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신사복시장이 재편 움직임에 휘말렸다. 신사복 2위 업체인 ‘아오키 홀딩스’가 규슈(九州)를 기반으로 성장해온 ‘후타타’에 TOB(주식공개매수)에 의한 경영통합을 제안한 것이다.

이러한 제안의 배경에는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1947~1949년 출생)’가 내년부터 대거 퇴직, 양복을 입는 수요가 줄어드는 신사복 업계의 골치 아픈 문제가 깔려 있다.

여기에 젊은 샐러리맨들은 신사복 정장보다는 캐주얼을 택하는 추세가 날로 선명해지고 있다. 민간조사기관인 야노(矢野)경제연구소는 2004년 신사복시장의 규모를 전년 대비 2.0% 감소한 2조7220억엔으로 추계했다. 13년 연속 마이너스. 신사복업계 관계자들은 단카이세대의 퇴직과 저출산 등으로 이제 시장 확대를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연간 1000만 벌의 양복을 팔아온 신사복업계가 가장 걱정하는 일은 이른바 ‘2007년 문제’다. 총무성 인구추계 등에 따르면 단카이 세대는 700만 명. 2007년 이후 대량 퇴직으로 많은 사람들이 ‘탈(脫) 양복족’이 될 전망이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최근 보도에서 지난해에는 여름에 서늘한 양복과 와이셔츠를 입자는 ‘쿨 비즈’ 운동 효과로 대형 업체의 경우 전년 수준의 판매 신장을 보였으나 이런 캠페인은 반짝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신사복시장은 거품경제 붕괴 후 대형 슈퍼마켓이나 백화점마저 가세하면서 ‘가격파괴 전쟁’을 되풀이하는 일종의 소모전을 벌여왔다. 신사복 전문 업체들은 ‘2벌에 3만엔’ 등 파격적 염가가 예사였다. 가격파괴를 통해 시장을 늘려온 셈이다. 같은 품질을 놓고 비교하면 한국의 신사복보다도 저렴한 편이다.

요즘은 전문 업체들의 신사복 가격이 1벌에 5만~6만엔으로 다시 반등하는 추세다. 장기간의 출혈 경쟁을 더 이상 버틸 수 없기 때문. ‘5만~6만엔’이라지만 이도 일본의 물가나 화폐가치 등을 감안하면 비싸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

문제는 요즘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는 대형 유통업체들이 일제히 저가공세를 퍼붓고 있는 점. 신사복 전문 업체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예를 들면 대형 유통업체 ‘이온’은 1벌 1만엔짜리 신사복으로 신사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품질 면에서는 다소 떨어지지만 싼 맛에 찾는 젊은 샐러리맨들이 많아 신사복 전문 업체의 목을 조르고 있다.

신사복 전문 업체들이 연중 ‘바겐세일’을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최대 업체인 아오야마(靑山)마저 연중 바겐세일 체제나 다름없다.

도쿄 도심 JR신바시역 앞의 아오야마 대형 매장. 이 지역은 언제나 샐러리맨들로 붐비는 덕분에 위치상 ‘황금점포’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 매장에 걸려 있는 신사복에는 갓 나온 신제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10~30%의 바겐세일 표지가 달려있다. 그래도 늘 한산한 편. 한눈에 봐도 매출이 신통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다. 오히려 캐주얼을 위주로 매장을 꾸민 같은 역 지하 의류매장이 샐러리맨들로 연일 붐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신사복 업계에서 앞으로 대형 업체 가운데 살아남을 곳은 2~3곳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아오키가 지난 8월7일 후타타에 건넨 제안서를 보면 조건은 매수 가격이 주당 700엔으로 후타타의 판단에 업계의 관심이 쏠려있다. 이러한 제안에 따라 후타타의 최대주주로 역시 같은 업계의 4위인 고나카는 긴급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상장기업인 후타타는 아직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는 않고 있으나 제안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서서히 기울고 있다.

후타타는 미쓰이스미토모(三井住友)은행과 계약을 맺고 경영 조언을 받아가며 제안 내용을 분석 중. 아오키 측은 고나카는 후타타의 대주주이지만 협상 상대는 어디까지나 후타타라는 입장이다. 아오키의 제안에 응하지 않겠다는 고나카와의 사이에 후타타 쟁탈전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신사복 업계에서 단독 선두는 47개 도도부현(광역 지자체)에 719개 점포를 전개하고 있는 ‘아오야마’. 1974년에 업계 최초로 교외형 점포를 출점, 도심과 교외를 석권한 업체이다. 적극적인 점포 전개와 규모의 장점을 살리며 저가로 시장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업계 2, 4위 경영 통합 될 듯

아오야마를 뒤쫓아 온 아오키와 고나카는 도쿄를 포함한 간토(關東)지방의 점포망을 충실히 확충하고 있으나 니시니혼(西日本)에서는 지명도가 낮다. 아오키는 규슈에는 점포가 없으며 고나카도 2개뿐이다.

이런 이유로 아오키는 간토지역에서만의 출점으로는 성장 전망이 불투명하며 규슈에 91개 점포를 보유한 후타타를 획득함으로써 규모를 일거에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경영 통합의 최대 관건은 후타타 주식의 38%를 보유한 후타타 다카후미(二田孝文) 사장 등 창업자 가족의 동향이다. 후타타 창업자인 후타타 요시마쓰(二田義松) 상담역은 지난 2002년 아오키에 자본·업무제휴를 타진했던 일이 있다. 아오키와는 나쁜 사이가 아닌 셈이다. 아오키에는 아오키 사장과 후타타 상담역이 지난 8월6일 만났으며 당시 분위기가 좋았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후타타가 TOB를 거부하는 상황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도 한다. 다만 창업자의 가족들이 일치된 입장을 보일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와 관련, 후타타 상담역은 지난 8월11일 언론 인터뷰에서 100% 완전 자회사가 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는 “아오키나 고나카 어느 쪽과도 경영 통합을 할 수 있다”면서 고나카와의 현재의 제휴상태를 경영 통합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고도 했다.

이러한 발언은 후타타의 ‘몸값’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무튼 후타타 상담역의 태도는 후타타를 매각할 수 있음을 사실상 시사한 것이다. 배경에는 경영난이 자리 잡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는 “후타타라는 회사 이름에 개의치 않겠다”며 “중요한 것은 직원과 주주를 위한 최선의 판단을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다만 그는 “제안을 받아들일지 여부는 현재의 경영진이 판단할 일”이라고 말했다. 후타타 상담역은 현재 후타타의 주식 4.29%를 보유하고 있다.

후타타가 경영 통합 제안을 받아들이면 아오키는 8월 말부터 TOB를 시작한다는 복안이다. 고나카가 TOB에 응하지 않아도 제3자 할당 증자 등으로 고나카의 보유 비율을 줄여 100% 자회사화 한다는 구상. 제3자 할당이란 기업의 자금 조달 방식으로, 특정 거래처와 금융기관을 인수처로 끌어들여 신주를 발행한다.

후타타가 경영 통합 제안에 거부할 경우에도 아오키는 우호적인 태도로 협상을 계속한다는 입장이지만 일변해 적대적 TOB로 입장을 전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 8월9일의 경우 주식시장에서 후타타 주식은 ‘사자’ 주문이 쇄도, 전날에 이어 상한가(560엔)를 기록했다. 당장은 아오키가 제시한 TOB 가격(700엔)을 향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다. 아오키 주식도 TOB 성공에 대한 기대감에서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후타타의 최대주주인 고나카 주식은 아오키에 의한 TOB가 성공하면 업계 재편의 흐름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약세를 보이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