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광객, 이랏샤이마세!”… 돈맥경화 풀고 내수 회복 ‘안간힘’

일본의 중국 대접이 달라졌다. 자존심은 버린 지 오래다. 번화가, 관광지엔 중국 여행객이 가득한 데다 길거리 안내문과 간판엔 중국어가 필수다. 상주인구도 늘었다. 중국 기업의 잇따른 M&A로 중국인 동료 한둘쯤 없는 회사원이 없을 정도다. 중국인 동료(오너)와 잘 지내는 법을 다룬 책까지 나왔다. 신임총리는 대놓고 중국에 러브콜을 날린다. 그토록 원하던 경기 부활 프로젝트에 중국 변수가 결정적이란 판단에서다. 요컨대 중국 경제의 파워를 실감하는 중이다. 비자 완화를 통해 본 일본 정부의 중국인 관광객 유치 배경을 살펴본다.

일본 경제의 침몰 조짐은 더 이상 핫이슈가 아니다. 20년째 일본 사회의 뒷덜미를 잡아챈 고질적인 딜레마다. ‘장기 침체 → 구조조정 → 실업 증대 → 소비 부진 → 실적 감소’의 악순환 탓이다. 격차 문제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폐색(閉塞)감도 실은 경기 침체가 그 뿌리다. 그만큼 문제해결을 위한 갈망이 강하다. 정치판이 경기 회복을 입버릇처럼 반복하는 이유다.

일단은 내수 부양에 방점이 찍혔다. 내수 회복으로 잃어버린 자신감을 찾겠다는 포부다. 내수 회복의 주체는 일본인이다. 그런데 일본인의 지갑을 열기가 무엇보다 어렵다는 게 지금까지의 경험이다. 미수(米壽)의 노인이 정작 살아갈 앞날이 불안해 저축하는 판에 돈이 돌 리 만무하다. 그래서 생각해낸 묘수가 ‘관광 대국’ 슬로건이다. 돈이 넘쳐난다는 중국 관광객을 끌어들여 일본 국내의 ‘돈맥경화’를 풀겠다는 것이다. 즉 관광객 유치를 통한 소비 확대, 고용 창출 등의 내수 활성화 정책이다.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때 나온 ‘신성장전략’에서 확인되는 관광 입국의 꿈은 보다 구체적이다. 외국인 관광객 중 특히 중국인 관광객을 염두에 둔 분위기가 확연해서다. 당장 4대 수요 기반 중 두 가지가 중국인 관광객이란 키워드와 부합한다. 일본 정부가 선택한 일본을 먹여 살릴 4대 기반은 환경·에너지, 건강, 아시아 경제, 관광·지역 활성화 등이다(여기에 과학·기술 입국, 고용·인재, 금융의 3대 공급라인을 합쳐 7대 성장전략 완성). 이중 아시아 경제와 관광·지역 활성화의 공통분모가 중국인 관광객 유치로 요약된다. 예상목표를 달성하자면 중국인 관광객의 입국 러시가 필수조건인 까닭에서다. 사실상 애초부터 중국인 관광객을 염두에 둔 목표란 게 중론이다. 

실제로 유치목표 2000만 명 때 상정한 중국인 관광객 비중만 600만 명에 해당한다. 30%다. 유치목표를 3000만 명으로 상향하면 중국인 관광객 비중이 900만 명에 달한다. 결국 관광 입국의 성공여부가 중국인 관광객의 유치 실현 여부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기대감의 근거는 충분하다. 무엇보다 중국인의 지갑이 최근 두툼해졌다. 글로벌 위기 속에서도 중국 경제는 성장세를 유지했다. 지난해 GDP(국내총생산)가 무려 8.9%나 늘었다. 백만장자도 36만5000명에서 44만8000명으로 31%나 급증했다(2009 World Wealth Report). 이런 중국의 역동적인 고도성장은 가계소득겮捻珠稚袖?든든한 버팀목이다. 더욱 고무적인 건 미래 전망이다.

<통상백서(2010년 판)>에 따르면 중국 활황에 힘입어 아시아 부유층 규모가 향후 10년간 3.5배나 늘 것으로 분석됐다. 연수입 3만5000달러 이상의 부유층은 2020년 2억3000만 명에 달할 전망이다. 그중 상당수가 중국대륙에 포진해 있을 것이란 전망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소득 증대는 가처분소득 증가를 의미한다. 2008년 중국의 1인당 GDP는 이미 3000달러를 넘어섰다. 이대로라면 2013년 5000달러, 2020년 1만달러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조만간 13억 인구의 상당수가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일본 정부가 내수 회복을 위해 중국의 잠재고객으로 눈을 돌리는 건 당연한 선택이다. 당장 부유층을 포함한 중산층 급증이 매력적이다. 2008년 현재 중국의 중산층(연수입 5000~3만5000달러)은 4억3700만 명에 달한다. 13억 인구의 3분의 1이다. 일본 인구의 4배에 조금 못 미치는 대규모다. 특히 베이징·상하이·광저우 등 경제 성장이 탁월하고 비교적 해외여행 환경이 잘 조성된 3대 도시의 경우 1인당 GDP가 평균 1만달러 이상이다. 이들 인구만 합해도 4600만 명에 달한다.

이를 반영하듯 요즘 중국은 해외여행 붐이 일고 있다. 중산층 이상이 대거 거주하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하는 중이다. 레저·해외여행 등의 수요는 최근 10년간 연평균 20%씩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이와증권에 따르면 중국인의 해외여행자(도항) 수는 2002년 연간 1000만 명에서 2008년 4배 이상(4013만 명) 불어났다. 올해는 4500만 명을 웃돌 걸로 추정된다. WTO(세계무역기구)는 2020년 연 1억 명까지 예상한다. 일본에게 ‘중국인 관광객=거대 시장’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로 2007년 기준 일본 방문 중국인 관광객(94만 명)은 이미 미국인 관광객(81만 명)을 가볍게 제쳤다. 금융 위기와 엔고, 신형 인플루엔자 등의 역풍으로 방일 여행자가 급감한 작년(2008년 835만 명→2009년 679만 명)에도 유독 중국인 관광객만은 증가했다. 부를 축적한 중국인 관광객의 파워란 그만큼 셌다. 이 결과 일본의 대중여행서비스지수도 증가세다. 통계를 보면 2008년의 경우 전체(1조3331억엔)의 4분의 1 이상인 2711억엔이 중국인 관광객 주머니에서 나왔다. 이런 이유로 중국인 관광객의 유치 경쟁은 나날이 격화 중이다.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받아들이는 지역만 해도 2003년 34개에서 지금은 약 90곳으로 증가했다. 아직은 홍콩·동남아·일본 등 아시아권이 많지만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 출국자도 꾸준히 느는 추세다.

중국인 관광객의 유치경쟁이 치열한 속내는 단순한 양적 혜택보단 질적 수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인 관광객의 씀씀이가 상상 이상이란 얘기다. 2008년 방일 관광객의 물품 구입비를 보면 중국이 11만7000엔으로 미국(2만5000엔), 한국(3만엔), 유럽(3만9000엔) 등보다 월등히 높다. 이는 입국 목적이 다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구 선진국이 전통·역사 등 건축물에 관심이 많은 반면 중화권(중국·홍콩 등)의 경우 쇼핑·온천 등이 주된 목적이다. 또 중국인 관광객은 유독 제품 구매욕이 높다(미츠비시도쿄UFJ증권). 이들의 소비성향은 식사비용보단 선물품목으로 압축된다. 특유의 주고받는 선물문화 때문이다. 관광청 실태조사(2008년)에 따르면 일본 여행 이유 중 1위가 쇼핑(50.9%)으로 나타났다. 온천(39.7%), 역사 견학(25.3%), 자연경관(24.4%), 일본 음식(23.0%)이 그 뒤를 이었다. 대도시 인근 쇼핑·숙박시설에 특수가 몰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본 정부, 중국인 관광객 유치 나서

일본 정부도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두 팔을 걷어붙였다. 중국인 관광객의 존재감을 일본 경제의 실제 혜택으로 순환시키기 위한 조치가 그렇다. 결정적인 건 비자 발급 확대 적용이다.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문턱 낮추기로 일종의 규제 완화다. 애초 중국인에게 일본 여행은 적잖이 까다로운 관문을 통과해야 허용되는 일종의 특혜였다. 소득 제한이 대표적이다. 즉 지금까진 단체관광은 허용했어도 개인관광은 연봉 25만위안 이하일 경우 기본적으로 비자 발급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난 7월1일부터 발급 기준을 ‘충분한 경제력을 가진 사람’에서 ‘일정 지위 및 경제력을 지닌 사람’으로 눈높이를 대폭 낮췄다. 

7월부터의 중산층 대상 개인관광 허용은 대부분 환영 입장이다. 근원적인 성장전략 없는 무분별한 땜질 처방이란 비난은 여행·호텔·쇼핑 등 관련업계의 환영사에 가려진 형국이다. 불법체류 등 우려가 적잖지만, 실보단 득이 더 많단 점에서 추가적인 특단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비자 발급 규제 완화에 따른 경제효과는 7월 이후의 언론 보도로 확인된다. 주요 언론은 특집보도를 편성해 중국인 관광객의 경제효과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 긴자·아키하바라·오다이바 등의 고급 쇼핑가다. 이들 지역은 통 큰 중국인 관광객 덕분에 표정관리가 필요할 정도다. 지갑에서 두툼한 현금뭉치를 꺼내 값비싼 제품을 2~3개 이상 사는 경우도 흔하다. 

실제 올해 들어 중국인 관광객의 구매비용이 적게는 몇 퍼센트에서 많게는 2~3배 이상 늘어났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정책투자은행에 따르면 대형 백화점, 가전 양판점 등에서의 중국인 고객 객단가는 평균 5만~6만엔으로 일본 고객의 두 배 이상이다. 하코네·닛코 등 유명온천지의 경우 중국인 관광객이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특히 주목해야 할 대상으로 <다이아몬드>는 바링허우(80后: 1980년대 이후 출생자)를 지목했다. 이들은 향후 중국의 소비시장을 장악할 약 2억 명의 거대그룹이다. 그만큼 구매력이 높다. 고생하지 않고 경제 성장의 혜택을 누리는 까닭에 금전감각도 개방적인 편이다. 또 글로벌 감각도 비교적 풍부하다. 교육수준이 높은 데다 해외 경험도 적잖고 인터넷 세대답게 트렌드에 민감한 것도 매력적이다. 이들이 일본 여행을 계기로 명품 브랜드를 대거 사들이는 모습이 심심찮게 목격된다. 월급을 그 달 안에 전부 써버릴 정도로 소비지향적인 성향이 강해 ‘월광족(月光族)’이란 별칭까지 붙을 정도다. 지난 6월엔 교토에서 중국의 바링허우 세대가 일본 전통 결혼식을 올린 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중국인에 맞는 서비스 환경 필요 주문

기대감이 현실로 체화하자면 그만큼 주도면밀한 대책 마련이 필수다. <요미우리신문>은 최근 사설에서 치밀하고 만족스런 응대 환경을 조성할 것을 주문했다. 중국어 안내표지가 아직은 턱없이 부족한 데다 중국어를 구사하는 종업원의 수도 적다는 이유에서다. 적극적인 홍보대책도 권유된다.

상품 개발 주도권도 확고히 해둘 필요가 있다. 현재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여행 상품은 대부분 중국 회사가 기획해 일본에 발주하는 구조다. ‘도쿄-후지산-오사카’ 등을 도는 단체여행 선호코스인 골든투어의 단일상품만 강조될 경우 품질보단 저가를 우선해 가격 경쟁에 빠질 수밖에 없어서다. 부유층 희망코스와 단체여행 프로그램 간의 불일치가 증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싼 게 비지떡’이란 말처럼 일본 관광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지하듯 일본의 내수시장은 수출 경제의 전형이다. 인구 감소 때문에 국내 수요만으론 덩치를 유지하기가 불가능해졌다. 수요를 벌충하기 위해선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 개척이 불가피하다. 이때 방법은 수출 확대뿐 아니라 소비 수입(외국인 관광객 유치)도 포함된다. 이런 점에서 관광 입국은 중대한 포인트다. 일본관광청은 중국인 관광객 7명의 소비 규모가 내국인 1명의 연간소비액(121만엔)과 맞먹는다고 추산한다. 그렇다면 국내 소비를 벌충할 유력 수단으로 손색이 없다. 가능성은 높다. 문턱이 낮춰졌으니 중국 전체 인구의 0.08%에 불과한 일본 방문객(2008년)이 앞으로 더 늘어날 여지는 충분하다. 한국의 적극 대응이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Tip | 중국인 관광객과 안전산업

중국산 불신 여전…‘안전 대국 일본제에 열광’

▷▶▷ 최근 일본에선 중국 부유층을 타깃으로 한 비즈니스가 활발하다. 특히 안전 산업이 그렇다. 중국인 관광객은 대부분 가전제품과 명품 브랜드를 필두로 화장품·의료품·일용품 등을 주로 구매하는데 그 수준이 거의 ‘싹쓸이’ 급이다. 이들이 ‘일제’에 열광하는 이유는 ‘안전·신뢰’ 코드로 설명할 수 있다. 품질이 좋기에 믿고 사용할 수 있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실제로 최근 중국에서 불법제품 판매 사건이 급증하면서 그 대안으로 일본의 경쟁제품이 큰 인기를 얻었다. 2008년 중국 대륙을 충격에 빠뜨린 중국 대기업의 유해 멜라민 분유 판매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후 일본의 분유 메이커의 시장 점유율이 증가했다.

▷▶▷ 반대로 자국 제품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자동차를 예로 보자. 중국의 작년 자동차 생산·판매량은 모두 1350만 대로 세계 No.1에 올랐다. 올해는 1500만 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공급 중심은 일본·독일계의 외자(합작)기업으로 로컬업체 점유율은 저조한 편이다. 그나마 구매력을 갖춘 중산층 이상에선 외제 자동차의 선호도가 상당히 높다. 최근 독일의 충돌 테스트에서 중국 4륜차가 사상 최초로 별을 하나도 받지 못할 만큼 안전성에 의문이 들어서다. 이는 중국 자동차의 약점으로 상당기간이 걸려야 안전성 측면에서 일본 따라잡기(Catch-up)가 가능할 전망이다. 결국 중국 관광객이 선호하는 제품·서비스는 대부분 ‘안전 산업’의 카테고리에 속한다. 특유의 기술력에서 기인하는 ‘일본=안전’의 견고한 인식 덕분이다. 이런 점에서 안전 산업은 일본의 향후 성장 산업 중 하나로 봐도 무방하다.

▷▶▷ 국내에서의 안전 수요도 증가세다. 실제로 음식 외에 방재·방범·정보보안 등의 안전 부문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수요 이슈도 끊이지 않는다. 신형 인플루엔자나 대규모 지진 확률 등에 따른 불안감 때문이다. 업계는 2013년 안전 관련 시장 규모가 1조6500억엔에 달할 것으로 내다본다. 특히 인류 생존에 관한 안전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지구환경·식량·식수 등과 관련한 파생 산업은 나날이 그 매력을 더할 전망이다. 친환경 가전 보급이나 에코차 감세 등 관민의 이해가 일치할 경우 거대시장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닛케이비즈니스>는 “안전이야말로 향후 비즈니스 성장엔진 중 하나”라며 “중국처럼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 안전 욕구가 한층 강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