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뭐기에’… 쇄국 vs 개항 ‘날 선’ 대립

한식의 국제화가 화두다. 그만큼 한식 수출이 뒤져있다는 얘기다. 반면 일식은 일찌감치 국제화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청결한 조리와 깔끔한 포장, 담백한 맛의 3박자를 갖춰 고급음식으로 글로벌 미식가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런 일본조차 말 못할 고민이 있다. 공식적으론 일식의 국제화를 내걸었지만, 안에선 전통 사수의 목소리가 목격돼서다. 단초는 <미슐랭 가이드>가 제공했다. 일식을 둘러싼 ‘개방 vs 쇄국’의 대결 현장을 살펴보자.

세계 최고 성적에도 불만 쇄도

“처음 온 손님(一見さん)은 사절입니다.”

교토(京都)는 일본 최고의 고도(古都)다.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만큼 전통을 지키려는 자존심도 세다. 여전히 교토가 수도요, 스스로 서울사람이라 여기는 분위기도 강하다. 외국인은 물론 일본인들 사이에서조차 콧대 높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교토 식당가엔 뜨내기 혹은 최초 방문객은 거절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다분히 폐쇄적이고 담합적인 이미지다. 하지만 이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발상이란 게 이들의 설명이다. 손님을 차별(?)하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단골고객을 위한 극상 서비스 제공이 그 해답이다. 장기간의 신뢰로 취향을 다 아는 손님을 위한 세심한 맞춤 서비스 때문이란 얘기다. 좋게 보면 특유의 장인정신이 요리 업계에까지 발현돼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게 결국 사단이 됐다. 일식 세계화를 둘러싼 뜨거운 갑론을박을 야기해서다. 여파는 작년 연말에 이어 새해 연초에까지 현재진행형이다. 논쟁의 출발은 세계적인 음식점 소개책자 <미슐랭 가이드>의 교토·오사카판 발간에서 비롯됐다. 2009년 10월의 일이다.

<미슐랭 가이드>는 2008년 아시아에선 최초로 도쿄판을 발간한 데 이어 일본에서 두 번째로 <미슐랭 가이드 교토·오사카 2010년>판을 내놨다. 세계 최고 권위의 평가서답게 당연히 환영일색일 것 같던 출판기념회의 분위기는 상당히 냉랭했다. 웬만하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들이지만 이날의 기사 내용을 종합하면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요약된다.

일례로 귀빈으로 참석한 교토시장은 발간축하 메시지의 일성(一聲)에 물음표를 던졌다. “일본 요리는 종합예술로 요리뿐 아니라 그릇, 장식, 꽃꽂이 등과 미묘하게 어우러지며 일본인의 철학과 미의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며 “이걸 단순히 별의 숫자만으로 평가하는 것에 왠지 저항감이 있다”고 했다. 뒤를 이은 관광청 장관도 환영사 말미에 “도쿄판에 이어 이번에도 상당한 이론이 제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슐랭 가이드>를 둘러싼 찬반논란은 단순하다. ‘겸허히 받아들여 일식 수준의 업그레이드 기회로 삼자’는 쪽(찬성)과 ‘단순한 외국 기준으로 전통일식을 평가할 수 없으니 무시하자’는 쪽(반대)으로 갈린다. 처음엔 찬성 쪽이 압도적이었다. 일식을 둘러싼 자신감이 높은 데다 선정결과를 봐도 대단히 희망적이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가 불만을 제기할 만큼 미슐랭은 일본 식당에 많은 별을 안겨줬다. 파리의 경우 최고 등급인 별 셋(★★★) 점포는 1978년부터 지금까지 고작 10개 식당뿐이다. 그런데 일본은 첫해에만 도쿄에 별 셋 식당이 9개 탄생했다. 별 둘과 셋을 합하면 단연 세계 최고다. 최근 결과인 2010년판도 마찬가지다. 2010년판을 기초로 일본 식당에 부여된 별 숫자를 보면 도쿄(261), 교토(110개), 오사카(79개) 등 모두 450개에 달한다. 별 셋 식당은 각각 11개, 6개, 1개로 모두 18개다. 단일국가로 봤을 때 글로벌 No.1의 탁월한 성적이다. 반면 아시아의 미식천국으로 손꼽히는 홍콩(2010년판)은 별 셋 식당이 2개에 불과하다. 홍콩의 전체 별 숫자도 54개에 머무는 실정이다. <미슐랭 가이드>가 도쿄를 세계 최고의 미식도시로 선정한 근거도 여기에 있다.

식중독 식당이 우수 점포?…불신 확대

하지만 영광은 점차 의혹과 반발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3년째인 지금 반대여론이 세를 확산하고 있어서다. 교토·오사카판 출간이 잠잠하던 일본열도에 불을 지폈다. 이유는 몇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평가과정에 대한 의혹이다. 총 7명인 조사원의 평가자질을 비롯해 평가항목과 방법 등이 의심스럽다는 문제제기다. 식당 업계는 “횟감의 원산지도 모르는 조사원이 제대로 음식을 평가할 수 있겠느냐”는 별 둘 식당 요리사의 말을 빌려 불만을 드러냈다.

선정 결과도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게 고급식당 위주의 별 잔치란 오명이다. 일본판의 경우 선정 식당은 한 끼 가격이 평균 1만엔 이상의 고가 점포뿐이다. 저녁식사엔 5만엔 이상을 받는 가게도 많다. 반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끊임없이 사랑받는 서민 식당이 후보명단에서 빠졌다는 점도 수긍하기 어렵다는 근거다. 서민음식의 고향으로 유명한 오사카에서 별 셋 점포가 딱 한 군데만 선정된 게 그렇다.

역사성도 의혹을 둘러싼 논쟁거리 중 하나다. 신생과 노포(老鋪)식당 중 당연히 장기간 검증받아온 노포가 선정될 확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론 인근의 신규점포가 뽑히기도 해서다. 오랫동안 입맛을 사로잡아온 노포 입장에선 계면쩍을 수밖에 없다.

제일 중요한 반대 논리는 선정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정 이후 별의 명성을 어그러뜨리는 사건이 적잖아서다. 별을 받은 점포의 식중독 사고가 대표적이다. 2009년 4월 별 한 개를 받은 도쿄의 한 식당이 19명의 집단식중독 사고를 일으켜 별의 빛깔을 퇴색시켰다. 이후 여론은 기본도 못 지키는 식당을 최고라고 추켜세운 결과를 어떻게 믿느냐며 급속도로 악화됐다. 순수한 식당 등급보단 자동차 왕국 일본에서 타이어를 더 팔기 위한 미슐랭의 마케팅 전략이란 의혹으로까지 연결됐다. 

<미슐랭 가이드>의 게재 초대를 거절하는 식당도 속속 생겨났다. <미슐랭 가이드>에 자기 식당을 싣지 말라며 취재에 불응하는 경우다. 실제로 보통 한 점포당 2페이지를 할애하는데, 교토·오사카판의 경우 1페이지에 사진도 없이 소개된 점포도 적잖다. 게재 거부 탓에 요리사진을 실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교토의 경우 82개 식당이 실렸는데, 게재 거부 점포만 13개에 달했다. 도쿄 2009년판의 경우 173개 중 단 3개가 거부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충격이었다.

미슐랭 소동의 클라이맥스는 교토·오사카판 출간과 맥이 닿는다. 2008년판 이후 매년 출간하는 도쿄판만 해도 찬반양론은 일종의 해프닝에 머물렀다. 하지만 평가대상이 교토와 오사카에까지 확산되자 여론은 순식간에 역전됐다. 앞서 설명한 교토·오사카의 역사적 특수성 때문이었다.

교토·오사카판은 출간 이전부터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도쿄보다 음식문화가 발달한 데다 일식을 비롯한 전통요리의 발원지인 까닭에서다. 미슐랭은 전통에 대해 각별히 배려했다고 강조한다. 원래 도쿄처럼 2008년판을 내려 했지만, 교토의 특수성을 배려해 일부러 무려 2년에 걸쳐 꼼꼼한 준비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미슐랭 입장에서 보면 다소 억울한 면도 없잖다. 다른 진출국과 달리 유독 일본에서만 갈등이 부각되고 있어서다. <미슐랭 가이드>는 엄청난 파워를 자랑하는 최고권위의 식당평가서다. 별 자체가 곧 부귀영화로 이해된다. 식당·요리사의 몸값이 뛰는 건 물론 평생의 명성까지 얻는다. 까다롭게 선정되는 만큼 별 셋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후보에 오르기도 힘든데 후보식당이 돼도 별 하나를 따기 힘든 게 현실이다. 통계를 보면 확률은 10%에 못 미친다. 프랑스에선 등급 하락 소식에 요리사가 목숨을 끊은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런 미슐랭이 일본에서 경계 대상이 됐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엄청난 별을 내려주는 배려(?)까지 해줬으니 더 그렇다. 오죽하면 일본에 유독 별이 많은 의혹을 제기하자 책임자가 나서 “도쿄는 식당이 16만 개에 달하지만, 파리엔 4만 개에 불과하다”며 구차하게 설명했을 정도다. 식당 자체가 많으니 별도 많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인데, 미슐랭 입장에선 칭찬해주고 욕먹은 격이 됐고 체면이 구겨진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개항파, 일식 세계화 디딤돌 삼자 주장

사실 <미슐랭 가이드>의 선정결과를 ‘평가’하는 나라는 일본이 거의 유일하다. 그만큼 맛에 대한 자존심이 세단 얘기다. 일본열도가 미슐랭 별에 민감한 건 특유의 랭킹문화 탓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본사회는 과거부터 순위를 매김으로써 등급을 정하는 놀이문화가 있었다. 스모부터 의식주에 이르기까지 순위문화는 광범위하다. 진출 초기 별 몇 개라는 단순한 랭킹 부여가 단번에 관심을 모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유의 일본 요리가 외국인에 의해 순위가 매겨진다는 것은 충격적이면서 동시에 꽤 재미난 발상이었다. 하지만 애초의 출간 배경과 역할보다 평가 시스템 자체에 눈길이 쏠리면서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갔다. 평가자의 겸허한 자세 부족과 일본인의 미각 자체가 도마에 오르면서 자존심이 상한 건 물론이다. 이 결과 미슐랭 평가는 19세기 개항 당시 ‘개국(開國)’을 요구한 군함(黑船) 출현에 비유하는 경계론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다. 즉 전통 고수의 ‘쇄국’논리다.

물론 ‘개국’을 통해 일식의 국제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개항파도 있다. 미슐랭 가이드를 반기는 부류다. 단기적으론 미슐랭 홍보효과에 힘입어 외국 손님을 유치하는 실익 확보부터 길게는 일식 수출을 통해 세계무대를 장악하자는 국부 창출의 근거를 댄다. 실제로 발간 직후 교토지역엔 미슐랭 특수(特需)가 한창이었다. 예약이 급증하면서 만석을 기록하는 점포가 많아졌다. 경기 불황과 신종인플루엔자 등으로 외식인구가 줄었단 점에서 구세주로 표현하기도 한다. 선정 기념메뉴를 제공하는 발 빠른 식당도 생겨났다. 매출이 2~3배 늘어난 곳은 부지기수이며, 몇 달치 예약이 끝난 곳도 있다.

개항파에게 쇄국파의 전통 고수는 한가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개항파는 연 5000만 명의 외국 관광객이 방문하는 관광도시 교토가 ‘일본만의 전통입맛’만 고집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역사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젊은 요리사나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굉장한 압력이 된다는 주장도 강하다. 글로벌 시대에 맞게 차라리 전통과 격식에 근거한 암묵적 서열을 깨는 게 훨씬 효율적이란 이유에서다.

일본 요리 업계는 ‘전통 vs 개혁’의 논리 대결에 한창이다. <미슐랭 가이드>가 불씨를 지핀 건 물론이다. 다만 궁극적인 방향은 134년 전 메이지(明治)유신의 결단처럼 개국에 맞춰진다. 전통을 지키되 세계와 맞서는 경쟁력을 갖추는 변신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진화론이다. 미슐랭의 본고장인 프랑스가 그 성공사례다.

프랑스에서 미슐랭 별은 동경의 대상이다. 미슐랭 별을 따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별 하나만 돼도 경제적 부와 사회적 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해외 각지에 나가 요리에 승부를 거는 신진 요리사가 배출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프랑스의 시각에서 일본의 미슐랭 소동은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다. 되레 프랑스 요리처럼 새로운 인재와 혁신을 통해 글로벌화하지 않고, 갈라파고스처럼 진화를 멈춘 일식이 안타깝다는 입장이다. 물론 일식은 공히 글로벌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요리는 일본인이 하면서 경영은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맡는 경우도 적잖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고집과 섬세한 조리기술 등 세계 최고의 명성에도 불구, 이 콘텐츠를 세계에 소개하려는 요리사가 없다는 점도 한계다. 일식의 국제화에 속도가 붙지 않는 건 이런 복합적인 배경이 작용한 결과다.

반면 경쟁상대인 외국 요리사는 국제무대에서 저만치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일식의 최고경지라는 스시의 경우 미슐랭 별을 받은 일본식당엔 외국인 요리사로 문전성시다. 도쿄의 별 셋 스시식당의 한 점주는 “선정 이후 일반손님보단 세계 각지의 요리사로 예약이 꽉 찼다”며 “이들은 궁금함을 끝까지 물어가며 온갖 정보를 얻어간다”고 혀를 내두른다. 특히 프랑스 요리사가 그렇다. 이들은 안테나를 바짝 올려 세워 폭넓은 경험을 습득하고 새로운 도전에 의욕적으로 나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 요리는 극동의 지역음식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세계에 일본 요리의 매력을 알리려는 젊은 후속세대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전통일식은 우선순위가 떨어진다. 퓨전이 대세라면 대세다. 일례로 조리학교에서 일본 요리는 인기가 낮다. 엄청난 근무강도와 함께 장기간의 도제교육 탓이다. 국제화는커녕 맥을 이을 인재 육성조차 만만찮다.   

일본의 음식 산업(외식·가공식품 등)은 모두 합해 약 60조엔의 거대시장을 자랑한다. 저출산·고령화와 음식의 안전성 문제 등 향후 구조변화가 예상되면서 거대 산업의 미래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이 와중에 미슐랭 소동은 일본 요리의 한계와 고민, 그리고 대안을 풀어줄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별 숫자에 연연하기보단 고객만족이 더 중요하다”는 업계 입장에 “최고라면 경쟁을 통해 이를 증명하라”는 미슐랭의 날 선 대립이 감정싸움에 머물러선 미래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미슐랭의 홍보로 발생한 일시적인 집객효과에 만족해 무조건 옹호하거나, 평가능력과 구설수에만 집중하며 게재 거부를 주장하는 것 역시 길게 봐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물론이다.

어쨌든 미슐랭의 별은 그 자체가 일종의 패스포트다. 해외요리박람회 초청이나 펀드의 자금 출자 등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거절할지 환영할지 여부는 순전히 일본 요리 업계의 선택에 달렸다. 그리고 그 선택은 미래 생존과 직결된다. 일본 요리 업계가 갈라파고스를 벗어나 진화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