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키우고 싶어도 쓸 만한 사람이 없다.” 중국에서 소비재 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 중견그룹 임원은 중국 사업의 어려움 중 하나인 인재 부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기업 입장에서야 커나가는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해 사업을 늘리고 싶지만 정작 뒷받침할 인력은 태부족이라는 것이다. ‘시’(관계)를 중요하게 따지는 중국 시장의 특성상 우수한 인재를 발굴해야 하는 것이 중국 사업의 중요 화두로 커지고 있다.
외국계 기업에 대한 중국인들의 선호도가 떨어지면서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인재 확보 전략에 비상이 걸렸다. 사진은 지난해 2월 중국 안후이성에서 열린 한 채용박람회.
외국계 기업에 대한 중국인들의 선호도가 떨어지면서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인재 확보 전략에 비상이 걸렸다. 사진은 지난해 2월 중국 안후이성에서 열린 한 채용박람회.

“중 국 비즈니스의 핵심은 현지 중국 직원들과 어떻게 소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업체들이 중국에서 사업하는 데 가장 크게 느끼는 고충을 꼽으라면 아마 인재관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중국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인력을 중국에 파견하니 현지 직원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겠습니까. 통역을 구해 쓴다고 해도 전문 용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실효성이 크지 않아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쓰는 셈이죠.”

중국 내수시장에서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한국브랜드 중 하나로 꼽히는 밀폐용기 ‘락앤락’을 만드는 김준일 락앤락 회장은 중국 사업의 핵심요소로 치밀하면서도 효과적인 인재관리를 꼽았다.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최소한 현지 직원들이 중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게 김 회장의 지론이다. 

“외국계 기업 안가겠다”기류 점차 강해져
중국은 수출에 사운을 건 우리 기업들에게는 반드시 성공적으로 진출해야 하는 곳이다. 중국 내수시장을 얼마만큼 선점하느냐가 기업의 미래와 직결돼 있어서다. 그러나 정작 중국에서 기업을 운영하거나 파트너와 사업을 추진하다보면 어려움을 겪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직원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국 진출 기업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한 유통기업 담당자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대표 유통기업들이 왜 중국에서 고전하고 있겠습니까. 중국 법인장이나 임원 자리에 죄다 한국인을 앉힌다는 건 현지화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걸 뜻합니다. 중국인들 보기에는 그만큼 한국 기업들이 자기들을 믿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죠. 당연히 중국 직원들 입장에서는 책임감을 갖고 주도적으로 일할 필요를 못 느끼겠죠. 요사이 1급 도시에서 2, 3급 도시로 유통업체들이 관심을 돌리고 있다는데 지역만 달라지면 뭘 합니까.”

관련업계에서는 국내 대표적인 유통기업 이마트가 지난 2011년 12월 중국본부장에 대만인 제임스로 부사장을 선임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다. 중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아는 중국계 인사를 최고경영진에 선임해 현지화 고삐를 더욱 당기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중국 현지 상황이 빠르게 돌아가다보니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당장 시급한 당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 전까지는 한국 기업을 비롯해 외국계 기업이 입사 선호도 조사에서 상위권에 랭크됐지만 이후 중국 기업들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급여 등 처우, 복지가 개선되면서 점차 낮아지는 실정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펴낸 ‘중국인재전쟁에서 승리하는 3대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 중 인재 확보가 고민이라고 응답한 것이 2009년 15%에서 이듬해 40%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시점과 중국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인재 확보전은 더욱 심해지는 모습이다. 경영전문지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따르면 지난 2009년의 경우 중국 내 외국계 기업에 대한 선호도는 41%, 중국 현지 기업은 9%였지만 2010년 2분기에는 각각 44%, 28%로 조사됐다. 이유는 중국 기업들의 성장속도가 빠르다 보니 과거에 비해 임금이 높아졌고 그 중에서도 독점적 지위를 가진 국영기업의 경우 파격적인 성과급을 지급해 고급인재들을 싹쓸이하고 있다. 반대로 우리 기업들의 경우 현지 법인장 등 주요 핵심 자리마다 한국인을 파견하다 보니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승진과 같은 동기부여 효과가 중국 기업보다 떨어진다. 김윤희 코트라 중국사업단 과장은 “고급인력일수록 한국, 일본 기업의 조직분위기가 폐쇄적이라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면서 “일정기간 경력을 쌓아도 승진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불만사항”이라고 중국 내 분위기를 전했다. 유리천장과 같은 보이지 않은 벽을 느끼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충성도와 일에서 얻는 만족도가 낮다는 설명이다.

외국 유수의 기업들은 이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글로벌 식품,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는 중국 내 대학졸업자를 채용한 이후 2~3년간 3~6개월 단위로 직무 전환을 하고, 과장 승진 후 5년이 지나면 부장으로 승진시켜 30대 후반 임원, 40대 전반 최고책임자, 50세 전후에는 지역총괄 최고책임자로 세운다는 야심찬 HR제도를 펼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미국 정보통신(IT) 기업 인텔은 중국에서 현지 인력을 최대한 활용해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인텔은 초창기부터 중국에 진출할 때 미국 본사에서 부문별 책임자를 파견하는 것과 동시에 똑같은 직무 수행을 위해 중국인을 한명 더 채용하고 있다. 이른바 ‘매칭시스템’으로 불리는 이 방식으로 인텔은 여전히 중국인들이 입사하고 싶은 외국계 기업 중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초기 1~2년은 미국 본사 직원이 주도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며 중국 직원은 곁에서 업무를 관찰한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 업무 주도권이 중국 직원에게 넘어가고 미국 본사 직원은 현지를 떠나는 방식이다. 인텔은 이 같은 매칭 시스템으로 서구식과 중국식 기업 경영방식을 적절히 조직운영에 적용시키고 있다.

1. 국내 유학중인 6만5000여명의 중국인들을 현지화 인재로 활용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열린 제1회 재한 중국인 유학생 취업박람회. 2. 철저한 직원 교육과 현지화가 중국 진출의 키포인트가 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문을 연 난징시 파리바게뜨 산파이러우 매장.
1. 국내 유학중인 6만5000여명의 중국인들을 현지화 인재로 활용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열린 제1회 재한 중국인 유학생 취업박람회. 2. 철저한 직원 교육과 현지화가 중국 진출의 키포인트가 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문을 연 난징시 파리바게뜨 산파이러우 매장.

한국 연수 등 복지지원책 마련해야
중국 경제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인재관리(HR)의 전면적인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엄동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국 민영기업이 보상, 복리후생, 근무환경, 장기 경력 개발 면에서 더 낫다는 기류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면서 “중국 젊은이들이 외국계 기업이 중국 민영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좋은 이유는 교육훈련 기회와 새로운 문화, 환경의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이와 관련된 혜택을 인센티브로 내거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현지에서 채용한 일부 중국인들에게 한국 본사에서 근무하는 식의 연수기회 확대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어쿠스틱기타(통기타)를 제작하는 우리나라 중소기업 콜텍은 중국 내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중국 직원을 한국 본사로 파견 보내는 순환근무제를 실시 중이다.

현지 인력 확보 차원에서 한국 본사와 중국 법인 인사시스템을 엄격히 구분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 2007년 중국법인인 중국하나은행을 설립하면서 중국 현지 법인과의 인사 교류를 과감하게 없앴다. 하나은행 한국 직원이 중국하나은행으로 발령나면 한국 본사에는 사표를 내고 중국법인으로 전출 가는 방식이다. 동시에 현지화 비율을 93%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중국 내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이사회 의장과 부행장 3명 중 2명 또한 중국인이다.

황재원 코트라 베이징무역관 부장은 “중국인들은 급여보다 경력 관리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지방대 인력이라도 확보해야 한국 중소기업들의 경우 한국 연수제도 같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장기적인 인재 관리 차원에서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LG상사의 경우 현지 부장급 책임자들을 순환방식으로 한국 내 근무토록 해 기업의 일관된 경영철학과 유대감 강화 등 다목적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파격적인 사내 복지를 내세우는 기업도 늘어나 스포츠의류 전문기업 EXR은 중국 현지 법인에 근무하는 직원 중 일부를 선발해 대학원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중국 고급인력을 해외 유수의 경영전문대학원(MBA)에 유학 보내는 프로그램을 조만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6만5000여명 한국 내 중국 유학생 활용 필요
우리나라로 유학 온 중국 유학생을 현지 채용 시 적극 활용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2012년 말 현재 국내 중국인 유학생 수는 6만5000여명으로 전체 외국인 유학생의 7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은 물론 우리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황재원 부장은 “미국, 유럽 기업은 중국진출 시 화교를, 일본계 기업은 자국에 대해 우호적인 성향을 가진 대만인을 현지 인력으로 채용해 교두보를 마련하는 데 활용했다”고 말했다. 초창기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족을 활용해 중국 내 사업을 시작했지만 업무영역은 상당수가 통역에 그쳤다. 이런 가운데 꼬치전문 프랜차이즈 투다리의 성공적인 중국시장 진출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중국에서는 ‘토대력’(土大力)으로 불리는 투다리는 현지 법인장에 조선족 교사 출신의 한용태 사장을 채용해 사세가 급속도로 커졌다. 조선족이지만 엄연히 중국 국적인 한 사장이 법인장으로 임명되면서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선정한 것이 중국 시장 성공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재 투다리는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는 물론 내륙 중소 도시까지 권역을 넓혀 대표적인 중국 내 한국프랜차이즈로 자리매김했다.

이와는 별도로 중국으로 진출하는 현지 직원들에게 중국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벌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당장 세련된 중국어를 구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그동안의 국내 중국어 교육은 주로 문학·역사·철학 등 인문학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며 “앞으로는 실용성과 기능성을 강조한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락앤락, 이랜드 등 현재 중국 내수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한국에서 파견하는 주재원에게 중국어 관련 학습을 꾸준하게 시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