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 공격적 투자로 승부수… 글로벌 넘버원 향해‘쾌속 질주’

세계 타이어 시장은 No.1 타이틀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과점체제답게 상위 3개사의 각축전이 뜨겁다. 특히 1~2위 경쟁이 격렬하다. 1990년대 이후 그래왔다. 건곤일척의 맞수는 브리지스톤과 미쉐린이다. 여기에 3위 굿이어가 근접대결 중이다. 그런데 최근 브리지스톤의 보폭이 부쩍 넓어졌다. 시장 점유율과 매출액 모두 1위 굳히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2007년 빼앗겼던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되찾은 데 이어 2위와의 매출액 격차는 한층 벌렸다.

2008년 현재 시장 점유율은 브리지스톤(16.7%)이 미쉐린(16.3%)을 근소하게 앞서 있다. 반면 매출액 1위 타이틀은 더 공고해졌다. 브리지스톤(313억달러)이 미쉐린(240억달러)을 월등하게 넘어섰다. 격차는 2005년부터 계속 벌어지고 있다. 특히 금융 위기에도 불구, 작년 성적표도 흑자를 기록해 1위 안착 전망에 무게감이 쏠린다.

금융 위기 여파가 본격화된 2009년은 기업가에게 악몽의 한 해로 기록됐다. 하지만 브리지스톤은 달랐다. 당초 예상을 깨고 꽤 괜찮은 실적을 내놨다. 2008년보다 줄긴 했어도 매출액(2조5970억엔), 영업이익(757억엔), 경상이익(544억엔) 등 모든 항목에서 플러스 성장을 실현했다. 경쟁사를 비롯해 일본 기업 대부분이 적자 전환 러시를 이뤘다는 점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미국 시장 영업이익 전년 대비 10배

2009년 상반기만 해도 상황은 심각했다. 엄청난 영업손실이 예상되며 상장 이후 최초로 적자를 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글로벌 상위 3사의 전년 대비 매출 감소율이 30%에 달할 것이란 보고서까지 나왔다.

그런데 시간은 브리지스톤 편이었다. 하반기로 갈수록 회사 장부가 급속도로 개선됐다. 2009년 하반기 미국 시장에서의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10배 이상(3억1800만달러)을 기록한 데 이어 국내 시장에서도 흑자 달성에 성공했다. 경쟁사의 회복 속도가 더뎠다는 점에서 브리지스톤의 위기 극복은 한층 부각됐다. 지난 1분기 실적도 호조세다. 6591억엔의 매출액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16.1% 증가했다.

브리지스톤의 위기 극복 스토리는 경영전략 수정에서 시작된다. 회사는 금융 위기 이후 긴급대책을 통해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투자 압축, 비용 절감, 재고 삭감 등을 위해 그룹 전체가 사활을 걸며 우선순위를 수정했다. 동시에 환경 변화를 오히려 사업 기회로 활용코자 위기 때 빛을 발할 시책도 착실히 실천해갔다. 요컨대 ‘Lean & Strategic’ 경영전략의 적극 실현이다. 이는 근육질의 낭비가 없는 전략 대응을 일컫는다.

먼저 태평양생산체제를 재편하고 국내에 퍼진 판매망을 통합하는 등 보다 신속한 의사 결정 구조를 만들었다. 채산성이 떨어지는 호주·뉴질랜드 공장도 이 과정에서 폐쇄됐다. 미국 시장은 원가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수직통합체제를 구축했다. 원재료 생산부터 제조·판매까지 미국 현지에서 수직통합체제를 가동해 극심한 수급 변동에도 안정성을 유지하도록 했다. 원재료 가격 변동이 급격한 상황에서 미국 내의 5개 원재료 공장에서 합성고무, 공업용섬유 등을 직접 조달하면서 원가 경쟁력도 높아졌다. 회사는 공급체인의 수직통합모델을 생존열쇠로까지 자평한다.

공격적인 미국 시장 공략도 계속됐다. 경쟁사가 점포 축소에 매진할 때 오히려 신규개점(2009년 80개)을 단행함으로써 역발상의 승부수를 띄웠다. 동시에 건설·광산 차량용 대형 타이어를 생산하는 유럽 공장의 가동 스케줄은 보다 앞당기도록 결정했다.

주력상품은 보다 적극적인 시장 공략으로 맞섰다. 가령 효자상품인 에코피아(ECOPIA) 시리즈를 비롯해 핵심품목은 글로벌 전개에 한층 박차를 가했다. 3세대 런 플랫(Run Flat) 타이어도 같은 맥락에서 위기 돌파를 위한 사업 품목으로 선정됐다. 에코피아 브랜드는 회전저항을 저감시켜 연비를 향상키시고, CO₂ 배출량은 줄인 브리지스톤의 대표적인 친환경 상품 중 하나다.

최고수준의 환경기술을 탑재한 타이어답게 토요타를 비롯한 완성차 업계의 러브콜도 끊이지 않는다. 펑크 후에도 일정거리를 달릴 수 있는 3세대 런 플랫 타이어도 환경 대응 상품으로 호평이 자자하다. 런 플랫 타이어의 경우 정상 타이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승차감을 갖춰 기술개발의 정수로 평가된다. 상용화도 세계 최초다. 현재 토요타의 신형(시에나) 신차 장착용으로 납품 중이다. 회사는 “사용되지 않은 채 폐기되는 많은 예비타이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안전하고 환경 친화적인 제품”이라고 소개한다. 특히 핵심기술인 경량화가 장점이다. 3세대는 1세대보다 15%, 2세대보다 5% 더 가볍다. 그만큼 운동성이 향상되는 반면 연료를 적게 써 환경에 도움이 된다.

불황 아이템 재생타이어 ‘대박’

국내 시장에선 불황에 어울리는 신사업을 집중 전개했다. 재생타이어 비즈니스가 대표적이다. 사실 재생타이어는 신규 제품이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국내 시장을 감안하면 어울리지 않는 사업이다. 극심한 반대가 계속된 이유다. 하지만 아라카와 쇼시(荒川詔四) 사장은 “자기부정을 통해 신사업을 확장하라”는 메시지로 재생타이어 비즈니스에 일찌감치 뛰어들었다. 재생타이어의 고수익성과 저가 타이어를 원하는 물류 기업 등 수요 증가세에 주목한 결과다. 이를 위해 재생타이어 업체(반닥)까지 인수했다. 기존 타이어를 평평하게 깎은 뒤 홈이 파인 고무를 붙이는 기술도 자연스레 이전됐다. 덕분에 2008년 일본 국내에서만 모두 50만 개의 재생타이어가 판매됐다.

문제는 신규 제품 판매 저하 우려다. 하지만 회사는 고객 기업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신제품과 재생품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신제품 수요 감소를 최소화했다. 저연비의 에코타이어 시장도 스케줄을 앞당겨 진출하기로 했다. 연비가 7% 개선된 에코타이어를 기존 제품과 동일 가격대에 판매해 시장 점유율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결국 브리지스톤의 위기 극복기는 상황 판단과 기술 파워의 승수효과로 그 얼개가 구성됐다. 위기 상황에서의 과감한 전략 수정이 먹혀든 데는 그만큼 탁월한 기술 우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타이어는 단순한 고무덩이가 아닌 기초과학과 첨단기술이 접목된 결정체다. 끊임없는 R&D가 없으면 경쟁에서 밀리는 건 시간문제다.

브리지스톤이 No.1 자리에 오른 배경도 연매출 3% 이상 투자하는 꾸준한 R&D 덕분에 가능했다. 금융 위기 때조차 R&D 투자를 줄이지 않은 건 물론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는 포부를 실천하듯 2009년 857억엔의 쌈짓돈을 연구 부문에 투입했다. 이로써 4년 연속 R&D 투자비용 800억엔대를 유지했다. 전체 직원 중 3.5%에 달하는 R&D 부서인원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술의 브리지스톤’이란 수식어가 명불허전(名不虛傳)이 아님을 증명한 것이다. 아라카와 사장은 “최고 품질의 관건은 연구개발력”이라며 “환경을 배려하면서 안전·쾌적성을 강화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자면 기술력은 필수”라고 밝혔다.

브리지스톤의 기술력은 나노프로테크(Nano Pro-Tech) 하나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에코피아(EP100)에 적용된 이 기술은 타이어 원재료의 분자구조를 나노미터 단위로 설계·제어하는 기술이다. 타이어는 회전하면서 타이어의 탄소분자가 응집·마찰하며 열을 발생시킨다. 이 열 때문에 에너지 손실과 변형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기술은 타이어 원재료인 합성고무 내의 탄소 분자를 분산시켜 열 발생을 억제시킨다. 이는 접지력과 승차감은 유지하면서 회전저항은 줄이는 ‘꿈의 타이어’를 만드는 기초가 됐다.

전략상품 중 하나인 항공기 타이어도 브리지스톤의 탁월한 기술력을 엿볼 수 있는 품목이다. 항공기 타이어는 항공기의 중량과 속도를 유지하면서 이착륙을 반복하는 잔혹한 조건하에서 사용되기에 종합·고도의 기술력이 필수다. 브리지스톤의 경우 이미 높은 안전성과 향상된 내마모성, 경량화로 연료 절감에 기여하는 타이어를 생산해 에어버스 등에 납품 중이다. 그만큼 회사의 기술력은 월등한 수준에 도달해있다.  

친환경·사회 책임 경영 ‘호평’

자동차처럼 타이어 경쟁력도 이젠 고기능에서 친환경으로 패러다임 전환 중이다. 이런 점에서 브리지스톤의 환경경영도 경쟁력의 원천 중 하나다. 회사는 이미 1970년대에 공해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등 환경보호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여기엔 오일쇼크 등 외부변수도 한몫했다. 2003년부터는 환경경영이 아예 회사의 역점모토로 정착됐다. 에코피아 시리즈가 개발·판매된 데도 연비 효율, 안전성, 경제성과 함께 친환경에 매진한 결과다. 타이어의 회전저항을 줄임으로써 돈도 적게 들고(연비효율)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는(친환경) 일석이조의 제품이 탄생한 것이다.

2005년부터는 일본의 15개 공장에서 완전 제로 이미션(Zero Emission)을 달성하기도 했다.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0.5% 미만으로 줄이는 것인데, 최근엔 중국 공장도 목표 도달에 성공했다. 지난 2월엔 태국에 재생타이어센터도 준공했다.

브리지스톤의 사시는 ‘최고 품질로 사회 공헌’이다. 요컨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통해 상생원리를 실천하려는 의지 표명이다. CSR은 1973년 창업자의 고별사에 강조된 이래 회사의 핵심가치로 이어져 왔다. 이에 따르면 브리지스톤의 CSR은 △주주에게 적정 이윤을 지급할 것 △소비자에게 늘 독창적인 기술로 만족감을 줄 것 △종업원은 애정과 이해로 원만하게 결합할 것 등 3대 정신의 실천을 통해 실현된다.

전체 직원 13만 명 중 10만 명이 해외 사업소에서 근무하는 글로벌 기업답게 CSR은 다국적이고 광범위하다. 공통언어로 22개의 과제를 정해 상황에 걸맞은 추진체제를 구축했다. 아라카와 사장은 “안전·환경·편리 등 고객 욕구는 나라마다 다르다”며 “우리는 이런 압축된 가치를 정확히 엄선해 CSR을 비즈니스의 중앙에 놓고 있다”고 강조했다. 외부평가는 긍정적이다. FTSE는 환경·인권·노동 등 사회 공헌에 관한 브리지스톤의 대응을 호평하며 2006년부터 5년 연속 SRI지수에 포함시켰다. 일본 국내에선 모닝스타의 SRI지수에도 채택됐다.

한편 브리지스톤의 사업 내용(연결)은 크게 둘로 나뉜다. 주력인 타이어 부문은 승용차용과 트럭·버스용 및 산업차량용, 항공기용, 오토바이용 등 모든 종류를 커버한다. 다각화 부문은 자동차 관련 부품과 전자정밀부품 등의 화공품과 골프공·클럽 등을 취급하는 스포츠용품 등이 있다. 자전거와 파이낸스 등에도 진출해있다.

2009년 말 현재 대주주는 대부분 법인주주다. 1대 주주는 9.43%를 보유한 이시바시재단이다. 10대 주주 중 단 1명만이 개인주주다. 3.33%를 보유한 이시바시 히로시(石橋寬)로 창업자의 후손이다. 아라카와 사장은 2006년 취임했다. 동경외대 졸업 후 1968년에 입사해 줄곧 한 우물을 팠다. 1992년 태국 현지법인 사장을 지낸 뒤 1997년 본사 이사로 승진했다.

Tip | 창업자 이시바시 쇼지로는 누구?

가업인 전통버선에서 출발… ‘고무와의 만남’이 결정적

▷▶▷ 창업자인 이시바시 쇼지로는 타고난 경영자였다. 1973년 공식석상에서 물러날 때까지 무려 42년간 회사경영을 책임졌다(1976년 사망). 그는 1889년 태어나 형과 함께 가업인 재봉을 이어받았다.

사업 다각화와 신경영제도 등 20세기 초인 당시로는 드물게 혁신적인 경영수법을 도입했다. 도제제도 대신 급여제도를 채택한 데 이어 휴일까지 제공한 게 대표적이다. 사업 다각화는 블루오션 개척의 모범사례로 추정된다. 당시 옷부터 각반·타비(전통버선) 등 잡다한 여러 물건을 주문받아 생산하는 데 한계를 느낀 그는 우선 사업 선택에 집중했다. 이때 타비가 선정됐고 이후 대량생산 체제를 갖췄다. 광고도 파격적으로 진행됐는데, 소유한 기계집기의 자산총액에 맞먹는 고가의 자동차를 구입해 이를 광고수단으로 활용했다.

본격적인 영역 확장은 1920년대 고무와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버선에 고무밑창을 단 상품이 공전의 히트를 쳤기 때문이다. 이후 자동차타이어 생산무대로 활동영역을 넓혔다. 당시 회사의 1년분 이익을 연구비로 쏟아 넣을 정도의 열정이 타이어 제조기술의 확보로 이어졌다. 1931년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두고 회사 이름도 바꿨다. 브리지스톤은 창업자의 성(姓)에서 유래했는데, 이시바시(石橋)의 한자의미인 돌다리를 거꾸로 붙여 ‘다리+돌’이란 뜻의 ‘Bridgestone’을 만들어냈다.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둔 브랜드 교체였다. 1930년 승용차용 1호 타이어를 생산한 이래 빠른 속도로 업계 리더에 올랐다. 1935년엔 자전거 타이어와 골프공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세계대전 직후 해외자산 몰수 등 어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회사 재건에 매진해 곧 정상화됐다. 고도 성장기에는 자동차 보급 증가에 따라 타이어 판매매장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거점 마련에 성공했다.

Tip | 브리지스톤과 일본 정계

하토야마 전 총리가 외손자… ‘마르지 않는 정치자금원’

▷▶▷ 브리지스톤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게 있다. 좋든 싫든 일본 정치판과 깊숙이 연관됐다는 평가가 그렇다. 실제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의 외할아버지가 브리지스톤의 창업주다. 창업주의 딸인 어머니 야스코(安子)는 사실상 일본 정계의 숨은 실력자 중 한 명이다. 하토야마의 정치 데뷔 때부터 적극적으로 나서 아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돼줬다. 동생인 구니오(邦夫)도 같은 수순을 밟아 정계에 입문해 거물로 성장했다. 선거전은 물론 정치적 위기 때마다 두 아들의 나침반 역할을 도맡았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1996년 두 아들이 중심이 돼 세운 민주당도 어머니 조언에 따른 결과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쯤 되니 어머니를 ‘두 아들의 원격조정자’로, 아들들을 ‘마마보이 정치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야스코는 1942년 하토야마 가문에 시집왔다. 물론 이전부터 하토야마 가문과 이시바시 가문의 관계는 대단히 돈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명가와 재벌기업의 결합은 훗날 정치거물을 키우는 토양이 됐다. 몇몇 언론은 하토야마 총리 취임 때 “이시바시의 돈과 하토야마의 인재가 합쳐져 총리를 낳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로 180억엔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야스코의 재산은 하토야마 가문의 든든한 돈줄로 기능했다.

2009년 총리 취임 때 공개한 하토야마 유키오의 재산은 14억4269만엔이었는데, 이중 12억4500만엔을 모친이 준 것으로 드러났다. 창업주도 외손자들에게 상당량의 주식을 증여했다. 이밖에 대부분의 부동산도 외가 쪽에서 증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넘쳐나는 정치자금은 화(禍)가 돼 돌아오기도 했다. 어머니에게 매달 1500만엔씩 용돈을 받아쓴 게 정치자금 문제로 비화돼 퇴진의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