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중국 선전 경제특구를 방문, 기념휘호를 쓰고 있는 덩샤오핑 국가주석. (오른쪽)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2010년 9월 광둥성 선전시의 ‘경제특구성립 30주년 경축대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 (왼쪽)중국 선전 경제특구를 방문, 기념휘호를 쓰고 있는 덩샤오핑 국가주석. (오른쪽)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2010년 9월 광둥성 선전시의 ‘경제특구성립 30주년 경축대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중국은 정치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법률 앞에서 완전히 평등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지난 4월 28일 말레이시아에서 한 말이다. 공식방문 기간 중에 현지 주재 대사관원들과 교민들을 만난 자리에서 또 다시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해 8월과 9월 선전 경제특구 설립 30주년 기념 연설 등을 통해 정치개혁에 대해 말을 꺼내기 시작한 이래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 다시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함으로써 중국 정치의 속사정에 대해 궁금증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중국 고위 지도자들 가운데 유독 원자바오만 정치개혁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도 작년 9월 선전을 방문한 자리에서 “경제체제와 정치체제, 사회체제의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선전시의 선행선시(先行先試)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30년 전 조그만 어촌이던 선전시가 경제특구가 되면서 중국 경제발전을 선도한 것처럼, 정치개혁도 선전시가 먼저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다. 원자바오의 발언에 이은 후진타오의 언급에 뒤따라 중국공산당은 9월 15일부터 사흘간 열린 제17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를 통해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명시하는 구절이 담긴 공보를 발표해서 중국 안팎을 놀라게 했다.



중국은 지난 1978년에 시작된 개혁개방 정책의 성공으로 30년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룩한 바탕 위에서 드디어 정치개혁, 민주화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일까. 그동안 경제의 빠른 발전은 추구하되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를 유지하는, 이른바 박정희식의 신권위주의(新權威主義·New Authoritarianism)를 채택해온 것이 중국이었는데, 이제부터는 정치의 민주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과연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중국 경제의 앞날에는 한 치를 내다볼 수 없는 천변만화(千變萬化)가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 점을 짚어보기 위해서는 배링턴 무어(Barrington Moore)라는 사회학자가 1966년에 쓴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Social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이라는 책의 이론에 따라 점검해보지 않을 수 없다. 무어는 그 책에서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지금의 중산층에 해당하는 부르주아(Bourgeois) 계층을 형성했기 때문에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했고, 중국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농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체제를 구축하다 보니 독재정치 체제를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 이론에 따르자면 현재 중국에는 얼마만한 정도의 중산층이 형성되어 있는가를 따져보는 것이 앞으로 중국의 정치개혁이나 민주화가 가능할지의 여부를 따져보는 데 중요한 기준선을 제공해줄 것이다.



과연 중국에는 얼마만한 크기의 중산층이 형성돼 있을까. 미국의 투자 자문회사인 맥킨지(McKinsey)는 지난 2006년 중국 국가통계국의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당시에 형성돼 있는 중국 중산층의 크기를 측정하고, 또 이후 중산층의 크기를 전망하는 작업을 해서 그 결과를 발표한 일이 있다. 당시 맥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2005년의 경우 세계은행의 기준에 맞는 것으로 추정되는 연수입 4만~10만 위안에 해당하는 중산층의 비율은 9.4% 정도였다. 맥킨지는 2015년이 되면 이 비율은 21%를 웃도는 수준이 될 것이며, 2025년에 가야 59.4%로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시 말해 “물건을 고를 줄 알게 되면, 정권을 고르게 된다”는 말로 대변되는 민주화는 중국의 경우 2015년 전후가 되어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중국의 중산층 크기에 관한 가장 최근의 조사는 ADB(아시아 개발은행)이 지난 2월에 내놓은 보고서일 것이다. ‘중국 중산층의 부상(The Rise of the Middle Class in Peoples Republic of China)’이라는 제목이 붙은 ADB의 보고서는 맥킨지의 조사보다는 중국 중산층의 두께가 좀 더 두터운 것으로 판단했다. ADB는 하루 수입 2달러 이하의 가정을 가난한(Poor) 계층으로 분류하고, 2~20달러 범위의 가정을 중산층(Middle Class)으로 분류했다. 하루 수입 20달러 이상은 상위(Upper) 계층으로 분류했다. 이 분류에 따르면 2007년 중국의 중산층은 이미 70%를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이 조사에서 하루 수입 6~10달러의 중상(Upper Middle) 계층을 부유층으로 분류할 경우 중산층 비율은 44%를 약간 웃도는 수준인 것으로 조정해볼 수 있다. ADB의 조사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중국의 중산층 비율은 이미 50%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중국은 이미 미국이나 유럽의 중산층 비율을 향해 다가가고 있고, 정치체제 개혁과 민주화에 필요한 환경은 얼마 안 가 조성될 것으로 전망해볼 수 있다. 그러나 필자의 판단으로는 중국 중산층의 실제 크기는 맥킨지의 진단과 ADB의 진단 사이의 어느 선에 와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배링턴 무어가 볼 때 중국의 경우 진(秦)왕조에서 청(淸)왕조에 이르는 중국의 왕조 정치체제에서는 과거를 통해 선발된 선비 계층이 사실상 토지의 소유권이라는 경제력과 정치권력을 동시에 쥔 계층이었다. 황제도 따지고 보면 토지의 소유권을 가진 지주였고, 황제는 과거를 통해 형성된 선비계층에게 토지를 나누어주고 수확물을 거두어들인 ‘거대 지주(Super Land-lord)’였다. 이 선비 계층이 청대에까지 유지됐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중산층 부르주아 계층이 형성되지 않았으며, 마오쩌둥은 피압박 계층인 농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체제를 구축하다 보니 과격한 독재체제를 구성하게 됐다. 따라서 무어의 이론을 적용해보면, 덩샤오핑이 내세운 샤오캉 사회를 목표로 한 경제발전의 결과 중국에도 형성되기 시작한 중산층의 범위가 넓어질 경우 중국도 민주주의를 실시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될까. 13억5000만의 중국이 과연 정치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서구식의 민주주의 실시를 위한 정치제제의 개혁에 나서는 모습을 머지않은 장래에 보게 될까. 중국에서도 “물건을 고를 수 있게 되면, 정권도 고르게 된다”는 말이 실현되는 날이 오게 될까. 마르크스주의자들 논리로 말하자면 “하부구조의 변화가 마침내 상부구조의 변화로 연결되는 날”이 얼마 안 가 오게 되는 걸까.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점은 중국의 왕조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경우에도 조선왕조 500년 동안 과거를 통해 선발된 관료 계층이 토지소유를 독점하고, 농민들은 이들 학자 겸 관료 겸 지주인 사람들의 땅을 빌어서 소작을 짓던 시대가 계속돼왔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모른다. 요즘 대한민국에서도 각종 고시를 통해 출세한 사람들이면 마땅히 경제적으로도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 깊숙한 곳에 뿌리박혀 있고, 그래서 “배운 사람들이면 경제적으로도 성공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만들어냈는지도 생각해볼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정치는 또 어떻게 개혁해나가야 하는 것일까.



- 중국 상하이 씽크타운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있는 중국 중산층 가족.
- 중국 상하이 씽크타운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있는 중국 중산층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