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자본도 금융기관 설립 허용… 석유·통신 등 진입장벽 확 낮춰
65회 광복절인 8월15일 오후6시쯤, 상하이 푸둥 지역의 동방명주 타워를 비롯한 마천루들의 숲 바로 앞에 서있었다. 황푸 강 건너편 푸시 쪽 와이탄에서 바라보는 푸둥 마천루들의 스카이라인이 아니라 동방명주 바로 발 아래쪽의 강변도로인 빈강대도에서 거의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야 겨우 보이는 위용을 보고 있었다. 88층짜리 진마오 빌딩, 101층짜리 무역센터 빌딩을 정점으로 한 푸둥의 스카이라인은 올해 GDP 규모로 일본을 넘어 미국 다음의 세계 2위가 된 중국 경제의 ‘불패(不敗)’를 웅변으로 외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를 비롯한 중국 지도부들이 소리를 모아 외치는 거대한 함성 같은 것이 들리는 듯도 했다.

그러고 보니 불과 18년 만이다. 1992년 당시만 해도 허허벌판이던 푸둥 지역을 조선일보 홍콩특파원으로서 처음 취재하려고 도착했을 때 이 지역에는 변변한 개발사무소 하나 없었다. 곳곳에 구획 지어놓은 공고판은 있었으나 보잘 것 없는 단층의 개발판공실 벽에는 “몇 년도에는 어떻게 하고, 그다음 몇 년도에는 어떻게 하고…”하는 청사진 한 장 붙어있지 않았다. 현장 소장이라는 사람이 전하는 “덩샤오핑 동지가 상하이를 중국 경제의 룽터우(龍頭: 용머리)로 만들라고 지시하셨다”는 개념적 목표의 말밖에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18년이 흘렀다. 지금에 와서 빈강대도에서 푸둥의 스카이라인을 올려다보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상하이를 용머리로”라는, 지도자 동지가 내린 화두 한 말씀을 붙들고 중국 지도부가 18년간 달려온 결과 하늘을 향해 쌓아올려진 것이 오늘의 푸둥의 마천루 스카이라인이다. 그런데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관광안내원이 “밤에 이 푸둥의 마천루 스카이라인을 장식하는 불빛의 전력요금은 무료”라고 귀띔해준다. 물론 건물 내부에서 사용하는 엄청난 전력요금이야 당연히 중국 정부에 납부해야 하겠지만, 건물의 외곽을 밝혀주는 전력은 중국 정부가 부담한다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 중국 경제 번영의 상징인 상하이 푸둥의 야경은 중국 정부가 전력요금을 부담하는 휘황한 전시물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선지 미국과 유럽의 정치경제학자들은 아직도 중국을 ‘원 파티 네이션(One Party Nation: 1당 국가)’이라고 부르고, 중국 경제를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대주주인 거대한 주식회사 체제’라고 부른다. 세계 최대의 가전제품 생산 업체인 하이얼도, 세계시장 석권을 노리는 노트북 생산회사인 레노보도, 상하이의 대표적 강철공장인 바오산강철도, 중국의 거대한 석유 시장을 분할 점유하고 있는 시노펙(Sinopec)과 페트로 차이나(Petro China)도 민간기업이 아니라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유능한 간부가 파견되어 운영하는 공기업이라는 점을 지적한 말인 것이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한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지난 30여 년간 달려온 방향을 요약하면, ‘민영화’와 ‘자본주의화’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국영기업’이라는 말은 ‘국유(國有; 소유는 국가가 하되 경영은 민간이 맡는)기업’이라는 말로 바꾸었고, 당과 정부가 일괄적으로 분배해주던 직업과 주택은 자유경쟁에 의한 취업과 판매가 가능하도록 바꾸어놓았고, 지난 2007년에는 마침내 사회주의의 보루인 토지(농지는 제외)까지 사실상의 거래가 가능하도록 자본주의화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중국 정부 통계를 보면 중국이 왜 아직도 ‘사회주의 국가’임을 자처하는지 그 현실을 알 수 있다. 2008년까지 민간 소유 지분 분포가 전력, 열에너지 생산과 공급 분야에서는 13.6%에 불과하고, 금융업은 9.6%,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산업은 7.8%, 교통운수와 유통업은 7.5%, 수력곂??공공설비 관리업은 6.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중국 경제라는 거대한 눈덩이를 굴려온 주체는 민간이 아니라 중국공산당과 정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국공산당과 중국 정부가 최근 민간자본의 금융기관 설립을 허용하는 등 중국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 부문들에 민간투자의 범위와 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정책을 발표하고 나섰다. ‘민간투자 장려를 위한 신(新) 36조’로 이름 붙여진 이번 정책은 그동안 정부와 공공 부문이 독점하고 있어서 민간자본의 진출이 힘들었던 교통겳底?사업과 상수도겷떫?등 인프라 사업 분야에서부터 군수 산업과 석유겾戮흟항공 등의 대형 산업에까지 민간투자를 허용 내지 장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새로운 정책은 민간자본의 금융 서비스 분야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민간자본의 금융기관 설립을 허가하도록 했다. 또 민간자본이 공공사업 및 정부 보장형 주택 건설 분야에 진출하는 것도 지원하며, 상품 도소매와 물류 분야 진출에 참여하는 것도 지원키로 했다. 아울러 민영업체의 해외 시장 개척과 국제 경쟁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장려하고, 민간자본이 의료 산업과 교육, 문화, 관광, 스포츠 산업에 참여하는 것도 적극 지원해 나가기 위해 발표한 ‘비공유제 경제와 개체경제를 장려하기 위한 36개조의 의견’에 뒤이어 발표된 36개조의 정부조례성 ‘의견(정책)’이기 때문이다. 어떤 관영매체들은 “이번 조치는 (중국의 유태인이라고 불리는 부유집단인) 원저우(溫州) 상인들의 재력을 끌어내기 위한 조치”라는 다소 비판적인 논평을 게재하기도 하는가 하면, “거대한 재력을 필요로 하는 석유 산업에 민간자본이 출입할 수 있는 통행증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희망적인 논평을 한 관영언론도 있었다.

물론 ‘민간기업’이라고 했으므로 중국 국내 민간기업을 위한 정책을 발표한 것일 뿐, 외국 민간기업에 개방하겠다는 표현은 없었으므로 우리 기업을 비롯한 외국 기업들이 벌써부터 가슴 설렐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번 ‘신36조’의 시행으로, ‘원 파티 네이션’, ‘당과 국가가 대주주인 주식회사’라는 말을 듣는 중국 경제의 민영화 정도가 커진다면 그만큼 중국 경제가 더 합리적으로 움직여 갈 것이라는 기대감은 높여도 좋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푸둥의 마천루 스카이라인 서쪽하늘이 갑자기 시커메지더니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후발효과에만 너무 의존해왔고, 자체 기술 개발과 육성이 부족하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는 중국 경제의 앞날에 대해 너무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을 경계하는 하늘의 계시인가 하는 황당한 생각이 들 정도의 굵은 빗방울이었고, 검은 하늘이었다. 어쨌든 1992년에 중국과 수교한 지 20년도 채 되지 않아 한국 경제는 어떻든 중국 경제에 운명을 거는 구조를 갖게 됐고, 천안함 사태로 중국이 정치적으로 한국인들의 마음에 안들게 행동해도 이미 한국 경제는 중국 경제에 ‘죽으나 사나 목을 매야 하는’ 구조를 갖게 되고 말았다.

다른 제3의 길은 과연 없었던 것일까? “중국은 경제문제를 경제로만 보지 않고 정치로 본다”는 주룽지 전 총리의 말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래저래 오가는 여러 가지 생각에, 푸둥의 동쪽하늘을 시커멓게 뒤덮고 있다가 마침내 굵은 빗방울을 뿌려댄 먹구름이 왠지 인상 깊었던 황포강변의 여름날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