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웨이 차이나는 자선단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 : 암웨이 차이나 홈페이지)
- 암웨이 차이나는 자선단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 : 암웨이 차이나 홈페이지)

2003년 6월 26일 중국 남부 광둥성의 성도인 광저우시에서 한 행사가 열렸다. 세계적인 다단계 판매회사인 암웨이(Amway,중국명 安利)가 광저우 경제개발특구 안에 현지공장 증설(1억2000만 달러 규모)을 위한 투자협의 조인식을 갖는 자리였다. 암웨이는 1999년부터 광저우 경제개발특구 안에 580만㎡ 부지를 사들여 중국에 공급·판매하는 각종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이는 암웨이가 운영하는 제품공장 가운데 해외에서는 유일한 것이다. 



1억2000만 달러는 1995년 중국에 첫발을 디딘 암웨이가 과거 9년간 투자한 금액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였다. 이는 암웨이의 중국화, 현지화를 향한 강력한 의지의 상징으로 풀이됐다. 더욱이 홍콩과 광둥성을 휩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 증후군) 공포의 여파로 대다수 글로벌 기업들은 당시 중국 진출을 망설이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암웨이가 보란 듯이 대형 재투자를 결정한 것은, 곤경에 처한 중국 정부에 ‘가뭄 속 단비’나 마찬가지였다. 



공산당 일당지배 정치체제 아래 정글을 연상시키는 예측불허의 연속인 중국 비즈니스 환경에서 중국 직접 판매 분야에서 40%에 이르는 점유율로 1위를 달리는 암웨이. 그 이면에는 남다른 마케팅 노하우와 경영 비결이 숨어 있다.



1959년 미국 미시간주 에이다에서 출범한 암웨이는 세계 80여개국에 3억개의 유통대리점을 갖고 있는 생활용품 판매회사이다. 회원을 통해 회원이 회원을 또 낳고 연결하는 구조로 제품을 유통하는 다단계 방식의 직접 판매 시스템을 취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암웨이는 중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고유의 성장모델인 이런 다단계 직접 판매(multi-level direct selling)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막 전환한 중국에서 암웨이의 직접 판매 사업은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3년 후인 1998년 4월 21일 중국 국무원은 ‘다단계 경영활동 금지에 관한 통지’를 전격 발표하고 이날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암웨이 방식을 모방한 불법 피라미드 업체들이 난립해 피라미드 판매가 심각한 경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데다, 내부 회원제로 집회를 계속하면서 결속력을 높여간다면 자칫 공산당 독재체제 위협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어 중국 국무원은 ‘외국인투자 직접 판매기업의 판매방식 전환 문제에 관한 통지’를 내놓고 모든 직접 판매 기업에 대해 영업방식 전환을 요구했다. 그 결과 중국 전역에 깔려 있는 암웨이 영업망은 올 스톱 됐다. 뉴욕증시에선 하루 만에 암웨이 주가가 20%나 폭락했다. 1997년 15억 위안(2250억원)이던 암웨이 차이나 매출액은 1998년 3억2000만 위안(480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중국 시장에서 철수냐 잔류냐’, ‘저항이냐 순종이냐’를 놓고 암웨이는 심각한 고민에 휩싸였다.



암웨이 미국 본사는 회의를 거듭한 끝에 “중국 시장에선 인내가 필요하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굳혔다. 대신 선택한 카드는 비즈니스 모델 교체였다. 당시 중국 정부는 직접 판매 기업이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지켜야 할 필수조건 세 가지를 제시했다. 이는 중국내 생산공장이 있을 것, 직영매장이 있을 것, 방문판매는 기업 소속 직원만이 할 것이었다.



암웨이는 우선 전국의 지사 20개를 모두 직접 매장으로 바꿔 매장에서 제품을 살 수 있게 했다. 또 회원을 모집하는 대신 직원을 뽑아 매장 근무와 함께 방문판매를 일부 계속했다. ‘매장+판매사원’이라는 변형 모델을 채택한 것이다.



이와 함께 직접 판매 매장에 진열된 모든 제품에 가격표를 붙였다. 이는 소비자들이 직접 물건을 고르게 도울 뿐 아니라 판매사원이 임의로 가격을 낮추거나 높이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에서였다. 

중국 판매 금지에 ‘매장 + 판매사원’ 변형모델 도입

암웨이에 ‘악재’만 쏟아진 것은 아니었다. 1998년 5월 당시 국무위원(부총리급)이던 우이(吳儀)는 암웨이 등 8개 직접 판매기업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금지령은 여러분들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직접 판매가 외국에는 엄연히 존재하며 여러분들의 회사가 좋은 회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는 중국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금지령은 이미 내려진 것이라 어쩔 수 없지만 여러분들에게 출구를 열어주겠다”고 말했다.



암웨이 차이나는 중국 정부의 이런 의중을 꿰뚫고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노력을 병행했다. 암웨이 측은 중국 정부가 비록 금지령을 내렸지만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관련 법령을 새로 내놓을 것이라고 보고 암웨이에 유리한 법안이 나올 수 있도록 중국 정부를 상대로 밑바닥을 훑는 저인망 로비에 착수했다. 1977년 암웨이에 입사해 홍콩과 대만 지사 총경리를 각각 역임하며 중화권 사정에 정통한 정리진펀 암웨이 차이나 회장이 이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1년여 후인 1999년 7월 우이 국무위원 앞으로 암웨이 차이나가 전달한 ‘중국 직접 판매 발전의 과거와 미래’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그 결정판이었다. 이 보고서는 유통관련 입법 경험이 전무한 중국 공무원들을 위해 암웨이 직원들이 작성한 것이다. ‘반(反)피라미드 판매 규정’, ‘직접 판매 관리규정’, ‘세계 직접 판매협회 윤리강령’ 등 중국 정부 관계자들의 마음에 꼭 드는 외국 사례들을 포함했다. 2004년에는 중국 상무부의 요청으로 앞으로 태동할 직접 판매법에 대한 암웨이의 의견서를 만들어 제출했다.



이런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2005년 9월 중국 정부는 피라미드 판매는 금지하면서도 직접 판매 허용을 골자로 한 진일보한 정책을 내놓았다. 이에 맞춰 암웨이 차이나는 직접 판매를 기본으로 하면서 피라미드 판매가 아니면서도 직접 판매상과 판매사원 그리고 이들을 연결해 정교하게 활용하는 네트워크 서비스로 영업하는 삼각 시스템을 도입했다.



동시에 중국 정부로부터 직접 판매 영업허가권을 받고 새 판매 시스템과 인사정책을 마련해 상여금, 제품가격, 보상정책 등을 재정비하고 판매사원들에 대한 교육을 대폭 강화했다.



미국 본사도 중국 비즈니스 성공을 위해 거들었다. 1999년과 2000년 2월 스티브 반 안델 암웨이 회장이 미국 연방의회 청문회에 나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중국에 대한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 부여를 주장했다. 안델 회장은 또 2002년 9월 미국상공회의소 산하 중소기업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찾아가 대중투자 확대와 우호적인 협력 분위기 조성에 앞장섰다. 이런 노력은 암웨이에 대한 중국 정부의 시각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암웨이 차이나의 다른 마케팅 성공비결은 헌신적인 사회봉사(CSR) 활동, 소위 ‘착한 기업’ 전략이다. 단적으로 이 회사의 홈페이지(www.amway.com.cn)를 들어가 보면 기업 사이트인지, 자선단체 사이트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언어도 영어와 현지어를 함께 쓰는 상당수 기업과 달리 아예 현지어(중국어)로만 돼 있다.

- 암웨이 차이나 홈페이지.
- 암웨이 차이나 홈페이지.

우수 영업사원에 파격적 보상

사회봉사 활동도 상상을 뛰어넘는다. 암웨이 차이나가 2008년 시작한 양광(陽光)계획이 대표적이다. 양광계획은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부모들이 버리고 떠난, 이른바 2000만명에 이르는 중국의 떠돌이 노숙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암웨이 차이나가 중국 아동소년기금회와 공동으로 벌이고 있다.



노숙아동들에게 정상적인 교육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홈페이지에 노숙아동들의 애틋한 사연을 소개하는 한편 15개 주요 도시에 도서관과 학교를 세우고 자원봉사자와 교사단, 취재 기자단 등을 모집해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 한편 실질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극빈곤층 어린이들이 적정한 영양을 공급받으며 자라도록 돕는 춘묘영양(春苗營養) 계획, 농민공 자녀들을 위한 무지개 교육지원 프로그램, 환경보호 및 건강증진 활동도 벌이고 있다. 암웨이 차이나 집계에 따르면 중국 진출 후 협찬한 CSR 행사만 3000개가 넘으며 비용으로 지출한 금액은 1억9000만 위안(약 323억원)에 달한다.



중국인들의 호응도 뜨겁다. 암웨이의 대표적인 건강식품 브랜드인 뉴트리라이트가 건강한 생활습관 보급을 위해 2002년 시작한 ‘건강 달리기’의 경우, 첫해 참가자가 2만명이었으나 지난해는 전국 35개 도시에 194만명으로 늘었다. 10년째인 올해는 전국 51개 도시에서 240만명이 참가해 중국 내 건강 달리기 단일 행사로는 최대 규모에 이를 것이라고 암웨이 측은 밝혔다.



암웨이는 올 1월 1억 위안(약 170억원)을 출연해 중국에서 투명하고 효율 높은 사회봉사 활동을 하기 위해 암웨이 공익기금(Amway Charity Foundation)을 발족했다.



암웨이 차이나는 2009년 인민사회책임상, 3년 연속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상 등을 포함해 지금까지 2100개가 넘는 각종 사회봉사 활동 관련 상을 휩쓸면서 ‘중국을 사랑하고, 중국 인민과 함께 하는 중국을 위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하고 있다.



우수한 영업사원을 위한 파격적인 보상과 과감한 직원 교육 등도 암웨이 차이나가 잘나가게 하는 요인이다. 2010년 6월 암웨이 차이나는 1만3000명의 우수 영업사원을 전액 회사 비용으로 일주일간 미국여행을 보냈다. 암웨이는 올해 1월에는 8000명의 우수 판매사원들을 호주의 시드니에 보냈다. 이는 단일 기업으로 시드니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체여행으로 꼽혔다.



현재 암웨이 차이나가 직접 고용하고 있는 정규직 중국인만 2만2000여명, 비정규직 사원을 포함하면 20만명에 육박한다. 암웨이는 중국 전역에 189개의 직접 판매 영업장과 중국인들을 위한 신제품 개발을 목적으로 2002년부터 상하이에 연구개발센터를 각각 운영하며 7개의 특별연구 실험실을 통해 매년 1500만개의 제품을 테스트해 최적의 제품을 엄선해 공급하며 당당한 중국 경제의 주체로 자리 잡았다.



암웨이 차이나의 성공 역정은 중국 고대 병서인 <36계>의 제30계인 반객위주(反客爲主) 전략을 연상시킨다. 즉 처음에 손님으로 들어왔다가 인내하며 상황에 적응, 실력을 키워 결국은 안방의 주인 자리를 꿰차게 됐다는 것이다.