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방송사들이 무료 인터넷 방송을 시작할 예정이어서 방송 시장에 일대 회오리바람이 불어 닥칠 전망이다. 특히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 TV로 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면 케이블 TV·비디오 대여·광고시장 등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이런 서비스는 프라임타임 시청자들이 TV를 점차 외면하는 추세에 맞서 컴퓨터와 휴대용 기기로 언제 어디서나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도다.

미 ABC방송을 소유하고 있는 월트디즈니사는 지난 4월10일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상용화돼 있는 TV 방송사의 인터넷 방송을 이달 말부터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자회사인 ABC방송 등에서 방송되고 있는 인기 드라마들을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두 달간의 시험기간 동안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과거 방영분을 올려놓는 방식이다. 이는 미 방송사로는 처음으로, 국내 방송사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국내 시청자들도 김윤진이 출연하는 ABC방송의 인기 드라마 <로스트>를 비롯, <위기의 주부들>, <최고 사령관> 등 화제의 드라마를 오는 5월부터 인터넷으로 무료로 볼 수 있게 된다. 지난해 에미상 최우수 드라마로 선정된 <로스트>는 김윤진과 한국계 대니얼 김의 호연으로 국내에도 큰 관심을 끌었던 작품. <위기의 주부들>은 로라 부시 여사가 지난해 백악관 만찬에서 “밤 9시만 되면 대통령은 잠들고 나는 이 드라마를 본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시청자의 변화에 능동적인 대응

월트디즈니가 무료 인터넷 방송에 뛰어드는 이유는 온라인 시장을 외면하는 실수를 저질렀던 음반업계의 실패 사례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다. 로버트 아이거 회장은 투자자 회의에서 “음반업계가 인터넷을 통한 파일공유 서비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음반 판매를 꺼렸던 전례를 심각히 생각해봤다”면서 “온라인 시장 공략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아이거는 “음반업계는 고객들이 원하는 것과 세계적 흐름이 음반업계에 원하는 것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는 게 나의 결론”이라며 “어느 날 깨어보니 모든 흐름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향해 가는데 디즈니만 빠져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월트디즈니는 또 인터넷에 무료로 콘텐츠를 올리는 것은 새로운 광고수익 창출을 위해 좋다고 보고 있다. 월트디즈니는 국내 SBS와 KBS의 비즈니스 모델을 따를 전망이다. 과거 방영분을 인터넷에 올려놓고 광고를 붙여 시청자가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광고를 원하지 않는 네티즌들에게는 광고 없는 프로그램을 편당 1.99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미디어컨설팅업체인 데누오의 팀 핸론 부사장은 “소비자들이 마냥 돈을 내고 인터넷 TV를 볼 수 없다”면서 “당분간 광고가 무료 인터넷 방송을 이끌고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ABC방송은 인터넷 방송에서 브라운관 TV 보다 광고가 훨씬 적은 수준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30분짜리 드라마당 평균 8분의 광고를 붙이고, 광고를 건너뛰며 시청할 수 없도록 할 계획이다. 시청자는 무료로 인터넷을 통해 과거 방영분을 볼 수 있어 좋고, 방송사는 시청자에게 광고주의 광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노출시키기 때문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다. 다만 시청자가 드라마를 보려면 영상저장장치(DVR)인 티보 콘셉트를 인터넷에 적용해야 한다. 이번 실험에는 통신회사인 AT&T, 생활용품업체인 P&G와 유니레버, 도요타자동차 등이 주요 광고주로 참여한다.

이밖에 월트디즈니의 이번 결정은 지난달 CBS가 ‘3월의 광란’이라 불리는 NCAA(미국대학체육협회) 대학농구토너먼트를 무료로 인터넷을 통해 제공, 광고료로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린 데에 자극받았다는 후문이다. 당시 약20개 유명 회사가 30초짜리 광고를 프라임타임에 버금가는 요금을 내고 광고를 냈다.

미국 TV 방송사들의 본격적인 인터넷 활용은 콘텐츠가 좋은 제품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선보이는 것이 이익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TV업계는 이 같은 인기 프로그램의 무료 인터넷 제공이 TV 산업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ABC방송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터넷을 이용한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휴대용 기기나 핸드폰 등에 다운받아 언제 어디서나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볼 경우 인터넷 방송은 더욱 더 큰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초기 단계에는 방송사가 ‘스트리밍’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자에게 일방적으로 보내주게 된다. 따라서 시청자는 방송 프로그램을 전진 또는 후진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TV로 볼 수 있는 장치가 개발되면 방송업계는 인터넷이 신문을 바꾸는 데 비견할만한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컨설팅업체인 포레스터리서치의 조슈 버너프 애널리스트는 “월트디즈니에 이어 다른 방송사들도 잇달아 인터넷 방송에 나서는 게 이 때문”이라면서 “이미 CBS, 폭스, NBC 등은 후발주자가 됐다”고 말했다.

광고주들도 결과에 관심이 많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밤 9시에 취침하듯, 미국에는 저녁 TV 프로그램을 보지 못하는 아침형 인간이 많다. 최근 조사결과에 따르면 아침형 인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또 아침형 인간일수록 구매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광고주들은 그동안 이 같은 아침형 인간을 사로잡을 묘안을 강구해오던 중이었다. 이 때문에 월트디즈니의 인터넷 방송은 광고주들에게 아침형 인간을 붙잡는 묘책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광고주들은 오는 4월30일 월트디즈니의 드라마를 시청하는 인터넷 방송 시청자들의 소비 행태가 어떻게 나타날지 주목하고 있다. 생활용품 제조회사인 유니레버의 노린 시몬사 이사는 “시청자가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광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야 하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 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방송 콘텐츠 유통 시장에 큰 변화

방송사가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콘텐츠를 제공하게 되면 기존 유통시장에 큰 변화가 일 전망이다. 기존에는 방송사가 드라마를 방영하면 케이블 TV가 재방송하고, 그 뒤 비디오나 DVD로 출시되는 게 순서였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은 이 같은 기존 배급망을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케이블 방송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지금까지 주문형 비디오(VOD)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던 케이블 방송사들은 시청자들이 무료 인터넷 VOD 시장으로 몰려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보스턴대학 언론학과 제임스 맥퀴비 교수는 “월트디즈니의 발표는 VOD로 돈 벌던 케이블 TV 회사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고 말했다.

인터넷 방송의 최대 결점은 화질이다. 방송사들이 인터넷 방송을 공중파 방송 수준의 화질로 업그레이드하려면 수천억달러가 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접속이 몰려 다운되기 쉽다는 것이다.

또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이냐 하는 것도 향후 큰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당분간은 ‘스트리밍’ 기술을 이용해 무료 인터넷 방송을 하겠지만,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TV로 보는 장치가 개발되면 복제 방지 기능이 필수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디즈니 ABC 텔레비전그룹의 앤 스위니 사장은 인터넷 방송이 대세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우리들 중 누구도 하나의 사업모델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 수는 없다”며 “우리는 소비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통해 다른 선택을 한다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