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수요’에 건강 음료 이미지 덧칠

 

여성층에 인기…젊은 맥주로 변신




일본 가장의 저녁식사엔 빠지지 않는 필수음료가 있다. 맥주다. 맥주 한 병과 저녁풍경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그만큼 맥주 인기가 높다. 요컨대 일본은 주류선진국이다. 한국처럼 폭음은 덜해도 즐기는 음주인구가 적잖다. 덕분에 주류시장은 경기침체에도 불구, 4조 엔대에 육박한다. 사케로 불리는 전통주는 브랜드만 2000개를 넘는다. 맥주는 일반 ∙ 프리미엄 맥주와 별도로 발포주 ∙ 제3맥주(유사맥주)까지 나왔다.

  

와중에 주목받는 브랜드가 있어 화제다. ‘홉비(Hoppy)’다. 홉비열풍은 2000년대 이후 무서운 속도로 확산 중이다. 홉비란 ‘홉비베버리지㈜’가 개발 ∙ 출시한 맥주 종류의 청량음료수다. 일종의 탄산음료다. 0.8%의 알코올이 함유됐지만 주세법이 정한 1%에 미달돼 법적으로 청량음료수로 구분된다. 맥주원료인 호프와 맥아로 만들어 맛은 맥주에 가깝다.



사실 홉비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스테디셀러다. 발매 60년을 훌쩍 넘긴 장수제품이다. 메인고객은 서민계층이다. 출시 당시 홉비는 서민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인기절정의 음료로 명성을 떨쳤다. 비교적 값비싼 맥주를 대신할 수 있어 주로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 서민동네에서 낙양지가를 올렸다. 서민의 술답게 불황에 강한 제품으로도 자리매김했다. 홉비의 최대특징은 섞어 마신다는 점이다. 홉비에 소주를 섞으면 맥주 맛이 더 좋아진다.

- 세월이 흘러도 홉비맥주는 일본 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맥주 음료다.
- 세월이 흘러도 홉비맥주는 일본 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맥주 음료다.
- 일본 서민들이 주로 찾는 술집 모습.
- 일본 서민들이 주로 찾는 술집 모습.

전후 일본인 애환 달래준 맥주 음료

홉비는 1948년 발매됐다. 당시는 전쟁 직후로 술 수요가 많았다. 힘든 일상을 끝낸 노동자의 노고를 달래줄 기쁨은 한잔 술이 유일했다. 특히 맥주가 큰 인기를 얻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맥주 대체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다. 와중에 기술과 재료부족으로 저질 음료도 넘쳐났다. 홉비는 이 과정에서 개발됐다. 맥주와 다를 바 없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1981년에는 하루 20만 병이나 팔려나갔다. 다만 이때가 절정이었다. 경쟁제품의 공세와 고객이탈로 침체터널에 접어들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홉비는 다시 부활 날갯짓을 시작했다. 시대적응에 실패한 제품내용 ∙ 판매방법을 고집했던 것에 대한 반성이 주효했다. 즉 ‘맥주대용품→소주혼합주→건강음료’ 등의 시간흐름에 맞춘 콘셉트 변화에 주목한 것이다. 홉비 부활은 재무수치가 증명한다. 최근 몇 년에 걸쳐 연 20~30%씩 수익이 늘었다. 2001년 9억 엔이던 매출은 2010년 40억 엔대에 육박했다.



부활 비결은 복합적이다. 내부개혁과 외부조력이 시너지를 냈다. 우선 시장분위기가 홉비의 재부각과 맞아떨어졌다. 포인트는 2가지다. 건강지향, 향수수요를 원하는 국민정서와 맞물린 것이다. 버블붕괴 이후 경기침체로 눈앞의 삶이 고단해지자 고도성장기의 화려한 과거 영광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때 홉비는 과거 회상을 돕는 주요 아이템으로 회자됐다. 향수 수요다. ‘도쿄의 맛’ 혹은 ‘쇼와의 맛’으로 불리며 정서적인 미각표현에 자주 활용됐다. 60년 동안 변하지 않은 독특한 병도 정서소구에 한몫 했다. 비타민을 비롯한 필수아미노산 등의 각종성분 덕분에 건강지향성도 인기비결이 됐다. 칼로리와 당질이 적은 데다 푸딩체(요산 일종)가 전혀 없어 특히 여성고객에게 잘 팔린다. 게다가 다른 주류와의 상생효과가 좋아 다양한 음료스타일과 궁합이 맞는 것도 장점이다.



제조판매사인 ‘홉비베버리지’는 2010년 창업 100주년을 맞은 노포(老鋪)메이커다. 창업자의 3대째인 여성경영자 이시와타리 미나(石渡美奈)가 1997년 가세한 뒤 회사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합류했을 때 회사는 ‘사와 붐’으로 최악을 향해 치달았었다. 이런 상황에서 3대는 “아버지 뒤를 잇겠다”며 회사에 들어왔다. 입사 이후 그녀는 좌절했다. 개혁은커녕 씨알조차 먹히지 않았다. “구태의연한 회사에 이질적인 분자가 투입됐다”는 게 그녀의 회고다.



부잣집 공주님이 노동자의 음료(술)를 팔겠다니 사내외 반발이 줄 이은 건 당연지사. 말해도 묵묵부답이었다. 구세력의 반발은 대단했다. 신뢰에 균열이 생기면서 지지파마저 설득에 실패했다.



“후계자를 잘못 키웠다”는 불만과 반발은 정점을 찍었다. 실패도 많았다. 입사 직후 그녀가 개발한 신제품은 과거의 홉비 팬들로부터 거부당해 상당한 손실까지 입었다. 주저앉았다면 오늘의 홉비는 이때 없어졌을 것이다.

- 홉비는 비타민, 필수아미노산을 첨가해 건강기능성도 갖췄다. 아래 사진은 홉비맥주 컨테이너 차량.
- 홉비는 비타민, 필수아미노산을 첨가해 건강기능성도 갖췄다. 아래 사진은 홉비맥주 컨테이너 차량.

다른 음료와 섞어먹는 맛 일품

그래도 그녀는 움직였다.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했다. 개인 블로그(Blog)로 홉비 부활을 알렸고 신규고객을 감안해 홈페이지를 젊게 손질했다. 진정성과 적극성은 착실히 열매를 맺었다. 강력하고 저돌적인 의지와 도전이 발판이 됐다. 청년고객을 늘림으로써 매출증대에 크게 기여했다.



인터넷 판매 이후엔 언론 주목도 잦아졌다. 인터넷 광고와 자발적이고 의도적인 TV출연은 물론 눈에 띄는 화려한 운반트럭까지 동원해 매출구조를 극적인 V자로 회복시켰다. 2006년 부사장에 취임한 뒤엔 개혁고삐를 한층 움켜쥐었다. 이때부터 매출은 탄탄한 우상향 곡선에 안착했다. 일등공신은 신규고객 확보전략이었다. 청년고객의 취향에 맞춘 POP를 비롯한 광고컨셉트를 대거 채택했다. ‘사장이 바뀌면 사원이 바뀐다’는 책까지 내며 본인과 회사를 어필했다.



스스로 ‘홉비 미나’로 불리길 원하는 열혈 CEO답게 회사는 점차 강골체질로 진화했다. 2010년엔 사장에 올라 홉비 부활의 정착을 진두지휘 중이다. 회사의 간판모델로도 활동 중이다.



홉비도 결국엔 술이다. 때문에 맥주메이커를 비롯해 거대자본과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물론 그러기엔 인력겴謎?모두 부족하다. 많은 언론이 중소기업에 불과한 이 회사의 성공스토리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패경험까지 적잖았다. 골리앗을 따라하는 건 금물인데도 모방을 주저하지 않았다. 영세조직이 제품을 팔려면 2가지는 필수다. 거대조직을 압도할 엄청난 홍보선전과 틈새를 노린 특수한 판매기법이 그렇다. 애초 회사엔 이 중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돈이 들지 않는 판매법이었다. 약자의 필수미디어인 인터넷 활용이 대표적이다. 다행히 홉비는 오랜 역사를 지녔기에 팬으로 비유되는 단골고객이 존재했다. 남들보다 앞서 이들을 타깃으로 한 커뮤니티를 만들었는데 상당한 구전효과를 누렸다. 인터넷뿐만 아니라 라디오를 활용해 홍보 기회를 늘려나갔다. 여기엔 홉비의 한정된 판매권역도 기여했다. 홉비는 판매지역을 수도권에 한정한다. 매출의 80%가 여기서 나온다. 커버지역이 좁기에 라디오 ∙ 선전차량 등의 제한된 홍보효과가 더 컸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찾아가는 서비스로 승부수

물론 수도권조차 다 잡은 건 아니었다. 이는 동시에 현재진행형 과제다. 하지만 신임 CEO는 영역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홉비의 인기 정착은 신규고객 확보여부에서 갈린다고 봤다. 실제 90년대만 해도 홉비 취급점포는 소수에 머물렀다. 예전엔 중산층 이하 서민지역이 아니면 홉비를 구경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었다. 마니아들도 취급점포를 가까스로 찾아내 비밀처럼 독점하며 홉비를 즐겼다. 자기만족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신규고객을 찾지 못하면 현재 인기는 단순한 붐에 그칠 공산이 컸다. 붐을 트렌드로 바꿀 강력한 카드가 필요했다. CEO의 승부수는 ‘키라도로’ 작전이었다. 번쩍이고 끈질긴 시장장악 프로젝트였다. 가령 강연 등 공식장소에 나갈 땐 미리 인근의 홉비 취급점포 리스트를 만들어 참가자에게 나눠줘 홍보한다. 사전에 점포에 귀띔을 해주고 다음날 품평을 체크하는 궂은일도 잊지 않는다. 강연회처럼 번쩍이는 장소를 활용하되 끈질기게 돌아다닌다는 점에서 ‘키라도로’ 작전이다.



화려하게 치장한 ‘홉비 트럭’을 번화가에 배치한 것도 마찬가지다. 배달시간 이외엔 세워져 있는 트럭을 활용한 저가판촉 아이디어였다. 돈은 그다지 들지 않지만 홉비 취급점포 주변을 눈에 띄는 홉비 트럭이 돌아다니니 관심을 끌기엔 충분했다. 취급점포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거대기업이 물량공세로 밀어붙이는 점포지원에서도 회사는 열위를 우위로 바꿨다. 이때 호평을 받은 게 화장실 청소서비스다. 어차피 환경정비가 기업문화 중 하나인 까닭에 영업직원을 활용해 취급점포 화장실 구석구석을 닦아 보답하자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포인트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확실히’다. 덕분에 취급점포는 도쿄 전역으로 확산됐다. 홉비세트가 들어간 냉동박스를 매고 음식점 하나하나를 방문하는 맹렬직원의 존재감은 이제 상징모델로까지 떠올랐다. 



회사의 판매기술이 아무리 뛰어나고 CEO의 개인역량이 빼어나도 이를 지지 ∙ 실천할 근로자가 없다면 실적향상은 기대할 수 없다.



젊은 여성 CEO는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회사를 바꿨다. 과거 안 팔려 고생하던 시절을 경험한 사원은 이제 없다. 3대가 회사에 들어온 뒤 자연스레 임직원의 세대교체가 이뤄진 덕분이다. 그렇다고 노포의 자랑거리인 사람 중시의 가족적인 경영관을 버린 건 아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 3대 경영을 지원할 이들을 적극적으로 뽑았다. 2006년부터 신입사원을 뽑아 배치한 게 그렇다. 이전엔 신입사원은 거의 없었다. 신입사원 채용 이후 회사는 5년 만에 전체직원(55명)의 절반 이상(29명)이 이들로 채워졌다. 젊은 피의 수혈로 근로자 평균연령은 29세로 급감했다. “근로의욕 없이 패배감에 사로잡혔던 회사분위기가 입사 이후 성장곡선만 봐왔던 젊은 근로자로 바뀌면서 확연히 달려졌다”는 게 회사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