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미라지에 있는 휴양시설 서니랜즈에 마련된 회담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미라지에 있는 휴양시설 서니랜즈에 마련된 회담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경제권을 중심으로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은 경제 성장과 더불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주도해 나가며 미국에 대항력을 키워 나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하고 있으며 여기에 지난해 일본이 가입하면서 정치, 군사, 경제 전 분야의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TPP는 가입국 간 무역장벽 및 관세를 철폐하는 전면적 형태의 FTA를 추구할 뿐 아니라 서비스, 투자환경, 지적재산권, 국영기업, 정부조달까지 포괄적 시장접근과 개방을 최종 목표로 하는 완전 자유무역협정이다. 현재 미국, 일본, 호주, 베트남, 캐나다 등 12개 회원국의 참여가 결정됐다.

지난 2005년 뉴질랜드, 칠레, 싱가포르, 브루나이 등 4개 나라가 협상을 시작한 TPP는 2008년 미국, 호주가 참여하면서 관심을 받았고 지난해 일본이 가세하면서 급격한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가입 여부가 확정된 12개 TPP 회원국의 인구 총합은 7억9000만명에 달하고 국내총생산(GDP) 총합은 27조5500억달러로 전 세계 GDP 비중의 38%를 차지하고 있다. 교역규모 비중도 전 세계 27.8%에 달하는 등 세계 최대 규모의 무역통합체를 이뤄나가고 있다.
 
국내기관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TPP에 가입하면 앞으로 10년간 2.5~2.6%의 실질 GDP 추가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반면 불참할 경우에는 같은 기간 0.11~0.19%의 GDP 성장률 감소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TPP에 참여하지 않으면 우리와 경쟁 관계에 있는 일본 제품과 비교해 가격경쟁력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TPP는 원산지규정(PSR)을 통해 원료나 중간재까지 역내 생산품을 요구해 비참여 국가에게 돌아가는 불이익은 상당히 크다.

그동안 중국은 관세철폐뿐 아니라 가입국에 요구되는 제반 규정을 준수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TPP 가입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보여왔다. 때문에 중국 정부는 TPP 가입으로 미국과 일본 중심으로 무역주도권을 넘기기보다는 아세안(ASEAN) 10개국과 한국, 일본,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아·태지역 6개국이 참여한 다자간 FTA인 RCEP 설립을 독자적으로 추진해왔다. RCEP는 오는 2016년까지 점진적으로 경제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다. 

RCEP 참여 국가들의 GDP 규모는 TPP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19조9000억달러지만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이다. 무엇보다 중국과 인도가 함께 참여하면서 역내 인구수가 33억9000만명으로 가장 많아 잠재성장률 측면에서 TPP보다 높은 잠재력을 가진 무역 공동체로 평가받고 있다. 정치적 논리가 아닌 교역 비중을 중심으로 이해타산을 저울질할 경우 RCEP 가입 효과는 TPP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는다.

현재로선 미국과 중국의 속내를 파악하는 과정이 먼저다. 미국 주도의 TPP는 중국을 견제하는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 TPP는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경제체제의 균열을 의미한다. 협약 특성상 비참여국에 대한 배타적 성격이 강해 참여국이 늘어날수록 중국의 부담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TPP 구성국은 원자재와 중간재를 저렴한 가격에 우선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이점을 가지고 있어 제조업 경쟁력이 강화된다. 또한 완성재가 아닌 중간재나 원자재의 구성 품목까지 관세의 기준이 적용돼 만약 여기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가공무역 비중이 높은 중국의 불이익은 상대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TPP 가입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질수록 미국은 중국정부를 상대로 시장개방을 압박할 수 있다. 중국은 WTO 가입 시 내걸었던 시장개방을 성실히 이행해오고 있으나 외국인투자자의 자국투자 완전 자유화나 지적재산권보호, 국영기업과 정부조달 정책 등에 있어서 TPP가 요구하는 가입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TPP 구성국 간의 협의사항과 진척과정을 관찰하면서 여러 나라와의 FTA와 RCEP에 박차를 가하는 투트랙(Two Track)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국은 현재 12개 국가 간 FTA를 체결했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6개 국가들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TPP에 참여하지 않으면 당장 일본과의 무역경쟁력에 뒤처질 수밖에 없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TPP 참여대상 12개국 중 7개국과 FTA 체결을 완료한 상태다. 또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와는 FTA 체결을 진행하고 있고 일본과는 한·중·일 공동 FTA 협상을 재개했다. 최악의 경우 현재 FTA를 진행하는 국가와 FTA가 한건도 성사되지 않는다 해도 이들 국가와의 무역 비중은 전체 교역량의 5% 미만이다.  따라서 미·중 간 패권다툼에 정치적 실익보다는 경제적 실익을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중국도 한국의 TPP 가입에 대해 한·중 FTA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아니라는 공식적인 입장을 전해왔다.

- 지난 2012년 2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중 FTA 공청회’에서 최석영 당시 외교통상부 자유무역협정교섭대표가 연설하고 있다.
- 지난 2012년 2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중 FTA 공청회’에서 최석영 당시 외교통상부 자유무역협정교섭대표가 연설하고 있다.

TPP 포기해도 경제적 불이익 크지 않아
시장참여자의 입장에서는 TPP, RCEP, 한·중·일 FTA의 향방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현재 자동차, 농산물 업계는 TPP 가입에 반대하고 있으며 섬유, 철강업계는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일례로 자동차 산업은 TPP 가입으로 일본산 자동차 시장점유율 확대가 우려되지만 반대로 한·중 FTA에 국내 업체의 합자설립 기준, 판매법인 설립 및 각종 규제완화 등을 적극 검토하도록 하는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자동차업체뿐 아니라 내수, 금융 등의 전반에 적용될 수 있다.

 아울러 TPP의 영향력 확대가 중국 개혁의 가속화를 가져올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지난해 말 중국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삼중전회)에서 결정된 국유기업 민영화, 시장화, 대외개방, 정부규제 완화 등은 TPP 가입국에 요구되는 제반 규정과 상당 부분이 겹친다. 특히 대외개방 부분에서 중국은 그동안 대만기업을 중심으로 테스팅 보드를 가동해왔는데 대외개방의 속도가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한국의 역할론이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면에서 우리 정부는 한·중 FTA가 중국 대외개방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