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다롄 성해만 광장에서 음료수 신제품을 프로모션하며 공연하는 젊은이들. (오른쪽)중국 음료 토종 브랜드 와하하.
- 중국 다롄 성해만 광장에서 음료수 신제품을 프로모션하며 공연하는 젊은이들. (오른쪽)중국 음료 토종 브랜드 와하하.

만42세던 1987년에 퇴직 교사 2명과 함께 은행에서 14만 위안(약 2380만원)을 빌려 회사 창업. 아이스크림, 문구 등 잡다한 제품을 학교에 납품하는 사업 시작. 23년 후인 2010년 현재 총매출 549억 위안(약 9조3000억원), 순이익은 중국 민영회사 가운데 가장 많은 100억 위안(약 1조3000억원) 달성. 23년 동안 매년 평균 성장률 70%.



중국의 ‘음료 대왕’으로 불리는 창업주인 쭝칭허우(宗慶後·66) 회장은 지난해 중국 부자 순위를 조사하는 후룬연구소가 발표한 부호 순위에서 개인재산 800억 위안(약 13조5400억원)으로 중국 1위에 등극….



이런 기적 같은 성공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중국 기업은 대표적인 음료 회사인 와하하(娃哈哈) 그룹이다. 이 회사는 현재 총자본금 268억 위안(약 4조5000억원)에 어린이 건강음료와 생수, 우유, 주스, 티 음료, 콜라 등 총 6개의 사업군에 100여개의 제품을 시판 중이다. 중국 전역에 58개의 생산 공장과 100여개의 지사를 두고 있으며, 직원 수 2만명에 시장 점유율은 약 20%를 유지하고 있다.



‘와하하 제국’의 성공 스토리는 비록 토종 기업이지만 중국시장 공략 마케팅을 펼쳐나가는 한국 기업들에게도 여러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쭝 회장이 창업한 당시 중국에는 이미 최소 1000개가 넘는 건강 음료회사가 난립하고 있었다. 그는 이 시장을 면밀하게 관찰했고 기존 기업들과 다른 방식으로 시장을 세분화해 타깃 마케팅을 하기로 결심했다. 먼저 그는 기존의 건강음료들이 모두 모든 증상에 다 좋다는 식의 광고를 하고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당시 학교에 음료를 납품하던 쭝 회장은 어린이들이 간식을 많이 먹고 밥은 제대로 먹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3억명의 중국 어린이들을 겨냥했다. 대부분 1980년대부터 본격화한 산아제한 정책으로 어린이 대상 음료의 수요가 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쭝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개혁·개방 이후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하면서 한 명의 자녀를 둔 부모들이 어린이들의 건강에 좋은 음료를 구입하는 데 지출을 줄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연구개발에 착수한 그는 2년 후인 1989년 ‘어린이가 밥을 잘 먹게 되는 와하하 음료’를 내놓았다.

- 어린이 밥맛 돌아오는 음료.
- 어린이 밥맛 돌아오는 음료.

당시 영양음료를 만드는 회사는 많았지만 어린이에게 초점을 맞춘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예상은 적중해 ‘어린이의 밥맛을 살리는’ 건강 음료는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와하하 음료 마셔요, 어린이 밥맛 좋아요(喝了娃哈哈,吃飯 就是香)”라는 광고 카피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즐겨 부르는 광고 카피가 됐다. 중국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에게 와하하를 사 먹이는 것을 의무처럼 생각하게 됐을 정도였다. ‘와하하’라는 회사명 역시 ‘어린이의 웃음 소리’에서 따왔다.



중국 대륙에 급속한 산업화 열풍으로 공장이 많이 들어서 수질오염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중국 서북부 등 깨끗한 지역의 물로 생수를 만들기로 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아침식사를 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에 주목해 아침식사 대용으로 마실 수 있는 기능성 음료를 내놓아 지난해 100억 위안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쭝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남들 뒤를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너무 앞서나가면 시장의 호응을 얻기 힘듭니다. 경쟁자보다 반걸음만 앞서나가도(領先半步·영선반보) 성공할 가능성이 큽니다.”



와하하 그룹은 어떤 신제품을 내놓아도 1주일 내 60만개의 도시와 시골 슈퍼에까지 공급한다. 탄탄한 유통망을 구축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회사 관계자들은 “다른 것은 와하하와 경쟁할 수 있어도 제품이 시장으로 파고드는 속도는 절대로 와하하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말한다.



와하하가 이렇게 성공한 것은 다국적 기업과 달리 중국적 방식으로 유통망을 정교하게 짠 덕분이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의 제품을 팔아주는 유통업체와의 관계를 ‘갑을’ 관계 대신 ‘의리’로 맺어진 ‘윈-윈(win-win)’ 관계라 규정했고 이를 관철시켰다. 그가 생각하는 방식은 이른바 ‘롄쇼티(聯體)’ 모델로, 유통업체가 와하하 본사에 일정금액의 보증금을 내놓는 게 특징이다.

유통업체와 ‘갑을’ 관계 대신 ‘의리’로 맺어져

유통업체는 월말에 와하하 음료 판매금액을 계산해 보증금을 정산하는데, 보증금에 대해 은행이자보다 높은 이자를 쳐서 받는다. 연말에는 판매액에 따라 특별 보너스까지 지급받는다.



와하하 입장에서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고 유통업체의 보증금으로 원료를 사서 생산하거나 투자할 수 있어 좋고, 유통업체는 더 열심히 제품을 팔고 공급함으로써 더 많은 이익을 얻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구도다. 



거래를 맺는 유통업체는 신중하게 정한다. 각 도시별로 가장 뛰어난 도매상을 정해 집중적으로 거래하고 이들이 다시 산하의 소매상을 장악하는 방식으로 와하하만의 거대한 유통조직을 형성한 것이다. 또 분기마다 도매상들로부터 선금을 받은 뒤 은행이자보다 높은 금리를 반영한 규모의 물품을 공급했고, 연말에는 회사 수익의 일정 부분을 도매업체와 공유하는 방식으로 유대관계를 강화했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한 와하하의 보증금 예치 유통 제도는 중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유통 모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렇게 해서 와하하는 중국 전역에 58곳의 생산공장을 보유하고 있고, 수만개에 달하는 도매·영업망을 구축했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장악하고 있던 중국 콜라 시장에 1998년 와하하가 ‘페이창(非常)콜라’를 출시하며 뛰어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쭝 회장은 당시 정면에서 부딪히지 않고 측면에서 중소 도시부터 공략해가는 전략(側翼進攻·측익진공)을 택했다. 유명 대도시를 중심으로 마케팅을 펼쳤던 외국 회사와 달리 농촌부터 파고든 것. 쭝 회장은 “생활방식이 변하면서 농촌에서도 외국 음료인 콜라에 대한 수요가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방부터 장악한다’는 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의 전략을 모방한 것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페이창콜라는 불과 3년 만에 중국 내 탄산음료 시장 점유율을 0%에서 12%로 올렸고 현재는 중국 콜라 시장의 16%를 차지하고 있다.



소도시와 농촌 사람들은 한때 코카콜라는 모르고 와하하콜라만 콜라로 취급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이후에 농촌에서 대도시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페이창콜라는 대도시에서도 인기를 끌어 중국 콜라시장에서 삼국시대가 열리게 됐다. 그는 “중국은 하나의 시장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각 지방 특성에 맞는 영업전략을 구사해야 한다(入鄕隨俗·입향수속)”고 말한다. 

- 중국 최고 부자인 음료업체 와하하의 쭝칭허우(宗慶後) 회장. 쭝 회장은“남들 뒤를 쫓아가서는 성공할 수 없고 그렇다고 너무 많이 앞서나가도 소비자가 외면할 수 있다”며 사업 성공 노하우를 소개했다.
- 중국 최고 부자인 음료업체 와하하의 쭝칭허우(宗慶後) 회장. 쭝 회장은“남들 뒤를 쫓아가서는 성공할 수 없고 그렇다고 너무 많이 앞서나가도 소비자가 외면할 수 있다”며 사업 성공 노하우를 소개했다.

강력한 리더십에다 짠돌이 근검절약 정신

지난해 개인 재산이 800억 위안이 넘는 쭝 회장의 하루 용돈은 단돈 20달러(약 2만2000원). 그는 도박이나 음주, 골프도 하지 않으며 식사도 직원식당에서 때우기 일쑤라고 중화권 매체들은 전한다. 그는 20년 전부터 중국 저장성 항저우역 인근에 있는 6층짜리 낡은 건물에 본사를 두고 있다. 또한 그의 옷소매는 닳아 해져있기 일쑤고 회장 집무실 한쪽 벽엔 살짝 금이 가있고, 벽 여기저기엔 칠까지 벗겨져있을 정도다. 13조원이 넘는 재산을 가진 중국 최고 부자라고 하기엔 옷차림도 사무실도 모두 뜻밖이라는 게 그를 만나본 사람들의 일치된 평가이다.



쭝 회장은 “본사 건물과 사무실 고치는 데 돈을 쓰는 것은 낭비”라며 “그럴 돈이 있으면 공장을 짓겠다”고 말한다. 그는 중국의 설 연휴인 춘제 기간에도 대부분 회사에 계속 출근한다. “남들 쉴 때 같이 쉬어서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소신에서다. 심지어 쭝 회장은 빗자루 1개 구입 등 세세한 경비까지 직접 챙기는 것으로 전해졌다.



차이나마켓리서치 그룹의 숀 라인 이사는 “쭝 회장이 대성한 이유 중 하나는 경비 지출을 최대한 억제한 점”이라며 “그는 부를 절대로 과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다니다 학업을 중단하고 자전거 수리, 제염소, 차(茶)생산 공장, 전자계량기 회사, 막노동판, 뻥튀기 장사 같은 온갖 일을 다해본 그는 지금도 모든 결재를 직접 하며 사실상 혼자 의사 결정을 한다. 와하하 그룹에는 지금도 이사진과 부회장이 없다. 쭝 회장은 “결재권이 없다는 것은 일에서 손을 뗀 것을 의미한다”며 당분간 이런 ‘개방형 독재 경영’을 계속하겠다는 의향이다.



그는 “나는 인생을 잘 즐길 줄 모르며 사교 모임에 잘 나가지 않는다.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하는 일을 반복하고 내가 소비하는 주요 물품이란 하루에 두 갑의 담배와 몇 잔의 차가 전부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직원에 대한 복지혜택은 좋은 편이다. 모든 직원(3만명)이 매년 여행을 다녀올 수 있도록 웬만한 도시 근로자의 한 달치 월급 수준인 3000위안(약 51만원)을 지급한다. 외지에서 온 직원에게는 집을 마련해주고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직원에게는 학자금을 지원한다. 젊은 미혼 직원들이 많아지자 회사에 ‘사모클럽(思慕俱樂部·사랑모임이라는 뜻)’을 만들어 독신 남녀들이 서로 만나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쭝 회장은 여러 기업을 인수·합병했지만 두 가지는 확실하게 고수하고 있다. 즉, 종업원에 대한 철저한 고용승계와 45세 이상 직원 해고 금지라는 원칙이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에게 ‘엄한 아버지와 같은 회장’으로 통한다.



싼샤댐 건설로 수몰된 농촌에 아무런 대가 없이 각종 음료수를 지원한 것도 쭝 회장의 독특한 소신에 따른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쓰촨성의 음료기업을 합병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쭝 회장의 꿈은 이렇다. “앞으로 부동산업처럼 잘 모르는 영역으로는 진출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을 넘어 세계적인 음료업체로 키우는 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