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에몽 만화는 1969년부터 1996년까지 어린이잡지의 단편만화로 시작하여 불과 몇 년 만에 1350편의 에피소드를 내놓았다. 1979년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만들어지면서 마침내 몇 년 뒤에는 영화로 제작되고 현재까지도 세계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실제로 이 만화는 일본에 막대한 문화·경제적 이윤을 가져왔다. 일본이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처음 만들어져 국민들의 사기 진작에 도움을 주었고, 1980년대에는 국가 경제에 기여할 정도로 수익이 높아졌다. 이 만화는 일본 밖, 특히 아시아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홍콩·대만·한국·중국·인도네시아로 팔려나갔고 TV 애니메이션은 많은 인기를 얻으며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일본의 만화는 또 있다. 바로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영화들이다. 그의 출발점 중 하나가 국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미래소년 코난’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의 지브리 스튜디오가 만들어 1985년부터 매년 일본 박스오피스에서 흥행을 놓치지 않았고, 큰 이윤을 얻었다. 그의 영화들은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로 유명세가 높아졌다. 최근작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는 2013년 7월 개봉해 9월까지 일본 박스오피스에서만 100억엔(약 1089억원)을 벌어들였다.

- 일본 외무성은 2008년 3월19일 도라에몽을 일본 최초의 ‘만화 대사’로 임명했다. 도라에몽이 고무라 마사히코 전 외상(왼쪽)에게 임명장을 받는 모습.
- 일본 외무성은 2008년 3월19일 도라에몽을 일본 최초의 ‘만화 대사’로 임명했다. 도라에몽이 고무라 마사히코 전 외상(왼쪽)에게 임명장을 받는 모습.

일본 정부 1960년대부터 애니메이션 산업 지원
일본의 만화산업은 세계 시장에서 2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할 만큼 성장해 왔다.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포켓몬, 도라에몽, 짱구는 못말려, 토토로, 명탐정 코난과 같은 만화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50년 넘게 꾸준히 사랑 받으며 현재도 박스오피스 탑 10위권 안에서 흥행을 하고 있다. 국내 영화계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렇게 일본 만화산업이 장기간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온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다. 일본 정부는 애니메이션, 만화, 음식, 게임 등을 특유의 브랜드 가치 창조 산업인 소프트파워 (softpower) 산업으로 분류하여 국내외에서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부의 지원은 대학이나 산업 현장으로도 이어져 학생들은 수준 높은 교육과 현장 연수를 통해 전문성을 갖출 수 있었다.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은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친근성을 최대 무기로 모든 연령층과 계층의 사랑을 받아왔다. 미국 애니메이션의 슈퍼 히어로나 영웅들 같은 서구적이고 다소 현실과 거리감 있는 캐릭터와는 대조적으로 다분히 평범하고 순수한 주인공들이 스토리를 이끌어나간다. 예를 들어 ‘도라에몽’에서는 어찌 보면 어딘가 부족해 보이거나 개성 넘치는 주인공들이 일본 중산층의 단독주택을 배경으로 살아간다. 1980년대 아시아에서 늘어난 중산층 사람들이 이 친근한 꼬마 주인공에게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친근성은 일본의 현대 애니메이션에서도 느낄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보고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통해 일상과 가까운 모습을 만화로 그려내고 있다.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세일러문’은 중학교 2학년, 14살의 평범한 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낮에는 그저 일반 학생으로 살아가다가 밤에만 변신하여 활동하면서 ‘평범 속의 비범함’이라는 요소로 관객들의 공감과 재미를 이끌어냈다.

마지막으로, 완벽한 시나리오 구성력이다. 할리우드 영화들이 자랑하는 탄탄한 구성력과 정교한 시나리오를 일본의 애니메이션들은 오래 전부터 구사해 왔다. 우리나라에서 해외에 수출하는 애니메이션들이 흥하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시나리오 면에서 구성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일본에는 누구나 자신의 시나리오를 자유롭게 공유하고 평가 받을 수 있는 시나리오 뱅크와 같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으며, 자유롭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생태계가 기반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인재도 명작도 탄생할 수 있었다.

- 만화영화 뽀로로는 2003년 처음 선보인 이후 세계 127개국으로 수출되었고 브랜드 가치만 38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며 경제적 효과는 무려 5조7000억원에 달한다. 사진은 뽀로로를 만든 최종일 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 만화영화 뽀로로는 2003년 처음 선보인 이후 세계 127개국으로 수출되었고 브랜드 가치만 38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며 경제적 효과는 무려 5조7000억원에 달한다. 사진은 뽀로로를 만든 최종일 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최근 애니메이션 ‘거품산업’에 비유되며 위기
애니메이션은 파급효과가 큰 산업이다. 만화 한편을 시작으로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상품으로 이어지면서 계속적인 이익을 낳는 윈도효과(window effect)를 보이고, 이러한 윈도효과는 한 나라의 문화, 경제를 움직일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장기간 사랑을 받아왔던 일본 만화산업도 침체기에 직면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연합회(AJA)의 야마구치 야스오 이사는 애니메이션 산업을 몇 년 후 무너질 거품산업에 비유했다. 그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작품수와 판매량이 계속 줄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2006년 306편의 애니메이션이 제작된 반면, 2008년 작품의 수가 288편으로 줄어들며 현재까지도 감소 추세다. 일본 비디오 소프트웨어 연합회(JVA)에 의하면 일본 애니메이션의 국내 판매량은 2005년 971억엔에서 2006년 950억엔으로 줄었다.

일본 경제에 지속적인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만 같았던 만화산업이 이렇게 위기에 직면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경기침체에 따른 인력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수출 부진 및 산업생산량 급감으로 경기가 하강곡선을 타면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도 충분한 보상을 받기 어려워지고 있고, 결과적으로 일하려는 사람의 숫자가 현저히 줄고 있다.

노부키 미타니씨(27)는 지난 6년간 전문 애니메이터 사이에서 손을 돕는 조수 애니메이터로 일해 왔고 업계에서도 비교적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매일 10~12시간씩 일을 하죠. 종종 토요일, 일요일에 일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가 버는 돈은 한 달에 800달러(약 85만원) 정도다. 그나마도 요즘은 이러한 말단 작업을 필리핀이나 한국에 외주를 주는 추세다.

둘째, 외주가 증가하면서 일본 만화시장의 원동력이었던 ‘장기적 인기’를 기대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의하면 일본 내 스튜디오 중 아시아 지역 스튜디오에 하청을 주고 있는 회사는 90%에 달한다고 한다. 세분화 제작공정으로 비용절감을 기대할 수 있지만 작품에 대한 현장의 깊이가 얕아져 관객에게 감동이 전달되기 힘들다. 일본 애니메이션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탄탄한 시나리오와 작품의 구성력의 질이 불가피하게 떨어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한국·필리핀 등 다른 나라들과 하청 계약을 통해 일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주변국들의 기술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낳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국제 경쟁력 하락을 촉진시키게 되었다.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면서 일본 만화시장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역으로 한국에게 간과할 수 없는 큰 기회다. 최근 로이터 통신은 일본 정부가 ‘쿨재팬펀드(Cool Japan Fund)’를 출범한다고 보도했는데 만화시장의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보인다. 쿨재팬펀드는 우리나라의 한류와 같은 개념으로 일본 정부가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의 콘텐츠를 수출하기 위해 만든 용어다. 문화산업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아베 신조 총리의 강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쿨재팬펀드 최고경영자 오타 노부야키는 중소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장기 투자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고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의 이러한 노력이 일본 만화시장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나라는 ‘뽀로로’가 처음 나오기 전에 세계적으로 내세울 만한 콘텐츠가 거의 없었고 지금도 애니메이션 강국으로 가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하지만 한국의 풍부한 문화 콘텐츠를 응용하여 상당한 경쟁력을 쌓을 가능성도 크다.

-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성기를 만든 주인공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오른쪽 사진)은 지난 해 9월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그의 지브리 스튜디오의 첫 번째 흥행작은 국내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미래소년 코난’이다.
-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성기를 만든 주인공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오른쪽 사진)은 지난 해 9월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그의 지브리 스튜디오의 첫 번째 흥행작은 국내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미래소년 코난’이다.

한국의 ‘뽀로로’ 5조7000억 경제 효과 창출
한국은 일본보다 24년 늦게 1985년 TV 애니메이션을 시작했다. 따라서 상대적인 기술력과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선 다양한 콜라보레이션(협업) 제작을 통해 그들의 기술과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 또 일본 만화가 해외시장에서 주춤하는 틈을 타 한국의 손기술과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홍보해 북미, 유럽과의 공동제작 및 극장상영을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러스트 및 애니메이션 디자이너 마명진씨(29)는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내 애니메이션 인력들은 기술력이나 열정에 있어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봅니다. 단지 개인적인 보상이나 국가적인 지원이 상대적으로 열악해서 큰 성과를 못 내고 있는 것이죠.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봅니다.” 

만화영화 뽀로로는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희망적인 사례다. 2003년 처음 선보인 이후 세계 127개국으로 수출되었고, 프랑스 방송 TF1에서는 51.7%라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브랜드 가치만 38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며 경제적 효과는 무려 5조7000억원에 달한다. 아직까지 해외의 미키마우스나 도라에몽과 같은 글로벌한 캐릭터와 동등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요즘 새롭게 인기를 얻고 있는 ‘로보카 폴리’, ‘또봇’과 같은 캐릭터들과 함께 머지않아 ‘한국판 도라에몽’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라 본다.

마지막으로 열악한 투자 및 개발 환경이 산업 각계의 관심과 지원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자유롭게 투자 받고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인재도 명작도 나오는 것이다. 우리나라 방송사들이 제작자에 지불하는 방송료는 평균 제작비의 10%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반면, 일본·영국·프랑스 등은 애니메이션 총 제작비의 40~50%를 정부 지원이나 방송사의 방송료로 분담해주면서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이렇게 제작 여건이 어렵다보니 국산 애니메이션의 제작품은 70% 이상이 영·유아나 아동용으로 쏠리고 있다. 영·유아의 한정된 콘텐츠에만 지나치게 쏠리면 만화시장이 성장하는 데 한계가 될 수밖에 없다.

때맞춰 박근혜 정부는 오는 2017년까지 1조8000억원의 자금을 문화콘텐츠 산업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애니메이션은 대표적인 창조경제 산업으로 초기 투자 자금이 많이 들고 제작시간이 긴 편이지만 흥행에 성공하면 큰 부가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산업이다. 정부의 지원만으로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이긴 하지만, 대기업·출판·게임업계 등 여러 부가산업이 함께 노력한다면 투자환경을 바꿀 수 있으리라 본다. 

한국의 풍부한 문화적 콘텐츠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번 기회에 한국 애니메이션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장기적(long-run)으로 긍정적인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길 기대한다.   



* 이상훈 블랙크래인캐피털 한국사무소 대표
이상훈 대표는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 학사·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시애틀 소재 헤지펀드인 블랙크래인캐피털의 파트너 및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언스트앤영(Ernst & Young)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했으며, 6조원 가량을 운용하는 하이자산운용에서 해외펀드와 재간접 헤지펀드 관련 업무를 담당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