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경제 위축 역발상으로 돌파… ‘성장엔진 재점화될까’

인구 감소, 노인 증가, 성장 둔화, 재정 압박…. 어느 나라 얘길까. 가슴이 뜨끔한 국가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다만 대체적인 눈길은 한곳으로 쏠릴 확률이 높다. 일본이다. 사실 이 정도면 국가 장래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게다가 마땅한 돌파구조차 없어 보이니 문제는 더 심각하다. 상황 변화의 기대 속에 출발한 민주당 정권의 지지율이 70%에서 30%대로 급락한 배경이다. 맡겨 봐도 뾰족한 수가 없더라는 막막함이다. 한국은 어떨까. 오십보백보다. 양국 모두 경기 부활과 미래 발전의 비전을 담은 대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와중에 의미심장한 대안을 찾자는 움직임도 가시적이다. 일본의 경우 홋카이도 부활카드가 대표적이다.

홋카이도 불황과 일본 경제 ‘닮은꼴’

홋카이도(北海道)는 일본의 4대 섬 중 최북단에 있다. 1년 중 절반이 겨울날씨일 만큼 동토(凍土)지역이다. 일본에선 설국(雪國) 혹은 북국(北國) 등의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홋카이도는 사실상 버려진 땅이었다. 국경이 확실치 않던 시절에도 큰 분쟁은 없었다. 얼어버린 황폐한 땅이었던 까닭에서다. 고작 140년 전에 일본에 편입됐고, 이후 양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러시아와 소유 갈등을 일으킨 게 분쟁의 전부다. 하지만 자연자원은 홋카이도를 일약 일본 경제의 주역으로 부각시켰다. 고도성장기 일본의 산업현장에 엄청난 석탄 물량을 공급해줬기 때문이다. 지역경제는 호황을 구가했고, 동토엔 활기가 넘쳐났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1960년대 주력 에너지원이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경제 쇠락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이후 탄광은 1980년대에 대부분 폐업되는 아픔을 겪었다. 설상가상 1990년대의 거품경제 붕괴는 울고 싶은 홋카이도의 뺨을 매섭게 때려줬다. 물론 홋카이도는 다각도로 재기의 발판을 구축했다. 관광 산업 집중투자가 대표적이다. 2월에 열리는 눈 축제를 세계인이 주목하는 국제행사로까지 발전시킨 게 그렇다. 다만 후속타가 없는 게 문제였다. 1주일간의 눈 축제에 홋카이도 인구 560만 명의 생계를 걸 순 없어서다. 이 결과 홋카이도 지역경기는 반복해 수축일로를 걷고 있다. 게다가 일본 최고의 노인지역답게 성장활력은 없어진 지 오래다. 버는 것 없이 지출항목만 늘어나니 재정적자가 부담되는 건 당연지사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지금의 홋카이도가 미래의 일본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는 진단까지 내놓는다. 가령 <닛케이비즈니스>는 최근 “홋카이도의 불황구조는 일본 경제가 향후 겪어야 할 전반적이고 고질적인 핵심문제를 다 갖고 있다”며 특집기사를 보도했다. 요컨대 홋카이도의 오늘이 일본 경제의 내일이라는 암울한 분석이다. 인구 감소, 노인 증가, 성장(내수) 둔화, 재정 압박 등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다각적인 홋카이도 회생 시도를 통해 일본 경제의 부활 가능성을 타진해보자는 목소리가 설득력 있다. 하루하루 연명하는 식의 단발·일시적인 운영방침에서 탈피해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자활수단을 강구해 작게는 홋카이도와 크게는 일본 전체를 구해낼 묘책을 찾자는 얘기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미 일본 국내에서 있었던 두 차례의 지자체 파산선언처럼 홋카이도와 일본 전체가 나란히 디폴트에 빠질지도 몰라서다. 논의는 다양하다. 지역경제 회생을 위한 신규산업 발굴 계획부터 지방분권 실현을 통한 자생적 성장구조 구축까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홋카이도의 오늘은 일본 전체의 내일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인구구조부터 보자. 홋카이도는 일본에서 제일 늙은 지역이다. 맹렬한 고령화 탓이다. 2035년엔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 될 것이란 전망(고령화율 36%)까지 있다. 이는 일본 전체보다 5%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산업구조도 닮았다. 홋카이도는 내수산업 중심지역이다. 수출과 관련된 2차 산업(제조) 비율이 낮은 대신 내수 의존적인 3차 산업(서비스) 비율이 아주 높다. 16.8% 대 79.7%다. 일본 전체로 봤을 땐 거의 30% 대 70%이니 한층 내수 의존적인 산업구조란 의미다. 일본 정부가 그토록 원하던 내수 주도 경제체계를 홋카이도는 이미 완성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경제의 곳간은 텅텅 비었다. 지역총생산이 악화되면서 연간 적자만 1조5000억엔(지역수지)에 달한다. 중앙정부의 보조 없이는 생존조차 힘든 지경이다. 건설투자액 대비 공공사업 비율만 60%로 내수 주도는커녕 전형적인 공공사업 의존경제로 전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민주당 정권은 공공사업 예산조차 줄이는 추세다.

지역특화 농업 및 관광 산업 육성

상황이 이쯤 되자 자구방안도 속속 제시된다. 일단 온고지신(溫故知新) 전략이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산업구조와 의식 전환을 시도하자는 계획이다. 다른 지역의 성공모델을 그대로 추종하기보단 의식 전환을 통해 기왕 보유하고 있던 지역의 우위산업을 특화시킨다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종의 역발상이다. 즉 과거부터 존재해온 홋카이도 특유의 기반을 활용한 산업의 부활이다.

대상은 크게 농업·관광·무역 등 세 가지다. 먼저 농업은 부가가치를 덧대는 게 과제로 떠올랐다. 생산된 농산물은 헐값에 본토에 내다 팔면서 반대로 들여오는 가공품은 비싸게 매입하니 수지적자는 당연한 결과다. 때문에 본토의 하청구조에서 벗어나 농작물에 새로운 부가가치를 얹어 기간산업으로 육성하는 게 방법일 수 있다.

<닛케이비즈니스>는 농업생산법인인 ‘진나이홈21’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곳은 여름과일인 망고를 겨울에 수확한다. 홋카이도의 서늘한 기후를 이용한 재배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여름에 망고를 수확하면 겨울에 온실 난방을 해야 하는데 난방비용이 상당하다. 이에 비해 겨울 수확을 하면 여름엔 냉방을 해야 하는데 홋카이도는 날씨가 서늘해 냉방비용이 적게 든다.

홋카이도의 겨울 망고는 개당 7500엔으로 본토 망고의 두 배 이상으로 고가다. 비싼 건 1개당 2만엔을 웃돈다. 부가가치는 이뿐만 아니다. 영농학교가 만들어지자 농장 인근엔 인구까지 늘어났다. 3년 과정에 본토 지원자가 몰려들자 자연스레 동네도 젊어졌다.

법인대표(진나이 요우이치)는 “그간 홋카이도 농업에 경영은 없었다”며 “생산물을 어떻게 내다 팔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해답을 6차 산업이라고 표현했다. 1차(생산)에서 그치지 않고 2차(가공)와 3차(유통)까지 합한다면 모두 6차 산업에 달하는 가치 증대가 가능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잘 생산해 잘 다듬어 잘 팔면 농업만으로도 얼마든지 채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전략이라면 설국인 홋카이도의 지역 특징은 농업생산에 둘도 없는 메리트일 수 있는 건 물론이다.

또 다른 홋카이도의 부활카드는 관광이다. 외국인 유치를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삼아 축소되고 있는 내수 의존적인 성장 한계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이는 관광입국을 슬로건으로 내건 민주당 정권의 지향점과도 직결된다. 가령 홋카이도에 외국영화의 해외 로케를 유치해 관광 수요를 늘리는 게 대표적이다. 최근 드라마 <아이리스>의 촬영 배경이 된 아키타(秋田)에 한국 관광객이 급증한 것과 같은 기대효과다.

실제로 홋카이도의 몇몇 레저·숙박업체는 중국·한국 등 주변국의 외국 관광객을 전담할 국제인력을 점차 강화하고 있다. 단순한 저가관광만이 아니라 의료기술 등 일본이 보유한 고급 서비스를 접목해 외국 부유층의 요양·휴양 수요까지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이 경우 관광만의 부가가치 창출보다 몇 배 이상의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다.

지리적 접근성을 적극 활용한 무역 증대도 홋카이도의 부활카드에 포함된다. 유력 대상은 러시아다. 사할린이 고작 40㎞ 떨어져 있다. 따라서 비슷한 기후라는 점을 이용해 홋카이도를 이른바 ‘한랭지 사양’ 수출기지로 삼자는 의도다. 예를 들어 최고품질을 자랑하는 홋카이도의 한랭지 건축기술을 러시아 현지에 수출하는 식이다. 납기연장에 불량시공이 많은 러시아 현지 업체에 비해 홋카이도의 건축기술은 다소 고가일망정 만족도가 높다는 게 매력이다. 실제로 8년 전에 진출한 선두주자 토우호우(東邦)공업은 이미 매출의 절반 이상(7억엔)이 러시아에서 발생할 만큼 안착했다. 또 품질 경쟁력을 내세운 사륜구동 중고차 판매업도 전망이 밝다. 좀 비싸도 일본 국내와 동일한 품질 제공으로 러시아 시장 점유가 가능해서다.  

지방분권으로 독자적 성장 추진

홋카이도 재생 플랜은 나아가 지방 분권으로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홋카이도를 중앙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다. 벤치마킹의 선례도 있다. 영국의 스코틀랜드 자치권 회복이 대표적이다. 1997년 지방 분권을 공약으로 정권 교체에 성공한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1999년 스코틀랜드 정부를 탄생시킨 케이스다. 외교·국방·경제정책(거시) 등을 뺀 지역 내정은 입법권을 이양했다. 국세도 중앙정부가 거두긴 하되 스코틀랜드에서 사용되는 금액에 대해선 용도한정 없이 일괄교부하고, 분배방법도 완전히 일임했다. 예산 과부족을 염려해 소득세 상하 3% 범위에서의 증감 권한도 줬다. 이 정도 내정 기능이면 사실상 독립에 가깝다.

배경은 단순하다. 19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도입에 따른 경제 피폐 때문이었다. 와중에 소득 수준과 무관한 인두세 도입으로 그렇잖아도 소득 수준이 낮은 스코틀랜드 주민으로선 부담이 더 커졌다. 이는 지역주민들이 자립의 길을 걷겠다고 나선 원동력이 됐다. 결과적으로 독립 추진은 스코틀랜드 경제 성장도 이뤄냈다. 성장률은 개선됐고, 인구 감소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독립정부의 명확한 성장전략과 신속한 의사결정 덕분이었다. 이 신속함이야말로 작은 정부의 가장 강력한 파워였다.

관광·농업·무역 등 새로운 기간산업을 모색하려는 지역민들의 노력도 시작됐다. 홋카이도의 자산을 활용하자는 것으로 중앙정부가 나선 전국 차원의 획일적인 지원으로는 불가능한 과제다. 지방분권은 행정비용 삭감뿐만 아니라 경제 성장을 위한 전략 차원에서 추진될 문제다. 그리고 지금껏 그 추진의 주체는 중앙권력이었다. 하지만 결론은 거의 실패에 가까웠다. 결국 국가 미래의 성장모델을 중앙에서 내리느냐 혹은 지방에서 올리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지금껏 일본 경제는 수출 증대, 인구 증가의 확대경제 덕분에 특별한 성장전략 없이도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 전제가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그 최전선에 홋카이도가 있다.

유바리 시의 흥망성쇠와 교훈

관광명소에서 재정 파탄으로 ‘몰락’

▷▶ 2006년 홋카이도에 위치한 유바리(夕張) 시가 파산을 선언했다. 시설 건설 과잉투자로 360억엔의 적자가 발생해서다. 이는 도시 경영의 실패가 나은 재앙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요컨대 홋카이도와 유바리는 비슷한 경로로 일본을 따라가는 한국에게 훌륭한 벤치마킹이자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원래 유바리는 탄광도시였다. 석탄 수요가 많았던 전쟁 이후 고도성장기 땐 거주인구가 50만 명에 달할 만큼 번창했다. 하지만 이후 탄광 쇠퇴가 가속화하면서 도시는 침체하기 시작했지만 이 위기는 훌륭하게 극복해냈다. 오지의 시골도시가 지역 특색을 살린 다양한 축제를 유치해 관광·휴양지로의 변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엔 지역 부활의 성공사례로 꼽히기까지 했다. 한 해 관광객 200만 명 시대라는 진기록도 세웠다.

하지만 성공신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수요예측 없는 거액투자로 360억엔 이상의 빚을 졌기 때문이다. 유원지부터 박물관·호텔·스키장 등 과잉투자를 반복했다. 여기엔 6연속 당선 등 시정에 자신감이 붙은 파산 당시 시장의 전횡과 독단도 한몫했다. 나중엔 분식회계까지 감행하며 돌려막기를 거듭했다. 결국 2006년 유바리 시 당국은 막대한 차입금과 채권 발행으로 지자체로는 유일하게 파산선언을 했다.

후폭풍은 대단했다. 어떻게든 해줄 줄 알았던 중앙정부가 두 손을 들면서 2007년 시는 재정 재건 단체로 전락했다. 공무원의 절반 이상이 사표를 썼고, 살아남은 자들도 반 토막 월급에 업무는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적자 벌충을 위해 세금은 늘리고 복지는 줄였다. 버스비는 3~4배나 올랐고, 무료였던 복지혜택도 사라졌다. 시립병원은 야간진료를 포기했고, 공공도서관도 개관시간을 줄였다. 주민들도 떠나기 시작했다. 주인 떠난 집은 유령 건물로 변질됐다. 파산 당시 12만 명이던 인구는 현재 1만 명을 겨우 넘기는 수준이다.

애초 269명에서 4년에 걸쳐 103명으로 줄이려던 공무원 구조조정도 자발적인 퇴직자가 늘면서 이젠 ‘더 그만두면 큰 일’이라고 할 만큼 인력난이 심각하다. 신입직원이 없으니 공무원 평균연령이 40대 중반에 달한다. 작년 7월엔 리조트의 관문이던 JR역사(驛舍)가 레스토랑으로 바뀌는 수모를 겪었다. 이 역은 1991년 지역 부활 차원에서 유치한 리조트호텔 바로 앞에 세워졌는데, 재정 파탄 이후 화장실마저 폐쇄될 정도로 경영위기에 봉착했다.

최근 시 당국은 재정 재건을 위해 적극 노력 중이다. 기쁜 소식도 날아들었다. 작년 관광 유치를 위한 홍보 강화 차원에서 개발한 캐릭터가 칸 국제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해서다. ‘돈은 없지만 사랑은 있다(Love but Money)’는 식의 역경 극복 캐치프레이즈를 통해 현재의 처지를 적극 알림과 동시에 위기 타개를 위한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덕분이다. 시  당국자는 “더 이상 대규모 투자는 할 수도, 하지도 않겠다”며 “기존시설의 적극적인 활용과 자연친화적인 관광 유치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바리 영화제도 올해 재개됐다. 2007년 이후 중단됐던 영화제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지역민의 기대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