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이 자랑하는 최고 관광 명소의 하나인 홍콩섬 피크트램에 가면 리자청(李嘉誠, 광동어로는 리카싱) 창장(長江)그룹 회장의 밀랍인형을 볼 수 있다. 올해 만 78세를 맞은 리 회장을 실물 크기대로 판 박은 인형이다. 매번 갈 때마다 악수나 기념사진 촬영을 하려는 홍콩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는다. 국민적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는 증거다.

 리자청 회장은 개인 재산만 124억달러(약12조4600억원)에 달하는 아시아 최고의 부자다. 그가 소유한 기업만 주력 회사인 허치슨왐포아와 창장실업, 창장개발, 홍콩텔레콤, 홍콩전력 등 460여개. 세계 42개국에 18만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는 세계적 거상(巨商)으로, 홍콩 증시 시가 총액의 26%가 리 회장 소유물이다.

 시민들은 “1달러를 쓰면 5센트가 리자청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말을 할 정도다. 그만큼 ‘나의 경제활동이 그에게 좋은 일만 시킨다’는 일종의 항변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현실에서 과거 황제를 부를 때 사용했던 최고의 극존칭인 ‘따쥔(大君)’이나, ‘차오런(超人)’, ‘샹션(商神)’ 같은 별칭으로 불린다. 홍콩에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 증후군)가 엄습했을 때나 자선단체가 기부금이 필요할 때마다 그는 큰돈을 선뜻 내놓는,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표본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가정교육이 가장 중요한 재산

 단적으로 그는 1980년 ‘리자청 기금회(基金會)’라는 공익봉사재단을 세워 지금까지 교육·의료·학술 지원·빈곤퇴치 사업 등에 76억홍콩달러(약1조260억원)를 쏟아 부었다. 우리나라 재벌 회장들처럼 계열사의 쌈짓돈을 갹출한 다음 자기 이름으로 포장해 ‘생색’을 내는 모습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는 “리자청 기금회는 내가 얻은 세 번째 아들”이라며 극진히 아낀다. 리 회장은 또 병원, 농촌, 학교 등을 찾아가 기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지원받는 주민들의 불편함이나 개선점은 없는지 현장을 찾아 일일이 확인하는 ‘정성’을 쏟고 있다.

 반면 그가 받는 월급은 5000홍콩달러(약 70만원)로 20년 넘게 똑같다. 30년 이상 같은 승용차(롤스로이스)를 타고, 구두는 깁고, 창을 갈아 신는 검소함이 평생 몸에 배어 있다. 술, 담배, 도박, 사교춤 등은 아예 하지 않는다.

 2005년 3월 초 타계한 라이선(麗新)그룹의 림포옌(林百欣) 명예회장도 비슷하다. 의류제조업에서 출발해 정보통신업과 도·소매업, 홍콩 2대(大) 민영방송인 ATV까지 거느려 개인 재산만 70억홍콩달러(약1조원)에 이른 ‘최고 갑부’ 중 한 명이었던 그는 군림하기를 거부했다. 오히려 일반 서민을 능가하는 ‘검소와 근면’으로 일관한 삶을 살았다.

 93세로 세상을 뜬 그는 일년 365일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또 매일 점심은 맥도널드에서 사온 생선튀김 샌드위치 하나로 때웠다고 홍콩 언론들은 전한다. 중국 광둥(廣東)성 차오저우(潮州) 출신인 림 회장은 1945년 홍콩에서 첫 사업을 할 때 겪은 배고픔과 어려움을 잊지 못한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세계 3위 화상(華商)기업인 신홍지(新鴻基)부동산의 궈빙장(郭炳江) 총경리. 그는 대기업 총수로서 술자리가 많을 법도 하지만, 매일 저녁 6시쯤 귀가해 자녀 교육과 가족 대화에 힘쓴다. ‘가정교육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재산’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리자청 회장도 매주 월요일 자식과 손자들을 집으로 불러 식사를 하는데, 반찬 네 가지와 국 한 그릇이 전부다. 1950년대부터 똑같다.



 금융상품 투자 주기 최소 3~5년

 홍콩은 인구 690만명, 서울 전체 면적의 1.6배 크기에 일인당 국민소득 2만4000달러를 구가한다. 때문에 ‘아시아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런 홍콩 사회를 물질적으로 이끌어가는 부자들은 정신적인 면에서도 중산층과 하층민들을 압도하고 있다. 단기간에 떼돈을 번, ‘졸부(猝富)’들의 행태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갑부들의 ‘대학 기부금 쾌척’ 열기가 이를 입증한다. 2004년 한해만도 ‘토지신’으로 불리는 홍콩 대재벌 헨리 폭(82) 중국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이 홍콩 과학기술대에 8억홍콩달러(약 1000억원)를 기부한 것을 비롯해 다이어트·한약재 사업을 하는 정청룽(鄭承隆) 슈선탕(修身堂) 사장은 중문대에 2250만홍콩달러(약 29억원)의 ‘철학발전기금’을 냈다.

 구밍쥔(顧明均) 난타이(南太)전자 회장도 홍콩침회대학에 1억5000만홍콩달러, 홍콩 2위 재벌인 궈빙샹(郭炳湘)·궈빙장(郭炳江)·궈빙롄(郭炳聯) 형제는 4000만홍콩달러(약52억원)를 홍콩개방대에 각각 냈다.

 리 회장은 홍콩대 의대와 중문대학에 각각 10억홍콩달러와 6000만홍콩달러를 기증하는 등  전 세계 주요 의과대학에 한해에만 17억홍콩달러(약 2200억원)를 기부했다. 물론 일부 20~30대의 재벌 2~3세들이 유명 연예인들과 스캔들을 일으키는 사례도 심심찮게 폭로되고 있지만, 그 정도는 훨씬 미미하다. 전체적으로 홍콩 부자들은 건전하고 건강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코트라(KOTRA) 홍콩무역관의 신환섭 관장은 “홍콩은 백만장자가 전체 인구 25명당 한 명꼴이지만, 동시에 총 인구의 3분의 1 정도는 정부 임대주택에 살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하다”며, “홍콩이 그래도 자본주의 사회로 갈수록 번영하고 있는 것은 부자들의 ‘절제’와 ‘근신’, 책임감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홍콩 부자들의 또 다른 특징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공격적인 투자와 적극적인 돈벌이 노력이다. 이들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미국이나 스위스 투자은행이나 전문 PB(프라이빗뱅킹)들로부터 전 세계를 상대로 한 투자정보를 입수, 왕성하고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부동산 펀드, 오일 펀드, 주가지수연계증권, 명화(名畵) 펀드, 우표 펀드, 선진국 국채투자 펀드 등 수천 개에 이르는 각종 펀드 상품이 이들의 주된 투자 대상이다.

 이들이 관심을 갖는 금융상품은 무엇보다 투자 대상국이 다양한 게 차이점이다. 가령 한국에서 나오는 해외 부동산 펀드는 대부분 일본 부동산에 국한돼 있지만, 홍콩의 부동산 펀드는 전 세계를 동시에 겨냥한다. 베트남, 중국, 인도, 싱가포르는 물론 중남미와 미국, 캐나다까지 총망라하고 있다. 홍콩 부자들이 이처럼 공격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건, 은행 PB들와 전문가들이 광범위하고 정교한 ‘맞춤형 투자정보’를 충분히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홍콩 부자의 주력군은 ‘부동산 부자’들이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1997~98년 당시 외환위기를 겪을 때, 싸게 산 아파트나 빌딩 가격이 치솟으면서 이들의 자산가치가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너나없이 모두 부동산에만 매달리진 않는다.

 하나은행 홍콩법인의 채준호 부장은 “홍콩 부자들은 한창 뜨는 투자보다는 앞으로 뜰 미래형 투자에 촉각을 더 곤두세운다”면서, “금융상품 투자 주기가 최소 3~5년으로 한국 고객 보다 훨씬 긴 것도 홍콩 부자들의 차별화된 특징”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홍콩에서는 부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우리나라와 비교해 무척 다르다. 빈부격차가 훨씬 덜한 한국보다도 부자(富者)를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정당시하는 분위기가 정착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홍콩 시민들의 천성이 너그럽거나 순종적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부정 축재나 탈세와 투기가 아닌 정당한 방법으로, 이들이 재산을 늘렸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