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있는 세탁기·인터넷 냉장고 등 혁신적 제품으로 ‘신화 창조’

 ‘골드스타에서 LG로’    세계 소비자 가전제품의 각축장, 미국 땅에서 LG만큼 브랜드 가치가 수직상승한 경우는 드물다. 미국 대형 가전매장에서 구석에 처박혔던 골드스타는 이제 프리미엄 LG 브랜드로 변신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되고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지난 2월12일 미국 뉴저지 주 패러무스 패션센터 내 베스트바이 매장. 프레지던트 데이 휴일을 앞두고 세일이 한창인 이곳 전자매장의 냉장고 섹션 앞줄엔 LG전자 냉장고 두 대가 대표상품으로 진열돼 있다. 24.7큐빅피트 용량의 프렌치 4도어 스타일 LG냉장고는 300달러 할인된 2099.99달러에 팔렸다. 이 매장에서 가장 비싼 냉장고다. 비슷한 크기(25.9큐빅피트)의 같은 스타일 GE 냉장고는 뒷줄 끝으로 밀려나 있다. 가격표엔 LG보다 400달러 싼 1699.99달러가 적혀있다. 미국의 대표 브랜드인 월풀·메이태그 등도 모두 LG에 밀려 매장 뒤쪽으로 배치됐고, 가격도 200~500달러 저렴하다. 또 다른 미국계 브랜드인 프리지데어의 냉장고는 같은 크기 LG 제품의 절반 가격에 팔렸다.

옆의 세탁기 섹션 역시 마찬가지. 4.5큐빅피트 크기의 앞문형 자주색깔의 LG스팀세탁기에 1699.99달러로 가격이 붙어있다. 역시 가장 비싼 제품이고, 미국 브랜드들은 밑으로 밀렸다.

프리미엄 LG 브랜드의 위상은 객관적인 자료에서도 나타난다. 광고전문지 <어드버타이징 에이지(Advertising Age)>의 2009년 조사에 따르면, LG가 브랜드 인지도가 가장 많이 오른 회사로 선정됐다. LG의 뒤를 포드자동차가 따랐고, 페이스북·베스트바이·KFC·유튜브·맥도날드 등이 이었다. 브랜드어셋밸류에이터의 지난해 조사에 의하면 94%의 미국인들이 LG 브랜드를 알고 있다. 불과 5년 전인 2004년만 하더라도 10% 정도의 미국인만이 LG 브랜드를 알고 있었다. 단순히 LG 브랜드를 아는 사람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LG는 스타일이 뛰어나고, 혁신적이며, 신뢰성이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

LG는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브랜드다. 소셜미디어 마케팅 회사인 버쳐(Viture)가 조사한 주요 소셜브랜드 순위에서 LG는 코카콜라에 이어 24위를 차지했다. 아이폰이 1위를 차지한 이 조사에서 혼다·샤프·나이키·IBM 등이 모두 LG보다 낮은 순위를 차지했다.

6년 전만 해도 LG라는 이름을 거의 알지 못했던 미국에서 LG는 어떻게 단시간 내에 성공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혁신적인 제품으로 승승장구

LG 브랜드의 비상은 무엇보다 혁신적인 제품에서 나왔다. 지난 2006년 LG는 세탁기 시장에 혁명을 일으킨다. 바로 색깔 있는 세탁기다. 흰색 이외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시절에 LG는 소비자 조사를 토대로 검은색 세탁기와 파란색 세탁기를 연달아 내놓았다.  LG전자 북미본부는 여기서 다시 과감하게 빨간색 세탁기를 출시했다. 설문조사에서 미국의 여성들은 빨간색 세탁기의 등장에 대해 썩 내키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속마음을 숨기는 여성의 심리, 또 별도의 세탁실을 둔 미국의 주택구조 등을 감안해 파격적인 색깔이 여성 소비자들의 마음을 끌 것으로 판단한 도박이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약 10만 대의 제품이 동이 났다. 이 해에 LG가 처음 내놓은 스팀세탁기와 이 칼라 세탁기로 LG는 세탁기 부문에서 1위로 오른다.

LG는 냉장고에서도 다른 시도를 했다. 2004년 냉장고에 인터넷 기능을 부착한 인터넷 냉장고를 최초로 미국에서 출시했다. 냉장고에서 일기예보와 주식시세를 보는 이 획기적 제품이 소비자 할인매장에 진열되자, 사람들은 모두 둘러서서 한 번씩 버튼을 눌러보았다. 이 인터넷 냉장고는 수천 대밖에 팔리지 않았지만 LG 브랜드의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LG전자는 이 냉장고를 셀리브리티 마케팅(유명인을 이용한 마케팅)에도 활용했다. 미국 인기 TV 토크쇼인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 사람 500명 모두에게 이 냉장고를 주는 파격적인 마케팅으로 LG 브랜드는 미국인의 머리에 인상 깊게 박혔다.

현재 미국에서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LG 휴대전화에서도 분수령이 있었다. 지난 2006년 당시 가장 인기 있던 모토롤라의 레이저폰은 노키아를 제치겠다며 무려 40%씩 가격을 인하하며 대대적인 판촉공세를 시작했다. 미국 시장에서 LG 휴대전화는 고사에 몰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 LG전자가 치고 나온 것인 초콜릿폰이다. 레이저폰처럼 얇은 것은 기본이고, 여기에 기능 하나를 더했다. 휴대전화를 누르면 빨간색과 파란색 빛이 나오는 기능을 넣었다. 업계 최초였다. 초콜릿폰으로 LG 휴대전화는 살아나기 시작했고, 무려 2000만 대를 팔았다.

저가 매장 거부하고 철저한 애프터서비스

LG전자는 고급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저가매장을 거부했다. 월마트·K마트·샘스 등 저가할인 매장에 LG 제품을 집어넣지 않았다. 납품하면 당장 매출을 늘릴 수 있지만, 유혹을 견딘 것이다. LG는 불가피하게 저가로 팔 수 밖에 없는 전자레인지, 창문형 에어컨 등에는 대신 ‘골드스타’ 상표를 붙였다. 저가 브랜드와 고가 브랜드를 의도적으로 나눈 것이다. LG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이미지가 어느 정도 굳어졌다고 판단, 올해 처음으로 월마트에 입점키로 했다. 

LG전자는 브랜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철저한 애프터서비스를 실시했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콜센터로 전화를 걸면 담당자와 통화하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LG전자는 최초 응답에 걸리는 시간을 평균 80초에서 20초 이내로 단축시켰다. 지난 1월 말 LG전자 북미법인장에서 물러난 안명규 고문은 “신뢰도를 쌓으려면 품질과 애프터서비스”라며 “LG전자의 애프터서비스를 매우 강화했지만 앞으로 더 개선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Interview  안명규 전 LG전자 북미 법인장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 제공해야 소비자들이 인식합니다”

지난 2004년 LG전자 북미법인장으로 부임해 지난 1월 퇴임한 안명규 고문은 미국 LG 브랜드 성공신화의 주역이다. 미국 뉴저지 주 LG북미법인 본사에서 안 고문으로부터 LG 브랜드의 성공비결에 대해 들어보았다.

미국에서 LG 브랜드의 위상이 변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를 들어주신다면.

“사람입니다. 처음 부임했을 때 돈을 두 배로 준다고 해도 일류들이 오지 않았습니다. 브랜드가 좋아야 인재가 몰립니다. 당시엔 결국 중급 일본 전자회사에서 활동하던 미국인들을 끌어왔지요.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초일류의 인재들이 LG전자 북미법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LG전자 미국 법인장인 짐 섀드는 P&G 출신이고,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피터 레이너는 미국 패션 업계에서 유명한 ‘사라 리’에서 왔습니다. 트레이드 마케팅 책임자는 소니 출신이죠.”

브랜드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소비자들이 인식합니다. 또 고급 브랜드를 만들려면 철학과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참을 줄도 알고 고집도 있어야 하죠.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저가 매장에 들어가는 게 유리하지만, 브랜드를 만드는 단계에선 위험합니다. 저가 매장에서 본 제품을 소비자들이 고급 브랜드로 인식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도요타자동차 실패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품질이 첫째이고 납기가 두 번째이며, 원가가 세 번째 입니다. 이 순위는 뚜렷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첫째·둘째 원칙이 지켜지면서 셋째가 와야 하는데, 도요타는 이것들 사이에서 타협을 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스마트폰에서는 우리 회사들이 좀 뒤져있는데.

“이 분야에선 우리가 뒤져있습니다. 빨리 따라가야 합니다. 빨리 쫓아가지 않으면 브랜드 전체가 낙후되었다는 인식을 줄 우려가 있지요. TV에서는 3D를 잘해야 합니다. 아직 콘텐츠가 부족하지만 트렌드가 그 쪽으로 가고 있어요. 일본에 선두를 뺏기면 안 됩니다.”

퇴임후 앞으로 계획은.

“미국에 진출하는 중소기업과 교포 기업 등에게 무료로 자문해주려고 합니다. 제가 배우고 경험한 것을 봉사차원에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나눠주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