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무조정실 발표에 따르면, 일본의 2013년 3분기 경제성장률은 급격히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경제는 2분기 대비 0.5% 상승했으며 이는 2분기의 1분기 대비 경제성장률 0.9%를 크게 밑도는 것이었다. 이는 소비자지출 성장률이 큰 폭으로 하락하고, 수출이 3분기 만에 처음으로 하락함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이유 외에 일본의 성장을 제한한 근본적인 요소는 바로 불안정한 원자재 시장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원유 가격이다.

일본의 원유 수입량은 연간 2억1254만㎘로 세계 3위의 경제 규모와 어울리는 막대한 물량이다. 이 중 83.4%를 중동국가에서 조달하는데, 2013년 2분기 중 불안정했던 중동정세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으로 100달러를 웃돌던 유가는 일본경제에 크게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2013년 9월6일 110.53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유가는 안정돼 12월3일 93달러 수준까지 하락했다.

2013년 4분기 저유가에 일본경제는 바로 반응을 보여줬다. 일본 닛케이255지수는 2013년 11월 한달 동안 9.3% 급등하며 15661.87로 마감했다. 반면 비슷한 거시경제 상황이던 한국의 코스피지수는 같은 기간 0.72% 상승하는 데 그쳤다. 에너지 수입국이며, 자동차·전자 등의 수출산업이 경제를 이끄는 한국과 일본이 이처럼 다른 증시의 모습을 보여준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증시가 경제의 기초를 대변하진 않지만, 이러한 경제현상을 증시의 움직임을 통해 분석해 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유가 하락은 일본 닛케이지수 상승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유가 하락은 일본 닛케이지수 상승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2013년 3분기 성장 둔화…불안정한 원자재 시장이 발목

아베 신조 총리는 타고난 정치인이다. 대대로 정치를 해오던 대표적인 일본 정치명문의 자손으로서 그의 가문의 극우 성향은 주변국들이 그의 행보에 예민하게 대응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비록 그의 극우성향이 주변국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나 기민하고 신속하게 주변 상황에 대응하는 그는 정치의 진수를 보여줬다. 비밀보호법 강행으로 최근 그의 지지율이 50% 이하로 떨어졌지만 출범 이후 꾸준히 유지해 온 50%대의 지지율은 그의 정치력을 대변해 준다.

일본은 지난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정점으로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국민들의 사기가 바닥을 쳤으며, 끝없는 비관론과 일본의 국가경쟁력에 대한 회의론이 들끓었다. 이때 아베는 극우를 선택했다. 극우와 민족주의, 더 나아가 집단적 자위권 주장은 국내 여론을 통합시키기 위한 최고의 조치였고, 그 결과 특히 아베의 통화정책과 경기부양책이 일사불란하게 집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베의 경제정책, 즉 아베노믹스의 중심에는 통화 정책이 있다. 이는 양적완화를 통한 지속적인 엔저 정책으로서, 수출에 있어 외적으로는 일본상품이 가격 경쟁력을 가지게 되어 수출이 증가하고 내적으로는 고질적인 디플레이션을 완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명약에도 부작용이 있듯이 아베노믹스에는 몇 가지 취약점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일본 정부의 무차별적인 돈 풀기로 인한 1000조엔을 넘어선 공공 부채이며, 이로 인한 국가 부채는 최근 일본 국내총생산(GDP) 대비 245%에 육박한다. 부채와는 조금 다른 성격이지만 어쩌면 경제에 더 가시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아베노믹스의 취약점은 엔저로 인한 원자재 가격 부담이다. 일본은 자원이 흔하지 않은 국가이며, 상품을 제조하기 위한 원자재와 에너지는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아베노믹스로 인한 엔저로 수출단가는 하락했지만 수출을 위해 제조하는 상품의 원자재와 에너지는 더 비싸게 들여와야 하는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앞서 설명한 2013년 3분기의 유가하락과 즉각적 일본 증시의 폭등은 이러한 상관관계를 잘 설명해주고 있고 에너지 가격과 일본경제가 얼마나 예민하게 관련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장기적인 유가 안정은 아베노믹스의 취약점을 보완해주며 수출단가 하락과 제조원가 절감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설비투자·소비확대로 선순환시켜야

현재 유가는 두 가지 요소가 지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첫째는 1970년대 오일쇼크의 원인과 같은 지정학적 상황, 둘째는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셰일가스를 비롯한 대체에너지의 부상이다. 전자가 방향성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지표라면, 후자는 기름의 대체성으로 유가의 상승을 장기적으로 저지하는 지표라고 볼 수 있다. 아베노믹스에는 단비와도 같던 최근의 유가하락은 지정학적 요소와 대체에너지의 부상이 공동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급작스런 이란과 미국의 핵협상 타결은 이란의 원유 수출을 가능하게 했고 시리아 등에서의 분쟁도 마무리 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 또한 미국의 셰일가스의 규모가 가시화되고 미국 내에서 개발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점 또한 유가상승을 막고 있다.

저유가와 엔저의 지원으로 일본경제는 당분간 호황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모든 긍정적인 조건을 등에 업은 현재의 호황이 지속가능할까’이다. 오랜 기간 원자재 펀드와 다양한 해외펀드를 운용해 온 전우석 대신자산운용 펀드매니저는 일본경제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의미 있는 주장을 한다.

그는 현재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기치로 앞세워 미국이 해 온 양적완화를 통한 경기부양을 시도하고 있고 결과는 현재까지 상당히 양호한 것으로 분석한다. 엔저 효과로 인한 수출세 회복과 유동성 확대로 인한 기업 투자환경이 개선된 점은 이미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주식시장도 상당히 반등하면서 호황 분위기를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양적완화 의지는 GDP 대비 230%나 되는 부채 규모로 인해 장기적인 지원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며, 그런 관점에서 본격적인 설비투자를 통한 고용개선과 소비 확대라는 선순환 구조에 빨리 진입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최근 소비세 인상이라는 다소 부담스러운 정책변화가 있었다. 경기 선순환 구조의 마지막 단계인 소비에 찬물을 끼얹는 정책으로, 이는 앞서 언급된 일본의 국가부채가 가진 아킬레스 건으로 인한 부득불의 조치로 보인다.

따라서 일본은 설비투자 확대가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설비투자는 고용을 창출하고, 창출된 고용으로 인해 소비회복의 불을 지필 수 있는 일본 성장의 핵심요건이다. 그럼에도 경제 구조상 설비투자의 필수원자재 주요 수입국으로, 특히 원유를 포함한 에너지 자원의존도가 절대적인 일본은 최근 엔저로 인한 엔화 환산 수입물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상황이다.

다행히 유가의 하락추세는 일본의 기업 설비 투자 환경에 긍정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유가가 장기적으로 약세를 지속할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언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셰일가스 등 각종 대체에너지의 대두로 유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리라는 기대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인 유가 안정은 수출단가 하락과 제조원가 절감을 가능하게 한다. 사진은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원유 중개인들이 주문을 하고 있는 모습.
장기적인 유가 안정은 수출단가 하락과 제조원가 절감을 가능하게 한다. 사진은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원유 중개인들이 주문을 하고 있는 모습.


급격한 고령화 대비책 승부처 될 듯

또한 글로벌 성장세 둔화 지속에 따른 수요증가의 정체로 인해 당분간 일본 경제에 우호적인 가격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최근 경기회복세의 둔화가 감지되면서 빠른 경기 선순환 구조의 진입이 필요한 일본의 입장에서 설비투자 확대에 절대적인 원유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의 하락은 훌륭한 지원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경제의 다른 승부처는 바로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응이다. 일본의 노동 연령 인구(15~64세)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표 참조). 1995년을 정점으로 현재는 거의 30년 이전 수준의 노동 연령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추가적으로 현재 일본 노동인구의 약 38%가 비정규직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의 연소득은 300만엔 미만으로 내수시장 활성화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만약 일본이 노령화 사회와 노동력 감소에 대한 정책을 활발히 추진하고 일자리 창출을 통한 소득을 증가시킬 방법을 찾는다면 일본경제는 현재의 활황을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일본은 현재 아주 중요한 기로에 봉착해 있다. 현재의 활황은 아베의 통화정책과 예상치 못했던 우호적인 에너지 가격 등이 조화를 이루어낸 작품일 수 있다.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무제한의 양적완화는 결국 버블로 이어질 것이며 저유가는 영원하지 않다. 오직 적절하게 설비투자를 늘리거나 고령화 대응책을 만드는 것만이 일본경제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 일본정부와 국민들이 풀어 나가야 할 숙제다.

일본을 보면 한국경제가 가야 할 길을 유추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자원빈국이며 수출을 통해 경제성장을 해 왔다. 또한 급격한 고령화 사회는 일본과 매우 흡사하다. 이웃나라 일본의 적극적인 정부 개입과 경제의 부침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데다, 일본과의 경쟁이 바로 살아있는 케이스 스터디라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 이상훈 블랙크래인캐피털 이사
이상훈 이사는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 학사·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시애틀 소재 헤지펀드인 블랙크래인캐피털의 파트너 및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언스트앤영(Ernst & Young)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했으며, 6조원 가량을 운용하는 하이자산운용에서 해외펀드와 재간접 헤지펀드 관련 업무를 담당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