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도로를 위협하는 타워크레인 볼 수 없어
건설현장의 크레인(crane)도 정확한 룰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나라 건설현장의 타워(tower) 크레인은 어김없이 차량이나 사람들이 다니는 도로의 공중을 침범한다. 엄밀히 따지면 도로 교통법 위반이다. 하지만 일본의 크레인은 현장 울타리를 단 한 뼘도 벗어나지 않았다. 크레인의 종류도 타워크레인이 아닌 집(jib)크레인이다.

또 다른 아파트 건설현장. 이 현장은 ‘매료시키는 현장, 매료시키는 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었다. ‘누구를 매료시킨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일이다. 매료의 주인공(?)은 ‘6S’이다. 일본의 건설현장들은 지금까지 4S를 강조했다. 정리(整理·세이리), 정돈(整頓·세이톤), 청소(淸掃·세이소), 청결(淸潔·세이케쓰)의 일본어 첫 발음 ‘S’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매혹적인 이 현장은 거기에 두 개를 더 보태고 있었다. 정리(整理), 정돈(整頓), 청소(淸掃), 청결(淸潔), 훈육(訓育·시쓰케)과 습관(習慣·슈칸)이다.

“안전에 대한 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교육의 결과가 습관(習慣)으로 이어져야 진정한 안전입니다.”

유명 철강회사에서 41년간 근무한 안전 베테랑 사토 쓰네오(佐藤永男·70)씨의 말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안전의 기본이다. 안전은 이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습관이 돼야 한다. 안전의 습관화는 평소 훈련으로 다져져야 가능할 것이다.

1.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는 공종별 책임자를 명시해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2. 미성년자의 음주방지와 음주운전을 안 하겠다는 동의를 해야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이자카야의 덴모쿠. 3. 여성 전용칸에 부착돼 있는 안내문.
1.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는 공종별 책임자를 명시해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2. 미성년자의 음주방지와 음주운전을 안 하겠다는 동의를 해야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이자카야의 덴모쿠.
3. 여성 전용칸에 부착돼 있는 안내문.

지하철 안전 가이드북 승객들에게 인기
필자는 나고야 시내 히가시야마선(東山線)의 이마이케(今池) 지하철역에 비치돼 있는 <지하철 안전가이드북>을 발견했다. 누구나 자유로이 가져갈 수 있는 18쪽짜리의 지침서다. 이 지침서에는 각종 상황에 따른 대피 요령을 그림과 함께 상세하게 적고 있다. 지진 발생 시, 화재 시, 태풍·폭풍우 시, 터널 내에서의 전차로부터의 피난 시, 정전의 경우, 사람이 선로에 추락했을 때, 긴급전화 거는 방법, 버저 사용법, 차내 비상 장치 등 그림만 보면 이해가 되도록 쉽게 만들어져 있다.

“지하철 승객이면 누구나 가져갈 수 있습니다. 모든 상황을 그림으로 설명했습니다. 이 책자를 통해서 평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이지요. 이 책자에 준해서 역(驛) 구간별로 주민들을 대상으로 수시로 훈련을 실시합니다.”

나고야시교통국 전차부 직원 요시다 오사무(吉田治·41)씨의 말이다. ‘교통국 직원들이 이 책자를 채워 넣기에 바쁘다’는 것은 승객들의 호응도가 높다는 증거다. 우리나라의 지하철역에는 이러한 매뉴얼 책자가 없다. 에스컬레이터나 무빙 워크 등에 ‘손잡이를 꼭 잡으세요’. ‘뛰지 마세요’라고 크게 경고문이 쓰여 있으나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있다. 경고문을 아예 무시하는 평소의 습성 때문이다.

여성 전용칸, 여성 보호에 의미 있어
“여성 전용칸은 2000년 9월30일부터 도입된 제도입니다. 여성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역시 나고야시 교통국 요시다(吉田)씨의 첨언이다. 여성 전용칸 표시는 지하철 도어 입구와 유리창에 뚜렷하게 표시돼 있다. 남성이 여성 전용칸에 탈 수 있는 제한적 자격도 명기돼 있다.

<여성 승객과 동반한 초등학교 6학년 이하의 남자 아이. 신체부자유 승객과 간호사 등 어느 쪽이든지 동반하는 남성 승객. 이용시간은 지하철 시발(始發)부터 오전 9시까지, 17시부터 21시까지.>

여성 전용칸 운용은 사람들이 붐비는 출퇴근 시간에 치한들로부터의 성추행이나 소매치기 등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 대책이다. 히가시야마선(東山線)에만 여성 칸이 존재한다. 이유는 이 노선이 가장 붐비기 때문이다. 우리도 지하철 2호선 등 지옥철(地獄鐵)로 불리는 노선에 여성 전용 칸 도입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 건설현장의 차량 유도 안전담당자는 차량의 안전과 바퀴의 청결 상태 등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었다.
- 건설현장의 차량 유도 안전담당자는 차량의 안전과 바퀴의 청결 상태 등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었다.

‘전자의 눈’으로 음주 운전 예방에 기여
“이랏샤이마세!”
요즈음 우리나라의 이자카야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어서 오십시오’의 일본어다. 필자가 한 ‘이자카야’에서 자리를 잡자 종업원이 테이블 왼쪽 벽에 붙어 있는 기기(機器) 하나를 켰다. 종업원은 이를 ‘덴모쿠(電目)’라고 했다. 가라오케에서 노래를 예약할 때 사용하는 전자목차본(電子目次本)의 줄임말이다. 이것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일본인이지만, 현재는 우리나라에서 제조돼 일본에 역(逆)수출된다. 이 전목에 의미 있는 화면이 떴다.

“미성년자 손님 여러분! 자동차를 운전해서 돌아가시려는 손님 여러분! 알코올의 제공은 불가능합니다만, 좋습니까?”
“동의합니다.” “동의 못합니다.”

“동의합니다”를 눌러야 음식을 주문하는 화면으로 이동했다. 미성년자들의 음주 방지와 성인들의 음주 운전을 방지하기 위한 일본다운 발상이었다. 말의 의미를 해석해보면 ‘전자 눈(電目)’이다. 전자 기기를 통해서 음주 운전을 감시하니, 가히 전자 눈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그렇다. 음주 운전은 근절돼야 한다. 기분 좋은 한 잔 술이 곧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자카야에서 덴모쿠를 쓰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음주 운전자가 적발되면 술을 판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대형사고 후 재발 방지 만전
“일본도 과거에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사고가 있었습니다. 일본이 비교적 안전관리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과거에 겪은 실패를 반성하고, 재발 방지책에 만전을 기했기 때문입니다.”

기업인 시미즈 시게오(淸水重雄·72)씨의 조심스럽고 겸손한 말이다. 일본의 아사히(朝日)신문은 지난 7월6일자 조간에서 나고야 시영 버스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노선이 틀린 것과 정차장을 지나쳐버린 버스 등 지적사항이 662건(2012년)이나 된다”며 “현장이나 운전사의 목소리가 상부에 전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도한 것이다.

‘원칙과 안전의식이 철저하다’고 하는 일본도 곳곳에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완벽한 안전은 그만큼 어렵다. 안전은 기본에 충실하면서 발전적으로 변화돼야 한다.

<위험사회>의 저자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70) 뮌헨대 교수는 지난 7월8일 프레스센터 강연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일반 대중과 사건 관련자들의 성찰(省察)이 있어야 실제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상처도 언젠가는 아물 것이다. 하지만 유사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는 제도적인 장치와 안전의식 고취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처가 보다 빨리 아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