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인도에 이은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불리는 베트남. 이곳에서 ‘코리아’ 브랜드는 선망의 대상이다. 동시에 경쟁국들의 거센 추격으로 위기에 직면할 조짐도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베트남의 관문인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 하노이 시내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한 길이 3.7㎞의 탕롱(Thang Long)대교. 북부의 젖줄인 홍강 위에 우뚝 서 있는 이곳에는 2004년부터 한국의 대표 그룹인 ‘LG’ 이름이 새겨져 있다.

LG전자 베트남 법인이 하노이시와 3년 계약을 맺고 다리 양쪽 180개의 가로등에 광고판을 세운 것이다. 7만2000달러를 들여 가로 55㎝, 세로 1.4m 크기의 광고판에는 LG전자 제품의 우수성과 하노이시의 특장점을 설명하고 있다. 당초 하노이시는 탕롱대교의 가로등에 광고판 부착을 허용하지 않았다가, 홍강 주변 다리가 너무 어둡다는 지적에 따라 다리 보수 계획을 세웠고 이 틈을 LG 측이 잽싸게 파고 든 것이다. 요즘 탕롱대교는 저녁만 되면 젊은 연인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데이트 명소로 자리 잡았다. LG 측은 짭짤한 광고 효과를 누리고 있다. 

실제 LG전자 베트남 법인은 2004년 사회공헌도와 경제발전 기여도, 고용창출 효과, 성실납세 기록 등에서 우수기업으로 평가를 받았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노동 훈장’을 받았고, 2003년에는 베트남 총리실로부터 기업체에 수여하는 최고의 영예인 ‘기업상’과 ‘기업인상’도 수상했다.

LG전자는 지난해 베트남에서 1억5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린데 이어 올해는 목표를 3억달러로 높였다. ‘2007년 베트남 가전 업계 1위’에 올라서겠다는 야심찬 목표도 세웠다.

이런 ‘성공’에 고무돼 한국 기업의 베트남 행은 이미 봇물이 터진 상태. 우리나라의 대(對)베트남 투자는 2000년에 34건, 6800만달러였으나 지난해는 206건에 5억8070만달러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올 들어서만도 할인점 롯데마트가 7월 중 베트남 정부의 사업권 인가를 받은 다음 내년에 호치민시에 1호점 매장을 시작으로 5년 안에 호치민과 인근 지역에 총 20개 안팎의 점포를 연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롯데마트는 2005년 2월 베트남 국영기업 인티맥스와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국외 사업 추진팀을 구성했으며 베트남 전문가까지 스카우트하는 총력전을 펼쳐왔다.

금융 분야의 경우, 베트남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로는 처음으로 한국 금융기관이 베트남 주식 투자 공모(公募) 펀드를 출시했다. 6월19일부터 한국투자증권이 일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베트남 공모1호 펀드인 ‘월드와이드베트남’ 펀드를 내놓은 것이다. 총금액은 1000억원이지만 장기투자로서 성장 가능성은 어느 나라보다 높다고 회사 측은 자신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베트남을 수년째 강타하는 한류열풍과 맞물려 한층 증폭되고 있다. 하노이국립대, 하노이사범대 등에서는 한국어학과가 수년째 단연 인기 1위를 질주하고 있다. 한 대학생은 “일본이나 미국 기업보다 한국 기업의 분위기가 가장 베트남과 근접한데다 대우도 좋아 젊은이들이 한국 기업을 최고로 친다”고 전했다.

코트라 무역관에만 올 들어 매월 50~70건의 직접 방문 또는 투자 문의가 쇄도하고 있을 정도. 지난해 한국은 베트남 투자 건수에서 종합 2위, 금액으로는 4위를 기록했다.

뇌물, 부정부패 등 위험도 커져

이런 분위기의 밑바닥에는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비즈니스를 위협하는 리스크(Risk 위험) 요인 또한 커지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띠엔호일로’ 때문이다. 우리말로 ‘돈(뇌물) 주기’란 뜻으로 원활한 사업 진행을 위해 공무원이나 당의 실력자들에게 건네는 ‘면담료’ 또는 ‘급행료’가 베트남 비즈니스의 ‘리스크 1호’로 뜨고 있는 것이다.

하노이에서 일하는 A전자업체 사장은 “명절, 생일, 휴가, 관혼상제 때마다 연중 띠엔호일로를 돌려야 하는 데다 프로젝트 성격과 규모에 따라 금액도 수천~수십만달러까지 천차만별이라 참 힘들다”고 말했다. 아파트 건설 프로젝트를 따기 위한 ‘띠엔호일로’는 당연한 ‘통과의례’로 여겨지는데, 최소 300만달러가 넘는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하지만 띠엔호일로를 주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사이에 사업 기회가 천양지차로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외면할 수 없다는 게 고민거리다. 호치민에 있는 한 상사 법인장은 “관료의 재량에 따라 한 달 만에 나올 수 있는 인·허가가 1년 넘게 질질 끄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게 베트남”이라고 말했다.

B건설업체의 하노이 법인장은 “사업 등록을 한 다음 56개의 도장을 받아야 하는데, 담당자와 상급자들에게 현금이나 선물을 상납해야 해 신물이 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두 번째는 관료들의 뿌리 깊은 부정부패.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당 서열 1위였던 레카 피에우 전 당서기장은 “정치국원 재임 시 방문객들이 5000~1만달러가 든 돈 봉투를 내게 건네주려 했다”고 최근 고백했을 정도다. 가령 외국 기자가 베트남의 대학 교수나 당 간부와 인터뷰를 하더라도 직접 또는 중간에 인터뷰 일정 등을 잡아준 중개인에게 간접적으로라도 소개비 봉투를 건네야 할 정도로 베트남의 부정부패는 밑도 끝도 없는 꼴이다.

민권의식 성장에 따른 노사분규 증가 등도 부담이다. 2006년 들어 5월초까지 수만 명의 현지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과 대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 하노이, 호치민 일대에서 가동을 중단한 공장만 100개가 넘는다는 게 코트라의 분석이다.

임금도 수직 상승 중이다. 베트남 정부가 지난 2월 총리령으로 외국 기업 근로자에 대한 월 최저 임금을 해당 기업들과 사전 협의 없이 평균 47.2% 전격 인상했다. 미국, 유럽연합 등 외국 상공회의소들은 얼마 전 “베트남 정부가 근로자들의 파업사태를 수수방관하는 데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외국 기업들과 원활한 대화를 촉구한다”며 공동 항의문을 내며 강력 반발했다.

한 미국 기업은 호치민 주변 공단에 1200만달러(약 120억원) 투자 프로젝트를 전격 연기했다. 태국, 말레이시아 등과 달리 일본 기업이나 화교의 텃세가 없고 같은 유교문화권인 데다, 아세안 자유무역협정(AFTA) 발효 시 동남아 진출의 교두보로서 매력이 상당하지만 반대급부 또한 점점 부각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베트남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증가세는 한층 둔화되고 있다. 경쟁하는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 국가들은 두 자리 수의 수출증가율을 보이는 반면, 우리나라는 한 자리 수 증가에 그치고 있다. 수출 품목의 경우, 베트남의 10대 수입 상품 가운데 우리나라는 자동차 및 부품, 섬유류, 합성수지 등에서 시장점유율이 계속 하락 중이다. 베트남 내 시장점유율도 2002년의 12%를 마지막으로 2003년과 2004년에는 2년 연속 10%로 내려갔고 2005년에는 9.7%로 추락했다.

김영웅 코트라 하노이 무역관장은 “2005년도 베트남의 수입 시장 규모는 1년 만에 50억달러가 늘어난 370억달러로 2004년보다 15.7%나 커졌지만 우리나라의 수출은 8.2% 증가에 그쳐 중국, 싱가포르, 일본, 대만 등에 비해 크게 못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원화 강세에 따른 수출 가격 경쟁력 약화와 베트남 진출 우리 기업들이 원가 절감을 위해 원·부자재 구매를 한국이 아닌 중국 등 제3국으로 전환하는 게 큰 이유이지만, 새로운 수출 동력과 비즈니스 모델 구축이 시급하다고 현지 기업인들은 지적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성과에만 만족한 채 방심했다가는 ‘기회의 땅’에서 금방 밀려나는 신세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