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 저소득층 복지 확대하자"

12억 인구 대상 신체신분증 발급사업 시작

인도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대개 현지인을 고용한다. 회사를 운영할 때는 직원을, 집에서는 운전기사나 집안청소부, 가정부 등을 채용해 쓴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이들의 신분증이다. 그들이 누구인지 신분을 알아야 믿고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고용인을 채용할 땐 항상 사진이 있는 신분증을 가져오라고 한다. 

이때 운전기사 채용이라면 별 문제 없다. 운전기사는 당연히 사진이 달린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도 큰 문제가 안 된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등한 10학년 졸업증명서 SSLC가 있기 때문이다. 이 증서에는 본인과 아버지의 성명, 주소, 성적, 소속 커뮤니티(일종의 카스트 명칭), 생년월일 등이 명기된다. 12학년 졸업증명서인 HSSC도 신분증으로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가정부나 청소부 등 학력이 낮은 사람들을 고용할 땐 좀 난감하다. 이들의 신분을 증명해줄 마땅한 증명서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신분증을 가져오라면 대개는 지방정부에서 발급하는 전기요금 고지서나 식량배급 카드, 투표용지 등을 갖고 온다. 물론 사진이 없는 증명서다.

인도, 통일된 신분증 없어

이처럼 인도에는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전국적으로 통일된 신분증이 없다. 인구가 많고, 빈부격차가 매우 크며, 지역적으로도 너무 광대하기 때문이다. 부유한 인도인들은 주로 여권, 운전면허증, 혹은 신용카드를 소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를 통해 이들의 신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여권이나 운전면허증, 신용카드 등을 가질 기회가 거의 없다. 그래서 종종 지방정부에서 발급하는 전기요금 고지서, 식량배급 카드, 투표용지나 편지 등에만 의존한다. 또 전국적으로 통일된 신분증이 없어 각 지방마다 각기 다른 신분증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지방에서 발행하는 신분증만 해도 20여 종이 넘는다. 또 기관마다 민원처리 등에 자신들이 발행한 신분증을 요구해 국민들이 큰 불편을 겪는다. 심지어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증명서나 서류가 아예 없는 인구도 수억 명에 이른다. 주로 외진 시골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다.

주민등록증이 없으므로 선거 때마다 일선 공무원이 실사를 통해 선거인 명부를 새로 작성해야 한다. 행정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선거인 명부와 실제 투표자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워 이중투표도 상당하다고 한다.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에서 선거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요인이다. 따라서 투표를 마친 사람에게는 왼손 집게손가락 손톱에 지우기 힘든 잉크로 표시를 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 인도 정부가 대대적인 전 국민 신분증 발급 프로젝트에 나섰다. 12억 전 인구를 대상으로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도 정부의 전 국민 신분증 발급 사업을 “기술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세계 역사상 가장 방대한 프로젝트”라고 전했다.

12억이라는 방대한 인구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도 대단하지만, 사진 및 지문, 눈의 홍채 등이 담긴 ‘생체신분증’을 발급한다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끈다. 이런 생체신분증은 사람 몸에 원래부터 있던 특징을 잡아내는 것이므로 잃어버릴 염려가 없고, 정보가 유출될 위험도 적어 미래의 신분증으로 각광받는다. 이 신분증에는 각기 12자리 숫자의 주민등록번호(UID)가 부여된다.

총 사업계획은 8년으로 잡고 있다. 우선 1단계 사업 목표는 대규모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다. 이를 위해 지난 4월부터 ‘2011년 총 인구조사(2011 Census)’가 진행 중이다. 인도는 1982년부터 10년마다 인구조사를 실시해왔는데, 이번 조사는 15차에 해당된다.

인도 정부는 주민등록 사업을 위해 이번 인구조사와 함께 15세 이상 주민을 대상으로 ‘전국 인구등록(NPR)’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병행한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 3월까지 1억 명, 2014년까지 6억 명, 2018년까지는 12억 전 국민에게 주민번호를 발급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에 소요되는 총 비용은 337억달러(약 40조원)에 달한다. 인도 정부는 시스템 구축을 위해 야후, 구글, 인텔 등에서 일하는 인도 출신 공학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들은 조국의 부름에 응해 인도로 와서 무료로 복잡한 컴퓨터 시스템을 만들어줬다.

전 국민 신분증 발급 위해 40조원 투입

이 거대한 사업 총 책임자로는 인도 대표 IT업체 인포시스의 공동창업자며 전 회장인 난단 닐레카니가 임명됐다. 그는 과거 인포시스에서의 성공경험을 바탕으로 기술적으로 매우 복잡한 이번 주민등록증 프로젝트를 이끌어가고 있다. 인도에선 기업인이 정부 각료가 되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는 점에서 인도 정부가 이 사업의 성공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인도 정부가 이처럼 거대한 예산을 들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서양에서도 흔치 않은 주민등록증을 발급하고자 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 복지정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도의 다수 하층민들은 신분증을 주로 생필품 배급카드 등으로 이용한다. 이에 따라 부패한 공무원들이 가짜 이름을 이용해 빈곤층 지원금을 빼돌리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인도 정부는 주민등록증 사업이 완성되면 매년 부패 공무원들이 횡령하는 복지기금 40억달러 정도를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또 소외계층들이 신분확인이 안 돼 이용할 수 없던 병원 등과 같은 복지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 효율적인 복지정책이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둘째, 신분증을 통한 은행계좌 개설증가에 따른 세수 기반 확대다. 현재 많은 노동자와 농민 등 하층민들이 자신의 신원을 증명할 서류가 없어 은행계좌를 개설하지 못하고 있다. 하층민들이 주민등록증을 갖게 되면 은행계좌 개설과 자금 투명성이 이뤄져 세수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국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번 조사를 통해 자동적으로 불법입국자들을 가릴 수 있게 되며, 지문이나 홍채 등 생체정보를 바탕으로 한 테러조사를 통해 테러방지 효과를 보는 등 국가 안전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넷째, 정부가 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경제발전계획 및 정책 수립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약 3억 명 가량의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정책도 가능해지며, 인도 정부가 추구하는 포용정책인 ‘함께하는 성장’에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인도 정부는 기대한다.

다섯째, 그간 짐이 되던 지방 및 각 기관에서 발행하는 수많은 증명서들은 더 이상 발행하지 않아도 되므로 그만큼의 비용절감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여섯째, 주민등록증 프로젝트와 관련된 직접적 경제 효과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로 인하여 1000여 개가 넘는 일자리가 생겼다. 또 프로젝트 관련 사업에 투자되는 금액만 14억6000만달러 가량으로 추정되는 등 현재 나타나는 경제 효과만도 상당히 크다.

그러나 일부에선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첫째, 전 국민적인 통합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면 국가안보란 명목 하에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12억 인구의 주소곀殆О喚?등과 같은 일상정보는 물론 개인의 생체정보까지 담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해킹 또는 유출 등의 방법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인도 정부도 이런 우려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구축된 전 국민 데이터베이스가 유출되거나 개인의 권리 침해에 이용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